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바지랑대에는 그물이 널려 있고, 평상에는 말린 생선들이 가득했다. 반쯤 열린 창고 문으로는 어망과 어구가 보이고, 마당 한쪽에는 작게 텃밭도 보였다.
“계세요?”
이은이 대문 앞을 기웃거리며 목소리를 높였다. 주차하고 온 세완이 이은의 옆에 와서 섰다.
“이 집 맞아? 전화는 해봤어?”
“안 받아.”
이은이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면서 답했다.
정지가 된 것은 아닌데 몇 번을 해도 전화를 안 받는다.
오라고 했으니 고의로 전화를 안 받은 것이야 아니겠지만 연락이 지나칠 정도로 안 되다 보니 이은도 당혹스럽다.
정말 친모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그녀의 머릿속을 스쳤다.
보통 몇십 년 만에 버린 자식을 찾는 이유는 돈, 건강, 죽기 전 고해성사 셋 중 하나인데 그녀의 친모는 셋 모두 다 가능성이 있었다.
그래서 뭐가 됐든 받아들이자며 2천만 원도 현금으로 찾아서 왔다. 하지만 친모를 둘러싼 상황은 그런 단순한 문제가 아닌 듯했다.
이해 못 할 상황이 너무나도 많았다. 핸드폰을 정지해놓은 것도 그렇고, 본인이 오라고 해놓고서는 연락 두절. 심지어 마중도 나오지 않았다.
반드시 마중을 나와야 한다는 것은 아닌데 분명한 것은 이게 일반적인 상황은 아니라는 거다.
돈 때문이든, 신장 때문이든, 이도 저도 아니면 죽기 전에 얼굴이나 한번 봤으면 하는 것이든 간에 친모가 이은을 이렇게 푸대접할 상황은 아닌데 정말 모든 것이 다 너무 이상했다.
차라리 지금이라도 서울로 올라갈까 하는 생각이 다시 이은의 머릿속을 스쳤다.
비겁한 것은 안다. 하지만 더 이상 복잡해지고 싶지가 않다.
혈혈단신으로 어디 기댈 곳 하나 없다는 것만으로도 이은의 삶은 충분히 힘들고 고달팠다.
혹자는 그녀에게 부모보다 더 든든한 빽이 버티고 있지 않느냐고 할 수도 있지만 그래봤자 남이다.
물론 이 회장과 세완이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안다. 이은의 마음이 그렇다는 것이다.
막말로 가족도 아니고, 지금까지 먹여주고 길러주고 키워준 것만으로도 감사한데 더 이상 폐를 끼칠 수는 없다.
친모와 가까워지게 되면 그녀가 감수해야 할 리스크를 생각해보고, 통장에 얼마 있나 금액도 계산해보았다.
홀몸으로 세상에 던져진 이들은 돈이 목숨이고 전부다. 아프거나 다치는 등 만약의 상황이 벌어졌을 때 기댈 곳이 없다 보니 최소한의 방어막 하나는 만들어 놓고자 하는 거다.
그 마음은 이은도 마찬가지라 이를 악물고 돈을 벌었다. 회사에서 받는 연봉만으로도 부족해 번역이며 과외 등 돈이 되는 것이라면 닥치는 대로 했다.
이은이 친모를 찾아왔을 땐 그 구리알 같은 재산의 일부도 내놓을 수 있다는 마음으로 온 것이었다.
누군가에게 2천만원은 ‘에계, 고작?’이라고 말하는 금액일 수도 있겠지만 이은에겐 피와 살보다 더 귀한 돈이다.
그것은 보육원에 버리고 간 친모에게 해줄 수 있는 최대한의 선의였다.
하지만 그런 선의도 뭔가 문제가 있는 것 같은 친모의 상황을 보니 자꾸만 작아진다.
친모가 식당 아주머니에게 서울에 있는 자식이 잘 산다느니, 성공했다느니 하면서 말했다는 것을 듣고 나니 더더욱 그랬다.
만약 친모가 원하는 것이 돈이라면 이 상황을 고작 2천만 원으로 해결할 수 있느냐가 걱정이다.
십몇 년 만에 찾은 친부모에게 전 재산을 빼앗기고 빈 몸으로 쫓겨났다느니, 갑자기 이십 년 만에 찾아온 친부모가 간이식을 해달라고 했다느니 하는 이야기들이 떠오른다.
번민과 갈등이 매시간, 매초 이은을 괴롭게 했다.
눈을 감았다가 뜬 이은이 세완을 바라보았다. 두 눈을 끔벅거리고 있던 세완이 이은과 시선을 맞추며 싱긋 웃음을 지었다.
‘좋겠다. 너는. 이런 고민 안 해도 돼서.’
25년 동안 떠올려 이제는 습관이 되어버린 부러움을 가슴에 숨긴 이은이 말했다.
