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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비서의 수상한 휴가 (30)화 (30/100)

30화

안전을 확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지금 그들이 있는 곳에 대한 정보를 습득하고, 위험의 소지가 있는 것들을 경계하는 것이다.

모든 것이 다 의심스러운 상황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우선으로 경계해야 할 사람은 소원의 모친이었다.

세완은 당연하다는 듯이 소원에게 그녀 엄마의 행방을 물었다. 소원은 날카로운 목소리로 반문했다.

“왜요?”

소원의 예민한 반응에 세완이 멈칫했다.

“내가 물으면 안 되는 걸 물었나?”

“네.”

사과하려는 게 아니면 묻지도 말라며 소원이 단호하게 대꾸했다.

소원에게 세완은 엄마를 협박한 사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소원은 엄마 때문에 저들을 완전히 내칠 수도 없었다.

그녀의 엄마는 이은이 자신의 딸이라고 했다.

상황에 떠밀려 그들을 본채로 들이기는 했지만 소원은 세완과 이은이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사과를 하려는 것이 아니라면 소원은 그들과 엄마를 결코 연결시켜줄 생각이 없었다.

잊고 있던 원한이 생각난 것인지 소원이 세완을 향해 도끼눈을 떴다.

싸움닭 같은 소원을 보며 세완이 헛웃음을 지었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바뀌어도 아주 단단히 바뀌었다.

소원이야 제 엄마가 가장 중요하겠지만 자고로 자식 버린 어미라는 것은 그 이유를 불문하고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존재다.

게다가 소원의 엄마가 정말 이은의 친모인지도 명확하지 않은 상황인지라 그는 그저 쓰게 웃을 뿐이었다.

구구절절 설명하기에는 지나치게 긴 사연이고, 뿐만 아니라 본인도 없는데 딸 앞에서 그 모친의 범죄행각을 밝히는 것은 아무리 세완이라도 양심이 따끔거리는 일이었다.

사실 양심보다는 소원이 알게 되면 이 일로 그녀의 모친을 협박하기가 어려워질까 싶어서 입을 다무는 것이긴 하지만 아직 모든 것이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협박거리는 많을수록 좋다.

어쨌거나 세완은 소원에게 그녀의 모친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는 잠시 입을 달싹대다가 다시 입을 다물었다.

머리가 아프다며 내내 앓던 이은도 쓴웃음을 짓기는 매한가지였다.

평소였다면 제 엄마를 지키려는 소녀의 모습은 꽤나 가상해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 대상이 소원과 그 모친이 되니 심각할 정도로 가증스러워보였다.

그녀의 머릿속에서 만감이 교차했다.

자칭 그녀의 친엄마라는 사람은 적어도 소원에게는 제대로 엄마 노릇을 했구나 싶은 깨달음이 이은에게 여러 가지 생각이 들게 했다.

고아원에 맡긴 딸과, 직접 키운 딸……. 

만약 소원의 모친이 이은의 친엄마라면 이은은 그 차이가 궁금했다.

이은은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토했고, 세완은 그런 이은의 모습에 빛과 같은 속도로 달려와 이은과 눈을 맞추었다.

“왜? 어디 안 좋아?”

“아니, 그냥…….”

그녀가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닌데 저들 모녀만 관계되면 사람이 작아지고 소심해진다.

가슴이 답답해서 튀어나온 한숨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 거다. 하지만 그럼에도 세완은 재차 이은의 컨디션을 확인했다.

네 옆에는 내가 있다고 말하는 것 같아서 이은은 꽉 막힌 숨통이 아주 조금 뚫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세완이 이은의 손등을 다독거리고, 이은이 그 손길에 기대 가느다랗게나마 안정을 되찾고 있을 때였다.

- 우당탕탕!

갑자기 밖에서 뭔가가 깨지고 무너지는 것 같은 소리가 났다.

세완과 이은은 순간 행동을 멈췄고, 소파에 앉아 흥미로운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던 의사 출신 직장인도 표정을 굳혔다.

내내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있던 소원도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았고, 그 다음에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밖에는 여전히 폭우가 내리고 있었다. 천둥과 번개도 극심했다.

어지간한 소리는 들리지도 않을 것 같은 상황임에도 모두가 그 소리를 들은 것을 보면 사고의 규모가 작지 않은 듯했다.

