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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비서의 수상한 휴가 (94)화 (94/100)

94화

모든 것이 오해임을 소원은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그런 믿음을 엄마가 자꾸 이상한 질문을 해서 뒤흔들었다.

「그러니까 지금 집에, 본채에는 너랑 회장님이랑 집안일 해 주는 아주머니밖에 없다는 이야기지?」

“…….”

소원은 그 어떤 대화도 할 수 없었다.

물론 그녀는 언제나 엄마를 사랑했다. 하지만 그렇기에 엄마가 나쁜 행동을 하는 것을 두고 볼 수가 없었다.

이 회장이나 춘천댁 아주머니, 이은에 대한 마음 또한 그랬다.

그들은 소원에게 낯선 사람들이지만 동시에 오갈 데 없는 그녀를 받아들여 몇 달간 숙식을 해결해 준 사람들이기도 했다.

물론 그녀 뒤에서 엄마에 대해 수군거리는 했다. 하지만 그들은 최대한 소원의 눈치를 살폈다.

소원이 스스로 위축되어 웅크려 있었지만 그들은 자신들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해서 소원을 챙겨 줬다.

춘천댁은 그녀가 식사를 거르면 쟁반에 국과 밥, 반찬 몇 개를 담아 그녀의 방까지 올려다 주었고, 이 회장은 그녀를 볼 때마다 불편한 듯 헛기침을 했지만 다시 수능 공부를 한다고 하니 슬그머니 용돈을 챙겨 줬다.

이은 또한 그녀가 맨밥에 김치만 먹고 있자 반찬을 꺼내 줬다.

그들이 그녀를 적극적으로 반기고, 잘해주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반드시 죽이고 싶고 죽임을 당해야 할 정도로 나쁜 사람들은 아니었다.

그래서 소원은 엄마의 전화를 피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갑작스럽게 비보를 듣게 될 줄은 정말 생각도 못 했다.

“엄마, 진짜 나한테 왜 이래!”

소원이 엉엉 울면서 핸드폰을 잡고 발을 동동 굴렀다.

엄마가 죽었으면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이 그녀를 패닉 상태로 이끌었다.

소원은 엄마에게 전화를 걸고, 춘천댁에게 세완의 번호를 물어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그 어느 쪽도 전화를 받는 사람이 없었다.

소원은 결국 바닥에 주저앉아 천장을 보며 펑펑 울음을 터트렸다. 그런데 그때였다.

- RRR

전화가 왔다.

소원은 혹시라도 세완일까 싶어서 무릎걸음으로 기듯이 걸어 핸드폰에 다가갔다.

“……!”

그런데 엄마 번호였다.

소원은 이 전화가 정말로 두렵고 무서웠다.

그 시신이 정말 엄마 맞다고, 엄마 번호로 그녀에게 확인 전화를 건 것일까 봐 너무나도 불안했다.

힘껏 입술을 깨문 소원은 제 입술에 피가 나는 것도 깨닫지 못하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 세요?”

그런데 다행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인데 이렇게 전화를 많이 했어?」

엄마였다.

“엄마!”

소원은 어둠 속에서 빛을 찾은 존재처럼 환희에 차서 엄마를 불렀다.

그런 소원의 마음도 모르고 엄마가 다소 지치고,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가 전화 받기 힘들다고 했잖아. 그리고 이 번호로 전화를 자주 하면 안 된다고 했잖니. 왜 이렇게 말을 안 들어?」

하지만 소원은 엄마가 짜증을 내는 그 목소리조차 너무나도 기쁘고 반가웠다.

“나는, 엄마…… 나는 정말로 불안해서…….”

소원이 또다시 눈물 바람을 일으켰다.

그녀가 너무 울어서 그런 건지, 엄마가 조금은 진지해졌다.

「도대체 무슨 일인데 그래? 또 어디 다쳤어? 우리 딸 괜찮아?」

엄마가 다그치듯이 물었다. 그 말투는 마치 소원을 지극히 사랑하고 걱정하던 예전의 엄마 같았다.

