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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비서의 수상한 휴가 (25)화 (25/100)

25화

왜 이야기가 이상한 곳으로 튀냐며 세완이 미간을 찌푸렸다. 찬주가 말했다.

「혹시 아침드라마 보나? 거기 종종 나오는 스토리가 있거든. 남편이 바람을 피자 와이프가 화가 나서 그 남편과 내연녀를 죽여. 교통사고로 상간 남녀는 둘 다 즉사.」

“무슨 소리야?”

뜬금없는 이야기에 세상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찬주는 아랑곳 않고 말을 이었다.

「그리고 본처는 이제 내연녀의 신분으로 사는 거지. 그런데 내연녀가 상당히 부잣집 딸이란 말이지. 그 여자의 집, 땅, 돈 그게 다…….」

“야!”

「들어봐. 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이야기야.」

지방방송을 넣는 세완을 제압한 찬주가 말을 이었다.

「이은이의 친부모가 동시에 교통사고로 죽은 걸로 되어 있잖아? 그런데 네 말대로 친모가 누군가의 신분으로 죽음을 위장하고 있다면 그 누군가가 그 남편의 내연녀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거야.」

“…….”

「그리고 위장된 죽음 안에 뭔가 있지 않을까 하는 합리적인 의심? 세상이라는 게 원래 좀 더럽잖아.」

찬주는 세완이 미처 생각을 못 하고 있던 부분을 친절하게 짚어 주었다.

말이 좋아 사설정보업체지 옛날 말로 하면 ‘해결사’ 인 이 업종이라는 것이 그렇다. 볼꼴, 못 볼 꼴, 세상의 온갖 더러운 일을 다 목격한다.

돈이며 사랑이라고 하는 그 하찮은 것들이 사람을 얼마나 더럽고, 치사하고, 악하게 만드는지를 가장 밑바닥에서 볼 수 있는 것이 찬주의 일이다.

「단순히 가정일 뿐이긴 해. 하지만 내 말은 네가 오늘 본 여자가 정말 김이은의 친모라면, 그녀가 이은이의 아버지와 그 내연녀의 살인자일 수도 있지 않을까?」

경우의 수를 좀 넓혀보자며 찬주가 몇 가지 예시를 들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세완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자식을 버리는 여자가 남편인들 안 버릴까? 아! 정정할게. 버리는 게 아니라 죽이는 거!」

찬주가 비웃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인생은 밝은 나라 좋은 나라 운동본부가 아니라며 찬주가 지적했다.

세완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친구를 믿는 건 좋은 일이지. 친구의 인품을 믿고, 그녀의 친모를 믿는 것도 그럴 수 있는 것이고? 정말 친구라면 말이야.」

찬주가 그런 상황이면 사돈의 팔촌까지 의심하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일단 그 치들의 바닥까지 보겠다며 지뢰 아닌 지뢰부터 뿌리고 볼 녀석이 김이은한테만 꼭 저런 모습을 보인다.

더 웃긴 것은 그러면서도 친구라고 우기는 거다. 찬주가 세완을 비웃었다.

그가 생각한 부분을 세완은 생각 못 한 것일까? 아니면 생각을 하고 싶지 않은 것일까?

이은을 믿는 것을 넘어 그녀의 엄마의 결백까지 믿어주고 싶은 거면 그거야말로 찐사랑이 아니냐며 찬주가 키득댔다.

“친구라니까 뭘 자꾸 의심해? 세상 사람이 다 너 같은 줄 아냐?”

「내가 아니니까 이러는 거지.」

나라면 너처럼 등신짓 안 한다며 찬주가 세완의 부아를 질렀다.

“더 할 말 없으면 끊어. 다른 거 알아내면 연락하고.”

세완은 찬주의 대답도 듣지 않고 종료 버튼을 눌렀다.

거 보라고, 김이은 앞에서만 꼬리 흔드는 애완견이라고 찬주가 고개를 젓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전화를 끊은 세완은 그가 들은 정보를 취합하는 것에만 집중했다.

불편한 진실이지만 찬주의 말이 맞다. 그는 이은의 친모가 그 정도로 바닥은 아니라고 무의식적으로 믿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스스로의 어리석음에 세완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등신이 맞긴 하네.”

친구가 아니라는 찬주의 말을 긍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중 일부는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동의해야 했다.

“어디에서부터 의심을 품어야 하나, 친모가 맞는지 아닌지부터 확인하는 것이 맞겠지?”

