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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비서의 수상한 휴가 (39)화 (39/100)

39화

부모뻘인 그가 도대체 뭘 어쩐다고 이렇게 경계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여전한 세완을 보며 문 대표는 안심했다.

이은이 납치되었다는 이야기에 걱정을 많이 했는데 막상 도착하니 이은은 생각보다 멀쩡해 보였고, 세완도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으로 그를 경계했다. 그럼 괜찮은 거다.

어릴 때부터 세완은 동갑내기 남매처럼 이은과 툭탁거리다가도 누군가 이은에게 접근하려고만 하면 해바라기 씨앗 뺏기는 햄스터처럼 날을 곤두세웠었다.

그가 이은을 타인에게 넘겨 주는 상황은 딱 하나, 본인이 그녀를 지키지 못할 것 같거나 세완 자신만으로는 감당이 안 될 정도로 위험한 상황일 때뿐이다.

그러니까 문 대표 자신을 경계할 정도면 세완이나 이은이나 둘 다 괜찮은 게 맞다.

두 사람의 안전이 담보되었다면 그 다음은 그들의 영역이다.

문 대표가 물었다.

“박 팀장에게 대충 듣기는 했는데 말씀해 주신 것과 달라진 것이 있습니까?”

그의 질문에 기다렸다는 듯이 세완이 대답을 늘어놓았다. 시체가 사라졌다는 항목에서 문익은 다소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세상에 완전 범죄는 없습니다.”

문 대표는 자신이 한 번 그곳을 살펴보겠다며 범죄 관련은 모두 전문가인 그들에게 맡기라고 했다. 그리고 세완과 이은은 이제 그만 휴가를 정리하고 서울로 올라가는 것이 어떻겠냐고 권유했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라 이은과 세완은 문 대표의 지시에 따르겠다고 했다. 그리고 그 다음부터는 일사천리였다.

문 대표는 경찰에게 다가가 자신과 함께 이야기를 하자고 했고, 세완과 이은은 문 대표가 내렸던 차에 올라타 휴식 아닌 휴식을 취했다.

세완의 차는 차후 해가 뜨고, 비가 그치면 조치를 취하겠다고 했다.

문 대표와 특수1팀은 법으로 규정되어 있는 범행현장을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의 자율성을 인정받아 움직였다.

그토록 길었던 밤이었는데 문 대표가 도착한 이후로는 시간이 빨리 흘렀다.

올 때부터 만반의 준비를 한 것인지 차 안에서 루미놀 용액이 나오고, 경찰의 적극적 도움 아래 그 루미놀 용액이 집 안 이곳저곳에 도포가 되었다.

특수1팀 정보요원들은 노트북을 펼치고 건물의 지적도와 평면도, 설계도를 입력한 뒤 납치범들의 동선을 시뮬레이션했다.

누구 한 사람 노는 인력 없이 특수1팀은 잘 짜인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며 제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나 억수와 같은 비 때문에 그들 또한 한계에 부딪혔다.

그들이 알아낸 것은 도망가는 척하면서 집 안에 숨어 있었던 납치범이 이번에는 별채의 쪽문을 통해 집 밖으로 영영 도망갔다는 그것 하나뿐이었다.

낯선 사람들이 제집에서 왔다 갔다 하는 것을 보며 남의 집에서 뭐 하는 짓이냐며 소원이 발끈했지만 실종된 엄마를 찾고, 아빠를 죽인 사람이 누군지 밝혀내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에 그녀는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경찰과 윤세의 설득이 컸다.

그렇게 밤이 지나가는 듯했다.

어렴풋이 아침이 밝아오는 것 같았다. 빗줄기도 조금 약해졌다. 곧 폭풍주의보가 해제되지 않을까 하는 희미한 희망도 생겼다.

그 속에서 문 대표가 복귀를 지시했다.

지나친 폭우로 인하여 알아낼 수 있는 것도 거의 없었고, 섬 특유의 지리적 폐쇄성도 그 이유 중 하나인 듯했다.

윤세를 포함한 몇몇은 증인 겸 증거확보, 정황파악을 위하여 섬에 남아있겠지만 문 대표는 일단은 섬에서 철수하기로 결정했다.

세완과 이은은 내심 안도했다.

별것 아니라면 별것 아니지만 끔찍하다고 하면 정말 끔찍했던, 그 와중에 해결되지 않은 미정의 무엇인가가 남아있는 밤은 세완과 이은에게는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끔찍한 기억 그 자체였다.

