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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6/97)

6화

“오늘도 가주님께 다녀오신 거예요?”

“맞아.”

그러자 코넬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성녀가 치유력을 사용하면 일정 시간 동안 피로가 몰려온다. 로이체란 가주인 지에렌을 치료하고 왔는데 자신이 와서 정신 사납게 했으니 유이시엘의 피로가 더 깊어졌을지도 몰랐다.

“그분은 괜찮으세요?”

코넬은 얼른 진정하고 조곤조곤 물었다.

“아니.”

유이시엘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아무리 치료를 해도 지에렌이 깨어나지 않아 걱정되었다.

자신이 죽기 전에 치료가 되어야 할 텐데.

“황제 폐하께서 성녀님을 황비로 맞이한다고 해서 황궁이 난리가 났어요.”

“그렇겠지.”

로이체란 가문의 사람을 황비로 맞이하는 황제의 결정을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가 이런 식으로 나올 거라고 예측하지 못한 것은 유이시엘도 마찬가지였다. 성력을 쓰다가 죽도록 일을 꾸밀 거라고만 생각했지, 다른 일도 할 거라고 누가 알았을까.

단순히 류크에게 모욕감을 주기 위해 결혼을 하는 것일까, 아니면 다른 속셈이 있는 것일까.

손이 떨렸다. 그의 생각을 알지 못해 무척이나 답답했다.

고민을 하던 유이시엘은 조용히 일어났다. 성녀가 하는 일 중엔 황궁에서 직접 운영하는 보육원을 관리하는 일도 있다. 카드란이 무슨 일을 하건 간에 자신의 일은 해야 한다.

늘 차고 다니던 목걸이를 목에 건 유이시엘은 거울에 비친 자신을 바라보았다.

“모든 것은 폐하께서 알아서 하실 일이야. 지금의 나는 어떤 것도 할 수 없어.”

“그렇지만…….”

“일을 해야지, 코넬.”

유이시엘의 말에 코넬이 억울한 듯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성녀님은 이렇게 좋은 분이신데.”

“로이체란 가문은 그렇지 않잖아.”

“그래도 성녀님은 로이체란의 다른 사람이랑 다르다고요!”

코넬의 말에 유이시엘은 쓴웃음을 지었다.

자신이 죽고 나면 코넬과 보육원 아이들은 슬퍼해 주겠지. 아무도 자신을 슬퍼하지 않아도 그들이라면 무덤에 꽃 한 송이 놓아 줄지도 몰랐다. 그게 작은 위안이 되었다.

* * *

“왜 이리 결혼식 준비에 말들이 많은지. 원래 결혼식 준비는 황후의 지휘 아래 있어야 하는데 말이죠.”

비싼 커피를 벌컥벌컥 마시던 백발을 곱게 묶은 여인, 누엘이 투덜거렸다. 그러자 그의 옆에 있던 슈렌이 그녀를 달래기 위해 쿠키를 손에 얹어 주었다.

“전 황후가 전 황제랑 같이 죽어서 어쩔 수 없잖아.”

“그건 그렇지만…….”

“그리고 원래 황궁에서 일어난 일은 당신이 다 처리했고.”

슈렌의 말이 맞았다. 황후를 모시는 시녀장인 누엘은 전 황후가 일을 안 해서 대신해서 일을 처리했었다. 전 황제나 전 황후나 둘 다 일을 제대로 돌보질 않아서 나라꼴이 그야말로 엉망이었다.

그녀의 갈색 눈동자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결혼식 때 유이시엘이 입을 옷을 고르느라 정신이 없었다.

원래대로라면 황후가 황비가 될 여자와 같이 골라야 하지만 지금은 그럴 시간이 없다.

카드란이 알아서 처리하라고 명령을 내려서 시녀장인 그녀가 유이시엘에게 어울릴 만한 옷들을 고르고 있었다.

황비의 경우 후궁들 중에서 가장 높은 자리기에 결혼식 때 황실 대대로 내려오는 옷을 입는다. 그 옷들 중에서 선택하면 되는 일이기에 별로 힘들지는 않았다.

누엘의 눈동자가 빛났다. 이 옷이 유이시엘과 잘 어울릴 것 같았다.

유이시엘이 워낙 아름다워 무엇을 입어도 상관없을 것 같지만 이 옷이라면 그녀의 아름다움을 더 빛내 줄 것이다.

“누엘, 골랐어?”

“골랐습니다.”

“이 옷들을 성녀님께 전달해 주면 되겠군.”

“그렇게 하면 될 겁니다.”

황비의 결혼식은 황후의 결혼식보다 간소했다. 후궁이기에 정식 결혼식이 아니었기에 약간 격이 떨어졌다. 그냥 적당히 손님들을 초대하고 사랑의 맹세도 없이 반지만 주고받으면 끝났다.

정식 결혼식보다는 일이 적었기에 누엘도 재빨리 일을 처리할 수 있었다.

“역시 누엘은 손이 빨라.”

슈렌은 감탄하며 그녀의 일처리에 박수를 쳤다. 그러자 누엘이 싱긋 웃으며 안경을 슬쩍 올렸다.

“폐하와 성녀님이 입을 옷을 정했으니 이제 초대장만 보내면 되는군요.”

“명단은 내가 다 작성해 두었지.”

“고생하셨습니다.”

누엘이 고른 옷 그림을 슈렌이 챙겼다. 그는 얼른 시녀를 불러 유이시엘에게 이것을 전달하라고 명령했다.

볼일을 마친 슈렌이 나가고 누엘은 초대장을 정리했다. 그러다 그녀는 문득 유이시엘을 떠올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슈렌이 있을 때는 차마 하지 못했던 말을 홀로 중얼거렸다.

