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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비서의 수상한 휴가 (69)화 (69/100)

69화

아무런 기대 없이 받은 전화였다.

분명히 핸드폰 가입이나 인터넷 가입, 보험 가입일 것이라며 받자마자 끊을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수화기 너머에서는 아무런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물론 스팸일 수도 있었다. 그런데 뭔가 느낌이 이상했다.

뭔가 전화를 끊으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에 소원이 머뭇거릴 때였다.

「괜찮니?」

걱정으로 가득한 나직한 목소리가 그녀에게 말을 건넸다.

“……엄마?”

소원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나 그 질문을 던질 때 소원은 이미 확신하고 있었다.

“엄마자? 맞지? 엄마, 지금 어디야? 몸은 괜찮아? 나도 데려가지! 나 좀 데려가!”

소원은 애타는 목소리로 그녀를 부르며 오열했다.

피투성이가 돼서 사라졌던 엄마도 걱정되고, 남의 집 더부살이로 사는 천덕꾸러기 같은 제 삶도 싫었다.

아빠도 보고 싶었다.

누군가는 그럴 거다. 이은은 평생 그렇게 살았다고.

하지만 그녀는 이은과 달랐다.

소원은 미성년자고, 아직 어리고, 엄마가 필요했다.

“엄마아!”

소원은 빠른 년생이니 자신도 친구들처럼 이제 성인이라면서 잘난 척하던 것도 잊고 엄마를 부르며 크게 울음을 터트렸다.

「소원아…….」

핸드폰이 마치 목숨 줄이라도 되는 것처럼 붙들고 간절하게 우는 딸의 음성에 백희경의 목소리에도 울음기가 맺혔다.

우리 소원이가 얼마나 예쁘고 귀한 딸인데 타지에서 이런 고생을 하고 있나 하는 생각에 희경은 눈물이 앞을 가렸다.

그녀가 생각을 잘못했다. 차라리 처음부터 이은에게 돈을 달라고 해야 했다. 아니면 남편에게 협조하거나.

이도 저도 못 하고 정에 휘둘려서 애매하게 굴다가 불쌍한 소원이만 고생을 시키는구나 싶어서 희경이 눈물을 떨궜다.

「그래, 우리 딸. 엄마가 미안해. 정말 미안해.」

다리를 절뚝거리던 딸이 마음에 걸려서 주저하다 전화를 걸었는데 이렇게 우는 소리를 들으니 희경은 정말 가슴이 아팠다.

그녀 하나 고생하는 것은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무고한 소원이 울고 아파하는 것은 정말이지 너무나도 견디기가 힘들어 희경은 어느새 소원처럼 핸드폰을 붙잡고 목 놓아 울어버렸다.

* * *

같은 시간, 세완과 이은은 그녀의 복직을 반대하는 이 회장을 따라 그의 방으로 들어갔고, 그를 설득하기 위해 전심전력으로 노력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회장은 이은의 몸이 다 낫기 전까지는 복직을 허락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이은과 세완이 동시에 그를 부르며 매달렸지만 이 회장은 마음을 돌리지 않았다.

“늙은이 고집 꺾을 생각하지 말고 그 시간에 얼른 낫기나 해. 그러면 싫다고 해도 부려먹을 테니까!”

그리고 그 말을 마지막으로 두 사람은 먼지 쓸리듯 방에서 쫓겨났다.

세완이 다시 방으로 쳐들어가려고 했지만 이미 문은 잠겨 있었다.

“할아버짓!”

세완이 문을 덜컥거려봤지만 이 회장은 문을 열지 않았다.

고집이라면 이 회장과 맞먹는 그의 손자가 열쇠를 찾아서 문을 따고 들어가려고 했지만…….

“열쇠? 마스터키고 스페어 키고 할 것 없이 아까 회장님이 전부 다 가져가셨는데?”

춘천댁의 말에 따르자면 열쇠란 열쇠는 이미 이 회장이 전부 다 가져가서 숨긴 뒤였다.