그리고 그렇게 문 대표의 지시를 받은 차량들이 한 대, 두 대 백희경을 집을 떠나려는 찰나였다.

세완과 이은의 차는 문 대표의 직속인 박 팀장이 직접 운전했고, 보조석에는 문 대표가 탔다.

도로에 진입하는 즉시 방탄 차량 두 대가 앞뒤에서 그들의 차를 엄호하기로 계획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때 소원이 뛰어들었다.

박 팀장은 깜짝 놀라 브레이크를 밟았다.

놀란 문 대표가 세완과 이은에게 저 아이가 도대체 왜 저러는 것이냐며 무슨 일이냐고 질문했으나 세완과 이은 또한 아는 바가 없었다. 그때 소원이 다가와 차창을 두드렸다.

창문이 내려갔다.

“나도 데려가요.”

“……!”

뜬금없는 이야기에 세완과 이은, 문 대표 모두가 놀랐다.

그때 소원이 재차 요구했다.

“나도 데려가 달라고요.”

불퉁한 목소리에 세완이 기가 막힌다는 목소리로 물었다.

“넌 지금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우리가 왜 널 데려가야 하는데?”

“…….”

자신도 말이 안 된다는 것은 아는지 소원은 반박하지 않고 입술만 깨물었다. 그러나 이내 다시 똑같은 말을 반복했다.

“말이 되든 안 되든 데려가 줘요. 당신들 때문에 이렇게 된 거잖아. 당신들만 아니었으면 이렇게 안 됐어. 그러니까 나도 데려가요.”

소원은 제 엄마가 실종되고, 아빠가 죽은 것이 모두 그들의 탓이라고 했다.

애초에 그녀의 부모가 이은의 목숨을 노렸기 때문에 상황이 이렇게 된 것인데 적반하장이 따로 없었다.

하지만 선후 관계는 둘째 치고 세완은 소원이 혹시라도 제 부모에게 지령을 받고, 이은에게 해코지를 하려고 접근한 것은 아닌가 싶어서 도끼눈을 떴다.

상대할 가치도 없었다.

“팀장님, 출발하죠.”

창문을 올려 소원을 차단한 세완이 명령하듯이 말했다.

그 말을 들은 박 팀장이 출발하려고 브레이크 패드에서 발을 떼고 가속페달을 밟는 순간이었다.

소원은 이번엔 차 문의 문고리를 잡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만약 그대로 차를 운행했으면 큰 사고가 났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박 팀장이 난감한 표정으로 문 대표를 바라보았다.

위기상황이고 상대가 특수요원 정도라면 죽든 말든 가속페달을 밟겠는데 차에 달라붙어 있는 사람은 이제 막 졸업장을 받은 것 같아 보이는 단발머리 여자아이다 보니 결정이 쉽지 않은 모양이었다.

“어떡하죠?”

문 대표도 뭐라 대답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문 대표는 세완과 이은을 바라보았다. 세완과 이은은 한숨을 내뱉었다.

겨우 이 악몽을 벗어나나 했더니 전혀 생각지도 않은 것이 골치를 썩인다.

이대로 출발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는 이들을 보던 이은이 차에서 내렸다. 내내 겁먹어 뒤에 숨어 있었는데 이 정도는 그녀가 직접 해야 할 것 같았다.

“일어나. 그리고 떨어져. 우리가 너를 데려가야 하는 이유가 없잖아. 너랑 내가 무슨 관계라고? 너 나 아니? 나는 너 어제 처음 봤어. 너도 그렇잖아.”

이은은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소원에게 그녀와 소원의 관계가 정확하게 어떤 것인지에 대하여 설명했다.

너랑 나는 어제 처음 본 사이로 우리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길 가다가 스쳐도 모르는 척 지나갈 것이요, 하다못해 내가 죽어도 내 유산이 너에게 넘어갈 일은 없다!

‘가족’과 ‘핏줄’이라는 두 단어 때문에 그녀뿐만 아니라 세완까지 위기에 처하게 했다는 죄책감이 내내 술에 물 탄 듯, 물에 술 탄 듯 밍숭맹숭했던 이은은 단호하게 만들었다.