“만약 내가 사고 치면 말려.”
“사고 치게?”
“아니, 그런 건 아닌데 혹시라도 내가 통장 비밀번호를 알려준다거나, 신체포기각서를 쓴다거나, 그러니까……. 아니, 그 뜻이 아니라…….”
“알아. 필요하다면 금치산자라도 걸어줄게. 나만 믿어.”
세완이 가슴을 탕탕, 치면서 말했다.
금수저 직장생활도 직장생활이라고 짬밥이 생기셨는지, 눈치가 생기셨는지 세완은 그녀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근데 왜 그게 더 서글픈지 모르겠다.
“……그래. 고오오맙다.”
이은이 심기 불편한 목소리로 감사의 인사를 했다. 금치산자 신청 조건에 몇 촌 이내의 혈족이라는 문구가 있었던 것 같지도 하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별로 걱정은 안 됐다.
대한민국에서 재벌이 못 하는 게 어디에 있다고.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속 편한 세완이 짜증 나기도 해서 이은은 세완의 발등을 지그시 밟았다.
세완이 아프다고 앓는 소리를 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하이힐이 아니라 운동화를 신은 게 천추의 한이다.
아픈 김에 조금 더 아프라고 세완의 발을 한 번 더 밟아준 이은이 대문 안으로 한 발 들이밀었다.
그때였다.
“누구세요?”
파마머리를 한 50대 중후반의 여자가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그녀와 이은의 눈이 마주쳤다.
“아!”
“어머!”
두 사람은 동시에 감탄사를 뱉었고, 동시에 서로가 누구인지를 알아봤다.
생각보다 그들은 더 많이 닮아 있었다.
여자는 삶에 지친 기색이 역력해 보였지만 그럼에도 꽤나 동안이고, 꽤나 예쁘장했다.
이은은 그녀를 보는 즉시 엄마라고 느꼈다. 사진 속의 모습과 닮기도 했지만 그냥 느낌이 그랬다.
아마 친모도 이은과 비슷한 것을 느낀 것 같았다. 갑자기 친모의 얼굴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이은이지?”
울먹이면서, 확신하듯 묻는 말에 이은이 어설프게 고개를 꾸벅였다.
“안녕하세요.”
세완도 따라서 고개를 숙였다.
이은의 친모는 아련하고, 미안하고, 대견하고, 복합적인 감정이 담긴 눈으로 이은을 바라보았다. 이은은 친모의 눈을 피했다.
그 모습을 본 친모는 그녀를 향해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아유, 주책이야. 정말.”
거칠게 눈물을 닦아낸 여자가 이은에게 다가왔다.
“많이 컸네. 길에서 봤으면 못 알아봤을 거 같아.”
여자는 차마 이은의 손도 잡지 못하고, 머뭇거리면서 말했다.
그녀는 손톱 밑이 검은 자신의 손을 한 번 내려 본 뒤 손가락을 말아 감추면서 말했다.
“내가 방금 전에 고구마 줄기를 다듬어서 손이 좀 그래.”
“네.”
고구마 줄기와 손톱 밑이 까만 것이 무슨 관련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은은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이은을 보며 어색하게 웃은 모친이 말했다.
“고구마 줄기를 까다 보면 손톱 밑이 까맣게 물들거든. 집안일 안 해봤구나?”
“네.”
“곱게 자랐나 보네.”
친모는 안심이 되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고, 이은의 표정은 미묘해졌다.
가정부가 있는 집에서 살림 한번 않고 자랐다면 곱게 자란 것이 맞지만 그게 친모의 입에서 나올 말은 아닌 것 같다며 이은이 씁쓸함을 삼켰다.
갑자기 어색해진 분위기를 눈치챈 것인지, 친모가 양손을 쓱쓱 바지에 문지르면서 말했다.
“안으로 들어가자. 점심 아직이지? 오느라 수고 많았어.”
잠시 머뭇거린 친모는 이은의 손을 잡고 집 안으로 끌었다. 그리고 옆에 서 있는 세완에게 말했다.
“그쪽도 들어와요.”
이은과 세완의 눈이 마주쳤다.
이은이 친모의 집을 향해 고갯짓했고, 세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친모의 집 안으로 발을 들였다.
* * *
친모가 커피를 내오겠다며 부엌으로 간 사이, 이은은 어색한 표정으로 거실을 구경하고 있었다.
필요하면 금치산자라도 걸어주겠다며 자신만 믿으라던 이세완은 전화가 왔다더니 아직 집 안에 안 들어왔다.
정확하게 말하면 들어왔다가 다시 나갔다. 소파에 엉덩이를 잠깐 걸치기만 했다.
얘는 꼭 필요할 때면 없다며, 직장생활 내내 쌓였던 모든 울화까지 더해서 이은은 욕설을 내뱉었다.
