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김 비서의 수상한 휴가 (11)화 (11/100)

11화

세완의 제안에 이은이 놀라서 그를 응시했다.

“내가 여기까지 오자고 한 건, 그 언젠가에 네가 후회를 할까 봐 그랬던 거야. 평생 가슴의 한으로 남을까 봐. 그런데……. 힘들면 가자. 마음이 가는 대로 해도 돼. 굳이 강하지 않아도 돼.”

이런 순간까지 강하지는 않아도 된다며 세완이 이은을 다독거렸다. 언제나 구박받던 세완이 이 순간만큼은 단단한 지지대가 되어 줬다.

차라리 도망가자고 속살거리는 세완의 말에 이은은 겨우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그리고 결심했다.

“가자.”

“괜찮겠어?”

이은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세완이 여전히 차가운 이은의 손을 다시 한번 힘주어 잡았다.

“내가 다른 건 몰라도, 같이 울어는 주마.”

정말 딱 이세완 같은지지 선언이다.

“그럴 땐 울 수 있게 어깨를 빌려준다고 하는 거야. 바보야.”

네가 그래서 아직까지 솔로인 거라며 의미 없는 핀잔을 준 이은이 차에서 내렸다.

「시골집 백반」이라는 만든 지 얼마 안 되는 것 같은 간판이 그들을 반겼다.

인터넷에서 검색된 식당은 간장게장집이었던 것 같은데…….

이은이 세완을 돌아보며 머뭇거렸다. 그녀가 망설인 이유를 알아차린 세완이 그녀의 등을 살짝 밀면서 말했다.

“여기 맞아. 들어가자.”

상호와 업종을 바꿔서 번호를 바꾼 모양이다.

어쩌면 주인이 바뀌었을 수도 있다.

어찌 되었든 들어가면 사정의 일부나마 알 수 있을 것 같다.

세완의 말에 이은은 크게 숨을 들이마시며 심란한 가슴을 애써 다독였다.

일단 이 안에 들어가면 뭐라도 알 수 있겠지, 라는 생각이 그녀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했다.

세완과 이은이 식당 안으로 들어섰다.

“어서 오세요.”

중년의 여성이 그녀를 맞이했다.

파마머리에 다소 강퍅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그녀의 나이는 60대 초반, 이은의 엄마와 비슷해 보였다.

설마 엄만가? 이은이 침을 꿀꺽 삼켰다.

매일같이 보던 사진과 닮은 것 같기도 하고, 닮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당장 가방을 뒤져 사진을 보고 싶었다.

가게의 번호와, 상호가 모두 바뀐 것을 보면 주인이 또한 바뀌었을 확률이 높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그래도 이은은 자꾸만 의심이 간다.

한참을 머뭇거리는 이은을 보던 세완이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한 발 앞으로 나섰다.

“아주머니, 식사 2인분이요. 아무거나 빨리 되는 걸로요.”

깜짝 놀란 이은의 뒤를 돌아보자 세완이 그녀를 잡아끌어 테이블에 앉혔다.

“우리 집은 청국장이 맛있는데.”

“그럼 그걸로 주세요.”

지나칠 정도로 태연한 주문에 이은이 눈으로 욕했다.

“밥부터 먹어.”

“야! 넌 밥이 입에 넘어가?”

“너랑 안 닮았어.”

엉뚱한 세완의 주문에 이은이 화를 내려는 찰나, 세완이 흘리듯 닮지 않았다는 말을 중얼거렸다. 이은이 멈칫했다.

“긴장 풀어. 너랑 안 닮았어. 울 거 같은 표정으로 있을 거면 차라리 울고. 자리 피해줘? 저 아줌마 포함해서.”

세완이 이은의 볼을 손으로 쭈욱 늘렸다.

“웃으라는 말은 안 하겠는데, 표정 관리는 하자. 참고로 이 가게 전세도 내줄 수 있어. 오빠 능력 있다.”

