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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비서의 수상한 휴가 (72)화 (72/100)

72화

이은의 부상 이후, 백희경의 자료라면 정말 달달 외울 정도로 봤다.

사진도, 생일이며 혈액형을 포함한 기본 프로필들도.

때문에 세완은 누구보다 명확하게 기억한다. 백희경의 혈액형은 AB형이다.

엄마는 AB형, 딸은 O형!

ABO식 혈액형에 따르자면 AB형인 엄마에게 유일하게 나올 수 없는 혈액형이 O형이었다.

백번 양보해서 AB형 엄마에게 O형 딸이 나올 수 있다고 치자.

「백희경 딸은 김이은이랑 하나도 안 닮았더라. 아빠 닮았나? 안 닮아도 너무 안 닮았더라.」

얼마 전에 통화에서 찬주가 내뱉었던 말이 떠올랐다.

세완은 윤세에게서 이은을 빼돌리려던 고민을 그 즉시 중단했다. 그리고 이은과 소원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모든 고정관념과 편견을 버리고 객관적으로만 보려고 했다.

“왜 그래? 내 얼굴에 뭐가 묻었어?”

“……?”

이은도 소원도 모두 의아해했다. 하지만 그들은 외모뿐만 아니라 놀라는 반응조차 닮지 않았다.

“하!”

세완이 입매를 비틀며 실소했다.

“진짜 왜 그래?”

“아니야, 아무것도. 그냥, 그냥 생각할 게 좀 있어서.”

설마 소원이 쟤가 백희경의 친딸이 아닌가? 아니, 그런데 친딸이 아니면 왜 이은을 죽이려고 한 거지?

친딸도 아닌 존재를 위해서 친딸을, 혹은 조카를 죽이려고 한 건가?

모든 것이 다 의문이었다.

“잠깐만. 나 통화 하나만 하고 올게.”

세완이 누군가를 생각하며 몸을 일으켰다.

* * *

응급실에서 멀어지자마자 세완은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그래도 너무 멀리는 아니고, 그의 눈에 이은이 보이는 100m 거리 안에서 그는 찬주에게 통화를 시도했다.

「안 그래도 전화 잘 걸었어!」

도대체 무슨 일인지 찬주가 그의 전화를 반겼다.

그도 찬주가 반가웠다.

우리 호구, 그를 대신해서 일해줄 동업자 겸 매우 성실한 그의 일꾼!

“응. 뭔지 모르겠는데 일단 내 얘기부터 듣자. 너 유전자 검사 몰래 할 수 있는 곳 하나만 좀 알아봐.”

「너 알고 있었어?」

“뭐가?”

「백희경 딸이 친딸 아닌 거!」

“……!”

세완은 깜짝 놀랐다. 찬주도 알고 있었나 보다.

「우연히 서류를 봤는데 혈액형이 다르더라고. 그래서 좀 파보니까 친딸이 아닌 것 같았어.」

“그럼 진작 얘기를 했어야지!”

「나도 어젯밤에 알았다고.」

찬주가 억울한 목소리로 구시렁거렸다.

「그런데 좀 의문이긴 하네. 친딸을 친딸도 아닌 존재를 위해서 죽이려고 하는 건 좀…….」

뭐, 종종 그런 경우가 있긴 했다. 소위 이성에 눈이 먼 경우.

남자에 눈이 멀어서 친자식을 죽이려고 하는 엄마나, 여자에게 눈이 멀어서 친자식을 죽이려고 한 아빠.

그런 막장 스토리는 흔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쪽은 그래도 명확한 이유가 있었다.

새로 만든 남편과 혹은 새로 만든 와이프와 알콩달콩 살고 싶은데 내 아내 혹은 남편의 전남편, 전처가 낳은 자식이 딸려와 그들을 매우 귀찮게 만들었다는 것!

「그런데 이쪽은 살의를 품을 만한 이유가 없잖아. 김이은은 뭐 혼자서도 잘 사는 상황이었는데 굳이 왜 거기까지 불러들여서 죽이려고 한 거야?」

“나도 그게 의문이다.”