벽보고 소리치는 것도 한두 번이지 얼굴도 볼 수 없는 상대를 설득하는 것은 요원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때문에 두 명의 패배자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터덜터덜 2층으로 돌아와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야만 했다.

그런데 막 방에 들어가려는 찰나에 세완이 그녀를 불러 세웠다.

그는 문고리를 잡고 있는 이은에게 신신당부하듯이 말했다.

“너 복직하는 거 마음 바꾸지 마라.”

“왜?”

“이유는 묻지 말고.”

세완은 아무것도 묻지 말고 대답만 하라고 했다. 그 순간 이은은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몰아쳤다.

그녀는 저 말을 하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안다.

가족에게 그 어떤 논의도 없이 제 친구나 친척의 보증을 서거나, 대출을 영혼까지 끌어모아 주식이나 암호화폐를 하는 사람들!

그러니까 저 말은 사고 치기 직전의 사람들이 하는 말이다.

“너 사고 친 거 있어? 무슨 사고야? 커? 대형사고? 100억 이하지? ……설마 1000억 넘어? 조 단위는 아니지?”

이은이 다급하게 캐물었다.

어서 자수해서 광명 찾으라며 다그치는 그녀의 말에 세완이 그녀를 보며 눈을 부라렸다.

“꼭 상상을 해도…….”

“그럼 뭔데? 나야 일이 좋아서 그러는 거지. 너는 왜 굳이 내가 필요한 건데?”

상무실 비서로 있는 윤 대리가 일 잘하고 있는 거 아니냐는 이은의 질문에 세완이 머뭇거렸다.

이은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정말 무슨 일이 있긴 있는 모양이었다.

우리 세완이, 사고 쳤구나! 대형사고구나! 1조 이상짜리구나!

자존감을 잃고 세완을 구박한 것이 그녀의 열등감의 발로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아니었나 보다. 얘는 더 맞아야 했다.

상황이 조 단위로 들어가면 이은이 혼자서 수습할 수 있는 범위를 훌쩍 넘어선 거다.

이은은 그 즉시 몸을 돌려 이 회장이 있는 1층으로 뛰어 내려가려고 했다. 문을 잠그고 있는 이 회장도 이런 이유라면 문을 열어줄 거다.

“할아버…….”

이은이 막 이 회장을 부르며 1층으로 뛰어 내려가려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스톱! 잠깐만! 아니라니까!”

세완이 이은을 붙들었다.

“아니면?”

한쪽 발을 한 계단 아래에 둔 이은이 협박하듯이 물었다.

“그냥! ……아오!”

세완이 머리를 벅벅 긁더니 급기야는 쪼그리고 앉아 머리를 쥐어뜯었다.

회사 일로 사고를 쳤으면 진작 이야기를 했을 텐데 벙어리 냉가슴을 앓으면서도 말을 못 한다? 이은은 점점 수상한 느낌이 들었다.

이은이 그를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쪼그리고 앉은 세완의 앞에 함께 쪼그리고 앉아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혹시 도박했니? 주식? 암호화폐? 설마 사채도 썼어? ……찬주가 부추겼지?”

요즘 재벌 3, 4세들 사이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되는 것이 도박과 마약이라고 했다.

하지만 눈빛이 깨끗한 것을 보니 마약이나 도박은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이은은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주식과 암호화폐를 범인으로 선정했다. 그리고 겸사겸사 언제나 세완을 나쁜 길로 이끄는 나쁜 친구 찬주를 매도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완에게 노예처럼 부려지며 백희경의 흔적을 찾느라 바쁜 찬주에게는 매우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이은은 찬주보다는 세완과 더 친하니까 찬주를 조금 더 억울하게 만들기로 했다.

‘우리 애는 착한데 친구를 잘못 만나서’에서 ‘친구’의 포지션을 찬주에게 대입시킨 이은이 세완에게 그를 마구 매도했다.

