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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비서의 수상한 휴가 (80)화 (80/100)

80화

깊은 밤, 소원이 창문 앞에 섰다.

그녀를 집에 데려다주고 어디론가 사라졌던 이은과 세완은 데이트를 한 건지 새벽 3시가 넘어서야 귀가를 했다.

평소였다면 아무 생각 없이 보고 흘렸을 모습이 오늘따라 유독 소원의 눈에 들어왔다.

「엄마랑 통화한 건 절대 들키지 마!」

「네 언니가 혼자 어디 갈 거 같으면 엄마한테 얘기 좀 해주지 않을래?」

그리고 그 모습을 보니 자동적으로 엄마 목소리가 떠올랐다. 머리가 복잡했다.

사실은 아까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그녀의 부재중 전화를 보고 깜짝 놀라서 연락을 한 것이라고 했다.

낮에 아르바이트를 그만둔 뒤에도 엄마에게 전화를 했고, 귀가를 한 뒤로도 생각날 때마다 드문드문 전화를 시도했으니 줄잡아 스무 통은 한 것 같은데 엄마는 자정이 넘어서야 연락이 됐다.

그것이 왠지 서운하고 동시에 낮에 이은, 세완과 한 이야기도 생각나서 소원이 떼를 쓰듯 백희경에게 매달렸다.

“엄마, 나도 데려가 주면 안 돼?”

「엄마가 안 된다고 했잖아. 조금만 기다리라고 했잖니.」

엄마는 소원을 달래듯이 말했다. 하지만 엄마가 아무리 달래도 소원은 복잡한 마음이 도무지 가라앉지를 않았다.

“불안해서 그래. 나 대학 못 가면 어떡해. 아까 그 언…… 니랑, 세완 아저씨랑 얘기했는데…….”

소원은 울먹이며 그들이 그녀에게 한 말들을 그대로 전달했다.

엄마랑 정말 연락이 안 되느냐고 물었다는 말부터 시작해서 재수를 했는데 또 삼수를 할 수는 없지 않느냐, 곧 수능 9월 모의평가인데 어떻게 할 생각이냐는 그들의 걱정을 듣고 나니 자신도 너무나 걱정이 된다고 소원이 울먹이면서 말했다.

소원은 자신의 말을 들으면 엄마도 마음을 바꿀 거라고 생각했다. 소원의 대학 진학은 그들 모녀에게 그만큼 중요한 거였으니까.

하지만 그때, 엄마가 말했다.

「혹시 엄마랑 연락된다고 말한 거야?」

엄마가 무서울 정도로 차갑고 딱딱한 목소리로 말했다.

소원은 순간 놀라서 아무 말도 못 했다. 그러나 엄마가 다그치듯이 계속해서 물었다.

「소원아, 정말 말했니? 정소원!」

맹세컨대 소원의 엄마가 그렇게까지 소원에게 큰소리를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아니, 아니야. 그런 거. 말 안 했어.”

그녀는 소원의 입에서 아니라는 대답이 나올 때까지 화를 냈다. 그리고 소원이 아니라고 말한 뒤에야 누그러져 원래의 목소리로 돌아왔다.

「엄마 놀랐잖아. 다시 엄마 걱정시키지 말고, 무슨 일이 있어도 그건 말하면 안 되는 거야. 알겠지?」 

마지막으로 당부를 하던 목소리는 평소의 엄마 목소리 그대로였다.

엄마는 아르바이트를 그만뒀다는 소원에게 50만 원이나 송금해주겠다고 했다. 기존에 듣던 인강을 계속 들으면서 만약 필요한 문제집 등이 있다면 그 50만 원으로 구매를 하라고 했다.

또한 핸드폰 요금과 교통카드 요금은 엄마 통장에서 빠져나가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도 했다.

하나 같이 전부 다 반가운 소리였다.

화를 내기 전이었다면 소원은 더 이상 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뛸 듯이 기뻐했을 거다.

하지만 이 집 사람들에게 그녀와 연락을 하는 것을 들켰다고 생각했을 때의 엄마 목소리가 너무 무섭고 두려워서 이은은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럼 우리 딸 잘 자. 절대 들키지 말고. 알았지?」

“응? 으응.”

때문에 엄마와의 통화를 끊고 난 뒤, 소원은 계속 앉았다 일어났다 방황하며 생각을 정리하려고 했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정리가 되지를 않았다.

그녀의 엄마는 나쁜 사람이 아닌데 자꾸 생각이 이상한 쪽으로만 치우치는 느낌이었다.

“아니야. 아닐 거야. 우리 엄마가 왜? 말도 안 돼!”

소원은 커튼 너머에서 이은과 세완을 보며 몇 번이고 제 생각을 부정하고 곱씹었다.

그럼에도 이은에게 들키지 말라는 엄마의 목소리가 너무 선명해서 소원은 침대로 달려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웠다.

두 눈을 꼭 감은 소원이 주문을 외우듯 중얼거렸다.

“우리 엄마는 아니야. 나쁜 사람 아니야.”

하지만 이상하게도 여전히 엄마의 목소리는 소원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 * *

폭풍 같은 하루가 지났고, 아침 해가 떴다. 세완은 그 어느 때보다 이르게 출근을 준비했다.

평소라면 일어나지도 않았을 새벽에 일어나 이은의 방문을 잠깐 응시하다가 집을 나섰다.

인적 없는 출근길, 찬주에게 전화해 너도 얼른 출근하라며 닦달한 세완은 그 어느 때보다 적극적으로 업무를 시작했다.

그리고 상무실의 비서인 윤 대리가 출근하는 것을 보며 세완은 퇴근을 준비했다.

