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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비서의 수상한 휴가 (54)화 (54/100)

54화

이은이 당연히 집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기에 세완은 그 순간 얼어붙었다.

“이은이 집에 없어요?”

“아까 나갔는데?”

“언제요? 얼마나 됐어요?”

세완의 다급한 목소리에 춘천댁 아주머니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세완은 즉시 휴대전화를 꺼내 이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전화를 받지 않았다.

별일 없기야 하겠지만 그리고 없어야 하지만 요즘 그녀 주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수상한 일이 그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몇 시간 됐는데…….”

“몇 시간이죠?”

“아까, 한 3시 정도?”

춘천댁이 시간 계산을 위해 손가락을 꼽았다. 현재 시간은 8시 10분, 나간 지 5시간 10분 정도가 흘렀다.

“누구 만난다는 이야기는 안 했어요?”

“회사 간다고 했다니까? 복직 때문에.”

집에서 이야기하라고 했더니 굳이 회사까지 간다며 이은이 길을 나섰다고 했다.

회사를 왕복해도 세 번을 했을 법한 시간에 세완이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다시 이은에게 전화를 거는 그의 모습에 춘천댁이 말했다.

“누구 만나나 보지. 회사에 가려고 했는데 어디에서 급한 연락을 받았다거나.”

춘천댁은 세완의 행동이 유난이라는 듯, 이은이도 다 큰 성인인데 무슨 다섯 살 어린아이를 내놓은 것처럼 행동하느냐며 그를 타박했다.

그런 그녀에게 차마 이은의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설명할 수가 없어서 세완은 핸드폰만 초조하게 바라보았다.

그러나 여전히 전화는 불통이었다.

“할아버지는요? 할아버지한테도 연락이 없었어요?”

“회장님은 아직 안 들어오셨지.”

“그럼…….”

“전경련 모임이었나? 약속 있다고 하셨어. 저녁 준비할 필요 없다고.”

살짝 희망을 가지려는 찰나, 춘천댁이 그 희망을 깔아뭉갰다.

그래도 혹시나, 이 회장이 이은의 행방을 알까 싶어서 이은에게 걸던 전화를 끊고 이 회장에게 전화를 걸려는 찰나였다.

「여보세요.」

누군가 전화를 받았다. 그런데 처음 듣는 목소리였다.

“당신 누구야?”

세완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협박하듯 음산한 목소리에 상대가 움찔했다. 그녀가 답했다.

「서울대병원 응급실입니다.」

“……!”

모르는 여자가 이은의 전화를 받았을 때도 놀랐지만, 병원 응급실이라는 대답은 그를 더욱더 놀라게 했다. 여자가 말을 이었다.

「지금 환자분이 치료를 받는 중이셔서요. 대신 전화를 좀 받아 달라고 말씀하셔서…….」

“거기 어딥니까? 연건동입니까, 분당입니까?”

세완이 여자의 말을 끊고 질문했다. 여자는 분당이라고 했다. 세완은 즉시 전화를 끊었다.

“이은이한테 전화 건 거 맞지? 누가 받은 건데? 무슨 일이야?”

그의 모습에 춘천댁이 놀란 듯 질문을 쏟아냈지만 그녀에게 대답해 주고 있을 여유는 없었다.

“죄송해요. 다녀와서 말씀드릴게요.”

세완은 고개를 꾸벅인 뒤 다시 현관을 나섰다.

* * *

같은 시간, 분당 서울대병원.

커다란 mri 기계 안에 누워서 이은이 눈을 깜박였다. 위이잉, 커다란 소음이 그녀의 귓가를 때렸다. 머리가 욱신거렸다.

그녀는 단순히 회사에 가려고 한 것뿐인데 어쩌다가 일이 이렇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이은이 천천히 오늘 일었던 일을 반추했다.

세완의 일에 이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섬에서 있었던 일의 PTSD, 그러니까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아닌가 싶었다.

일상으로 돌아가면 그녀도 평정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겸사겸사 회사를 다녀올까 했다.

친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녀의 지인들 중 평일 대낮에 자유롭게 시간을 낼 수 있는 사람은 없었고, 사실 회사 일이 걱정되기도 했다.

세완이 과연 일을 잘하고 있을까 하는 뭐 그런 것들.

세완은 말한다. 너 없어도 회사는 잘 굴러가니까 네 몸이나 챙기라고. 하지만 그녀 입장에서는 또 상황이 달랐다.

비서실 윤 대리도 별문제는 없다고 말했지만 이은은 그 문제 없음을 그녀의 눈과 귀로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그래서 집을 나섰는데 뭔가 기분이 싸했다. 소원과 함께 집을 보러 다닐 때도 느꼈지만 시선이 느껴졌다.

착각이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흔들어 보기도 했지만 불쾌한 기분은 도무지 나아지지를 않았다.

이은은 그것 또한 PTSD라고 생각했다.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또다시 버스를 타는 그 순간에도 시선은 계속해서 느껴졌다. 그래서 이은은 그녀가 옳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버스에서 내리려는 순간, 누군가 그녀에게 말했다.

“소원이는?”

“……!”

깜짝 놀란 이은이 몸을 돌렸다. 그리고 버스에서 굴러떨어졌다.

누군가 민 것 같기도 하고, 그녀가 놀라서 헛발질을 한 것 같기도 하다. 그 부분은 기억은 명확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가 들은 목소리는 결코 환청이 아니었다.

쉰 듯한 거친 목소리는 중년 여자의 것인 것 같기도 했고, 어쩌면 남자의 것인 것 같기도 했다.

성별을 모르겠다.

분명히 들었는데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버스에서 굴러떨어지면서 머리를 부딪쳐서 그런 건가 싶기도 한데 잘 모르겠다.