세완이 턱을 긁으며 고민에 잠겼다.

어린아이를 안고 사진을 찍는 거야 어느 정도 친분이 있다면 생판 남도 할 수 있는 거고, 상대를 보며 눈물 바람을 하는 것도 돈이 얽혀 있는데 뭔들 못할까!

그 어미와 딸 모두 신장이 안 좋다 하니 신장이 얽혀 있을 수도 있고.

“그럼 울 수 있지. 암만. 울어서 돈과 건강을 훔칠 수만 있다면 뭔들 못할까.”

세완이 난간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규칙적인 울림이 빗소리에 섞여들어 묘한 불협화음을 이루었다.

세완이 찬주에게 전화를 걸었다.

「매정하게 끊으시더니?」

비웃는 듯한 느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의 말을 무시한 세완이 질문을 쏟아냈다.

“친모 쪽 말이야, 혹시 범죄 경력은 없어? 의심스러운 정황이라든지? 가족이나 지인 누구가 죽어서 보험금을 받았다든지 하는 것들. 실종사례도 좋고.”

「……의뢰한 지 세 시간밖에 안 됐는데 너무 많은 걸 바라는 거 아니냐?」

“세 시간 동안 이것 밖에 못 알아냈다고 하면 그 회사 문 닫아야지.”

「여기 네 회사기도 하거든? 그리고 25년 전이야. 인마!」

10년도 아니고 25년이면 강산이 두 번 바뀌고, 세 번째 바뀌려고 공사 중인 거라고 찬주가 타박했지만 세완은 귀를 막았다.

내가 네 일만 조사하는 줄 아느냐며 짜증을 내는 찬주에게 세완이 최대주주 겸 투자자로서 말했다.

“위약금을 무는 한이 있어도 내 쪽에 집중해.”

아무래도 찝찝하고, 아무래도 수상하다. 자꾸만 뭔가가 더 있는 것 같다.

찬주의 막장스토리를 들어서 그런 것도 있지만, 그의 예감은 저쪽이 뭔가 큰 비밀을 숨기고 있다 말한다.

다시는 안 보면 그뿐이라며 뛰쳐나오긴 했지만 돌아가는 상황으로 미루어 저쪽도 쉽게 포기는 안 할 듯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마. 그리고 이은이 친어머니와 백희경의 젊었을 때 사진도 좀 구해와. 젊었을 때 주민등록증 사진 같은 거 있잖아.”

나이가 들면 사람의 얼굴이 바뀐다. 하지만 아무리 닮아도 두 개의 사진을 놓고 대조한다면 가짜는 티가 나기 마련이다.

찬주는 말문이 막히는 모양이었다.

「야, 90년대에는 주민등록증에다가 직접 증명사진 붙였거든? 그래서 코팅해서 줬어. 그걸 무슨 수로 찾아?」

전산화가 된 것은 2000년대에 들어서서였다. 1990년대에는 모든 것이 다 수기였다.

회사와 관공서를 가리지 않고, 25년 정도 흐르면 그런 서류 뭉텅이는 모두 폐기하는 게 보통이다.

기가 막혀 하는 찬주에게 세완이 뻔뻔하게 말했다.

“너 잘하는 거 있잖아. 핫라인 24시간 돌려.”

고생은 네가 하지, 내가 하냐!

혹시 추가금결제가 필요하면 그건 망설임 없이 해주겠다며 세완이 금수저다운 배포를 보였다.

동시에 자라나는 어둠의 새싹다운 면모도 보였다.

“할아버지 쪽에 자료 있는가 보더라. 박 팀장한테 물어보고 해커 투입해.”

도대체 뭘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그걸 한 번 봐야겠다.

제 조부의 정보를 빼 오라는 클라이언트의 지시에 찬주는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못 구해오면 네 회사에서 내 돈 다 뺀다는 협박 아닌 협박에는 할 말이 없었다.

저런 걸 두고 김이은은, 순진한 애한테 나쁜 물을 들인다면서 찬주만 타박한다.

그 계집애도 눈이 멀었지. 저건 악마 새낀데.

머리가 꽃밭이라고 위장하고 있지만, 그리고 태생이 한량인 건 맞지만 속내는 시커멓다며 찬주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지만 돈이 깡패라 찬주는 얌전히 클라이언트의 추가지시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똥은 더러워서 피하는 거라며 망설임 없이 전화를 끊었다. 한시가 급했다.

