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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 부인의 에로스-68화 (68/112)

#제68화. 너를 내 몸에 새겨넣을 거야

이것이 끝일지도 모른다는 절박함이 일레인의 이성을 모조리 마비시켰다.

가야 해. 가서 펠릭스를 새겨 넣을 거야. 펠릭스가, 나의 펠릭스가 피와 살을 가진 인간으로 이 세상에 존재했었다는 걸, 내 몸에 새겨 넣을 거야.

펠릭스의 거처는 별관의 2층에 있었다.

일레인은 도톰한 재질의 코튼 슈미즈 위에 울로 짠 벙벙한 드레스를 뒤집어 쓰고, 다시 그 위에 짙은 갈색 망토를 걸친 다음 촛불도 없이 거처의 문을 열었다.

복도와 저택 전체가 짙은 고요와 어둠에 잠겨 있었다. 일레인은 울 슬리퍼를 신은 발의 끝으로 살금살금 걸었다.

이 시간이면 본채의 문은 뷰컴 씨가 굳건히 닫아건다. 그래서 별채로 가려면 하인들이 거처하는 뒤쪽 계단을 내려가, 복도 끝의 문으로 나가야 했다. 유사시 화재에 대비해 만든 문으로, 안과 밖에서 걸쇠를 들어내면 열릴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아앗.”

점차 어둠에 적응한 눈으로도 앞에 놓인 휴식용 의자를 보지 못했다. 아니, 그런 걸 눈에 담을 여유도 없이 마음이 펠릭스를 향해 줄달음질 쳤다.

새끼발가락에 이는 엄청난 통증을 입을 악물어 참아 내며 일레인은 더듬더듬 측문으로 향했다.

때마침 달도 없는 밤.

측면으로 갈수록 어둠은 더욱 짙어져 한 치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지경이었다.

벽을 더듬어 간신히 문에 다다른 일레인은 문과 벽의 가장자리를 손바닥으로 훑었다. 쓰인 일이 거의 없는 문이라 아무리 더듬어도 걸쇠가 어디 있는지 손에 잡히지 않았다.

한참을 더듬거리고 있을 때, 갑자기 뒤에서 ‘아가씨’ 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일레인은 정말 고양이 블루가 펄쩍 뛰듯 몸을 비틀었다. 소리는 내지 않을 정신이 있는 게 다행이었다.

“저예요, 아가씨. 안나. 아가씨가 이럴 줄 알고 제가…….”

어둠 속에서 책망을 늘어놓던 안나가 휴우 한숨을 쉬더니, 곧 이어 꾸물꾸물 희미한 빛 속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내민 손바닥 위엔 두꺼운 천으로 불빛을 가렸던 작은 유리등이 놓여 있었다.

“이거 들고 계세요. 제가 걸쇠 찾아볼게요.”

“…….”

일레인은 말없이 등을 받아 문에 비췄다. 저 아래, 무릎 높이에서 걸쇠가 보였다.

안나가 무릎을 꿇고 걸쇠를 벗겨 냈다.

“그거 가지고 가세요. 정원을 지날 때는 절대 천 벗기시면 안 되구요. 별채 뒤로 돌아가시면 작은 쪽문 있는 거 아시죠? 그거 아까 제가 슬그머니 열어 놓았어요. 그러니까 그리고 들어가시면 일 층엔 아무도 없으니까…….”

말을 하다말고 또 안나가 숨을 휴우 쉬었다.

“아이 정말, 내가 우리 아가씨 신세 다 망치는 거 아니야…….”

혼잣말을 구시렁거리며 스스로 머리를 콩콩 쥐어박은 안나가, ‘하긴 사랑을 어떻게 말리겠어. 암, 사랑을 어찌 말려.’라고 또 중얼거리며 끼익끽 우는 문을 천천히 열었다.

“고마워. 이 도움, 잊지 않을게.”

일레인은 안나의 뺨이라 생각되는 곳에 감사 인사를 하려고 입술을 내밀었지만, 뾰족한 코였다.

안나가 에퉤퉤 손으로 침을 닦아 내며 한 걸음 물러섰다. 그러더니 다시 다가서서 일레인의 망토를 여며 주기 시작했다.

