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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12/97)

12화

* * *

관례에 따라 황제와 황비는 일주일에 한 번씩 식사를 했다. 하지만 카드란이 그 식사를 하지 않았는데 이번 주는 유이시엘과 같이 식사를 하겠다고 해서 주변 이들을 놀라게 했다.

카드란이 세안과 함께 식당에 나타냈을 때 유이시엘은 자신의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가 들어오자 유이시엘이 일어나 그를 맞이했다. 세안은 카드란의 옆자리에 앉고, 유이시엘은 맞은편 자리에 떨어져 앉은 채 식사가 시작되었다.

유이시엘은 말없이 음식을 천천히 먹었다. 카드란은 유이시엘에게 말을 걸지 않고 세안에게 말을 걸었다.

“체하지 않도록 천천히 먹거라.”

“폐하께서도 맛있게 드세요.”

“물론이지.”

“그런데 음식이 정말 좋네요.”

둘은 속닥거리며 음식을 먹었다. 와인을 마시면서 카드란은 슬쩍 유이시엘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평소와 똑같이 무심했다. 자신하고 세안이 어떤 짓을 해도 상관없다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유이시엘.”

카드란이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유이시엘의 아름다운 눈동자가 그를 향했다. 눈동자엔 의문이 머물러 있었다.

“그대가 은닉한 돈을 찾은 것 같은데?”

“은닉한 돈이라니.”

말을 듣고 세안은 놀란 기색이었다. 유이시엘이 그랬다고 믿기 어려웠다.

“그런 일은 없어요. 잘못 찾으신 것일 거예요.”

유이시엘은 단호히 말했다. 그러자 카드란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고기를 잘랐다.

“찾았을지도 모르지 않는가.”

“그런 것이 있을 리가.”

“거의 다 찾았다고 하더군.”

“폐하.”

유이시엘은 뭐라고 하려다가 포기했다. 어차피 자신이 뭐라 하든 카드란은 사람을 모함할 테니까.

그러데 왜 갑자기 식사 시간에 이런 말을 할까.

그의 행동에는 계산이 깔려 있다. 그냥 한 말 같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행동을 한다 해도 자신이 상처받는 일은 없는데?

카드란은 유이시엘이 조용히 있자 다시 고기를 썰며 세안에게 넘겨주고 세안은 그것을 먹으며 웃었다. 그런 그들을 바라보다 유이시엘은 음식을 남겼다.

음식이 목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 * *

세안은 다음 날 일어나 시녀들의 시중을 받았다. 그런데 뒤에서 시녀들이 몰래 뒷말을 하는 것이 들려왔다.

“황비 전하께서 류크 로이체란의 재산을 은닉했다면서요?”

“그렇게 안 봤는데.”

“그러게요.”

“하긴, 로이체란 가문인데.”

세안은 그들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물론 유이시엘에게 은닉 재산이 있다고 소문이 도는 것은 알았다. 그런데 그렇게 단정할 만한 언급은 없는데.

‘어제 일로 못을 박은 거구나.’

“정말이지.”

사람들은 가십을 좋아한다. 그리고 깨끗한 누군가가 더러웠다는 말을 하는 것을 특히 좋아했다. 세안이 겪어 본 세계는 그랬다.

카드란은 사교계의 심리를 알았다. 그래서 사람들을 선동해, 선동당한 이들이 유이시엘을 공격하도록 일을 꾸민 것이었다.

사람들이 오가는 곳에서 직접적으로 말을 하는 게 먹이를 던지기 쉽다. 그래서 카드란은 유이시엘과의 식사 자리에 자신을 불렀다.

그가 자신을 총애하고 유이시엘을 의심하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 그리고 유이시엘이 깨끗한 성녀가 아닐지도 모르는 의문을 던지기 위해서.

설령 나중에 일이 잘못되더라도 카드란은 오해였다고, 사실은 아니라고 말하면 그만이었다.

그리고…… 그 외의 목적이 있다면, 황제가 유이시엘이 아닌 자신을 총애한다는 걸 공표하고 싶다는 것일 터였다.

“으흠.”

아무래도 무슨 일이 생길 것 같다.

황제도 분란을 바라고 있으니 말이다.

* * *

창문으로 어둠이 밀려오고 있었다. 이맘때면 코넬이 식사를 들고 올 시간이다. 코넬은 언제나 정해진 시간에 꼬박꼬박 들어왔기에 그녀가 오지 않자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1시간이 지나도록 그녀가 오지 않았다. 그제야 유이시엘은 일이 잘못된 것을 알았다.

그녀는 급한 마음에 밖으로 나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코넬이 갈 만한 곳을 찾던 그녀는 어둑어둑해진 하늘을 바라보았다.

“어디를 간 거지?”

걱정이 든다. 그녀는 초조해진 듯 주먹을 쥐었다 폈다.

‘별일 없을 거야.’

그렇게 생각한 그녀는 얼른 정원을 돌아다녔다. 그렇지만 코넬의 모습은 어디에도 찾을 수 없었다.

“코넬!”

「내가 도와줄까?」

성물의 소리가 들렸다.

“성물님.”

「저쪽 정원으로 가 봐.」

성물이 가리킨 방향으로 그녀는 걸었다.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 가던 그녀는 자리에서 멈추고 말았다.

“레……린?”

유이시엘은 눈을 떴다.

코넬이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얼굴에 든 멍을 본 그녀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안 돼.”

얼른 코넬을 업은 유이시엘은 자신의 거처로 그녀를 데려갔다. 다들 유이시엘과 어울리기 싫어서 시녀 지원을 하지 않아 황비궁에는 최소 인원만 있었다.

