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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비서의 수상한 휴가 (70)화 (70/100)

70화

지독할 정도로 보고 싶었던 서로이기에 소원과 희경에서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를 걱정하는 말들이 쏟아졌다.

소원의 관심사가 엄마의 건강이듯이 희경의 관심사도 소원의 건강이었다.

「병은? 약은 잘 먹고 있지? 소변에 피나 거품이 섞여 있지도 않고? 너는 피곤하면 큰일 나니까 힘들면 그 아르바이트 그만둬.」

돈이 필요하면 이은에게 달라고 하거나, 그게 싫으면 통장번호를 알려달라고. 그러면 희경이 송금을 해준다고 했다.

희경은 자나 깨나 소원 걱정뿐인 것 같았다. 그런 그녀에게 소원이 제동을 걸었다.

“알았어, 알았어. 근데 엄마,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엄마와 연락이 되어 울컥했던 기분이 잦아들자 소원은 가장 궁금했던 부분에 대해 물었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본 백희경은 뒷마당의 장독대에서 떨어져 피투성이가 된 모습이었다.

피투성이가 된 엄마를 걱정해서 윤세를 끌고 왔더니 그 자리에 깨진 장독대 파편과 바닥에 흥건한 핏물만 있었던 그때의 상황은 악몽으로 변해 자주, 종종 소원을 찾아왔다.

소원은 정말 엄마가 그때 죽은 줄 알았다.

그런데 그 와중에 시신까지 사라졌으니 정말이지 공포 그 자체인 상황이 아닐 수가 없었다.

“엄마, 정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소원이 물었다.

백희경은 침묵했다.

“엄마?”

소원이 재차 그녀를 불렀다. 그러자 그녀가 답했다.

「그건 중요한 게 아니고, 나중에 엄마가 다 설명할게. 너는 그냥 네 몸만 신경 써. 나머지는 엄마가 다 알아서 할게.」

이은은 그녀에게 빚이 있다. 그녀는 정말 희경에게 이래서는 안 된다.

어릴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저를 살려준 사람이 누군데!

이은을 죽이자는 남편의 말에 반대했다가 그녀가 죽을 뻔했던 그날을 떠올린 희경이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정말 끔찍한 아이였다.

이은만 관계가 되면 그녀의 인생이 엉망이 된다.

소원이만 아니었어도 그 아이를 다시 찾는 일은 없었을 텐데…….

마치 그녀의 인생을 망치기 위해 태어난 아이인 것 같은 이은을 떠올리며 희경이 음습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이 눈에 보이는 것은 아니었지만 어쩐지 느낌이 이상해서 소원이 희경을 불렀다.

“엄마, 도대체 뭘 어떻게 알아서 한다는 건데?”

소원은 내내 엄마를 믿었다.

지금까지 봐온 그녀는 최선을 다해서 자식을 보호하고 지키는 사람이었다.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그녀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다 하는 그런 사람!

그래서 이은과 세완 그리고 이 집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엄마에 대한 마음을 굳건하게 지킬 수 있었다.

그녀가 아는 엄마는 그런 사람이 아니니까!

화투패만 손에 들면 눈이 뒤집혀서 보증이고, 사채고 할 것 없이 사고를 치는 아빠의 전적으로 인해 살짝 불안한 부분이 없지 않아 있긴 했지만 그 모든 것을 포함해서 그녀는 엄마를 신뢰했다.

아빠를 가장 잘 아는 것은 엄마고, 아빠가 그런 무서운 짓을 벌일 거였으면 애초에 엄마가 이은을 부르지도 않았을 거라고.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기 때문에 소원은 지금 제 엄마가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자세한 건 묻지 말고. 나중에 얘기해줄게.」

“…….”

「혹시 무슨 일이 있거든 이 번호로 엄마한테 연락하면 돼. 대신에 들키지 말고. 알았지?」

“응…….”

「그리고 혹시라도, 이건 정말 만에 하난데, 네 언니가 혼자 어디 갈 거 같으면 엄마한테 얘기 좀 해주지 않을래? 얘기를 좀 할 게 있어서 말이야.」

“응, 알았어.”

「됐어, 그럼. 엄마가 옆에 있다는 거 잊지 말고! 엄마가 하는 일은 모두 다 우리 딸을 위해서라는 것만 잊지 마. 엄마는 너만 있으면 돼. 너만 건강하고, 너만 잘살면 돼. 엄마 마음 알지?」

“응.”

소원이 마지못한 목소리로 어렵게 대답했다.

참 이상했다. 엄마가 살아 숨 쉬는 모든 이유가 오직 소원이라는, 평소와 같이 달콤한 고백일 뿐인데 왜 갑자기 숨이 막히는지 모르겠다.

스스로도 그 이유를 알 수 없어 머뭇거리고 있는데 그런 소원에게 엄마가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그녀는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딸을 걱정했다.

「엄마가 근처에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발목에 찜질 꼭 하고! 우리 딸 힘내자.」

“응, 엄마도 힘내.”

그리고 전화가 끊겼다.

소원은 전화가 끊기고도 그 사실을 믿을 수가 없어 한참 동안 핸드폰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꿈은 아니었다.

통화는 짧았지만 엄마의 무사 안녕을 알게 되어 소원은 그 어느 때보다 마음이 든든했다.

행복했고, 기뻤고, 즐거웠다.

하지만 그것과는 다른 뭔가 미묘한 기분도 들었다.

“……아닐 거야. 아니지. 아니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끔찍해서 입 밖으로 낼 수도 없었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럴 리가 없었다.

하지만 이 집 사람들에게 그녀에게 연락 온 것을 들키지 말라는 그녀가 남긴 당부의 말이 자꾸만 마음에 걸렸다.

