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김 비서의 수상한 휴가 (82)화 (82/100)

82화

윤세화의 명의로 된 두 개의 핸드폰, 그런데 한 번호는 납치 사건이 일어나고 사흘 뒤에 개통됐다.

뿐만 아니라 원래 윤세화가 사용하던 핸드폰 번호로는 단 한 번도 소원에게 전화를 건 적이 없는데 새로 개통한 번호로는 늦은 밤에 두 번이나 전화를 했다? 그건 누가 봐도 백희경이 사용하고 있는 번호이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세완과 찬주도 드디어 백희경의 흔적을 찾았다며 기뻐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야, 이거 이상한데…….”

새로 개통한 번호의 GPS 위치 추적을 하던 찬주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도대체 무슨 일인가 하고 세완이 찬주의 옆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찬주가 보고 있던 모니터를 확인했다. 세완의 얼굴이 의심 속에서 일그러졌다.

“프로그램이 고장 난 거 아니야?”

그가 합리적인 의심을 꺼냈다.

“우리가 쓰는 위성이랑 프로그램 전부 다 현재 FBI가 쓰는 거랑 똑같은 거거든.”

찬주가 질색하며 부정했다.

여기에 돈을 얼마나 들였는데 이게 고장이 났다는 소리를 하느냐면서 재수 없는 이야기는 꺼내지도 말라고 그가 발작하듯이 말했다.

하지만 현재의 GPS 위치 결과로 보면 이건 반드시 거짓이어야 했다.

윤세화가 새로 개통한 번호의 현재 위치는 평창동, 그것도 그의 집주변이었다.

빨갛게 반짝이는 불빛을 보며 세완이 심각한 목소리로 말했다.

“집주변 CCTV 다 켜봐.”

설마 또 집 주변에 숨어 있는 것인가 싶어서 세완이 미간을 찌푸렸다.

찬주는 세완의 집 CCTV를 자신의 컴퓨터와 연결시켰다.

사전에 박 팀장이 이 회장의 저택 경호를 맡고 있는 BS그룹 시큐리티의 코드를 전달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상 무.”

집 주변에는 개미 새끼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확실해?”

“너랑 내가 같은 걸 보고 있는 게 확실하다면.”

네 눈이 고장이 나거나, 내 눈이 고장 난 것이 아니라면 결과 값이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찬주의 말에 세완이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세완이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안녕하세요. 황 실장님, 접니다. 이세완. 혹시 지금 집에 경호원이 몇 명이나 있습니까?”

세완은 현재 자신의 집 경호를 담당하고 있는 황 실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박 팀장이 있었다면 그에게 도움을 받았겠지만 박 팀장은 현재 백희경의 집에 가 있는 상황이었다.

황 실장이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세완은 일단 황 실장에게 경호원 몇 명을 빼서 2인 1조로 집 주변을, 골목길 구석구석까지 다 훑으라고 지시 내렸다.

「하지만 상무님, 저희는 회장님과 저택을 경호를 최우선으로 해야 합니다.」

황 실장은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다는 목소리로 주저했지만 이내 이 회장에게 승인을 받았는지 세완에게 전폭적인 협조를 약속했다.

그리고 20분 뒤, 총 열두 명의 경호원이 저택을 빠져나가 동네를 샅샅이 살폈다.

집 주변만 살피는 것이 아니라 동네 어귀까지 꼼꼼하게 모두 훑어 달라는 그의 말을 의식한 듯 경호원들은 구역을 나눠 백희경의 존재를 찾으려고 노력했다.

그들 중 일부는 CCTV에도 보였다. 때문에 세완은 곧 백희경을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도 없습니다.」

누구도 백희경을 본 사람이 없었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사람 자체가 없었습니다. 외부로 빠져나가는 차는 두 대 발견했습니다만…….」

“아니요. 아직 집 근처에 있습니다.”

세완이 백희경이 가지고 있는 핸드폰의 GPS 위치를 확인한 뒤 말했다. 하지만 황 실장은 세완이 기대한 것과는 다른 답변을 내놓았다.

「그러면 없습니다. 날씨가 더워서 그런지 골목길에 사람이 아예 없습니다.」

GPS는 세완의 집 주변에 백희경이 있다고 말하고, 황 실장이 보낸 경호원들은 집 주변에는 그 어떤 사람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혹시 근처에 떨어져 있는 휴대전화는 없습니까?”

「죄송합니다. 없었습니다.」

한숨이 나오지 않을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세완은 프로그램이나 위성이 고장 난 것이 아니냐고 재차 찬주를 닦달했지만 혹시나 싶어 세완과 찬주의 핸드폰으로 실험한 결과는 모두 정상이었다.

보통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GPS의 오차범위가 20m 내로 추정된다면 그들이 사용한 프로그램의 오차범위는 10m 안팎이라고 했다.

그래서 세완은 백희경이 이동을 할 가능성까지 감안해서 오차범위를 아예 100m로 잡고 주변을 샅샅이 뒤지라고 했다.

그런데 귀신이 곡할 노릇도 아니고 백희경의 위치는 변화가 없는데 그 어느 누구도 그녀를 본 사람이 없다니…….

일단 알았다며 전화를 끊은 세완이 골치 아프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거 고장 났어. 프로그램 바꿔.”

애먼 프로그램 탓을 하며 GPS 결과가 이상하게 나온 이유를 고심하고 있는데 그때 갑자기 찬주가 입을 열었다.

“혹시나 해서 얘기하는 건데, 결과가 이렇게 나오는 경우가 하나 더 있긴 하지?”

“어떤 경우?”