이 가게는 하루 빌리는 데 얼마면 되나? 돈 부채 부치는 흉내를 내는 세완을 보며 이은이 헛웃음을 흘렸다.

“네 돈도 아니잖아.”

“야, 넌 나를 무슨 쌩백수로 아는데, 물론 아니라는 말은 안 하겠는데 할아버지 돈 아니라도 나 능력 있거든?”

어디서 개 풀 뜯어 먹는 소리를 그렇게 신박하게 하느냐며 이은이 코웃음을 쳤다. 세완의 손을 뿌리친 이은이 물었다.

“그렇게 안 닮았어?”

“심하게.”

지나칠 정도로 단호한 세완의 말에 이은이 항변했다.

“부모자식이라고 꼭 닮아야 하는 건 아니잖아.”

“야, 나도 사진 봤거든? 그리고 지금 상황 보면 넌 부모가 맞아도 아니라고 해야 하는 거야.”

지금 돌아가는 상황만 보면 부모 찾아 왔다가 장기 뺏기고 암매장당하기 딱 좋은 스토리라며 세완이 필터 없는 막말을 했다.

“꼭 말을 해도!”

이은이 세완의 손등을 찰짝 때리며 눈을 부라렸다. 그런 이은의 모습에 세완이 씩,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그래. 그거야. 그렇게 팔팔해야 김이은이지.”

긴장 좀 풀라고 일부러 막말을 했다며 세완이 개구진 웃음을 지어 보였다.

넌 이 상황에서 장난칠 기분이 드냐면서 이은은 세완을 구박했고, 세완은 그게 나의 매력이라며 실없는 소리를 했다. 그리고 그러면서 이은은 긴장을 풀었다.

수백억, 수천억짜리 결정을 내리면서도 이런 적이 없는데…….

이은은 마른 입술을 적셨다. 그리고 슬쩍, 주방에서 부산스레 음식을 하는 주인아주머니를 바라보았다.

‘정말 엄마가 아닐까?’ 하는 질문이 몇 번이나 혀 위에 올라왔다가 사라졌다. 그리고 그런 이은을 보며 세완이 혀를 찼다.

“가게 이름이 바뀌었잖아. 전화번호도 바뀌었고. 가게를 넘겼을 수도 있지.”

가능성 높은 이야기에 이은의 어깨가 순식간에 아래로 처졌다.

그녀도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세완의 입으로 들으니 새삼 가슴이 시리다.

세완이 물었다.

“찾겠다는 마음에는 변화 없어? 바로 집으로 가도 되는데.”

“……집으로 가겠다는 사람을 여기까지 데려온 건 너거든?”

“뭐, 그럼 됐고. 어차피 저지른 거,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가보자.”

그리고 세완은 이은이 말릴 새도 없이 아주머니를 불렀다.

“야!”

이은이 기겁했지만 아랑곳 않고, 그녀에게 돌직구를 던졌다.

“아주머니, 여기 혹시 주인 바뀌었어요?”

식당의 아주머니가 손을 닦으면서 나왔다.

“아니요. 왜요?”

“원래 간장게장 집이었던 것 같아서요.”

“아이고, 전에 왔던 손님인가 보네? 아니에요. 주인 안 바뀌었어. 내 얼굴 기억 안 나나 보다. 요즘 꽃게 값이 너무 올라서 그냥 메뉴만 바꾼 거예요.”

그 대답을 듣는 순간 이은의 가슴이 덜컹했다. 

주인은 바뀌지 않았나 보다. 정말 저 아주머니가 우리 엄마인가 싶었는데…….

“그럼 보육원에 갖다버린 자식도 있어요?”

세완이 핵폭탄을 던졌다.

이은은 깜짝 놀라 숨을 헉, 하고 들이마셨다. 아주머니는 순식간에 불쾌한 표정이 되었다.

“무슨 소리예요? 그게?”