하지만 찬주 입장에서는 누가 봐도 ‘나쁜 친구’가 세완이었다. 민망한 마음에 세완이 볼을 긁적이며 말했다.

“뭔가 오해가 있나 본데 걔가 그렇게 나쁜 애가 아닌데…….”

“나쁜 애가 아니긴!”

이은의 눈에서 또다시 불꽃을 번쩍였다.

이은의 머릿속에서는 세완이는 ‘착한 우리 아이’, 찬주는 ‘우리 아이에게 나쁜 물을 들이는 나쁜 친구’ 정도로 보이는 듯했다.

세완은 불쌍한 친구를 위해 그를 변호해줄까 잠깐 고민했지만 이은이한테 다른 놈 칭찬해서 어디에다가 쓰게? 

그는 빠른 속도로 친구를 버렸다. 대신 다른 곳에 집중했다.

“야, 근데 그건 그렇고 내가 그렇게 띄엄띄엄한 인물이 아니거든.”

“뭐가?”

“아니, 너는 나를 막 미래계획도 없고 그렇게 생각하는 거 같은데 이래 봬도 나름대로 유능하고 그렇단 말이야.”

이은에게 보이는 부분이 좋지 않은 부분 그 자체여서 그렇지 세완은 자신이 주식으로 인생을 말아먹고, 암호화폐로 인생을 한 번 더 말아먹고, 도박으로 사망 엔딩을 찍는 그런 인물은 아니라고 변명했다.

얘가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나, 말간 눈을 끔벅이는 이은에게 세완이 다시 한번 그의 말을 풀어서 설명했다.

“저기, 나 능력 있다니까?”

“……네가?”

이은이 미심쩍은 목소리로 물었다.

세완은 자신이 암호화폐가 기십만 원할 때 사놓은 암호화폐가 얼마나 되고, 초창기에 전기차에 투자해서 번 돈이 얼마고, 지금도 찬주와의 동업을 통해 벌어들이는 돈이 얼마나 되는지에 대해 설명했다.

그리고 그 설명을 모두 들은 이은이 말했다.

“근데?”

“…….”

“근데 그게 뭐?”

“아니, 그냥 내가 결혼하면 처자식 밥은 안 굶긴다, 뭐 그런…….”

그리고 애써 설명하던 세완이 손으로 마른세수를 했다. 젠장.

“아니야. 그냥 내가 미쳤나 봐.”

“……?”

“아무것도 아니야. 잘 자라.”

여자 앞에 돈 자랑하고 허세 부리는 사람을 가장 우습게 여겼는데 어느 순간 그가 그런 모습이 되어 있었다.

심지어 그 모든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돈 자랑을 한 보람도 없었다.

더 이해가 안 되는 것은 그가 왜 이은에게 그런 헛짓거리를 한지 모르겠다는 거다.

그냥 내가 미쳤지.

쏟아지는 자괴감에 세완의 어깨가 물먹은 것처럼 무거워졌다.

“그래. 잘 자.”

의아해하는 이은의 목소리를 들으며 세완이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 후, 문에 기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냥 딱 죽고 싶었다.

* * *

세완은 죽고 싶은 마음에 몸부림을 쳤고, 이은은 애가 갈수록 이상해진다며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방으로 들어갔다.

마침 물을 마시러 방을 나서려던 윤세는 밖에서 들리는 이야기에 입을 틀어막고 미친 듯이 웃어젖혔고, 이 회장은 백희경의 일을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 진심으로 고민했다.

그렇게 모두가 제각각의 시간을 보내고 있던 바로 그 때였다. 3층, 그 어딘가에서 핸드폰을 잡고 한참 동안 눈물 바람이었던 소원은 조금씩 눈물이 잦아들어 가고 있었다.

“엄마, 울지 마.”

「그래, 우리 딸. 너도 울지 말고.」

모녀는 훌쩍이며 서로의 상처를 핥아 주고 위로해 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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