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김 비서의 수상한 휴가 (9)화 (9/100)

9화

벌써 몇 시간째 반복되는 이은의 자학에 세완은 다시 한번 혀를 찼다.

일단 저질렀으면 그만이지 그걸 또 왜 걱정하는 건지.

인생은 낙장불입, 한평생 뒷일 따위는 생각 안 하고 살아온 사내는 책임감으로 똘똘 뭉친 여자를 보며 그녀의 지나친 성실함을 동정했다.

그리고 그런 그녀에게 또다시 의문을 품었다.

“근데 포항은 왜 가는 거야?”

저렇게 갈등할 정도면 이은도 포항을 가고 싶어서 가는 것은 아닌 거 같은데…….

어제는 뭔가 사연이 있는 것 같아 묻지 않았는데 이제 정말 포항이 코앞이다 보니 세완도 그 사연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3년이나 되는 휴가를 낸 이유는 알려주지 않더라도 최소한 포항의 어디로 가는지, 왜 가는지, 누구를 만나러 가는지 정도는 알려줘도 되지 않을까?

세완이 매우 상식적인 질문을 던졌고, 이은은 지나치게 상식적인 질문에 지나치게 크게 당황했다.

“어? 어……. 하하.”

이은이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아, 그래. 그것도 문제였지……. 이은이 딴전을 피우며 시선을 피했다. 세완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한량, 백수, 머리 빈 백치, 그리고 기타 등등. 별로 유쾌하지 않은 별명을 가지고 있는 그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바보는 아니었다.

김이은이 저렇게 나올 정도면 정말 뭐가 있기는 있다는 건데…….

세완이 운전대를 오른쪽으로 크게 꺾었다.

“으앗!”

이은은 저도 모르게 비명을 내뱉었다.

극적으로 꺾인 차가 갓길에 섰다. 놀란 이은이 비명을 지르듯 소리쳤다.

“야! 운전 제대로 안 할래? 사고 나면 어쩌려고!”

“사고 안 나려고 세운 거야.”

세완이 태연하게 답했다. 그리고 진지하게 물었다.

“너 진짜 포항은 왜 가는 건데?” 

세완이 이은을 향해 몸을 완전히 틀었다. 의도치 않게 그와 마주 보게 된 이은은 당황했다.

“포항에서 3년이나 지내게 생겼는데 그 정도는 알려줘도 되지 않을까?”

“……그냥 올라갈래? 지금이라도?”

만년 긍정주의자 이세완과 함께라면 포항에서 무슨 일이 있어도 상처받지 않을 것 같아서, 또 아프지 않을 것 같아서 그를 잡았는데 막상 상황을 설명하자니 입이 안 떨어진다.

“여기까지 와서?”

“올라가자.”

서울에서 포항까지, 4시간 14분 동안 계속되던 갈등이 한순간에 정리됐다.

하지만 말처럼 쉽다면 이 상황까지 안 왔다.

이은은 연신 입술만 달싹거렸고, 세완은 침묵으로 답변을 강요했다.

그리고 결국 세완이 승리했다. 하지만 전혀 기쁘지 않은 승리였다.

“미쳤어?”

세완이 화를 냈다.

“고작 일곱 살밖에 안 되는 널 버린 여자야. 제 딸을 보육원에 갖다 버린 여자라고. 죽은 척까지 하면서! 지금까지 연락 한 번이 없었어. 그런데 이렇게 이십몇 년 만에 전화를 해서 대뜸 자기랑 같이 살자고? 넌 이게 안 이상하냐?”

“아프니까 내가 보고 싶어졌나 보지.”

“그게 더 괘씸한 거야. 멀쩡할 때는 네가 생각이 안 났다는 얘기잖아. 왜 멀쩡할 땐 안 찾았는데? 죽거나 크게 다친 것도 아니고 재혼해서 잘 먹고 잘 살았으면서 도대체 왜 아프니까 옛날에 갖다버린 딸을 찾느냐고!”

세완이 길길이 날뛰었다. 본의 아니게 그녀의 변명을 하고 있던 이은은 세완이 짚어주는 핵심에 입술만 적셨다.

그녀라고 왜 모를까. 얼마나 원망했는데……. 

처음에는 보육원에 버려져서 원망했고, 그 다음에는 모두가 그녀만 두고 죽어버렸다고 원망했다.

그런데 원망한 만큼, 그리고 그 이상으로 엄마라는 존재가 그립고 보고팠다.

전화를 받았을 때, 죽은 게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느꼈다 하면 그녀가 바보인 것일까?