“이 번호로 전화를 받았는데 그게 어릴 때 보육원에 버리고 간 엄마여서요.”

간단명료하게 상황설명을 해버린 세완의 행동에 이은은 지금 당장이라도 일어나 세완의 등짝을 내리치고 싶었다. 이 사고뭉치가!

하지만 지금 그녀는 세완과 단둘만 있는 것이 아니었고, 사실 아주머니의 답변도 궁금했다.

이은은 좌불안석으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얼굴로 세완과 식당 아주머니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세완의 말을 들은 식당 아주머니의 표정이 묘해졌다.

“그쪽이 그 자식이야?”

아는 듯했다.

“돈 많이 번다는?”

다만 본인의 이야기는 아닌 듯했다.

“서울에서 성공한 자식이 있다는 얘긴 들었는데…….”

아주머니가 꺼내 놓은 이야기에 세완의 표정이 삐딱해졌다.

사실 뺨 한 대는 맞을 각오를 하고 시작했다.

그런데 보육원에 갖다 버린 자식 이야기를 꺼냈더니 나오는 말이 그립고 미안하다는 것이 아니라 ‘돈 많이 벌고’, ‘서울에서 성공한 자식’이라…….

최악의 상상은 안 하고 싶은데 정말 할 수밖에 없게끔 만든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도 바보 같은 김이은은 ‘엄마’라는 존재에게만 꽂혀서 좌불안석이니 세완은 그저 답답할 따름이다.

세완도 들은 이야기가 있다.

이은이 일곱 살 때, 아버지 장례식 날에 엄마가 직접 보육원에 데려다줬다고 했다.

비가 오든, 눈이 오든 날마다 보육원 문 앞에 앉아서 누군가를 기다리던 이은을 생각하니 세완은 속에서 천불이 나는 것 같았다.

아주 오래전, 이은이 그의 집으로 오지 않겠다고 했던 것도 문제의 그 ‘엄마’ 때문이었다.

식당의 아주머니는 이은의 친엄마가 아닌 것은 분명해 보이지만, 동시에 그들에게 좋은 쪽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님이 분명했다.

“저 밖에 있는 차가 그쪽 찬가?”

단순히 오지랖 넓은 아주머니일 수도 있지만 세완에겐 이은의 ‘친엄마’와 관계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마이너스 100만점이었다. 

“그게…….”

바보 같은 김이은이 입을 열 때였다.

“훔쳤어요,”

알게 뭐 야. 말이 안 되는 건 알지만 일단 지르고 봤다.

이은의 입이 더 이상 벌어질 수 없을 때까지 벌어졌다.

“아니, 아니, 그게 아니라…….”

황망한 이은이 더듬거리며 상황을 수습하려고 할 때 세완이 씩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사실은 빌렸어요. 뭐, 우리가 돈이 어디 있겠어요. 어차피 인생은 한 번이니까 지르고 봤죠.”

그 말을 한 사람이 자타공인 날백수 이세완이라서 더 신뢰가 있어 보였다.

돌아가신 사모님이 미스코리아여서 그런가. 세완은 누가 봐도 곱상한 얼굴이지만 동시에 누가 봐도 성실해 보이는 인상은 아니다.

식당 아주머니의 표정이 떨떠름해졌다. 봉을 보듯 바라보던 시선이 말 한 번에 세상에 둘도 없는 망나니를 보는 것 같은 눈으로 바뀌었다.

“어차피 인생은 한 방이잖아요. 금수저 물고 태어난 놈들만 저런 차 몬다는 법 있어요? 남자가 말이야, 곧 죽어도 가오죠.”

누가 봐도 날백수에 허세남이다.

세완의 차를 타고 온 것이 잘못인지, 세완을 데리고 온 것이 잘못인지, 이세완을 죽이지 않은 것이 잘못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이은이 머리를 쥐어뜯었다.

