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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비서의 수상한 휴가 (77)화 (77/100)

77화

세완은 화들짝 놀라 경기하듯이 몸부림을 쳤다. 이은은 그런 세완을 보고 더 놀랐다.

“뭐, 뭐야? 왜 그래?”

“아니, 나는 너 죽을까 봐……. 아니, 죽는다는 게 아니라 혈액순환……. 아오!”

어떻게든 변명을 하려고 하던 세완이 머리를 부여잡았다.

등신! 바보! 멍청이! 머저리!

멀쩡한 여자의 입술을 떡 찔러보듯 꾹꾹 눌렀고, 그 와중에 현장에서 현행범으로 잡혔으니 뭔가 변명을 해야 하기는 한데 변명할 말이 마땅치가 않았다.

너 죽을까 봐 네 입술을 눌러봤다는 변명은 그가 생각해도 거짓말 같았다.

너무 억울한 나머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입술에 키스라도 하다가 걸렸으면 억울하지나 않지!

“……!”

순간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에 세완은 사색이 되었다.

미쳤어! 내가 돌았지!

세완의 손바닥이 거칠게 자신의 머리를 때렸다.

“왜 그래? 미쳤어?”

놀란 이은이 소리쳤다.

세완이 억울함 가득한 눈빛으로 이은을 바라봤다.

이은아, 너 알지? 입술을 손가락으로 쿡쿡 건드리는 건 열두 살 때나 하는 짓이라고. 나 서른두 살이야. 내가 만날 모지리 소리를 달고 살아도 그렇지 그렇게까지 모자라진 않다!

세완이 눈빛으로 호소했다.

“얘가 진짜 왜 그래? 무슨 일인데?”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은 이은에게 그가 무슨 짓을 했는지 전부 다 알려주고 싶진 않았다.

세완에게도 자존심이라는 것이 있었다.

벙어리 냉가슴이 이런 것인 듯했다.

세완은 아무 말 못 하고 고개만 가로젓다가 운전대에 머리를 박았다.

정말이지 딱 죽고 싶었다.

* * *

김이은 한정으로 곧 죽어도 거짓말쟁이는 될 수 없는 남자는 일단 비서님을 모시고 귀가했다. 그리고 귀가와 동시에 이 회장에게 크게 혼이 났다.

“백수 한량 녀석이라고 했더니 정말 백수 한량이라도 된 줄 알아? 출근을 했으면 일을 해야지, 어디 출근한 지 한 시간도 안 돼서 집에 와?”

날백수 녀석이 날로 월급을 훔쳐 간다면서 이 회장은 크게 화를 냈다.

사실은 그가 이은이를 데리고 간 이후, 둘이 데이트라도 하나 싶어서 살짝 기대했는데 그런 것이 아닌 듯헤 더욱 더 화를 내는 것이기도 했다.

한 놈은 울어서 팅팅 부은 눈으로 한 놈은 넥타이가 반쯤 풀리고, 머리가 부스스해져서 만신창이가 된 모습으로 귀가를 하니 오해를 하기 싫어도 안 할 수가 없었다.

“몸싸움이라도 한 거야? 나이가 몇인데 그러고 싸워?”

반쯤 풀린 넥타이와 부스스해진 머리에 김이은의 지분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싸운 적은 없었다.

세완은 살짝 억울해지려고 했지만 이내 자신이 저지른 짓을 깨닫고 고개를 숙여 석고대죄했다.

“네, 제가 잘못했습니다.”

세완은 이렇게라도 죗값을 치르고 싶었다.

입술 한 번 만진 게 뭐가 그렇게 큰 죄인가 싶지만 그 대상이 다른 누구도 아닌 김이은이다 보니 아주 큰 죄 같기도 했다.

나이트클럽에서 원나잇을 하고 술집에서 기백, 기천만 원을 뿌려도 이러지는 않을 것 같은데 사람 마음이라는 것이 참 이상했다.

얌전하게 고개를 조아리는 세완을 보며 이 회장은 두 사람이 싸웠다는 자신의 추측에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이번에는 이 회장의 화살이 이은을 향했다.