보육원에 데려다주는 내내 엉엉 울던 엄마를 생각하면 엄마가 그녀를 버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나중에 죽었다고 연락이 온 것도……. 아마 사연이 있었겠지.

“다시 올라가자.”

“여기까지 왔는데 어떻게 다시 올라가.”

“못 올라갈 이유는 어디 있어. 야! 휴가 취소야. 올라가자. 행여라도 포항에 갈 생각은 꿈에도 하지도 마. 가면 진짜 가만 안 둔다. 이건 분명히 돈 달라고 연락 온 거야. 분명해! 안 봐도 뻔하다.”

세완이 씩씩대며 불길을 토했다. 가기만 해보라며 으르렁대는 그의 모습에 이은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일단 가보고.”

“야!”

“내가 바보냐? 알아. 돈이든 뭐든 그런 거만 노리고 전화한 거면 절대 안 줘. 알아.”

구질구질한 신파, 구질구질한 막장들. 대형인명사고가 날 때마다 TV나 신문에는 꼭 아이를 키우지 않은 친부모가 죽은 아이에 대한 목숨값을 받기 위해 나타났다는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그때마다 이은 자신도 얼마나 화를 냈던가.

“그런 건 나도 싫어. 정말이야.”

그리고 그걸 위해 세완을 끌어들인 거다. 혹시 가족이 고프고, 정이 고프고, 사람이 고파서 잘못된 판단을 할까 봐.

“내 가족은 너야. 할아버님이랑.”

“…….”

“근데 그래도, 세완아 있잖아 그래도, 정말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서 그런 거라면 그 사정은 들어주고 싶어. 병원비 몇 푼 정도는, 남한테도 줄 수 있는 거니까, 그러니까…….”

돕고 싶다는 말을 이은은 참 어렵게도 했다.

세완은 그런 이은을 보며 가슴이 답답했다. 헛똑똑이다. 헛똑똑이.

똑똑하고 머리 좋은 애가 마음은 여려 터져서 저렇게 물렁하다. 그러니까 더 좋은 회사, 더 좋은 곳으로 안 가고 제 뒤치다꺼리를 하는 거겠지만…….

세완이 이은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다시 운전대를 잡았다.

“고마워.”

서행을 시작한 차를 보며 이은이 중얼거렸다.

세완은 아무 말 없이 손을 뻗어 이은의 머리를 쓱쓱 헤집었다.

결 좋은 머리카락이 손가락 사이사이에서 기분 좋게 흔들렸다. 위로하듯 내민 손길인데 도리어 그가 위로받는 기분이다.

세완은 부디 이은의 포항행이 그가 느끼는 이 촉감처럼 기분 좋게만 흘러가기를 기도했다.

* * *

그 후로 차 안은 침묵의 연속이었다.

세완과 이은 모두 생각할 것이 많았다. 세완은 어떻게 하면 이은이 그녀의 가족이라는 사람들에게 상처받지 않을 수 있을까를 생각했고, 이은 또한 그녀의 가족이라는 사람에 대해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연락이 된 지 한 달이라는 시간이 지났음에도 아직까지 그녀가 모친의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

밉지만 보고 싶고, 그래서 도와주고 싶은데 호구는 되기 싫고, 그리고…… 그리고 또 마음에 걸리는 것도 하나 있고.

사실은 이은도 아직 결정을 못 내렸다. 어떻게 대해야 할지 매일 매시간 널뛰기를 하는 심정이 그녀의 발목을 잡았었다.

오늘 세완이 등을 떠밀지 않았다면 두 달 뒤에도 그녀는 포항에 내려오지 못했을 것이다.

휴가 기간이 넉넉하다는 것을 핑계로 내일, 또 내일, 그리고 또 내일을 기약했겠지.

철저하게 계획을 세워 움직이는 사람이라는 것은 달리 말하면 계획 없이는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말과도 동일하다.

이은은 계획을 세우고, 그녀의 시나리오 안에서 움직여야 마음이 편한 사람이다.

그래서 이은은 지금의 이 무계획이 마음에 들면서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제발…….’

이은은 자신이 무엇을 기도하는지도 모르면서 부디 그들의 이번 포항행이 무사 평안하기만을 기도했다.

그렇게 눈을 떴다가, 감았다가, 차창에 머리를 박았다가, 뗐다가…….

그녀로서는 극히 드물게 산만한 행동을 계속할 때였다.

“이은아, 주소.”

세완이 말했다.