소원은 엄마가 도대체 뭘 생각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괜찮을 거다. 아무 일도 아닐 거다. 그녀의 엄마는 착하고 마음 여린 사람이라서 그런 무서운 일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소원은 그렇게 믿으며 애써 잠을 청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잠이 잘 올 것 같지는 않았다.

* * *

분명히 공동대표인데 악덕 사장에게 들볶이느라 오늘도 야근 중인 찬주의 눈에 이상한 것이 보였다.

아무 생각 없이 기존의 자료들을 재검토하는 중이었고, 그래서 여사로 넘기던 상황이었음에도 이상하게 그 한 줄의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찬주는 자신도 모르게 손을 멈췄다. 그리고 스크롤바를 위로 올려 방금 자신이 지나치려고 했던 그것을 확인했다.

장소원. 1월 17일 출생. O형

포항의 모 산부인과에서 태어나고, 지독한 난산이라 산모가 고생을 많이 했다는 등의 시답잖은 이야기들이 눈에 보였다.

“이건 중요한 게 아니고……. 도대체 뭐가 이상하게 느껴졌던 거지?”

찬주가 중얼거렸다.

누군가는 그저 착각일 뿐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찬주는 꽤나 촉이 발달한 인물이었다.

그의 촉이 이건 위험하다고 생각하면 그건 100% 위험한 거고, 그의 촉이 이건 이상하다고 판단하면 그건 200% 이상한 거였다.

그런 전적이 있기에 찬주는 이 평범하다면 평범한 생활기록부를 대충 넘길 수가 없었다.

도대체 어디가 이상한 것인가, 그가 유심히 모니터를 보고 있을 때였다.

“……!”

뭔가가 찬주의 머릿속을 스쳤다.

찬주는 제 상상이 어이가 없어서 자신도 모르게 웃어 버렸다.

“에이, 설마!”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심을 지울 수가 없었다.

당연히 친 모녀일 거라 생각했는데 어쩌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이은과 소원은 정말 안 닮은 자매였다.

아버지가 달라 그런 줄로만 알았는데 혹시, 정말 남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면 도대체 관계가 어떻게 되는 거지?

알 수 없는 의문에 찬주의 머리가 복잡해졌다. 하지만 그 이전에 사실관계 확인이 먼저였다. 찬주가 문서 파일을 뒤적였다. 

“백희경, 백희경, 백희경…….”

찬주가 백희경의 이름을 중얼거리며 그녀의 문서를 찾았다. 그가 열람을 시작했다.

* * *

지난밤은 모두에게 긴 밤이었다. 누구도 편안하게 잠을 이룬 자가 없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이은은 유독 더 그랬다.

세완의 이상한 점 때문에, 그리고 의외로 건실한 세완의 재정상태 때문이 아니었다. 열린 창문 사이로 희미하게 들어온 누군가의 목소리 때문이었다.

“엄마, 엄마, 엄마…….”

다른 말은 하지도 못하고 엄마만 애타게 부르짖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이은의 방으로 스며들어왔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꺽꺽거리는 소리를 내면서도 그 부름의 대상이 유일한 생명줄이라도 되는 듯이 매달렸다.

방마다 방음처리가 다 되어 있는 데다가 방 사이의 거리가 제법 되는 데도 이은의 방까지 목소리가 들어온 것을 보니 소원도 창문을 열어놓은 모양이었다.

“엄마, 엄마…….”

소원은 참 애절하게도 엄마를 불렀다.

그리고 그 목소리를 들은 이은은 어쩐지 기분이 착잡해졌다. 그리고 새삼 깨달았다. 소원이 고작 열아홉 살, 미성년자라는 것을.

첫 만남 당시 제 엄마에게 무슨 짓을 한 거냐며 앞뒤 안 가리고 대들던 모습이나, 세완과 함께 깔깔대던 모습들 때문에 본능적으로 거리를 둔 편이긴 했다.

그녀를 버린 ‘엄마’가 유독 소원만 끼고 돈다는 생각에 열등감과 자격지심으로 그녀를 멀리한 것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열아홉 살이었다. 빠른 년생이라고는 하지만 열아홉 살, 미성년자, 아직 성인의 보호가 필요한 나이였다.

“나는 일곱 살 때부터 혼자였어. 열아홉 살인 게 뭐? 그 정도면 다 컸지!”

“나는 엄마를 부르면서 울지도 못했어. 버려졌던 기억이 너무 크고 강해서!”

“열아홉 살이면 투표도 할 수 있고, 결혼도 할 수 있어!”

이은이 스스로를 세뇌하듯 중얼거렸다.

소원의 우는 목소리가 듣기 싫어서 냉큼 창문도 닫았다. 방음이 지나치게 잘 되는 탓인지 문을 닫으니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이은의 귀에만 자꾸 소원의 우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동시에, 이은은 자신이 너무 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또 들었다.

물론 이은도 열아홉 살 때 아르바이트를 하긴 했다.

그 시간에 공부나 하라며 이 회장은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지만 계속 신세 지는 것이 면구해 대학 합격이 확정되자마자 아르바이트를 하러 나섰다.

등록금이야 장학금으로 대체한다고 하지만 최소한 학교를 다닐 때 드는 잡비 정도는 그녀가 내는 게 맞는 것 같았다.

그때, 그 시절의 그녀는 참 많이 울었다.

일이 힘들어서, 사람이 무서워서…….

어스름하게 해가 기울면 사람들은 화가 지나치게 많아져서 그녀가 조금만 실수를 해도 부모 없는 녀석은 못 쓴다든가, 이래서 고아는 안 된다는 말들을 아주 쉽게 내뱉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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