“아우, 진짜. 들키면 아가씨야 주인이니 괜찮지만 저는 정말 잘린다고요. 그럼 주인 아가씨 밤마실 도와준 시녀를 누가 쓴다고요. 어서 가요. 절대 들키지 마시고요. 들켜도 저는 모르는 일이에요. 아시겠죠?”

잔소리를 폭풍처럼 늘어놓으며, 별채까지 십 분 넘게 걸어야 하는 정원에서 혹여 차가운 밤기운에 감기라도 들까 안나는 바삐 손을 놀렸다.

“별채 뒷문이에요, 아가씨. 뒷벽 중앙 뒷문.”

걱정이 되어서 계속 속삭거리는 안나를 뒤로 하고 일레인은 드디어 정원으로 나섰다.

밖은 별빛 때문에 훤했다.

어둠에 적응하느라 한껏 커진 눈동자로 하늘 가득 반짝거리는 별빛이 쏟아져 내렸다.

축복처럼.

펠릭스를 향하는 자신의 마음처럼, 온 세상이 펠릭스의 무사 귀환을 기원하며 찬란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일레인은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부드러운 울 슬리퍼는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았다.

가슴을 뚫고 튀어나올 듯 쿵쾅거리는 심장의 열기를 차가운 밤바람에 식히며 일레인은 드디어 별관 앞에 다다랐다.

이 층과 삼 층에서 꼬물거리는 불빛이 새어 나고 있었다. 펠릭스도, 알베르토 경도 깨어 있었다.

일레인은 재빨리 별채의 뒤쪽으로 돌아갔다. 응달진 곳이라 채 녹지 않은 눈이 얼음이 되어 버석거리며 부서졌다.

굳건히 닫힌 문을 일레인이 온 힘을 다해 밀기 시작했다.

끼익끽 끼이이익.

별채가 지어진 이래 한 번도 열리지 않았던 문이 내키지 않는 듯 뻑뻑하게 신음하며 조금씩 조금씩 안으로 밀리기 시작했다.

간신히 몸을 밀어 넣을 정도로 열린 틈새가 생겨났다. 일레인은 손을 쭉 뻗고 안으로 들어가, 다시 또 문에 등을 대고 밀었다.

끼익끼익.

아까보다는 수월하게 문이 제자리를 찾아갔다.

“우후.”

비로소 안도의 숨이 나왔다.

남들 눈에 띌 것은 사실 손톱만큼도 걱정하지 않았다. 그깟 평판 따위. 펠릭스와 함께 있기 위해서라면 지금 당장 루덴의 밤거리를 발가벗고 걸으라고 해도 걸을 수 있다.

그래도 소리 없이 기척을 죽여 걸어온 건 혹시라도 남의 눈에 띄어 펠릭스와 함께 있을 기회를 빼앗길까 두려워서였다.

걷는 걸음마다 얼마나 노심초사 긴장을 했는지 온몸이 속옷까지 온통 땀투성이였다.

서너 번의 심호흡으로 긴장을 덜어 낸 일레인이 등에서 천을 벗겼다. 그리고 한층 밝아진 시야로 빠르게 이 층으로 통하는 계단을 올랐다.

펠릭스의 거처로 통하는 문이 나왔다. 일레인은 살짝 문을 밀었다. 이번 문은 소리도 없이 부드럽게 활짝 열렸다.

종종걸음으로 들어선 일레인은, 정작 열기만 하면 펠릭스를 마주할 문 앞에서 선뜻 문고리에 손을 올리지 못했다.

펠릭스는 요 며칠 욕망에 힘들어했다.

가볍게 입술을 맞댄 키스는 머지않아 격렬하게 혀가 밀고 들어오는 진한 키스로 변질되었다. 그리고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목 주변을 배회하던 그의 손은 곧 일레인의 가슴을 파고들어 아프게 매만졌다.

다리는 또 어떠한가.

근육으로 다져진 튼실한 허벅지는 키스가 시작되자마자 일레인의 허벅지 사이를 밀고 들어와, 야릇하게 자극했다.

혀와 손, 다리가 주는 자극에 일레인도 금세 정염에 싸여, 그의 목을 감쌌던 손을 어느새 그의 곱슬거리는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그의 다리에 벌려진 허벅지는 저도 모르게 그의 중심에 다가가고자 바르작거리며 마구 밀어붙이고.

그러면 펠릭스는 점점 커지는 그의 불룩한 중심을 어쩌지 못해 고통스러운 신음을 잇새로 흘리며 일레인의 어깨를 잡아 밀어내곤 했다.