하지만 이 사태에도 세완은 자신의 임무를 충실하게 해냈다.

세완이 오만 원짜리 대여섯 장을 쓰윽, 식당 아주머니에게 찔러 주었다.

“아유, 뭐 이런 걸…….”

“수고하시니까. 밥도 맛있고요.”

아직 음식이 나오지도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만 여쭤볼게요. 그분 어떤 분이에요? 어디 계시는지 아시죠?”

현금의 위력은 위대했다.

날건달, 날백수, 양아치 보듯 하던 아주머니는 그를 신앙처럼 바라보며 술술술 아는 정보, 모르는 정보 다 토해냈다.

“내가 그런 사람이 아니야. 누가 돈 때문에 정보를 파나?”

“알죠. 알죠. 우리가 뭐 잘못하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그 집 남편이 화투로 집을 날렸고?”

“아니. 섰다. 화투랑 섰다는 다르지.”

회장님은 도대체 왜 쟤를 기획실로 보내셨는지 모르겠다. 정보보안팀이나 산업스파이로 보냈으면 회사의 재계서열이 확 올라갔을지도 모르는데…….

이은은 칭찬을 해야 할지, 구박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시선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분명히 조금 전까지는 엄청 심각해서 가슴을 쥐어뜯고 싶었는데 세완 때문에 순식간에 현실로 멱살 잡혀 끌려 나온 기분이다.

지금 그녀가 있는 곳은 분명히 회사가 아니다. 그녀는 분명 지금 휴가 중인데, 어째서 자꾸만 회사 안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드나 모르겠다.

* * *

세완의 정보 수집은 그 후로도 한참을 이어졌다.

“그 집 딸이 공부를 잘해요?”

“나야 모르지. 그런데 거 뭐시냐, 시장님이 주시는 상도 받았다고 하더라고.”

“아, 근데 몸이 좀 아프고? 이모, 힘드신데 사과도 좀 드시면서 얘기해요.”

“어. 그래 고마워.”

“근데 그래서 그 집 딸이 몸이 어떻게 아픈 데요?”

분명 처음에는 잠깐 식당일을 도와줬을 뿐 잘 모르는 사이라고 했다.

하지만 잘 모르는 사이가 이 정도인데 잘 아는 사이면 도대체 어느 정도의 정보가 토해질지 이은은 무서울 지경이었다.

식당 아주머니와 짧고 깊은 대화를 끝낸 세완과 이은이 차에 올라탔다.

세완은 차에 타자마자 핸드폰에 무엇인가를 열심히 적기 시작했다. 이은은 그런 세완을 바라보았다.

“……왜?”

“아니. 그냥. 머리가 복잡해서.”

이은이 눈을 감고 몸을 의자에 기댔다. 시간상으로는 고작 15분 지났을 뿐인데 보름 정도의 시간이 흐른 기분이었다.

안 그래도 머리가 복잡한데…….

눈을 번쩍 뜬 이은이 몸을 세워 세완을 보았다. 세완은 계속해서 핸드폰에 뭔가를 적고 있었다.

“너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한 거야?”

“뭐가?”

세완이 고개를 들어 이은을 마주 보았다.

어느 귀한 집 막내아들처럼 생긴 이세완은 한없이 순진하고 청량한 눈빛으로 이은을 향해 눈을 깜빡여 보였다.

그런 세완의 얼굴을 손으로 밀어버린 이은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차는 왜 훔쳤다고 말한 거야?”

잠깐 일했다고 하지만 엄마와 아는 사이가 분명한데 왜 안 좋은 인상을 줬느냐는 이야기였다.

그 말을 들은 세완이 잠시 싱그러운 웃음을 짓다가 정색을 하며 말했다.

“귀에 들어가라고.”

“……무슨 소리야?”

“아는 사이 아니라는 말을 믿어? 잠시 일을 시키기만 했다고? 만약 그렇다면 내 손에 장을 지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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