소원은 그 목소리가 너무 그립고 고맙고 감사해서 또다시 펑펑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엄마에게 그녀가 놀랐던 이유를 전달했다.

소원은 엄마가 제가 말을 듣고 나면 도리어 자신을 안쓰럽게 여길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백희경의 반응은 그녀의 생각과 너무 달랐다.

「……!」

소원의 이야기를 들은 백희경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너 설마 엄마한테 점이 있다고 이야기를 한 거야?」

“응? 응…….”

굳이 이야기를 하고 말 것도 없었다. 세완은 이미 알고 있었다.

도대체 그 시신이 누구의 시신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엄마랑 통화가 안 됐다면 소원은 지금까지도 그 시신이 엄마인 줄 알고 울고 있었을 것이라며 그녀가 서러운 목소리로 투정 부리려는 찰나였다.

「도대체 그런 걸 왜 말해!」

백희경이 크게 소리쳤다. 소원은 놀랐다.

“엄마, 아니 그게…… 그게 아니라…….”

소원은 어떻게든 변명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엄마에게는 소원의 그 어떤 말도 귀에 안 들어오는 듯했다.

소원의 눈에서 또다시 눈물이 글썽거리기 시작했다.

「너는 정말 무슨 애가……. 됐어. 나중에 전화할게. 그 집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엄마와 관련해서 묻는다면 아무것도 대답해 주지 마. 알았어?」

“으응…….”

엄마는 그녀를 비난했고, 소원은 어렵게 대답을 뱉어냈다.

점의 유무가 뭐가 그렇게 중요한 건지는 모르겠는데 어쨌든 엄마의 반응을 보니 그녀가 잘못하긴 한 것 같았다.

소원은 폭풍처럼 끝난 통화를 반추하며 아직까지도 빛이 꺼지지 않은 제 핸드폰을 멍하니 바라봤다.

핸드폰의 바탕화면에는 엄마와 소원이 꼭 붙어서 찍은 예쁜 사진이 있었다.

“우리 딸 예쁘네?”

“나 예뻐?”

“그럼! 세상에서 가장 예쁘지!”

엄마는 그녀의 귀에 꽃을 하나 꽃아 주면서 이 꽃보다 소원이 더 예쁘다고 했다.

부모님 세대의 올드한 감성이 우스워 소원은 깔깔깔 웃음을 터트렸지만 이내 엄마에게 매달리며 나는 엄마가 이 꽃보다 더 예쁜 것 같다고 했다.

날짜로 따지면 불과 몇 개월 전의 일인데 어째 체감상으로는 몇 년은 더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날을 떠올린 소원이 다시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다.

정말 모르겠다. 엄마가 도대체 왜 이러는지.

항상 생각하는 거지만 어서 집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섬으로 이사 오기 전에 살았던 그 아파트가 아니어도 괜찮았다.

섬에 있는 그 작은 집…… 아니 그보다 더 작은 집이어도 괜찮으니까 소원은 어서 엄마와 그녀가 평화롭게 살던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 * *

전화를 끊은 백희경이 초조한 표정으로 손톱을 물어뜯었다.

도대체 어디까지 알아낸 거지, 그리고 뭘 알고 있는 거지?

백희경은 갑자기 온몸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소원이 남편과 세탁소 아저씨의 죽음과 관련된 것을 말했더라도 이렇게까지 놀라지는 않았을 거다. 하지만 소원이 말한 것은 그녀의 오래된 치부와 다름이 없는 것이었다.

남편이 동생과 바람을 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그녀는 정말 온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은 좌절감을 느꼈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고 믿었던 두 사람이 이렇게 그녀의 뒤통수를 쳤다는 사실을 정말이지 믿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증거가 그녀를 압박했다.

추잡하게도 카섹스를 하다가 덤프트럭에 치인 덕분에 두 남녀는 나체, 그러니까 자연의 모습 그대로 희경의 눈앞에 나타났다.

