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화
세완의 전화를 끊은 찬주는 이은에게 붙인 경호원들에게 전화를 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는 그의 질문에 경호원들은 조심스럽게 이은이 좀 다쳤다고 대답했다.
차를 타고 이은이 탄 버스를 쫓는 와중에 하차하던 이은이 차에서 굴러떨어졌다고 했다.
머리를 다친 것인지 흘린 피가 적지 않아 부랴부랴 그녀를 병원으로 데려간 것이 그가 붙인 경호팀의 팀장이라고 했다.
팀장은 최대한 이은이나, 주변 인물들에게 자신들의 모습을 보이지 말라는 지시에 의거해 이은을 병원에 데려다주고 몸을 피했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찬주의 얼굴이 난색으로 젖어 들었다. 사달이 나긴 난 모양이었다.
“일단…… 이세완 부대표한테 연락을 한번 해 보세요. 듣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모양이니까.”
“네, 알겠습니다.”
지시를 내린 찬주가 머리를 벅벅 긁었다.
“골치 아프게 됐고만.”
이은의 몸도 걱정이고, 무엇보다 일단 세완이 있는 곳으로 가 봐야 할 것 같았다.
* * *
혹시나 싶어 다시 한번 전화를 걸었는데 세완은 역시나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은에게 연락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인지라 찬주는 그가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며 사무실에 도착했는데 예상대로 세완은 이미 도착해 있었다.
단순히 도착만 한 것이 아니라 이미 경호팀이며 직원들까지 소환해서 브리핑을 받고, 도대체 어떻게 구한 건지 주택가부터 시작해서 상점가 CCTV, 도로변 CCTV까지 온갖 영상들을 분석하고 있었다.
찬주가 슬그머니 세완의 뒤로 가서 그가 보고 있는 모니터를 확인했다.
한 여자의 모습을 다각도에서 촬영한 사진이 세완의 트리플 모니터 두 곳에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나머지 모니터 하나에는 수십 개로 분할된 화면 가득 제각각의 동영상이 틀어져 있었다.
세완의 집 대문에서 11시 방향 가로수 뒤, 검은색 상의에 청바지, 검은 운동화를 착용한 여자가 보였다.
키는 160cm 중반, 몸무게는 55kg 내외로 추정. 모자를 깊게 눌러쓴 탓에 얼굴은 잘 보이지 않지만 지극히 평범한 중년 여자였다.
어디서든 볼 수 있는 평범한 모습이지만 이상하게도 여자의 시선은 언제나 누군가를 향해 있었다.
찬주는 아마 누군가가 아주 높은 확률로 이은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 여자가 백희경이지?”
찬주가 물었다.
몰라서 물은 것은 아니었다. 아마 백희경이 맞겠지.
그는 그저 언제나 싱글싱글 능글맞은 이세완이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모니터를 바라보는 모습이 꽤나 낯설어 분위기를 환기시키려 했을 뿐이었다.
차갑고 냉정한 척해도 곱게 자란 도련님답게 세완은 기본적인 인간에 대한 배려 정도는 가지고 있었으니까.
세완이 그를 아는 척하면 이은의 안부를 묻고, 상황에 대해 질문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조금 달랐다. 찬주의 기분이 어떻든 말든 세완은 그가 있는 방향으로는 고개 한번 돌리지 않고 말을 이었다.
“왔으면 헛소리 말고 화면이나 분석해.”
“화면?”
“1팀은 섬에서 돌아온 날부터 오늘까지 우리 집 주변 CCTV 영상. 수상한 자들의 존재를 확인하는 거고, 2팀은 오늘 있었던 백희경의 동선 확인. 귀찮게 굴지 말고 아무거나 너 하고 싶은 걸 해. 고양이 손도 아쉬운 상황이니까.”
“존재가 아니라 동선?”
“역산해서 보다 보면 어디 사는지 정도는 나오겠지.”
찬주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세완의 집 주변을 맴도는 것이야 집 주변 CCTV를 확인하면 그뿐이다.
하지만 조선 시대도 아니고, 백희경은 분명히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택시를 타고 이동했을 텐데 그 동선을 어떻게 분석하고, 역산을 도대체 어떻게 한다는 건지 모르겠다며 황당해진 찬주가 입을 열려는 때였다.