이은은 이 모든 것이 돈 때문에 비롯되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는 듯 서류 관계상 그 어떤 관련도 없는 그들이기 때문에 그녀의 돈이 소원에게 갈 리가 없다며 금전 관계부터 명확하게 했다.

그 노골적인 말에 소원의 얼굴이 빨개졌다. 아이는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눈시울이 붉어졌다. 울음을 삼키는 듯 턱의 가운데가 복숭아 씨앗처럼 굴곡이 생겨 꿀꺽거렸다.

소원이 애써 입을 열었다.

“나도 그런 거 안 바래. 근데 언니라며. 엄마가 언니라고 그랬어. 그러니까 그냥 당분간 먹고 자는 것만 좀 해결을 해 줘요. 돈 벌면 바로 나갈 거야.”

“너희 집 냅두고 왜?”

당연한 듯 질문하던 이은은 말을 내뱉은 이후에야 그녀가 잊고 있었던 것을 떠올렸다.

이 집에서 소원의 엄마가 피투성이가 된 채 실종되었고, 아버지를 포함한 두 명이 살해되었다. 어지간히 담력이 큰 사람이라고 해도 이 집에서 혼자 있는 것은 확실히 무리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이은이 소원을 책임져야 하는 이유가 될 수는 없었다.

백희경이 친모인지 아닌지도 확실하지 않은 지금, 아니 사실 친모라고 해도 소원은 남이나 다름없었다.

무섭도록 차갑고 냉정한 이은의 말에 소원이 다시금 입을 꽉 다물었다. 그리고 뭔가 변명이 떠오른 듯 소리쳤다.

“나 미성년자예요. 미성년자는 보호해 줘야 하잖아.”

“재수생이라며?”

“생일이 빨라서 그래요. 스무 살이라고 하고 다니기는 하는데 생일이 2월이라서 미성년자 맞아요. 그러니까…… 그러니까…….”

소원이 힘겹게 말을 이었다. 그러나 이은은 소원이 상상한 것 이상으로 철벽이었다.

“형제자매 사이라 하더라도 배우자와 가족의 관계에 있지 않거나 또는 생계를 같이하지 않는 한 서로 부양의무가 없으며 부양청구를 할 수 없다. 현행 법률에는 이렇게 나와 있어.”

“…….”

“그리고 설사 미성년자라고 하더라도, 열아홉 살 정도면 어떻게든 살더라.”

일곱 살에 고아원에 버려진 그녀보다는 열아홉 살에 혼자된 소원의 사정이 나을 거다. 이은은 독한 마음을 먹고 모진 말을 내뱉었다.

세완으로도 모자라 이 회장, 문 대표, 박 팀장, 그리고 시큐리티 특수1팀 사람들…….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민폐와 피해를 끼쳐서 이것을 어떻게 사죄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그녀의 손으로 이 모든 일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는 백희경의 딸을 데리고 갈 수는 없었다.

그녀의 오피스텔에 혼자 두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 그녀를 데리고 이 회장의 집으로 들어가는 것은 더더욱 할 수 없었다.

사정은 딱하지만 이은이 그녀의 인생까지 책임져 줄 이유는 없었다.

“어제 보니까 펜션 사람들이랑 친하더라. 펜션에 묵어. 부모님이 남겨 놓은 재산도 있을 거잖아. 그걸로 숙박비 내면서, 그래, 그렇게 살아.”

현실적으로 무리가 있는 이야기라는 것은 안다. 그러나 이은은 정말 소원과 그 어떤 관련도 맺고 싶지 않았다.

차갑게 소원을 잘라낸 이은이 몸을 돌렸다. 언제 차에서 내렸는지 반대편 차 문에 몸을 기대고 있던 세완이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리며 ‘잘했어’라고 벙긋거리는 것이 보였다.

백희경도 아니고 그 딸에게 분풀이를 하는 것이 뭐가 그리 잘한 것일까마는 그래도 세완의 엎어놓고 편드는 모습에 이은은 조금이나마 안심이 되었다.

소원의 모습이 안쓰럽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잠시 망설인 이은이 고개를 흔들었다. 이제 정말 끝내고 싶다. 이은이 몸을 돌렸다. 그녀가 다시 차에 타려고 할 때였다.

소원이 결국 눈물을 터트렸다. 그녀가 울며 소리쳤다.

“펜션에 어떻게 가요? 세탁소 아저씨가 죽었는데! 세탁소 아저씨는 펜션 아줌마 동생이란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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