뭐 하나가 부서져도 단단히 부서진 듯했다.

“뭐가 부서진 거지?”

소원이 우산을 챙겨서 막 현관문을 열려는 순간이었다.

“꺄아악!”

갑자기 비명이 들렸다. 현관의 문고리를 잡은 소원은 그대로 굳어버렸고, 그것은 다른 사람들이라고 예외가 아니었다.

섬마을 시골집이라는 게 도시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는 것이 아니다. 집마다 텃밭이 딸려 있는지라 양쪽 밭과 도로를 경계로 하여 집과 집 사이의 거리가 제법 떨어져 있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그럼에도 이렇게 선명하게 비명이 들렸다는 것은 그 비명의 주인공이 이 집 울타리 안, 혹은 이 집 근처에 있다는 뜻이다.

부서지는 소리도 그렇고 밖에서 뭔가 일이 일어난 것 같았다.

어쩐지 엄마 목소리 같다면서 소원은 발을 동동거리며 밖으로 달려나갔고, 세완과 이은도 반사적으로 그녀의 뒤를 쫓았다.

그런데 세완과 이은이 문을 나서려는 순간 의사 겸 직장인이라는 자가 그들을 막아섰다.

“안 나가시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이런 날에는 변수가 제법 많아서요.”

남자가 밖을 턱으로 가리키면서 말했다.

세완과 이은이 다시 경계 어린 눈으로 남자를 바라보았다. 조언 같긴 한데 그가 그들에게 조언을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사실은 이게 정말 조언인지, 아니면 조언으로 위장한 함정인지도 모르겠다.

그가 적인지, 아니면 아군인지도 판단할 수 없는 상황이기에 세완은 언제라도 그에게 주먹을 날릴 수 있도록 온몸의 근육을 긴장시키며 그에게 질문했다.

“조언입니까? 아니면 힘으로라도 그렇게 만들겠다는 거겠다는 겁니까?”

“……뭐, 대가 없는 서비스 정도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잠시 고민한 남자가 싱긋 웃으며 답했다. 밑도 끝도 없는 소리에 세완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부연설명이 필요했다. 하지만 남자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입을 다물었다. 세완은 의뭉스런 모습의 남자를 예리한 시선으로 훑었다.

그러자 지금까지는 보지 못했던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전직은 의사, 현직은 대기업의 직원이라는 남자는 몸만 보면 웬만한 경호원보다 더 덩치가 좋았다.

세완은 저런 몸을 한 사람들을 알고 있다. 할아버지인 이 회장의 명령으로 그에게 호신술이나 납치가 되었을 때의 대처법들을 가르쳐준 사람들의 몸이 그랬다.

남자의 몸은 단순히 자랑을 위해 만든 몸이 아닌, 전문적으로 몸을 쓰는 사람들의 육체와 닮았다.

의사인지 직장인인지 이도 저도 아니면 어딘가의 조직원인지 알 수 없는 남자를 보며 세완이 심란한 얼굴을 했다.

세완은 만약 그와 싸운다면 어떻게 이은을 피신시키고, 어디를 어떻게 때려야 할지를 셈해보았다. 그러나 아무리 가상시뮬레이션을 돌려도 괜찮은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운동신경 하나는 타고났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세완이다. 그러나 혼자라면 모를까 이은을 보호하면서 완벽하게 남자를 이길 자신이 그에겐 없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운동을 좀 더 열심히 배울 것을 그랬다며 세완이 뒤늦게 후회했다.

밖으로 이동을 했을 때에 생길 수 있는 위험요소와, 집에 남아 있을 때의 위험요소, 그리고 그가 대처할 수 있는 방법 등을 계산하느라 세완의 머리가 바쁘게 돌아가고 있을 때였다.

내내 세완의 뒤에 있던 이은이 한 발 앞으로 나섰다.

“대가 없는 서비스라는 건 지금은 대가를 받고 움직인다는 뜻인가요?”

남자의 말이 좀 미묘한 구석이 있긴 한데 일단 이은은 그렇게 느꼈다.

이은의 질문에 남자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새로운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똑똑하다고 하더니 정말 상상 이상이다.