“9401번 버스, 서울역버스환승센터에서 범인의 모습이 사라졌습니다.”
직원 하나가 다가와서 세완에게 말했다.
“넘버는?”
“서울74아 3884입니다. 탑승시간은 오후 6시 42분입니다.”
“알았어요.”
세완이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서울74아 3884. 서울역버스환승센터에서 오후 6시 42분 정차. 예, 부탁합니다.”
통화가 지나치게 간단하고 간결해서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러나 그 다음, 모니터 화면에 뜬 동영상을 보고 찬주는 입을 떡 하고 벌렸다.
버스 안을 촬영한 시내버스 차량 내부 CCTV 동영상이었다.
화면이 명확하게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타고 내리는 사람이 누구인지 정도는 확인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세완은 지금 차에 타고 내리는, 그리고 그녀의 동선과 관련한 모든 동영상을 분석하는 쌩노가다를 하고 있는 듯했다.
그 방법의 무식함도 무식함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따로 있었다.
“너 이거 어떻게 구했어?”
찬주는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
버스 차량 내부 CCTV는 내부보안자료로 기본적으로 외부유출이 금지되어 있다.
사건이 일어나서 경찰이 그 동영상을 확인하고, 뉴스에서 시청자들에게 틀어 주는 것은 적법한 절차를 갖춰서 공개되는 것이다.
하지만, 찬주는 아무리 생각해도 세완이 그 적법한 과정과 절차를 지켜서 동영상을 빼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동영상을 다운받아 직원에게 넘긴 세완이 그를 힐끗 보며 물었다.
“왜?”
“인마, 이거 불법이야!”
다른 사람도 아니고 네가 불법 타령을 하냐는 듯한 무심한 눈이 그를 훑었다. 찬주가 손으로 마른 세안을 했다.
그는 원래 불법이 익숙한 사람이지만 세완은 아니었다.
멀쩡한 놈이 돌면 더 위험하다고 하더니, 제 모친의 유품인 반지를 잃어버리고도 경찰이며 합법 타령하던 놈이 이은이 다치자 대놓고 불법에 손을 뻗었다.
낮게 욕설을 뱉은 찬주가 모니터를 재차 확인했다. 혹시라도 흔적이 남는 경로로 받았을까 봐 확인하려는 것이었다.
만약 그렇다면 세완이 이로 인해 누군가에게 협박을 받을 가능성이 있기에 그의 선에서 먼저 정리를 해야 했다.
그런데 동영상을 받는 링크가 익숙했다. 그가 불법적인 경로로 자료를 수집할 때 자주 사용하는 해외 서버 사이트였다.
비밀번호를 입력하지 않으면 열리지도 않고, 동영상을 올리고 5분 안에 사이트는 무조건 폭파된다.
IP 교란을 위해 띄워놓은 듯한 보안 프로그램도 꽤나 익숙했다.
상대에게 증거를 남기지 않기 위해 서버 IP 주소를 실시간으로 바꿔 주는, 하지만 사용자는 끊김 없이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꽤나 유용한 프로그램이었다.
“너 여기…….”
찬주가 혹시나 싶어 입을 열려는 때였다. 세완이 그의 말을 가로챘다.
“네 비서가 알려 주더라. 여기에다가 부탁하라고.”
“…….”
“네 이름 팔았어. 네가 필요로 하는 거라고. 나중에 청구해.”
당당하다 못해 뻔뻔한 언사에 찬주는 붕어처럼 입만 벙긋대다 이내 다물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죄도 지은 놈이 잘 짓는다고, 평생 이쪽과는 관계가 없이 살아온 놈이 어설프게 죄를 저질렀다가 개인정보법 위반으로 은팔찌 차는 모습은 안 봐도 될 것 같았다.
참으로 약아 빠진 친구였다.
힘이 빠진 찬주가 옆의 의자를 끌어와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세완을 응시했다.
다행이라는 것은 빈말이 아니었다. 아무리 겁이 없어도 그의 배경을 알고도 찬주를 상대로 협박을 할 수 있는 존재는 없었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찬주는 이런 세완의 모습이 꽤나 낯설었다.