“응?”

“주소 불러봐.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아, 맞다!”

이은은 뒤늦게야 제가 무엇을 놓치고 있었는지를 깨달았다.

서울을 빠져나와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중부내륙고속도로를 거쳐 상주영천고속도로까지 가는 그 순간까지도 이은은 포항을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다.

그래서 세완에게도 대충, 일단 포항 근처로 가면 정확한 주소를 얘기해준다고 했다.

덕분에 세완은 내비게이션에 ‘포항시청’을 찍어놓고 출발했다.

“잠깐만!”

이은이 허둥지둥 핸드백을 뒤적였다. 

그녀는 주소를 찾아서 알려주려고 했다. 하지만 이내 얼어붙었다.

“아!”

“왜?”

“……주소를 안 받았네.”

원장님께 받은 것은 ‘어머니’의 전화번호뿐이고, 문제의 ‘어머니’에게 받은 것은 포항으로 내려오라는 이야기뿐이었다.

“야!”

세완의 얼굴이 노골적으로 일그러졌다.

어이없음과 당혹스러움과 기막힘과 짜증이 한순간이 섞였다.

뭐 이런 바보 멍청이가 다 있느냐는 생각이 얼굴 위에 고스란히 새겨졌다.

“갈지 안 갈지도 못 정했는데 주소를 어떻게 물어봐.”

“그럼 처음부터 그렇다고 얘기를 해야지.”

“나도 까먹고 있었어.”

이은이 억울한 표정으로 항변했다.

실제로 이은은 그녀가 수용하기에는 지나치게 많은 정보로 인해 반쯤 혼이 나가 있었다.

엄마가 살아 있다는 것도 그렇고, 그 엄마가 아프다는 것도 그렇고, 그 엄마가 그녀를 만나고자 하는 것도 그렇고.

또 포항을 갈지 안 갈지도 못 정했고, 만약 간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못 정했다.

평온하다면 평온했던 그녀의 삶에 지나치게 많은 사건이 던져졌고, 또 그것을 빠르게 결정해야만 했다.

언제나 정해진 길로만 걷던 그녀로서는 옳고 그름, 맞고 틀림이 아닌 것의 결정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방법 자체를 몰랐다.

그녀가 결정하고 판단하고 신경 써야 할 것이 조금만 적었다면 사정이 달라졌을지도 모르지만 불행히도 그녀는 이세완의 비서였다.

“다 너 때문이야!”

너만 아니었어도 젤 중요한 걸 까먹진 않았을 거 아냐?

이은이 세완에게 울컥 짜증을 냈다.

“내가 뭘 어땠는데?”

“몰라! 다 너 때문이야! 네가 날 바쁘게 해서 그래! 네가 성실하게 일했으면 이런 일은 없잖아!”

세완은 심하게 억울했지만 그가 그녀를 바쁘게 한 것만큼은 사실인지라 할 말이 없었다.

“만날 나 때문이래.”

그래도 아주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닌 터라 억울한 목소리로 작게, 아주 작게 꿍얼거렸다.

그 말을 들은 이은이 세완을 흘겨보며 타박했다.

“시끄러워! 운전이나 해!”

“주소는?”

“……기다려봐.”

모든 것이 다 세완 때문이라며 그를 타박했지만 사실은 그녀도 제 잘못을 알고 있었다.

어머니의 주소. 결코 당당할 수 없는 그 단어 앞에서 이은이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그녀가 통화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잠시 후, 이은은 상냥하고 낭랑한 여자 분의 목소리를 들었다.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입니다. 확인 후 다시 걸어주시기 바랍니다.」

이은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

그래서 핸드폰을 귀에서 떼고 그녀의 눈으로 다시 한번 번호를 확인했다.

“안 받아?”

세완이 물었다.

“아니, 잠깐만.”

“뭘 다시 잠깐만이래?”

“정말로 잠깐만. 뭐 좀 확인 좀 할 게 있어서…….”

이은이 얼떨떨 멍한 표정을 지으며 세완의 입을 막았다. 그리고 다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입니다. 확인 후 다시 걸어주시기 바랍니다.」

기다리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낯선 목소리만 흘러나왔다.

이은은 황당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보다 다이어리를 꺼냈다. 다이어리의 맨 뒷장에 적힌 것이 원장님께 받은 어머니의 번호다.

번호 옆에 곱게 끼워놓은 어머니와 어린 자신이 함께 담긴 사진을 무시하고, 이은은 번호를 핸드폰에 꾹꾹 누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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