……누굴까? 백희경?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그녀 밖에 의심이 가는 사람이 없었다.

정말 친모가 맞긴 한 건지, 설사 친모가 아니더라도 최소한 이모일 텐데 백희경은 도대체 그녀에게 뭘 바라길래 이러는 건지 모르겠다.

이은이 심란한 표정을 지으며 눈을 감았다.

* * *

평창동 자택에서 분당까지 가는 길은 지독할 정도로 멀었다.

경부고속도로를 타면 1시간 15분, 세완은 그 길을 45분 만에 주파했다.

과속 단속할 테면 하라지, 세완은 그 어느 때보다 차가운 모습으로 병원을 향해 달렸다.

응급실이라는 단어가 그를 매우 다급하게 만들었다.

차에 탄 이후, 혹시나 싶어 재차 전화를 걸었다. 도대체 그녀가 왜 그곳에 있는지, 그리고 얼마나 다쳤는지를 묻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누구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세완은 더욱 불안했다. 그리고 다급했다. 도대체 이은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인지를 모르겠다.

온갖 후회가 그의 머릿속에 휘몰아쳤다.

춘천댁에게도 모든 사실을 알리고 이은을 보호하는 일에 도움을 청해야 했다는 생각, 그가 이은의 옆을 떠나지 말아야 했다는 생각, 애초에 섬에 가지 말아야 했다는 생각!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고 싶지는 않은데 아무리 연락을 해도 받지 않는 이은의 휴대전화가 그의 상상력을 극단으로 끌고 갔다.

만약 이은에게 무슨 일이 있다면 백희경이고 그 딸이고 그리고 그 공범이고……. 누가 됐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가만두지 않을 것이라며 세완이 이를 갈았다.

세완은 응급실로 향하는 45분 동안 내내 그 생각뿐이었다. 그리고 도착했다.

대충 주차를 한 세완이 응급실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이은을 찾았다.

응급실엔 환자가 많았고, 의사와 간호사 선생님들은 바빠 보였다. 어디에서 교통사고가 나서 그 환자들이 밀어닥친 것인지 고성과 신음 그리고 어린아이 울음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하지만 세완에게는 아무것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는 커튼 쳐진 침대를 하나하나 확인하면서 이은을 찾았다.

“이봐요!”

“죄송합니다.”

“깜짝이야!”

“죄송합니다.”

“누구세요?”

“죄송합니다. 찾는 사람이 있어서요.”

놀라서 항의하는 사람들에게 사과하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세완의 마음은 점점 조급해지고 불안해졌다.

스무 개 정도의 침대를 확인했고, 확인하지 않은 침대가 대여섯 개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너 왜 여기 있어?”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세완이 깜짝 놀라 뒤를 돌아봤다. 막 mri 사진을 찍고 귀환한 이은이었다.

이은은 깜짝 놀란 표정으로 세완을 바라보았고, 세완은 더 깜짝 놀란 눈으로 이은을 바라보았다. 이은의 머리에 붕대가 감겨 있었다.

“머리는 왜 그래?”

“아…….”

이은이 머리 위로 손을 올리려다가 움찔하며 다시 내렸다. 어깨가 아픈 듯했다.

세완은 천천히 이은의 전신을 훑었다. 머리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는데 이제 보니 가관도 아니었다.

다리에도 붕대를 감고 있고, 팔에는 깁스를 하고 있다.

“너, 몸이…….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이은이 그에게 화가 나 있던 상태였다거나 하는 것은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렇게 다쳤는지 그것이 궁금할 따름이었다.

그리고 그 원인 제공자는 무슨 일이 있어도 가만히 안 둘 생각이다.

세완이 이를 갈면서 물었다. 이은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길길이 날뛰는 세완을 보며 어설픈 미소를 지었다.

“괜찮아.”

“괜찮긴 뭐가 괜찮아?”

세완은 마치 자신이 다치기라도 한 것처럼 화를 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며, 이은은 음식이 담긴 비닐봉지를 봤을 때와 같은 기분을 느꼈다.

네게도, 나는 특별한 존재구나.

나중에 너나 내가 결혼을 해서 각자의 가정이 생긴다고 해도 우리는 가족 맞지?

도무지 상상이 되지 않지만 그래도 먼 훗날 만약 그렇게 된다고 하더라도 이은은 세완과 언제나 함께이고 싶었다.

이은에게는 세완과 이 회장이 유일한 가족이었다.

친모인 줄 알았던 백희경의 실체를 알게 된 이후 더더욱 그렇다.

이은이 세완을 보며 아스라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 미소를 본 세완은 더욱더 화가 났다. 안 그래도 아픈 애가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었단 말인가!

“……네 침대 어디야?”

화는 나중에도 낼 수 있었다. 세완은 일단 이은을 그녀의 침대로 데려가서 눕혔다. 그리고 자초지종을 물었다.

세완이 화를 냈다.

“어련히 알아서 잘할까! 회사는 왜 와?”

그녀가 다친 것이 자신의 탓인 듯해서 세완은 더 속이 상했다.

“불안하니까 그렇지.”

“윤 비서도 문제가 없다고 그랬다면서. 나도 문제가 없다고 그랬고! 그럼 믿었어야지!”

“믿게 했어? 냇가에 내놓은 다섯 살짜리 꼬마 같아서…….”

이은이 평소처럼 세완의 불성실함에 대해서 말을 늘어놓았다. 그런데 평소와 달리, 세완의 표정이 극도로 차가웠다.

이은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세완이 말했다.

“불안한 건 알겠어. 내 잘못이네. 그런데 이은아, 나는 네 아들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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