“이은이 너도 그렇다. 싸웠으면 화해를 해야지! 밖에서 싸운 걸 어떻게 집까지 들고 들어오누!”

“할아버지, 저희 안 싸웠어요.”

이은이 억울해하며 해명했다. 하지만 이 회장은 믿지 않았다.

“안 싸웠는데 너는 울고, 저 놈은 저 꼴로 와? 그것도 이 시간에?”

이 회장이 다그치듯이 말했다.

“아니, 이왕 회사에서 도망 나왔으면 어디 경치 좋은 곳에 가서 밥이라도 먹고, 술이라도 마시고, 밤에 들어와야 내가 용서할 기분이 나지!”

용서가 대수인가, 전 직원에게 보너스를 돌렸을 거다.

혹시 아나, 외박을 했으면 한강에 배를 띄워놓고 초대형 불꽃놀이 축제라도 벌였을지!

세완과 이은은 이 회장뿐만 아니라 서울 시민들에게도 큰 죄를 지은 것이다.

점점 이상하게 흘러가는 이 회장의 잔소리에 춘천댁이 헛기침을 했다.

업무 때문에 집에 와 있던 비서실장도 조심스럽게 이 회장을 불렀다.

“회장님?”

그들의 말림이 억울한 것인지 이 회장이 소리쳤다.

“아니, 그렇지 않나! 어디 3시도 안 됐는데 벌써 집에 들어와!”

새벽 3시면 또 몰라!

60년 전 이 회장도 이 시간에 어부인과 이별하진 않았다.

그 시절에도 물레방앗간은 야간개장을 했었기에 이 회장은 어리다 못해 모자란 손자가 아주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남의 집 손자들은 스무 살이 되자마자 손주를 잘만 만들어 오는데!

이 녀석 어디 모자란 것 아니냐는 눈빛이 세완을 향했다.

불같이 화내는 이 회장의 모습에 세완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기, 그럼 다시 나갈까요?”

나가서 좀 더 있다가 밤 돼서 들어오면 괜찮은 건지…….

세완의 질문에 이 회장의 표정이 살짝 흔들렸지만 그는 이내 다시 화를 냈다. 이 녀석이 어디에서 잔머리를 굴려!

그렇게 세완은 오랜만에 두서없고 맥락 없고 주제도 없는 잔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그 잔소리 속에서 오래된 추억을 반추했다.

‘우리 할배 건강하시네.’

이 회장의 건강도 측정했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그 어떤 상황이든 간에 이은의 입술을 만지다가 걸렸을 때보다는 한결 살 만했다.

‘할아버지, 만수무강하세요.’

쩌렁쩌렁한 이 회장의 목소리를 들으며 세완이 그의 무병장수까지 기도하고 있을 때였다.

- RRR.

핸드폰이 울렸다.

누구인가 하고 세완이 핸드폰을 슬쩍 확인했다.

“……!”

박 팀장이었다.

“아니, 이놈아! 어디 어른 말씀하시는데 핸드폰을 만지작거려?”

이 회장이 잔소리를 했지만 이 전화는 안 받을 수가 없는 전화였다.

“네, 할아버지. 죄송해요. 오래 사세요. 건강하시고요. 잠깐 나갔다 올게요. 늦을 수도 있어요.”

세완은 일단 이 자리에서 도망치기로 했다. 바람처럼 세완이 후다닥, 현관문이 있는 쪽으로 달려 나갔다.

그리고 그 모습에 이은은 세완에게 온 전화에 뭔가 심상찮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할아버지, 저도 다녀오겠습니다. 새벽 3시는 아니지만 늦을 수도 있어요. 세완이랑 같이 들어올게요.”

이은도 도주를 시도했다.

“아니, 이은아, 이놈아! 위험해! 경호원, 경호원이랑 같이 나가야지!”

이 회장이 서둘러 윤세를 찾았지만 두 아이들의 직책이 상무와 상무비서이기에 마음 놓고 혼내기 위해 그를 2층으로 보내놓은 상황이었다.