“아니 그러니까 만약에, 아주 만약에 말이야, 백희경이 집 안에 있다면 경호원들이 아무리 뒤져도 흔적이 보이지 않는 게 이해가 가지 않나?”

“누구 집?”

“뭐, 너희 집이든 남의 집이든.”

평창동이라는 지역 특성상 이 주변에는 아파트나 상가 건물이 별로 없었다.

골목 몇 개가 통째로 정재계 인사들의 저택들만 늘어서 있는 구조이고, 때문에 외부인이 머물기에는 극단적으로 어려운 환경이 아닐 수 없었다. 때문에 그들은 백희경이 집 안에 있을 것이라는 상상은 해 본 적도 없었다.

그러나 만에 하나 백희경이 이 골목길에 있는 집들 중 어느 하나에 잠입하는 데 성공했다면 백희경이 이 근처에 있다는 GPS 위치추적 결과나, 골목을 샅샅이 다 뒤졌음에도 개미 새끼 한 마리보지 못했다는 경호원들의 말 모두가 이해가 가는 상황이다.

하지만 정말이지 실현 가능성이 없었다.

“설마!”

“아닐 거야.”

찬주와 세완이 동시에 부정했다.

“요즘 재벌이고 장관이고 할 거 없이 사람을 얼마나 가려서 뽑는데.”

“그렇지. 숨기고 싶은 일들이 많으시니.”

“그래. 누가 신원확인도 안 된 한국인들을 고용인으로 들인대. 한국말 모르는 외국인이라면 또 몰라.”

“…….”

“아니야, 아니야. 말도 안 돼.”

찬주는 이번에 가사도우미들을 한 명만 빼고 외국인으로 싹 다 바꿨다는 모 그룹의 소식을 전달하며 이 동네에서 신원 확인이 안 된 사람을 고용할 만한 인물은 없다고 재차 강조했다.

그 부분은 세완도 동의했다.

건설회사 대표와 전직 법무부 장관, IT기업의 대표, 유명 로펌의 대표…….

그의 옆집과 옆에 옆집, 맞은편 집에 사는 사람들의 직업이다.

합법과 불법의 경계선에서 누구보다 고용인들의 신원을 신경 쓰고,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외부인에 대한 경계가 태어날 때부터 영혼에 디폴트 값으로 입력이 되어 있는 사람들인데 어떻게 백희경을 고용하나!

심지어 지금 백희경은 그들의 신고로 지명 수배가 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세완과 찬주는 이성적으로 판단했다. 백희경이 이 골목에 잠입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왜인지 세완은 자꾸만 이 골목에 있는 집 어딘가에 백희경이 잠입했을 수도 있다는 찬주의 가정이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여사님?”

누군가 목소리를 높여 소리쳤다.

누구든 간에 이 집에서 자신을 부를 사람은 없기에 신경도 쓰지 않았는데 갑자기 누군가 그녀에게 와서 크게 소리쳤다.

“여사님!”

날카롭고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짜증을 실어 울려 퍼졌다.

“……!”

희경은 그제야 아차 싶어 벌떡 일어나 앞치마에 손을 닦았다.

“어머, 네. 죄송해요. 못 들었어요.”

“바로 코앞에서 소리쳤는데 못 들었다는 게 말이나 됩니까?”

“죄송합니다.”

희경이 연신 고개를 숙였다.

윤 집사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희경을 훑었다. 정말이지 하나부터 열까지, 뭐 하나 마음에 드는 부분이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녀가 고용주의 귀한 아들을 구했다.

최근에 노 회장님이 맞이한 사모님이 조산기로 배가 뭉쳐 끙끙대고 있을 때 그녀가 119를 불러줬다고 했다.

20대 중반인 순진한 사모는 눈앞의 여자가 말하는 ‘우연’이라는 것을 믿었다. 하지만 윤 집사는 아무리 해도 이 여자에게 신뢰가 가지 않는다.

아무리 봐도 이 동네에는 올 일이 없을 것은 외양인데 우연히 집 앞에서 사모가 위급할 때 도와 줬다니 정말 개도 안 믿을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사모의 은인이고, 윤 집사는 사모와 회장의 고용인이었다.

“됐고! 사모님한테나 가 보세요. 찾으세요.”

윤 집사가 못마땅한 눈치를 감추지 않고 희경을 채근했다.

“아직 설거지 중인데…….”

“설거지보다 사모님이 더 급하니까 그쪽이나 가 보세요. 그건 나중에 하시고요.”

“이거 미안해서……. 날 왜 부르실까.”

희경이 주섬주섬 고무장갑을 뺐다.

어느 정도 친분이 쌓인 도우미들이 어서 가 보라는 듯 그녀에게서 고무장갑을 받아 들었다. 고마운 사람들이었다.

누구와는 달리.

잠시 이은을 떠올리며 차가운 표정을 지었던 희경이었지만 이내 얼굴을 풀었다.

곧 그녀가 베풀었던 은혜를 되돌려 받을 수 있을 거다.

지금은 잠시 그 보답을 기다리는 시간일 뿐이었다.

희경이 몸을 일으켰다.

“그런데 사모님께서 절 왜 부르셨나요?”

“그걸 제가 알아요? 가서 직접 여쭤 보세요.”

그녀의 질문에 윤 집사가 면박을 줬다. 희경은 다소 민망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어차피 잠깐인데, 뭐.

굳이 싸우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평화롭고 싶은 사람이었다.

그녀의 소원이라면 어서 이은을 만나 키워 준 대가를 받고, 그 돈으로 소원과 함께 행복하게 사는 것뿐이다.

지금은 그냥 과정일 뿐이니 괜찮다. 이겨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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