그들을 움직여 코넬을 치료할 수 있을 리가!

‘아.’

유이시엘은 두 손을 움켜쥐었다.

치유력을 쓰려면 황제의 허락이 필요하다.

그녀는 청색 목걸이를 떠올렸다. 황비가 대대로 사용하던 목걸이였다.

카드란은 자신을 속박하기 위해 지에렌에게 칼을 꽂았다. 카드란이 그를 치료할 기회를 주었기에 마지막 카드인 이 방법은 쓰지 않았다.

하지만 코넬은 다르다. 카드란에게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그렇기에 그를 움직이려면 아주 결정적인 것이 필요했다.

* * *

카드란은 슈렌과 정무를 보고 있었다. 류크의 재산을 꽤 많이 찾았고 로이체란 가문에서도 협조적으로 나왔다. 이 이상 황제의 눈 밖에 나면 가문 자체가 멸문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상당히 많군.”

카드란은 무척이나 만족했다.

“그렇습니다.”

이 정도면 기사단의 많은 것을 바꿀 수 있다. 슈렌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카드란 역시 앞으로 변화될 기사단을 생각하며 오랜만에 기분 좋게 웃었다.

“폐하.”

그때 집무실 입구를 지키던 기사가 들어왔다.

“무슨 일이지?”

“황비마마께서 오셨습니다.”

그 말에 카드란은 고개를 돌렸다.

“생각보다 빨리 일이 터졌군.”

카드란은 읊조리며 일어났다. 슈렌은 고개를 들어 문을 직접 열러 간 카드란을 바라보았다. 문을 열자 유이시엘이 다급한 얼굴로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재상, 나가 봐.”

“알겠습니다.”

슈렌은 앞으로 일어날 일이 궁금했지만 망설이지 않고 일어났다.

그가 나가고 카드란은 여유롭게 유이시엘에게 말을 걸었다.

“무슨 일이지?”

“코넬을 치료하게 해 주세요.”

그러자 카드란이 탁자에 올려 둔 커피 잔을 들고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마련된 소파에 앉아 다리를 꼬았다.

“다친 모양이군. 하지만 고작 시녀 때문에 치유력을 사용하게 할 생각은 없는데?”

그의 냉정한 말은 예상했다.

“부탁드립니다.”

“성녀가 부탁도 하나?”

“제발.”

그녀가 슬프게 말했다.

얼굴이 일그러지고 무표정이 깨진 그녀의 얼굴은 정말로 사람답다. 묘한 승리감에 카드란은 부드럽지만 냉정히 말했다.

“싫다면?”

“부탁드립니다.”

유이시엘은 무릎을 꿇었다.

“그 아이를 살리게 해 주세요.”

유이시엘에게 있어 코넬은 가족과 같았다. 어디에도 갈 곳 없는 그 아이와 자신은 어딘가 많이 닮았다.

“내가 얻는 게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그녀가 간청하든 말든 카드란이 차갑게 대꾸하자 유이시엘은 가지고 온 청색 목걸이를 내밀었다.

“이것은 무엇이지?”

카드란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폐하의 어머니의 유품입니다.”

“뭐?”

그러자 카드란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원래 이 목걸이는 대대로 황비가 쓰는 물건이죠.”

“그래서?”

“폐하의 어머니께서도 쓰셨습니다.”

카드란은 분노했다.

“속이려고 하지 마라. 내 어머니는 황비가 아니었다.”

“선선대 황제 폐하께서 하사하셨다가 다시 회수된 겁니다.”

“그걸 어떻게 믿지?”

그에 유이시엘이 기다렸다는 듯 그에게 목걸이를 쥔 손을 내밀었다.

“손가락을 대면 알게 되실 겁니다.”

카드란은 떨리는 손으로 목걸이에 손을 댔다. 그러자 거기에 걸려 있던 마법이 풀리며 거대한 환영이 나타났다.

환영 속엔 검은 머리카락을 가진 여자가 있었다.

“……어머니?”

죽은 어머니가 계셨다.

그리고 그 순간.

「란!」

자신의 뒷글자만 부르는 소녀의 소리가 들렸다.

「나도 찍을래!」

「안 돼. 여긴 우리 가족이 찍는 거야.」

「언젠가 나도 란의 가족이 될 거잖아! 란이 전에 말했잖아.」

「알았어! 그럼 손만 내밀어.」

「응.」

그리고 소녀가 곱고 작은 손가락을 내밀었다. 영상은 그것을 끝으로 꺼졌고, 목걸이는 원래대로 돌아갔다. 카드란은 다시 영상을 틀어 작은 아이의 소리를 계속 들었다.

‘란.’

자신을 이렇게 부르는 아이의 목소리가…… 예뻤다.

감정이 목 끝까지 밀려왔다.

“……목걸이를 내놔.”

카드란은 겨우 목소리를 쥐어짰다.

유이시엘이 이것을 어떻게 알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토록 찾고 싶던 아이의 흔적이다.

“치료해.”

유이시엘은 고개를 숙였다.

그녀를 몰아세우려고 했지만 자신이 도리어 당했다. 하지만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코넬을 폐하의 시녀로 둘 수 있을까요?”

유이시엘의 말에 카드란이 목걸이를 움켜쥐었다.

“얼마든지.”

그는 몸을 돌렸다. 그리고 유이시엘이 얼른 나가자 다시 목걸이의 영상을 틀었다.

어린아이의 목소리였기에 성인이 된 그녀의 목소리가 어떨지는 알 수 없다.

그런데도 마치 어른이 된 그녀가 곁에 있는 것만 같았다.

가슴이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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