한시가 급한 것은 세완도 마찬가지였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전화를 끊은 세완이 무심하게 핸드폰을 뒷주머니에 꽂았다. 그리고 고민에 빠졌다.

타고나기가 천하태평이라서 그렇지 나쁜 머리는 아니었다.

전쟁이 난다고 한들 세상사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지만 내 것, 그러니까 내 돈과 내 사람에 한해서만큼은 탁월한 예민함을 발휘하는 세완의 머리가 여러 가지 가설들을 내놓았다.

그런데 이상도 하지. 그 모든 가설 가운데 단 하나도, 이은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 없었다. 모두 이은에게 지극한 상처만을 남길 것 같은 전개뿐이다.

차라리 미국이나 유럽 지사에 이은을 데리고 잠깐 나갔다 올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김이은이 말을 들어야 말이지…….”

세완이 등 뒤의 숙소를 힐끗 보며 중얼거렸다.

말 하나는 정말 더럽게도 안 듣는다. 일반적인 비서 같으면 힘으로 찍어 누르기라도 할 텐데 그랬다가는 배로 당할 게 분명해서 뭐라고 말도 못 하겠다.

찬주에게나 성질을 부리지, 김이은 한정으로 동네북 중의 동네북인 세완이 한숨을 내쉬었다.

* * *

빗속에서 한참 머리를 식히고 들어왔는데 이은이 잠들어 있었다.

친모를 만난 일이 생각보다 부담이었는지 이은은 오늘따라 참 작고, 처량한 모습이었다.

이불 하나 덮지 않고 웅크리고 누운 것도 처량한데, 눈가가 살짝 붉은 것을 보니 혼자 울었나 싶기도 하고…….

“아, 그냥 처넣어버려?”

울컥 짜증이 난 세완이 말했다.

굳이 정체 파헤친다고 헤맬 일이 아니다. 합법적으로 교도소에 처넣으면 정말 깔끔하고 편한데 왜 이런 미친 짓을 하고 있는지 세완도 궁금했다.

“막말로 친모가 범죄자라고 김이은이 김이은이 아닌 것도 아니잖아.”

부모가 범죄자일 때 문제가 되는 경우는 결혼할 때 딱 하나밖에 없는데 그깟 결혼 안 시키면 되지 뭐! 나랑 할아버지랑 평생 함께 같이 살면 되잖아!

지금까지 혼자서 잘만 살았는데 이제 와서 그 여자 정체가 뭔지 그게 뭐가 중요해!

친모라면 보험사기꾼으로 처넣으면 되고, 친모가 아니면 돈을 노리고 친모를 사칭한 사기꾼으로 처넣으면 되는 거다.

그 여자가 교통사고로 남편을 죽였으면 살인자라는 죄목이 하나 추가되는 거고, 안 죽였어도 없는 죄 하나 만들어서 덮어씌우지 못할 정도로 능력이 없지는 않다.

나쁜 쪽으로 특화된 전전두엽을 신나게 굴리고 있는데 어느 순간 세완의 눈에 고요히 잠든 이은의 얼굴이 비쳤다.

이은은 자고 있는데, 이상하게도 그는 자꾸만 김이은이 깨어 있는 것 같다.

다른 재벌가 아들들처럼 망나니짓만 해보라며 잔소리를 늘어놓는 이은의 평소 목소리가 귓가에서 울려 퍼지는 듯했다.

「정찬주는 가까이하지 마. 쟤 소문이 얼마나 안 좋은지 알아?」

까마귀 같은 찬주와 친하게 지내지 말라는 목소리는 아예 귓전에서 들렸다.

그쪽이 까마귀면 이쪽도 까마귀라 친하게 지내는 것뿐인데 그의 착한 김 비서는 그를 자꾸 백로로 만들려고 한다.

세완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알아. 착하게 살자. 나도 안다고.”

세완은 잠든 이은을 향해 제 잘못을 인정했다. 그리고 얘는 어쩌자고 잠들어 있을 때도 잔소리를 하느냐며 벽장에서 이불을 가져와 이은의 얼굴까지 푹, 덮어 버렸다.

하지만 그러다가도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 이내 이불을 살짝 들춰 얼굴은 빼줬다.

이은의 몸 위로 꼼꼼하게 이불을 덮어 주고, 베개까지 가져와서 머리 아래 받쳐준 세완이 그 옆에 반쯤 누워 창밖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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