그의 머릿속에 어떤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는지를 아는지 모르는지 세완은 무표정한 얼굴로 내내 모니터 화면만 보고 있었다.
찬주는 그런 세완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많이 다쳤냐?”
“뭐가?”
“김이은. 걔가 아니면 네가 이렇게 돌아 버릴 거 같진 않거든.”
불법이라는 최후의 선은 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그게 저놈이 멀쩡해 보인다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찬주가 세완을 응시했다. 세완은 말이 없었다.
“많이 다친 거야?”
“그렇다면 그런 거고, 아니라면 아닌 거고.“
목숨은 위험하지 않지만 꽤나 많이 다친 듯했다.
“백희경?”
“어.”
“미친년일세.”
솔직히 저쪽이 이렇게 원한을 품을 이유가 없는데 정말 별일이었다.
가해자에게 비하인드 스토리를 부여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무슨 철천지원수를 졌다고 섬에서 그런 것으로도 모자라서 서울까지 와서 이러나, 하는 생각이 그의 머릿속을 스쳤다.
솥뚜껑 열어 보면 그 안이 멀쩡한 집이 없다는 옛말이 그렇듯이 그의 집도 그렇지만 김이은 쪽도 어지간한 콩가루 집안인가보다.
그런 부모는 정말이지 차라리 없는 것이 훨씬 나았다.
하지만 그거야 이은이 알아서 할 일이고, 찬주는 그가 해야 할 말을 했다.
“그런데 정말 이렇게 무식하게 동선 추적할 거야?”
백희경의 흔적이 엿보이는 모든 곳을 전수 조사하는 이 무식한 방법은 연쇄살인범을 잡아야 하는 경찰조차도 사용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갈려 나가는 인력이 도대체 얼마이고, 시간과 노력과 금전적 손해는!
심지어 역산을 한다고 해서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었다.
찬주는 순전히 이성적 판단으로 그를 말리려고 했다. 그것을 세완이 감정적으로 받았다.
“안 하면? 백희경을 계속 저렇게 풀어놔?”
세완이 싸늘하게 말했다. 누가 보면 찬주가 이은을 다치게 한 줄 알 정도였다.
“누가 그렇대? 나는 그저 힘들지 않을까 하는 거지.”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해 봐야지. 대충 어디에 사는지 정도는 알아 놔야 나도 마음이 편하고.”
“……그보단 김이은 옆에 경호원을 붙이는 게 낫지 않을까? 사실 이번에 경호원만 있었어도 좀 나았을지도 모르잖아.”
근거리 경호와 원거리 경호는 그 난이도도 다르지만 보호가 가능한 영역도 달랐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경호를 받는 당사자도 모르게 먼 거리에서 경호하는 것보다는, 바로 옆에 밀접하게 붙어서 경호하는 것이 훨씬 더 대상자를 보호하기 쉬웠다.
“김이은도 지가 지금 위험한 상황이라는 것을 알긴 해야 하지 않을까?”
찬주가 이성의 영역에서 질문했다.
세완은 답이 없었다. 찬주가 내친김에 말을 이었다.
“오늘 그 여자가 나타난 동선을 쫓는 거야 그렇다 치자. 자학도 아니고 이전에 백희경이 나타났던 것은 도대체 왜 분석하는 건지 모르겠……. 설마 정말 자학이야?”
찬주가 입을 떡 하고 벌렸다.
“헛소리하지 마.”
하지만 세완의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자학이 아니라는 말은 못 하겠다. 정보를 수집한다는 명분 아래 그는 그가 놓쳤던 백희경의 모든 흔적을 수집하고 있었다.
솔직히 일부는 쓸데없는 짓이라는 말을 부정할 수가 없는 상황이긴 했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그가 못 견딜 것 같았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세완이 견딜 수가 없었다.
세완은 자꾸만 그 때문에 이은이 다친 것 같았다.
자신의 탓이 아니라는 것은 안다. 하지만 막을 수 있는 사고였다는 것도 사실이다.
*****************************************************
아지트 소설 (구:아지툰 소설) 에서 배포하였습니다.
웹에서 실시간으로 편리하게 감상하세요
http://novelagit.xyz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