「그래서 내가 묻는 건데, 백희경이 김이은 친이모나 친엄마가 맞긴 해? 아예 제3의 인물일 가능성은 없나?」

찬주의 의문을 제기했다. 그 의문이 합당하다는 것에 세완이 동의했다. 그래서 그가 제안의 형태를 띤 지시를 내렸다.

“너 거기 좀 갔다 와라.”

「어디?」

“섬. 백희경 집 말이야.”

「거긴 왜?」

“백희경 딸이랑 유전자검사를 하면 그 여자가 이은이의 엄마이든, 이모이든 나오니까 좀 느슨하게 있었는데 상황이 이쯤 되니까 모든 걸 그냥 원점으로 돌리는 게 맞는 거 같아서.”

세완답지 않은 상세하고 합리적인 판단에 찬주는 어쩐지 불안해졌다.

「근데? 그래서?」

“그래서는 뭐가 그래서야. 그 집에 가서 머리카락 같은 거라도 하나 주워오라는 거지. 빗 같은 거 뒤지면 머리카락 몇 개는 나오지 않을까? 칫솔도 좋고.”

그냥 그 집에 있는 칫솔을 다 가져오라고, 몇 개가 됐든 간에 그걸 전부 다 유전자검사를 하면 어떤 결과든 유의미한 것이 나오지 않겠느냐는 세완의 말에 찬주가 기가 막힌다는 듯이 헛웃음을 토했다.

「야, 그거 도둑질이야.」

“그게 왜 도둑질이야?”

「빈집에 가서 남의 물건 들고 오는 거면 도둑질이지.」

“빌려오는 거야, 빌려오는 거. 정 마음에 걸리면 칫솔값으로 돈이라도 한 10만 원 두고 오든가.”

세완의 뻔뻔한 말에 찬주가 거친 숨을 내쉬었다.

찬주는 어떤 욕을 어떻게 해야 좀 더 충격적이고 상스러울까를 고민했다. 하지만 성격 나쁜 이세완은 그 찰나의 순간조차 기다려주지 않았다.

“말 나온 김에 오늘 갔다 와. 저녁때까지는 올 수 있지? 연락 기다릴게.”

세완은 자기 할 말만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이로써 고민이 해결되었다며 세완은 발걸음도 가볍게 다시 이은을 향해 달려갔다.

반면, 수화기 건너편 찬주는 그가 뭐라고 말을 하기도 전에 전화가 끊긴 핸드폰을 보며 입에서 초대형 불길을 토했다.

“이 자식, 진짜!”

이은과 함께 있을 때면 을(乙)이나 병(丙), 정(丁)도 아니고 무(戊), 기(己), 경(庚), 신(辛), 임(壬), 계(癸)의 가장 밑바닥을 헤매면서 다른 사람들과 있을 때는 갑(甲)질도 이런 갑질이 없었다.

“망할 자식!”

찬주가 다시 한번 울화를 토했다.

BS그룹 소속이지만 오너인 이 회장의 손자로 인하여 사설 업체에서 24시간 근무를 하고 있던 박 팀장이 의아하면서도 안쓰러운 눈길로 찬주를 바라보았다.

‘또 당하셨구만.’

워낙에 소문이 안 좋다 보니 소문만 믿고 상대를 두려워한 부분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매번 영악하고 교활한 세완에게 당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이제는 동정심마저 들었다.

한량 같고 허술해 보이는 우리 상무님은 천하의 나쁜 놈이고, 성격 나쁜 흑막처럼 보였던 박 대표님은 천하의 불쌍한 분이고…….

세상사라는 것이 다 보이는 것 같지는 않다며 박 팀장이 고개를 주억거릴 때였다.

분을 참지 못해 허공을 향해 괴성을 지르던 찬주의 눈에 박 팀장이 들어왔다.

물론 사무실에 박 팀장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의 매우 유능한 직원들 또한 찬주처럼 세완의 의뢰로 인해 벌써 몇 주째 집에도 못 가고 구르고, 구르고, 또 구르고 있었다.

그의 직원들은 충실하고 능력이 좋아서 그가 어떤 지시를 내리든 그가 의도한 것의 200%를 해내는 유능함을 보일 거다.