세완이 있어도 지금 이 자리가 불편한 자리임에는 변함이 없을 테지만 최소한 이렇게 바늘방석이진 않았을 거다.
이은이 초조하게 현관을 바라보고 있는데 친모가 커피를 들고 돌아왔다. 이은은 어색한 표정으로 커피를 받아 들었다. 침묵이 이어졌다.
이은은 그녀에게 할 말이 없었고, 그것은 친모 또한 마찬가지인 듯했다.
무슨 책이었지? 부모자식은 같은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서로에게 힘을 준다고 했던가! 순 거짓말이다.
불편해도 이렇게 불편할 수가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이대로 ‘안녕히 계세요.’를 외치며 집 밖으로 나가고 싶다.
한참을 쭈뼛쭈뼛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이은이었다.
“집에 아무도 없나 봐요.”
“어, 딸이 있긴 한데 지금 외출해서…….”
이은이 멈칫했다.
딸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막상 그 사실을 친모의 입에서 직접 들으니 기분이 정말 이상했다.
“우리 딸이 지금 방학이야.”
“아, 네.”
외출한 딸은 내 딸, 너는 남의 딸! 친모는 꼭 그렇게 말하고 있는 듯했다.
이은이 괜스레 서운해졌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감격적인 재회 같은 것은 없었다. 친모를 봤을 때 그녀는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저 사람이 내 엄마구나!’
딱 거기까지였다.
가슴 떨리는 그리움 같은 것은 없었다. 그래서 그런가? 원망 같은 것도 없다.
보육원에서 부모 없는 설움을 잔뜩 당하면서 살았다면 친모를 붙잡고 엉엉 울음이라도 토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학교나 학원 등 누군가 그녀를 두고 고아 운운하는 즉시 이 회장이 출동하고, 세완이 나섰다.
4선 국회의원 아들의 머리통에 땜빵을 내고, 재벌 손자의 다리를 부러뜨려놓는 막무가내가 옆에 있다 보니 서러울 틈도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친모에게 그 어떤 기대나 원망이 없었음에도 이은은 친모가 ‘딸’의 이야기를 하니 서운했다.
일곱 살 때까지 알던 엄마는 그녀의 아빠가 남편이고, 그녀가 자신의 딸이라고 했었다. 그러나 지금 그녀 눈앞에 있는 친모는 다른 모양이다.
“저기, 그러니까 내가 재혼을 했거든.”
친모가 쭈뼛대며 재혼 소식을 알렸다.
이미 그녀의 남편과 통화까지 한 이은은 그러냐며 태연하게 응수했다.
“안 놀라니?”
“알고 있었어요. 그리고 제가 열두 살도 아니잖아요. 서른두 살에 무슨 이런 걸로 놀라요. 재혼하시는 게 당연하죠.”
이은은 이성적인 답변을 했다. 친모는 그런 이은의 모습에 놀란 듯했다.
“그렇지. 서른두 살이지. 열두 살도 아니고.”
친모는 씁쓸한 표정으로 입술을 적셨고, 이은도 똑같은 표정을 지었다. 25년은 생각보다 긴 시간이었다.
침울해지는 분위기에 친모가 억지로 화제를 전환 시켰다.
“그러고 보니 어떻게 지내니? 원장님 말씀으로는 좋은 회사 다닌다면서.”
“네. 뭐, 그럭저럭.”
“어려운 건 없었어? 좋은 곳에 위탁됐다는 얘긴 들었는데…….”
“그냥 그렇죠 뭐.”
“그래. 남의집살이가 뭐 편하겠어.”
친모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아는지 모르겠는데 나랑 네 아빠도, 고아였어.”
이은이 고개를 들었다.
놀란 듯한 이은의 모습에 친모가 희미한 웃음을 지었다.
“기억 못 하나 보네. 우리 둘 다 고아였어. 너 어릴 때 만날 우리 집은 친척도 없냐고 막 떼썼는데 기억 안 나나 보다. 명절에 너도 시골집 가고 싶다고 했었는데.”
25년 전의 일, 그것도 일곱 살 이전의 일이 기억날 리 만무했다.
이은이 기억하는 일곱 살의 일은 몇 가지 안 된다.
아빠가 돌아가셨다면서 엄마가 그녀를 잡고 펑펑 울던 것, 엄마의 손에 끌려 보육원에 갔던 것.
세완을 만난 것도 일곱 살의 일이지만 그건 기억이 안 난다.
그녀를 처음 만난 날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세완과 달리 이은의 기억 속 세완의 첫 등장은 엉엉 우는 울보 소년이다.
보육원 대문 앞에 쪼그려 앉아있는 그녀의 옆에서 너 대신 울어 주겠다며 펑펑 눈물 흘리던 막무가내 울보가 이세완의 첫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