이은의 말을 듣고 세완도 깨달은 것이 있는지 새삼스러운 눈으로 남자를 훑었다. 그가 질문했다.

“윗선이 어디입니까?”

이러니저러니 해도 이 시대의 돈지랄이라고 불리는 재벌가의 후손이었다.

윗선이 우리 편이라면 좋고, 아니라고 해도 우리 편으로 만들겠다는 강한 의지를 품고 세완이 질문했다.

남자는 자신도 모르게 내뱉은 실수에 난처한 기색을 띠었다. 설마 그 한 마디에 이렇게 많은 정보를 뺏길 것이라고는 정말 생각도 못 했다.

사람이 안 하던 일을 하면 안 된다고 하더니 간만에 내놓은 호의가 그를 궁지로 몰았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집 안의 불이 꺼졌다.

비바람에 전기가 나간 것인지, 아니면 두꺼비집을 내린 것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인지라 세완은 자신도 모르게 밖을 확인했다. 멀리서 불빛이 보였다.

앞집인지 뒷집인지는 모르겠지만 드문드문 보이는 불빛으로 확인해 보건데 이웃집은 멀쩡한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다시 말해 불은, 전기는 그들이 있는 백희경의 집만 나갔다.

“최악이군.”

수상한 남자가 낮게 읊조렸다. 세완이 힐끗 남자를 보았다. 잘은 모르겠지만 적은 아닌 것 같은데…….

정체는 모르겠지만 그가 대가를 받고 움직이는 존재라면 그 대가를 주는 사람이 세완보다 값을 더 잘 쳐줄 리는 없었다.

세완이 남자에게 그들을 보호해달라며 보수를 약속하려고 할 때였다.

- 우당탕탕!

또다시 소리가 났다.

이번에는 좀 더 가까운 곳에서 났다. 정확하게는 집 안에서 들려왔다. 세완과 남자의 고개가 돌아갔다.

눈이 채 어둠에 익숙해지지 않은 상태였고, 그래서 대략적인 사람의 형상도 잘 보이지 않는 상황이었지만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누군가 집 안에 들어왔다.

현관문이 열려 있었고, 이은의 모습이 보이지가 않았다. 세완은 당황했다.

“이은아!”

지금은 남자가 중요한 게 아니다.

세완이 놀라서 자신도 모르게 이은의 이름을 부르며 그녀를 찾았다.

“읍!”

그리고 그에 화답하듯 입이 막힌 이은이 소리를 냈다.

버둥거리는 듯한 몸짓도 느껴졌다. 아까보다는 작지만 어딘가에 몸이 부딪치는 소리도 들렸다. 세완이 소리가 들린 곳을 향해 뛰듯이 걸어갔다.

그때 소파 뒤쪽에서 무언가 시커먼 형상이 옆으로 튀어나왔다. 소파 옆으로 고개를 뺀 그가 소리쳤다.

“가까이 오지 마!”

괴한의 아래쪽에서 또다시 입이 막힌 듯한 소리가 났다. 이은이었다.

난데없는 봉변에 세완은 이를 악물었다. 밖에 나가는 것보다는 나은 선택이었겠지만 집 안이라고 너무 긴장을 풀고 있었다.

방금까지 남자와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는 것도 잊고 세완은 자신을 탓했다.

한편, 거실에 서 있다가 갑자기 의문의 괴한에게 입이 틀어 막혀 바닥에 처박힌 이은은 괴한과 남자의 정체에 대하여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집 안에 의문의 존재가 있다는 것도 알렸고, 그녀가 그에게 잡혀 있다는 것도 전했으니 그 다음은 이은의 분야가 아니었다.

그녀는 두뇌파지 육체파가 아니다.

만약 이은이 위험에 처한다면 그녀를 탈출시키는 것은 세완의 몫, 그리고 그것을 서포트하는 것은 세완의 몫!

그들의 지적능력의 차이를 깨달은 이 회장은 처음부터 그렇게 이분화해서 이은과 세완에게 교육을 시켰다. 이은은 제 몸의 안전을 세완에게 맡겨두고,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재계나 어둠의 세계 쪽에서 손을 뻗는 것이라면 세완이 타깃의 1순위였다. 그런데 그런 세완이 아니라 이은을 타깃으로 삼은 것을 보면 그쪽은 아닌 것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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