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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비서의 수상한 휴가 (96)화 (96/100)

96화

매우 당연한 이야기지만 주변에서 여자 비명 소리가 날 일이 없었다.

시골집 특성상 각 집 사이는 상당 거리 떨어져 있고, 무엇보다 백희경의 집은 폐쇄되어 박 팀장과 그 일행만 가끔 오가는 곳이었다.

그들은 놀라서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전혀 생각도 못 했던 의외의 인물을 발견했다.

“놔! 이거 놓으라고, 놔!”

소리를 지르고 난동을 부리고 있는 인물은 파마머리를 한 60대 초반의 중년여성으로, 다소 강퍅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아니 이 집은 주변을 지나가지도 못해?”

“그냥 지나가신 것 아니잖아요. 뒷문으로 숨어들어 오신 거잖아요.”

“그래요, 그래. 내가 좀 궁금해서 그랬어. 이 시골 마을에 사람들이 이렇게 많아서.”

아니, 근데 그럴 수도 있지 뭐 그런 걸로 사람의 팔을 꺾고 그러느냐며 그녀가 화를 냈다.

그렇게 말하는 여자는 호기심 많은 일견 시골 섬마을의 주민 같아 보였다.

지청의 경찰도 그렇게 말했다.

“아이고, 아줌니! 여기 오심 안 됩니다.”

그는 익숙한 말투로 그녀를 타박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별다른 일이 없는 시골 특성상 뭐 사건 하나만 터지면 온 동네 사람들이 벌떼 같이 모인다고 했다.

아닌 게 아니라 지청에서 온 경찰차, 세완과 찬주가 끌고 온 차량, 박 팀장 등이 끌고 온 차량 주변에 사람들이 득실득실했다.

그들은 집 주변에 둘러서서 도대체 무슨 일이기에 이렇게 사람들이 많은 것이냐며 쑥덕공론을 펼치고 있었다.

“이 집은 어째 소용할 날이 없어.”

“얼마 전에도 이 집에서 살인 사건이 났다지 않아?”

“아니, 이번에는 또 무슨 일이여?”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사람들은 백희경에서 일어났을 수도 있는 일들을 가정했다.

사람들은 모두 여자를 그런 마을 사람들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것은 박 팀장이나 찬주 또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때 세완의 촉이 말했다. 그건 아니라고.

세완은 여자를 유심히 바라봤다. 그리고 어느 순간 깨달았다.

“그 여자 놓치지 마요!”

세완이 소리쳤다.

“……?”

사람들의 의아한 눈이 그를 향했다. 세완이 말했다.

“백희경 공범입니다. 포항의 식당 주인!”

정확하게 말하면 ‘시골집 백반’이라고 이름 붙인 백반집의 주인, ‘포항형님’이었다. 맨얼굴을 그대로 드러냈던 일전과 달리 화장을 하고, 안경을 쓰고, 옷까지 어촌 사람들처럼 입고 있다 보니 깜박 속을 뻔했다.

“으메, 저게 누구여? 순례 아녀?”

세완의 외침을 시작으로 그녀를 알아보는 섬사람들이 생겼다.

백희경의 남편과 ‘포항형님’은 이 섬 출신이다.

“당신이 장독 뚜껑을 열었나?”

세완이 그녀를 뚫어지게 노려보며 말했다.

“내가 왜? 그리고 공범이라니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얘기했잖아. 나는 구경하러 왔다고!”

백반집의 주인은 꾸준히 자신의 무죄를 주장했다.

하지만 믿을 이야기를 해야 믿어 주지!

애초에 여자가 조금 전 백희경의 집에 잠입할 때 사용한 뒷문은 이 집의 설계도에도 나와 있지 않은 숨겨진 문이고, 무엇보다 그 문은 시신이 사라졌을 때 그 시신을 숨긴 존재들이 사용한 것으로 추측되는 문이다.

“……형사님, 혹시 장독에서 지문 채취 가능합니까?”

그녀의 억지를 보다 못한 세완이 형사에게 혹시 장독 주변에서 저 여자의 지문을 채취해서 증거로 쓸 수 있느냐고 질문을 하던 상황이었다.

“야! 야, 세완아! 너 집에 전화 좀 해 봐!”

내내 골똘한 표정을 짓고 있던 찬주가 갑자기 다급하게 세완을 불렀다.

“뭘?”

“설마 오늘이 디데인 거 아니야? 백희경이 이은이를 노리는 날!”

“……!”

