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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비서의 수상한 휴가 (48)화 (48/100)

48화

전화가 연결되자마자 찬주는 본론에 돌입했다.

「반지 잃어버렸지? 어머님 반지.」

전화를 받기 위해 조용한 곳으로 자리를 옮기려던 세완은 순간 숨조차 쉬지 못하고 굳어 버렸다.

의아하게 바라보는 이은에게 괜찮다고 손짓을 한 세완이 천천히 현관 밖으로 걸어가면서 질문했다.

“……어떻게 알았어?”

「장물이 나와서.」

“어딘데?”

「종로. 운이 좋았어. 아직 세탁 전이야.」

도난당한 귀금속은 장물아비에게 넘어가면 보통은 그 즉시 보석과 금을 분리된다.

금은 녹이고, 보석은 외국으로 빼돌려 현지인에게 구매한 것처럼 허위 거래서를 꾸며 ‘출처 세탁’을 하는데 이 과정에 걸리는 시간이 최소 6개월이다.

물건의 가치가 높을수록 이러한 세탁 과정이 몇 차례 더 추가되는데 두세 번의 세탁을 추가로 거치면 물건을 되찾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찬주의 어머니 생신이 얼마 남지 않았고, 때문에 찬주가 장물이든 뭐든 가리지 않고 보석을 구하는 중이었고, 그 이야기를 들은 장물아비가 가격을 잘 쳐 준다는 말에 혹해서 세탁도 하기 전에 찬주에게 반지를 선보인 것이 세완에게는 그야말로 천운이었다.

장물이든 아니든 신경 쓸 찬주가 아니니 장물아비의 선택이 옳기는 했다. 하지만 그 반지 주인을 찬주가 안다는 사실이 이번 선택의 패착이다.

「어떻게 해, 사 줘? 수수료는?」

“무조건 두 배.”

두 배가 아닌 세 배, 네 배라고 해도 당연히 되찾아야 할 물건이다. 이은이 위험한 상황이 아니었다면 손가락이 잘린다고 해도 포기하지 않았을 거다.

「또 찾아야 할 건 없어?」

찬주는 내친김에 함께 되찾아 주겠다며 세완에게 그가 잃어버린, 혹은 빼앗긴 것들에 대해 질문했다. 세완이 멈칫했다.

그날 반지와 함께 넘긴 물건이 있기는 했다. 중고가로만 1억 3천 이상은 나간다는 파텍 필립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한정판이라고 한들 돈만 주면 살 수 있는 시계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아니, 그것보다……. 물건 판 놈을 좀 찾았으면 하는데?”

지금 세완에게 중요한 것은 반지보다 그것을 가져간 사람이다.

살해 현장에서 시체와 함께 사라진 반지였다. 그렇다면 그 반지를 판 사람이 의문을 풀 열쇠가 될 것이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나이는 어떻게 되는지! 세완은 그 의문의 주인공이 정말 궁금했다.

잔뜩 긴장한 세완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찬주가 가벼운 어조로 대답했다.

「아아, 뻐꾸기? 안 그래도 물어봤는데 진짜 뻐꾸기던데?」

“뻐꾸기라니?”

철새처럼 띄엄띄엄 오가며 장물아비들에게 물건을 들고 오는 판매자들을 보통 뻐꾸기라고 부르는데, 반지를 판 판매자는 정말 말 그대로 처음 온 뜨내기 철새라며 찬주가 친절한 설명을 덧붙였다.

찬주의 설명을 듣던 세완이 그의 말을 자르며 물었다.

“지금 네 말은 중간에 금은방이나 뭐 이런 곳이 낀 게 아니라 훔친 놈이 장물아비한테 물건을 직접 들고 왔다는 이야기지?”

「그렇지.」

“……범죄가 처음인 사람이 처음부터 장물아비를 찾아가는 경우가 흔한가?”

찡그린 표정의 세완이 의미 없는 질문을 던졌다.

온갖 사건이 다 벌어진 섬이었고, 지긋지긋하다 못해 진절머리가 날 지경이었음에도 그들에게서는 범죄자의 느낌이 들지 않았다. 굳이 설명하자면 프로가 아닌 아마추어의 느낌이었다.