“안되었습니다.”

로이체란 가문은 황제의 외척이 되어 엄청난 권력을 누렸다. 그리고 류크는 그 중심에 있었다.

지에렌이 류크를 누르려고 했지만 그것은 쉽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유이시엘은 언제나 성녀로서 본분을 다했다.

그녀가 다른 이들에게 잘못한 것은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유이시엘은 류크가 아꼈다는 이유로 카드란의 표적이 되었다.

카드란은 성녀인 유이시엘에게도 비리가 있다고 하지만 누엘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욱더 지금 상황이 안타까웠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그리고 이것으로 끝일까?

황제가 고작 결혼식만 할 것인지 아무도 모른다. 즉, 결혼식 날 무슨 일이 생길지 아무도 모른다는 뜻이었다.

누엘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냥 성녀인 유이시엘이 안타까웠다.

* * *

보육원에 가서 아이들을 만나고 성녀의 방으로 돌아온 유이시엘은 의자에 앉았다. 같이 따라갔던 코넬이 얼른 그녀가 기운을 차리도록 차를 가져다주었다.

“고마워.”

유이시엘은 그렇게 말하고 찻잔을 놓았다. 책상 위에는 황궁 시녀가 놓고 간 것 같은 그림이 그려진 책자가 있었다.

“결혼식 날 입을 옷인 것 같아요.”

코넬의 말에 유이시엘은 책자를 보았다. 거기에는 자신과 어울릴 만한 옷들이 그려져 있었다. 그녀는 말없이 쓴웃음을 지었다.

이런 것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어차피 축복할 만한 결혼식이 아니다.

카드란은 복수에 미쳐 있고 자신은 그 복수의 대상일 뿐인데 굳이 이렇게 아름다운 옷을 입을 필요가 없었다.

아니, 이 옷들이 유이시엘에게 주제를 알라고 소리치는 것 같았다.

의미 없는 형식에 불과하기에 옷을 고르고 싶지 않았다.

“적당히 고르면 될 것을…….”

“아가씨, 그래도 결혼식이잖아요.”

“제대로 된 결혼식은 아니잖아.”

유이시엘은 책자를 넘기다 멈추었다. 책자에 별표가 그려진 것을 발견하고 웃었다.

누엘이 이게 가장 어울릴 것 같다고 표시해 둔 것 같았다. 형식적인 결혼식이지만 애를 쓰는 누엘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래, 누엘은 언제나 자신을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았지. 그녀는 황궁 내에서 가장 유이시엘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이렇게 미리 옷을 정해 둔 것이리라. 자신이 옷을 그냥 형식적으로 고를 것을 알기에.

누엘이 고른 옷은 너무 화려해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지만 추천해 주는 것으로 결정했다. 그녀의 정성을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걸로 할게.”

“그럼 이것으로 골랐다고 알릴게요!”

코넬은 책자를 들고 방을 나갔다. 혼자 남은 유이시엘은 몸을 의자에 기대었다.

결혼식은 3일 앞으로 다가왔다.

그녀는 고개를 숙였다.

어떤 감정도 밀려오지 않았다.

기대도 설렘도 없다.

그냥 고요함만 있을 뿐이었다.

* * *

카드란은 앞에 선 여자, 세안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긴 금발을 풀어 헤치고 눈꼬리가 살짝 고양이 눈매처럼 올라가 매혹적인 분위기를 풍겼고, 붉은색 드레스를 입어 무척이나 고혹적이었다.

“폐하의 가짜 정부라니.”

세안은 그렇게 읊조리며 카드란을 바라보았다.

큰 키에 근육으로 다져진 몸매, 거기에 잘생긴 얼굴, 이 남자를 거부할 여자가 몇 명이나 될까. 평소라면 냉큼 안겼겠지만 오늘은 정말로 거부하고 싶었다. 보통 남자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결혼식 날 정부를 안겠다는 건 신부에게 너무 무례한 처사 아닌가요? 무려 성녀님이신데 그런 대접을 하다니, 이치에 맞지 않잖아요.”

세안이 카드란에게 대놓고 말했다. 그녀의 솔직함에 카드란은 힐끗 보다가 커피를 마셨다. 세안이 화가 나서 이런 말까지 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경고는 필요했다.

“쓸데없는 생각 말도록.”

“이런 거짓된 짓을 해야 하다니…….”

“그래서 거절할 건가?”

세안은 허탈하게 웃으며 카드란을 바라보았다. 어이가 살짝 없었다.

세안은 원래 정보 길드원의 수장이었다. 코르티잔으로 활동하면서 귀족 가문에서 필요한 정보를 직접 모으는 것을 즐겼다. 그 사실을 알아차린 카드란이 지금 그녀에게 협박하고 있는 것이었다.

코르티잔이라는 자신의 정체가 탄로 나는 건 조금 곤란했다. 개인적인 유희가 깨지니 말이다.

거절을 할 수 없게 만들어 넣고 거절하는 거냐고 묻다니,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이야기는 끝났다. 결혼식 날 시간 맞춰 오도록.”

“진짜, 이런 짓까지 해야 하다니……. 하지만 저를 안지 않는다는 것은 지켜 줘야 해요. 그게 깨지면 우리의 계약도 끝이니까요.”

세안은 그 말을 남기고 몸을 획 돌렸다. 카드란을 더 이상 상대하기 싫어하는 눈치였다.

카드란이 고갯짓을 하자 그들을 지켜보고 있던 레카린이 조용히 그녀의 눈을 가리고 비밀 통로로 내보냈다.

세안이 나가고 카드란은 지금까지의 계획을 떠올렸다.

결혼식은 내일 시작하고 정부도 구했다.

준비는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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