세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찬주는 세완의 앞에서 ‘태산’으로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직원에게 ‘포항형님’의 위치를 확인해 달라고 했다.

「어? 죄송합니다. 위치가 바뀌었습니다. 동경 128° 59' , 북위 36°…….」

“인마! 그거 말고! 섬이야, 육지야?”

「섬입니다.」

“동해? 남해? 윗동네야, 아랫동네야?”

이해하기 쉬운 정보를 내놓으라며 찬주가 다그치듯이 물었다. 하지만 그는 이미 충분히 이해를 한 것 같았다.

“망할.”

욕설을 내뱉은 세완이 몸을 일으켰다.

“나 먼저 간다.”

집으로 가야겠다. 집에 전화도 해야 하고…….

“같이 가!”

세완의 기색이 심상치 않아 찬주가 서둘러 그를 쫓으려고 했다. 하지만 세완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너는 여길 맡아. 이런 상황에서 내가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은 몇 안 되니까.”

박 팀장도 물론 믿는다. 하지만 씨족 사회 같은 이 시골에서 누군가를 권력으로 압박해 그들이 원하는 결과를 얻어 낼 수 있는 사람은 몇 명 없었다.

멀쩡한 사람을 납치해서 노예로 삼고 온 마을이 그의 도주를 감시한다는 섬노예의 이야기가 언론에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세완은 섬사람들 특유의 연대 의식으로 인해 이은이 피해자가 되길 원하지 않았다. 그의 말을 들은 찬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세완은 이쪽 일은 찬주에게 맡겨두고 차에 올랐다. 그리고 그때부터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 * *

평소와 같은 하루였다. 모시 한복을 입고 거실에 앉은 이 회장이 부채를 펄럭이면서 말했다.

“오늘은 조용하구만. 사람들 연락도 없고.”

“그러게요.”

“이은이 녀석이나 불러 볼까?”

“아이고, 됐습니다. 일 잘하는 녀석은 도대체 왜요!”

“왜긴 왜야, 콩국수나 한 그릇 먹을까 해서 그렇지.”

“퇴근하면요. 아직 퇴근도 안 했을 텐데 왜 그러세요?”

춘천댁은 이 회장을 타박하며 그렇게 젊은 애들을 자꾸 오라 가라 하면 뒷방 늙은이가 되는 순간부터 구박덩어리가 될 거라며 이 회장을 구박했다.

“아, 궁금해서 그러지!”

“잘할 겁니다. 세완이랑 이은이잖아요.”

밖에서 호시탐탐 그녀를 노리고 있는 백희경은 신경 쓰이지만 동시에 이은을 보지 못해 말라 죽어 가는 손자 놈도 신경이 쓰였다.

그래서 이 회장은 머리를 짜냈고, 그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춘천댁은 그에게 의구심을 갖고 꼬치꼬치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그 결과 그들은 이은과 세완을 결혼시키자 묘한 공동 목표를 갖게 되었다.

“콩 불려서 콩국수 준비하겠습니다.”

“응. 그려, 그려.”

이 회장이 부채를 펄럭이면서 말했다.

그 모습을 본 춘천댁이 말했다.

“그런데 그 부채는 꼭 부치셔야겠어요? 에어컨 온도가 몇 도인데요!”

실내온도 22도인데 부채질하는 흉내는 너무 심하지 않느냐며 그녀가 질문했다.

“부채를 부쳐야 여름 분위기가 나지!”

소 몰고 꼴 베던 그 시절에 이 회장은 한옥 대청마루에서 모시 한복 입고 부채질하던 사랑방 어르신을 가장 부러워했었다고 한다.

“내가 다 늙어서 부채질도 하나 마음껏 못하나?”

노인네의 막무가내에 춘천댁이 떫은 표정을 지었다. 하여간!

그렇게 춘천댁과 이 회장이 툭탁거리며 점심 메뉴를 정하고 있을 때였다.

모자를 푹 눌러쓴 소원이 위층에서 내려왔다.

“왜? 어디 가게?”

“……아, 네! 편의점에요.”

소원이 답했다.

“왜? 배달시키지?”

동네 특성상 편의점도 한참 동안 내려가야 있었다. 이 더운 날에 편의점은 무슨 편의점이냐는 이 회장의 말에 소원이 다급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요. 갔다 와야 할 거 같아서요. 꼭 필요한 게 있어서요. 다녀오겠습니다.”