이 회장의 부르짖음에 놀란 윤세가 뛰어 내려왔지만 그가 집 밖으로 나갔을 때는 이미 두 사람이 사라진 이후였다.

* * *

세완이 차고로 걸어가며 전화를 받았다.

“무슨 일입니까.”

인사말은 무시하고 세완은 단도직입적으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게 말입니다, 이건 보고를 해야 할 거 같아서…….」

“본론만 얘기하세요.”

「제가 단서를 발견한 것 같습니다.」

“단서요?”

세완이 깜짝 놀라며 물었다.

때맞춰 세완을 따라 나오던 이은도 그 이야기를 들었다.

“단서를 발견했대? 어떤 단서?”

이은이 깜짝 놀라며 세완에게 물었다.

세완은 우선 이은에게 조용히 하라고 손짓한 뒤 핸드폰을 스피커폰으로 돌렸다. 그리고 그에게 자초지종을 캐물었다. 박 팀장이 말했다.

「칫솔이랑 머리카락을 챙기고 돌아가려고 하는데 안방 침대에 가계부가 있더라고요. 아시죠? 새마을금고에서 주는.」

새마을금고에서 가계부를 주든, 일기장을 주든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본론이나 들어가라며 세완이 채근했지만 박 팀장은 마이웨이로 말을 이었다.

「그게 아니라 보통은 농협이나 수협 가계부를 쓰거든요. 그런데 새마을금고 가계부라 특이하다 싶어서 보는데……. 새마을금고 가계부는 농협이나 수협 가계부랑 달리 지점 이름이 적혀 있거든요.」

잠시 숨을 고른 박 팀장이 말을 이었다.

「그런데 그 주소가, 보니까 거기인 거예요. 상무님께서 가셨던 그 식당 주변.」

“그런데?”

「안을 보다 보니 포항 형님이라는 글도 있는데 별표를 쳐놨더라고요. 포항 형님 오시는 날이라고. 상무님께서 거기 가셨던 날에.」

“……!”

세완이 멈칫했다.

“정확해?”

「네, 맞습니다. 혹시나 싶어서 날짜 확인했습니다.」

박 팀장의 말을 들은 이은과 세완의 눈이 마주쳤다.

“혹시 그런 말 들은 적 있어? 우리가 갔던 날에 다른 사람도 방문했다고.”

“아니, 전혀.”

그녀가 백희경과 만날 때는 세완도 언제나 함께였다. 세완이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없다면 이은도 들은 적이 없었다.

“혹시 소원이 그 애가 알지 않을까? 딸이잖아.”

보통 딸들은 엄마와 친한 아줌마들 몇 명 정도는 알지 않느냐며 이은이 질문했다.

“그런가?”

“응, 아마도.”

이은은 확신하듯이 말했다. 세완이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은과의 대화를 끝낸 세완이 박 팀장과 통화를 이어갔다.

“박 팀장님, 일단 가신 김에 그 집을 한 번 훑어보세요. 저희가 놓친 부분이 있을 수 있으니까요.”

「네. 그런데 그러면 칫솔과 머리카락은 어떻게 하나요?」

세완은 오늘 안에 백희경의 칫솔과 머리카락을 가져다 달라고 했었고, 거기엔 그의 월급의 100%가 보너스로 걸려 있었다.

세완은 오늘 안에만 도착해도 월급의 100%를 보너스로 준다고 했었다. 6시 안에 도착해서 200%를 못 받는 것은 아쉽지만 100%가 어디인가!

하지만 만약 세완의 말처럼 집 안을 수색하게 된다면 거의 100%의 확률로 그는 보너스를 받지 못할 거다.

보너스만 받지 못하나? 세완은 만약 날짜가 바뀌면 그의 월급을 감봉 조치한다고까지 했다.

‘100%, 100%, 100%, 100%…….’

박 팀장은 마치 주술을 걸듯 간절한 마음으로 세완에게 질문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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