하지만 찬주는 왠지, 그 유능함을 보일 기회를 그의 직원이 아닌 세완의 직원에게 주고 싶었다.

화풀이라고 해도 좋았다. 그는 원래 속이 좁고, 인성이 나쁘다.

마음을 굳힌 찬주가 박 팀장을 불렀다.

“박 팀장님!”

“네? 무슨 일이신지…….”

미친 듯이 화를 내다가 갑자기 감정을 정리하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그를 부르는 찬주의 모습에 박 팀장이 의아한 목소리로 질문했다.

그 목소리가 너무나도 선량하게 들려서 찬주는 배알이 뒤틀렸다. 찬주가 입을 열었다.

“이세완 상무 지시입니다. 백희경 집에 좀 다녀오세요. 그 집에 있는 빗을 다 훑어서 백희경 머리카락을 좀 가져오라네요. 칫솔을 가져와도 좋고요. 누구 것인지 구분이 안 간다면 그냥 다 가져오랍니다. 다 검사하게.”

“네?”

박 팀장은 너무 놀란 나머지 히끅, 소리까지 내면서 경악했다.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문제점을 지적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박 팀장이 입을 벙긋거리며 당혹스러워했다.

찬주는 그 모습을 보자 어떤지 기분이 좋았다.

그래, 이게 정상적인 반응이지.

그와 박 팀장이 정상이다. 세완이 비정상이고.

하지만 더러운 게 직장생활이라고 했다. 박 팀장은 상사를 잘못 만났고, 그는 클라이언트를 잘못 만난 죄라고 하자.

상사나 클라이언트가 교체될 가능성이 전무한 암흑과 같은 현실 속에서 찬주가 방긋 웃었다.

박 팀장은 거친 생각 속에서 불안한 눈빛으로 전쟁 같은 불안감을 안고 찬주를 응시했다.

그리고 찬주가 말했다.

“다녀오세요. 오늘 안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돌아와야 합니다. 그래야 내일 유전자 검사를 맡기죠.”

찬주는 세완이 했던 말을 박 팀장에게 고스란히 되돌렸다.

“대표님!”

“오전 중에 다녀오면 더 좋긴 하겠군요. 서두르세요.”

박 팀장은 비명 같은 괴성을 내지르며 좌절했고, 찬주는 그런 박 팀장의 등을 화끈하게 떠밀었다.

백희경의 집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이 적지 않은 것은 알지만……. 뭐, 알아서 하겠지.

나만 아니면 된다는 마음으로 찬주는 상큼하게 뒤를 돌았다. 그리고 잠시 후, 박 팀장은 도살장에 끌려가는 마음으로 외근준비를 했다.

* * *

포항으로 내려가면서도 박 팀장은 끝내 포기를 못 했는지 세완에게 전화해서 범죄행위의 옳고 그름에 대해서 논했다.

범죄행위나 범법행위를 두려워하는 것은 아니지만 새가슴 박 팀장을 위해 세완은 소원에게 물었다.

“집에서 뭐 가져오고 싶은 거 있어?”

“집에서요?”

“저번에 내려갔을 때 뭐 놓고 온 게 있어서 직원을 보내려고 하거든. 가는 김에 필요한 거 있으면 가져오라고 하려고.”

순전히 머리카락과 칫솔을 수거하기 위해 섬에 가는 것이, 섬에 방문하는 김에 소원이 필요로 하는 것을 챙기고 겸사겸사 머리카락과 칫솔도 수거하는 일로 바뀌었다.

상황의 전후 관계가 완벽하게 바뀐 말장난이었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소원은 세완의 배려에 지극히 감동했다.

“부모님 사진이요! 엄마랑 찍은 사진! 제 방 침대 위에 있어요. 그리고 제 방에 보면 국어사전이 있는데 그 안에 5만 원짜리 두 장도 있어요. 그리고 또…….”

소원은 주절주절 제가 필요로 하는 것들을 읊었다. 그리고 그것을 가져오는 데 협조하기 위해 세완에게 자신의 집 현관 비밀번호까지 알려줬다.

세완은 그것을 박 팀장에게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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