때문에 세완은 그들이 범죄와 익숙한 존재가 아니라고 판단했고, 그런 사람들이라면 장물아비와의 거래선이 뚫려 있지 않을 것이라 생각해 최대한 경찰에게 협조하며 비범죄자들의 패턴에 의거하여 실마리를 찾고자 했다.

하지만 장물아비와의 거래선을 뚫어 놓았을 정도로 범죄와 익숙하거나, 범죄와 익숙한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그건 또 다른 이야기다.

당장 이은의 안전이 가장 큰 문제다.

범죄가 처음인 사람이 장물을 들고 우연히 찾아간 사람이 장물아비라는 것은 삼류 영화에도 안 나올 설정이다. 세완은 우연을 믿지 않는다. 찬주가 답했다.

「아예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은 아닌데, 그게 좀 모호한 구석이 있어. 찝찝한 부분이 있어서 말이야.」

장물아비의 말에 따르자면 반지를 들고 온 이는 중년 여자로, 꽤 오래된 옛날 암호를 말하면서 장물을 팔려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반지 가치는 제대로 모르는 것 같았다고 했다.

눈치를 보며 적당히 다이아 값만 쳐 줬는데 그것만으로도 상당히 기뻐했다면서, 아마 블루 다이아몬드를 사파이어 같은 다른 보석과 착각한 것 같다고 추측을 늘어놨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들은 세완은 어쩐지 그 중년 여성이 누군지 알 것 같았다.

분명히 낙상 후 피투성이가 되어 중상을 입었다고 했는데 도대체 어떤 경로로 그녀가 반지를 팔게 되었는지 세완은 그것이 궁금했다.

사실은 백희경이 맞아도 문제고, 아니어도 문제다.

“거기 어디야?”

번거로운 일이 아닐 수 없지만 직접 가서 이야기를 들어 봐야 할 것 같다.

* * *

세완이 돌아왔을 때에는 이미 집을 계약하지 않기로 결론이 나온 이후였다.

월세가 너무 비싸다는 점을 제외하면 집 자체는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았지만 소원은 결국 이상보다 현실을 택한 듯했다.

“아저씨, 그러니까 다른 조건 필요 없고 월세만 낮으면 된다니까요.”

“아니, 학생! 여기에서 월세를 또 어떻게 내리나! 요즘 집값이 학생이 생각하는 것처럼 만만하지가 않아.”

“인터넷에 보니까 그런 집 많던데요? 저는 변기가 방 안에 있어도 된다고요!”

소원과 부동산 중개인이 서로를 향해 목소리를 높였고, 이은은 어딘가 해탈한 것 같은 표정으로 저 멀리 창문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

그때 이은이 세완을 보았다.

영혼 없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녀가 뛰듯이 걸어 세완을 반겼다.

“세완아, 찬주가 뭐래?”

“뭐……. 별거 아니었어. 그냥 돈 문제!”

수수료 이야기를 했으니 돈 문제가 맞긴 하다.

반지를 판 중년 여인이 백희경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세완은 굳이 이 이야기를 꺼내서 이은이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고 싶지 않았다.

어물쩡 넘기려는 세완을 보며 이은은 더욱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뭔가 알아낸 게 아니라? 너희가 돈 얘기를 할 게 뭐가 있는데?”

“내가 찬주 회사에 투자했잖아. 그거 때문에 그래.”

투자가 아닌 동업관계인 어느 회사를 떠올리며 세완이 말을 얼버무렸다.

“……아닌 것 같은데?”

“아니긴 뭐가 아니야? 너는 왜 만날 사람을 의심하냐?”

대놓고 의심의 눈빛을 감추지 않는 이은에게 세완은 적반하장으로 억지를 부렸다. 그리고 그녀의 머리를 꾹 눌러 헤집었다.

“으이구!”

“악! 하지 마! 머리 망가져! 이게 무슨 짓이야?”

“애정표현이야, 애정표현!”

심술궂게 이은의 머리를 다시 한번 헤집은 세완이 소원을 향해 눈을 돌렸다. 소원과 부동산 중개인은 아직까지 ‘좋은 집’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고 있었다.

이은이 소원을 불편해하고, 소원 또한 독립을 원해서 그녀를 내보내 주려고 했다.

그러나 백희경이 범죄의 실마리가 될 가능성이 생긴 이상, 세완은 그의 손에 들어온 인질을 순순히 내보낼 생각이 없었다. 세완을 소원을 보며 싸늘하게 눈을 빛냈다.