“급한 건 다 처리했으니까 혹시 급한 일 있으면 전화해요.”

“네? 상무님? 상무님!”

놀란 윤 대리가 그를 불렀지만 세완은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BS그룹에서 나온 세완은 그대로 찬주와 함께 근무하는 ‘태산’의 사무실로 향했다.

“인마, 내가 어제 몇 시에 퇴근했는지 알기는 해?”

다행히도 찬주는 이미 출근을 해 있었다.

얼굴을 보자마자 쌍욕을 퍼부을 준비를 하는 찬주에게 세완이 불쑥 손을 내밀었다.

“뭐?”

“자료. 새벽에 출근했으면 일한 것도 있을 거 아니야. 내놔 봐.”

맡겨놓은 거 내놓으라는 듯이 당당한 세완의 말에 찬주가 또다시 입에 거품을 물었다.

하지만 그가 새벽에 찬주에게 부탁한 것들은 반드시 조사가 들어가야 하는 부분이었다.

박 팀장은 그들에게 ‘포항 형님’ 이라는 사람의 존재에 대해 알렸고, 그 후 만난 소원은 자신이 백희경과 연락을 하고 있음을 그들에게 숨기지 못했다.

소원의 핸드폰 통화 내역을 조회하면 백희경이 현재 사용하고 있는 번호가 나올 것이고, 그 번호로 위치 확인을 하면 현재 백희경이 어디에 있는지도 확인이 가능할 거다.

그리고 ‘포항형님’이라는 존재에 대해 알아보다 보면 이은의 납치범들에 대한 단서가 나올 것 같았다.

사라진 두 구의 시신과 그들을 누가 죽였는지, 그리고 아직 밝혀지지 않은 공범은 누구인지…….

세완이 보기에 현재 그들의 상황이 일견 난잡해 보일 정도로 복잡한 것은 모든 것이 지나치게 비밀에 싸여 있기 때문이다.

백희경의 신분부터 시작해서 그녀와 이은의 관계, 백희경이 이 일을 벌인 이유, 그녀가 목표로 하는 것, 그리고 현재 그녀의 위치까지!

때문에 세완은 찬주의 조사를 통해 그 실마리를 일부라도 풀어볼 셈이었다.

그것을 찬주도 아는지 한참 동안 욕설을 내뱉은 찬주는 불만이 가능한 표정으로 그가 새벽부터 일한 결과물을 세완의 손에 던졌다. 세완이 자료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 * *

지난밤 이은은 정말 원 없이 울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보육원에 맡겨졌을 때에는 그녀가 버림받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못 물었다.

일곱 살 어린 아이가 뭘 안다고 버림받고, 버림받지 않았다는 것을 느끼는 것인지는 모르겠는데 어쨌든 그녀는 울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버텼다.

하지만 25년이 지난 지금은 안다. 그녀는 버림받은 게 아니라 그저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뿐이라는 것을.

때문에 이은은 더 이상 버티지 않고 25년 전에 흘려야 했던 눈물을 정말 마음껏, 미련 없이 흘렸다.

그리고 그 결과, 탈진한 나머지 쓰러지기 직전까지 가서 세완에게 거의 안기다시피 해 집으로 귀가했다.

세완은 부축하는 내내 그녀에게 말을 걸어 생존을 확인했고, 심지어 그녀가 자기 전에는 코끝에 손가락을 대고 숨을 쉬는지 확인까지 했다.

이은은 눈물을 흘리는 와중에도 세완의 반응이 너무 웃겨서 자신도 모르게 웃어 버리고 말았다.

“나 안 죽었어.”

“아니, 죽었다는 건 아니고 그냥 걱정돼서…….”

세완은 머뭇거리며 이은에게 우리 함께 오래오래 무병장수하자고 했다.

이은은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는 표정으로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세완은 그것만으로는 안심이 되지 않았는지 오늘은 아무것도 하지 말고 쉬라고 했다. 이은도 그럴 생각이었다. 하지만…….

- 똑똑

아침부터 누군가 그녀의 방문을 두드렸다.

노크 소리가 너무 얌전해서 잘못 들었는지 알았는데 1분 뒤에 또 한 번의 노크 소리가 들렸다.

방문 너머의 존재는 어떻게든 그녀의 얼굴을 보고 싶은 모양이었다.

애벌레처럼 침대 속에 파묻혀 있던 이은이 꿈틀거리며 핸드폰을 확인했다. 오전 10시 15분!

정오가 넘어서 문을 두드리는 거면 춘천댁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 시간이라면 100%의 확률로 딱 한 사람밖에 없었다.

“이세완 또 도망쳤어!”

이은이 끙, 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켰다.

잔소리를 하지 말라고 하지만 잔소리를 안 하고 싶어도 안 할 수가 없었다.

출근해서 대충 출근 도장을 찍고 회사를 빠져나오면 오전 10시였다.

당연히 세완일 거라고 생각한 이은은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려고 꿈틀거리며 문 너머를 향해 소리쳤다.

“들어와.”

그래도 그녀가 걱정돼서 온 것이니 멀쩡한 모습을 보여줘야지, 이은이 어떻게든 웃는 얼굴로 세완을 만나려고 입꼬리를 의식적으로 올리는 연습을 하고 있을 때였다.

끼익,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저기요…….”

“……!”

방문 너머의 존재가 이은의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이은의 예상은 틀렸다.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세완이 아닌, 소원이었다.

쭈뼛쭈뼛하며 방문 너머로 고개를 뺀 소녀를 이은은 쉴 새 없이 흔들리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친동생도 아니고, 친엄마의 양딸도 아니고, 그녀를 죽이려고 했던 친이모의 양딸을 도대체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이은은 낯선 눈으로 소원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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