전력질주한 말처럼 푸우푸 거칠게 숨을 뱉는 그의 가슴이 헐떡거리며 부풀어 오를 때마다, 충족되지 않는 욕망에 그의 눈동자가 깊어지고 깊어져 검게 빛을 낼 때마다.

일레인의 입 안도 바싹바싹 사막의 모래처럼 버석거렸다. 아무리 마셔도 채워지지 않을 욕망의 갈증에 휘둘리며, 일레인은 기껏 밀어낸 펠릭스의 가슴을 다시 파고 들었다.

그럴 때마다 펠릭스는 마법의 주문처럼 속삭이곤 했다.

“아아, 결혼하고 싶어, 일레인. 당장이라고 결혼식을 올리고 싶어. 아아 당장 네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

아아.

아아아.

그렇게 필사적으로 참아 내는 욕망을 지금도 참을 수 있을까.

이 문을 열고 펠릭스를 마주했을 때, 늘 채워지지 않는 갈증처럼 온몸을 압도하는 욕망을, 나는 참아 낼 수 있을까.

참아야 할까.

어쩌면 다시는 안아 볼 기회가 없을지도 모르는데.

우린 이미 마음 속으로는 백 번도 천 번도 넘게 혼인을 올렸고. 엊그제는 가족 예배실에서 성경에 손을 얹고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함께 할 것이란 맹세도 나누었는데!

콰당!

망설였던 것만큼이나 강한 힘으로 일레인은 펠릭스의 침실 문을 열어젖혔다.

“일레인!”

가죽 트렁크에 짐을 싸고 있던 펠릭스가 놀란 얼굴로 소리쳤다.

일레인은 단호하게 펠릭스를 향해 다가섰다.

들고 온 등을 서랍장 위에 올린 일레인은 놀라 얼어붙은 펠릭스의 목을 감았다.

“이대로는 못 보내, 펠릭스.”

속삭이며 일레인은 펠릭스의 입술에 떨리는 입술을 가져다 대었다.

다른 때 같으면 벌써 한껏 입을 벌리고 혀로 밀고 들어왔을 펠릭스건만, 이날은 손가락 끝 하나 꼼짝도 하지 않은 채 그저 서 있었다.

상관없다. 펠릭스가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나는 펠릭스를 이대로 보낼 수 없어.

그가 떠난 뒤 희망과 공포에 번갈아 떨며 기나긴 하루를 보내야 하는 나를 위해, 나는 펠릭스를 새겨 넣을 거야.

일레인은 펠릭스에게서 배운 대로 혀를 내밀어 굳게 닫힌 그의 치아를 핥았다.

흠칫, 몸을 떠는 펠릭스가 느껴졌다.

잘게 떨리는 그의 몸이, 차마 제어하지 못할까 이를 악무는 그의 욕망이 일레인의 욕망에 불을 붙였다.

“펠릭스. 펠릭스. 나는 당신을 느끼고 싶어. 펠릭스.”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도 인식하지 못하면서 일레인은 착실하게 그동안 펠릭스에게 배운 가르침대로 행하였다.

완강하게 닫힌 그의 치아를 혀로 두드리고, 그 옆의 치열을 핥았다.

“하아아.”

참았던 숨을 내쉬며 펠릭스가 머뭇머뭇 입을 벌렸다. 그 틈을 이용해 일레인은 재빨리 그의 입 깊숙이 혀를 밀어 넣었다.

“이, 일레인, 이, 이러면…….”

나는 오늘, 정말로 참지 못할지도 몰라.

애타는 펠릭스의 저항의 말이 속절없이 일레인의 키스에 빨려들었다.

키스로는 성에 차지 않았다.

일레인은 혀로 여전히 펠릭스의 입 안을 탐하며, 손을 내려 느슨하게 걸쳐 입은 펠릭스의 셔츠 안을 파고들었다.

흠칫, 몸을 굳혔던 펠릭스가 아까보다 더 떨기 시작했다.

손끝에 와닿는 단단한 근육이 잘게 진동하며 일레인의 몸도 덩달아 욕망으로 끓어오르게 했다.

“일레인.”

몸을 뜨겁게 자극하는 일레인의 손을 떼어 내 입으로 가져가며 펠릭스가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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