* * *

그 후로 세완은 빠르게 움직였다.

변기에 무슨 한이라도 맺힌 것인지 이번에는 변기가 싱크대 바로 옆에 있는 원룸을 굳이 보러 가겠다는 소원을 집어 올려 일단 집으로 배달했다.

찬주의 전화를 받고 온 이후부터 이은의 신경이 조금 날카로운 것 같아 보이긴 했지만 찔리는 것도 짚이는 곳도 많은 세완은 그녀의 기분을 애써 모르는 척 외면했다.

그렇게 이은과 소원을 집에 배달한 뒤, 찬주에게 달려가 이 바닥에서 꽤 유명한 장물아비라는 사람과 셋이서 독대 아닌 독대를 했다.

시작과 동시에 세완은 백희경의 사진을 내밀었다.

“혹시 이렇게 생긴 여자 맞습니까?”

“여자 혼자 왔습니까?”

“그 여자가 들고 온 암호는 언제 사용하던 것입니까?”

세완은 수차례에 걸쳐 다방면으로 질문을 던졌지만 반지를 판 중년 여자가 백희경이라고 특정할 수 있는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마스크에 모자를 깊이 눌러 쓴 채로 장물아비를 찾아왔고, 그리 길게 대화를 나누지도 않았다고 했다.

중년 여자는 반지를 파느라 정신이 없었고, 장물아비는 여자를 속여 반지를 헐값에 사는 데에만 관심이 있었다고 했다.

세완이 대화를 통해 얻어낸 사실은 중년 여자가 그들이 서울에 올라오고 며칠 되지 않아 바로 반지를 팔러 왔다는 것과 억양에 경상도 사투리가 섞여 있었다는 것이다.

마른 체형에 5~60대로 추정된다는 것과 그녀가 물건을 팔 때 사용한 암호가 24년 전에 쓰던 암호라는 것, 그리고 꽤 처지가 궁색해 보인다는 것도 있었다.

그러나 무엇 하나 쓸 만한 증거는 없었다. 대화를 끝내고 나오는 길에 세완이 찬주에게 물었다.

“백희경일 가능성이 있어 보여?”

“75% 정도? 돈 걸라고 하면 200%고.”

증거는 모자랄지 몰라도 심증은 넘쳐난다는 이야기였다.

“낙상해서 크게 부상을 입었다고 들었는데 그 몸으로 성인 남자 둘을 죽이고, 시체까지 유기할 수 있을까?”

“공범이 있을 것도 같은데? 그게 아니더라도 사람이 돈이 눈이 뒤집히면 뭔들 못해?”

찬주가 시니컬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나는 아무리 봐도 그 여자가 수상하다.”

근거 없이 순수하게 누군가를 믿기에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겪었지 않았느냐는 찬주의 물음에 세완이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한 적이 어디 한두 번일까. 바로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함께 웃었던 사람이 칼을 들이밀며 돈을 요구하는 삶이 바로 그들의 삶이다.

하지만 이은에게도 그런 삶이 익숙한지가 문제다.

세완의 옆에 있으면서 제법 익숙해지기야 했겠지만 그 대상이 친모로 의심되는 사람이어도 과연 침착하게 백희경을 잘라낼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상처받지 않고 잘라낼 수 있을지가 세완의 가장 큰 관심사다.

“내가 아는 김이은은 그렇게 약한 애가 아닌데?”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애가 김이은인데 그런 애를 왜 유리 멘탈이라고 착각하느냐며 찬주가 질색하는 표정을 지었다.

“모르긴 몰라도 걔가 너보다 더 강할 거다.”

남자가 여자보다 강하다는 것은 편견이고, 자신을 그것을 김이은을 통해 알았다며 찬주가 제 여사친에 대해 평가했다.

하지만 세완은 네가 이은을 잘 몰라서 하는 소리라면서 찬주의 말을 묵살했다.

“놀고 있네.”

찬주는 그런 세완을 보면서 저런 주제에 퍽이나 친구 관계라며 작게 구시렁거렸고, 세완은 익숙한 듯 찬주의 말을 무시했다.

……친구일 거다. 아마도.

세완은 요즘 자꾸만 떠오르는 이상한 생각들을 가슴 속 어딘가에 깊게 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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