그리고 미처 말릴 겨를도 없이 후다닥 밖으로 뛰어나갔다.

엉덩이에 불붙은 새끼 참새 같은 모습에 이 회장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별일이군.”

“별일이긴 한데 이 시원한 곳에서 부채질하는 회장님보다는 저 아이가 정상입니다.”

삐죽대며 어지간히도 적응을 못 하는 것 같더니 수능 공부를 시작한 뒤로는 아이가 제법 안정이 된 모습이었다.

누가 됐든, 어느 집 아이가 됐든 어른 입장에서 공부를 열심히 하는 아이는 대견하고 착한 법이다.

“멀쩡한 아이 타박하지 말고 부채나 내려놓으세요.”

춘천댁은 친정아버지 타박하듯 이 회장을 타박하며 찬장에서 메주콩을 꺼냈다.

시골에서 직접 농사지은 국산 콩이라면서 지인이 보내준 것인데 맛은 어떨는지…….

회장님은 상관없고, 그저 이은이과 세완이 두 아이들이 좀 맛있게 먹고 더위를 털어 버렸으면 하는 생각에 춘천댁이 빙긋 미소를 지었다.

* * *

이 회장의 표현에 따르자면 꽁지에 불붙은 참새 새끼처럼 튀어나온 소원이 저택을 돌아보며 놀란 가슴을 손으로 짓눌렀다.

그리 쉽게 들키지 않으리라는 것은 이미 익히 알고 있지만 그래도 새가슴 같은 그녀의 마음이 자꾸만 소원을 힘들게 했다.

소원이 삐걱거리며 1층 대문으로 내려갔다.

예전에 얼핏 들은 이야기에 따르자면 이 회장은 제 생활 영역 내에 낯선 사람이 존재하는 것을 별로 반기지 않아 꼭 필요한 사람들만을 집 안에 들인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내려가는 내내 소원은 단 한 명과도 마주치지 않았다. 그녀는 그것이 정말 다행인지 불행인지 알 수 없다는 표정이 되었다.

「집 밖으로 나오는 척하면서 엄마랑 교대하면 돼!」

소원은 정말 엄마가 무슨 생각인지 알 수가 없었다.

「엄마 못 믿니? 이은이한테 해코지 같은 거 안 해! 그저 이야기가 좀 하고 싶을 뿐이야. 하지만 너도 잘 알잖니. 어디 걔한테 접근하기가 쉬워? 심지어 너도 엄마를 의심부터 하잖아!」

희경의 말에 따르자면 그녀는 이은을 만나기 위해 회사까지 찾아간 적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직원 전용 아이디 카드가 있어야 건물 출입이 가능했고, 심지어 BS그룹에 다니는 사람들은 식사도 같은 건물 사내식당에서 한다고 했다.

혹시나 싶어서 회사 건물 밖을 서성여 보기도 했는데 차로 출퇴근을 하는지라 그마저도 얼굴 보기가 어려웠다고 했다.

「……네가 엄마 딸이듯이 걔도 엄마 딸이야. 설마 엄마가 딸한테 해코지하겠니? 소원아, 엄마를 좀 믿어!」

희경은 간절하게 말했다. 희경은 모든 것이 다 그들 모녀를 위한 것이라고 했다.

「엄마가 돈이 좀 필요해서 그래. 우리 둘이 어디 작은 방이라도 얻으려면 돈이 필요하잖아. 엄마가 너한테 이런 이야기까지 해야 하니?」

소원은 도무지 의심을 지울 수가 없어서 끝까지 망설였다. 하지만 ‘돈’ 때문이라는 이야기에 그녀는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돈이 없었고, 이은은 넉넉해 보였으며,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는 돈이 필요했다. 아주 많이.

결국 그녀에게 설득된 소원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엄마, 그럼 나 정말 엄마 믿는다?”

「믿으라니까? 얘가 왜 이렇게 의심이 많아?」

그리고 그 결과가 현재 상태였다.

소원은 조심스럽게 대문을 열었다. CCTV의 빨간 불빛이 반짝였다.

아마 누군가 저 CCTV를 통해 날 보고 있겠지?

소원은 생각했다.

질끈 눈을 감았다가 뜬 소원은 여전히 새가슴인 자신의 가슴을 억지로 쓰다듬으며 당당하려고 노력하면서 집 밖에 나섰다.

괜찮을 거야. 정말로.

그리고 15분 뒤, 검은 모자를 푹 눌러쓴 소원이 다시 대문을 통해 집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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