사랑했던 두 사람의 죽음만으로도 벅찬데 그들의 배신까지 알게 된 희경은 그때 정말이지 제정신이 아니었다.

“엄마, 나 배고파.”

그 와중에 딸이 또 그녀를 찾았다. 희경은 동생을 꼭 닮은 딸을 보며 그 자리에서 무너졌다.

자매는 어려서부터 고마원에서 자랐고, 동생은 부잣집으로 입양 갔다.

우리 꼭 서로를 잊지 말자고 하던 그 약속처럼 동생은 성인이 된 이후 그녀를 찾아왔다. 희경은 뛸 뜻이 기뻤다.

하지만 그때, 동생은 홑몸이 아니었다. 그녀는 열두 살 많은 어느 유부남의 아이를 임신했다고 고백했다.

낙태를 하려고 했더니 이미 날짜가 너무 많이 지나서 안 된다고 했다.

그래서 동생은 아이를 낳아 그대로 버릴 생각이었다. 그것을 그녀가 달라고 했다. 내가 키우겠다고!

남편도 기뻐했다. 이렇게 예쁜 공주님이 그들에게 와 준 것에 감사하다고 했다.

원래도 입양을 생각하고 있었기에, 그들은 아이를 정말 온 정성과 마음을 다해서 키웠다.

김이은이라는 이름도 지어 줬고, 쥐면 깨질까 바람 불면 날아갈까 애지중지했다.

다행히 아이는 순하고 착했고, 오직 그들만 보며 사랑을 노래했다. 희경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동생과 그들 부부가 점점 친해졌고, 남편이 그녀의 동생을 챙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희경은 그들을 믿고 있었다.

사실은 그들의 죽음을 전달받는 그 순간까지도 희경은 그들을 믿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죽음을 전달받은 그 이후로도 희경은 그들을 믿으려고 했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지금 그녀가 겪고 있는 일들이 일반인 대상 몰래카메라 아니냐며 희경은 하늘을 향해 크게 대거리했다.

어떻게 내 동생이 내 남편과 바람을 피우나!

어떻게 내 남편이 내 동생과 바람을 피우나!

그런 주제에 어떻게 두 사람이 그렇게 사이좋게 한날한시에 세상을 떠날 수가 있는 것인가!

희경은 온 세상이 그녀를 저주한다고 생각했다.

부모 복 없는 년이라 자식 복 없는 것은 인정했다. 그런데 남편 복도 없고, 형제 복도 없다며 희경은 하늘을 향해 도대체 나더러 어떻게 살라고 이런 시련을 주는 것이냐며 소리치고 또 소리쳤다.

그런데 사람이 죽으라는 법은 없는 듯했다.

일란성 쌍둥이인 그들의 외모가 꼭 닮은 탓인지 경찰들은 죽은 두 사람을 부부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녀가 동생의 신분, 그러니까 ‘백희경’이라는 이름을 꿀꺽 삼켰다.

그때의 그녀가 무슨 마음이었는지는 지금도 모르겠다. 그저 그녀는 어떻게든 보상을 받아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백희경’의 부모님은 일찍 돌아가셨고, 그녀에게는 막대한 유산이 있었다.

고아 출신인 그녀에게나 막대하지 중상층보다 조금 위, 상류층과 중상층 그 경계선에 속한 정도의 부유함이었다.

하지만 희경은 그 돈이 필요했다.

유부녀에 아이까지 있다고 되어 있는 그녀의 호적과 달리 아이 없는 미혼인 동생의 호적도 탐이 났다.

그녀가 ‘백희경’이 되는 것이야말로 남편과 동생으로 인해 더럽혀진 그녀의 호적을 세탁하고, 깨끗하기만 했던 처녀 시절로 돌아가는 거라고 생각했다.

솔직한 이야기로 이은을 책임지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었다.

만약 그녀의 호적 그대로 산다면 그녀의 딸로 되어 있는 이은이 문신처럼 그녀를 따라다닐 것 같았다. 그건 정말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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