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 부인의 에로스-63화 (63/112)

#제63화. 격정에 싸인 어린 연인들

‘앗, 내 몸의 냄새는?’

문득, 펠릭스는 지난 사흘 내내 말을 갈아타며 쉬지 않고 달려오느라 갈아입지도 못한 옷에서 날 냄새가 걱정되었다.

펠릭스가 일레인을 밀어내며 걱정스럽게 속삭였다.

“일레인, 드레스에 땀 냄새 배는데.”

그러나 일레인은 아예 목을 감아 들며 펠릭스의 품속을 파고들었다.

“아아, 뭐든, 무슨 냄새든 내겐 다 좋아요. 펠릭스 냄새라면 뭐든 다 좋아. 아아, 너무 그리웠어.”

그리웠어, 펠릭스.

이렇게 안아 보니 알겠어. 나는, 나는, 펠릭스.

“당신 없이 못 살 것 같아. 너무 보고 싶었어. 죽을 것처럼 보고 싶었어, 펠릭스.”

늘 냉정한 우아함을 유지하던 일레인에게 좀처럼 볼 수 없었던 격정이었다.

차분하던 일레인에게서 터져 나온 애정이 펠릭스에게도 불을 당겼다. 펠릭스는 두 손으로 일레인의 얼굴을 감쌌다.

일레인의 눈가를 적신 기쁨의 눈물이 달빛을 받아 이슬처럼 반짝거렸다. 눈동자에 담긴 뜨거운 애정이, 갈망이 펠릭스의 온몸을 뜨겁게 달궜다.

“사랑해, 사랑해. 일레인.”

나도 죽을 것처럼 네가 보고 싶었어. 사흘 내내 말 등에서 내려오지 못할 만큼.

펠릭스가 뜨겁게 일레인의 입술을 덮으며, 사랑을 속삭였다.

나도 널 사랑해, 펠릭스.

일레인의 혀가 거침없이 펠릭스의 혀를 감아들었다. 석 달의 이별 동안 홀로 참아야 했던 그리움만큼 절절해서 거친 몸짓이었다.

격정적으로 몸을 붙여오는 일레인에게 펠릭스는 그만 자제력을 잃고 말았다.

이곳이 안채로 통하는 정원이라는 점도, 연회장의 누군가가 밀회를 즐기기 위해 문을 열고 나왔다가 들킬 수 있다는 사실도 잊은 채, 펠릭스의 손은 일레인의 로브 드레스 목단을 와락 뜯어냈다. 그리고 어둠 속 진주처럼 희게 빛을 내는 가슴에 손을 올렸다.

“보고 싶었어, 일레인.”

하아.

일레인의 손도 펠릭스의 베스트 단추를 마구잡이로 뜯어냈다. 펠릭스의 입술과 숨결에 현실을 놓아버린 일레인의 손길이 거침없이 펠릭스의 셔츠 안으로 파고들었다.

“하아.”

단단하고 뜨거운 펠릭스의 가슴이 일레인의 손끝에 닿았다. 거칠어진 숨을 따라 리드미컬하게 움직이는 가슴을 손바닥으로 쓰다듬으며, 일레인은 더욱 가까이, 가까이, 그의 몸과 하나의 몸으로 영원히 함께하고 싶다는 갈망에 열병처럼 휩싸였다.

“펠릭스, 펠릭스. 당신을 가지고 싶어.”

제 입이 무슨 말을 지껄이는지도 모르면서 일레인은 더욱 가깝게 몸을 붙였다.

“하아, 일레인, 일레인. 내 사랑.”

거침없이 안겨 오는 일레인의 몸이 주는 자극에 펠릭스의 몸이 덜덜 떨렸다. 손안 가득 채우는 부드러운 가슴이 거칠어지는 일레인의 숨결을 따라 손바닥을 간지럽혔다.

네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 너와 하나가 되고 싶어, 일레인. 너를, 너를!

정신없이 일레인의 몸을 탐하던 펠릭스가 채워지지 않는 욕망에 일레인의 목을 콱 깨물고 말았다.

“아!”

목에서 느껴지는 따끔한 통증에 불현듯, 일레인은 정신이 번쩍 났다.

‘이, 이게, 무슨……. 미쳤나 봐. 남들이 보면 어쩌려고.’

당황해서 몸을 떼어 내는 일레인의 귀에 난처한 듯 큼큼, 인기척을 내는 기침 소리가 들였다.

“저, 크흠, 펠릭스 씨, 씻으실 물이…….”

차마 다가오지 못하고 저 멀리서 역시 어둠에 몸을 숨긴 채 집사장 뷰컴이 어둠 속 격정에 쌓인 어린 연인들을 향해 외쳤다.

뷰컴 씨는 사실 아까부터 저 둘에게 위험한 현실을 일깨워 주고 싶었다. 그러나 일레인은 늘 흐트러짐 하나 없이 완벽한 주인이었기에 감히 무어라고 입을 떼어야 할지 감도 오지 않았다.

그러나 더 이상은 위험했다. 그래서 두 사람의 몸짓이 잠시 멈춘 듯한 틈을 타 결국 끼어들고 만 거였다.

“뷰, 뷰컴. 알, 알았어. 물러가서 기, 기다려.”

당황한 일레인이 평소 존대하던 버릇도 잊고 뷰컴부터 물렸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펠릭스의 코트는 얼어붙은 땅 위에 아무렇게나 팽개쳐 있고, 단추가 뜯겨 열린 베스트 아래 셔츠도 엉망으로 벌어져 있었다.

일레인의 옷차림도 다르지 않았다.

등 뒤의 작은 단추들은 모두 뜯겨나가서 로브 드레스 상의가 느슨하게 풀어 헤쳐져 있다. 흘러내린 드레스 위로 새하얀 가슴이 절반이나…….

일레인은 화들짝 가슴부터 두 손으로 가렸다.

“펠, 펠릭스, 가서 목욕해. 씻고 옷을 갈아입어야 하는데, 전에 입던 옷 뷰컴 씨더러 내놓으라고 하면…….”

펠릭스는 뒤늦게야 부끄러워하는 일레인이 참을 수 없이 사랑스러웠다.

마음 같아서는 이대로 안고 들어가…….

하아, 일레인, 나의 일레인. 나의 보물, 나의 사랑, 나의 전부.

펠릭스는 거친 호흡으로 식지 않은 욕망을 뱉어 내며 바닥에 나뒹군 코트를 집어 들었다.

“춥겠다, 일레인. 이거 걸치고 가서 드레스 갈아입어. 이따 연회장에서 보자.”

펠릭스가 코트를 일레인의 어깨 위에 둘러 주고 몇 개 남지 않은 단추를 채웠다. 그리고 살짝 뺨에 입술을 대며 다시 한번 ‘사랑해, 일레인’ 속삭이며 고백을 했다.

두 사람은 겨울의 냉기에 욕망을 식히며 안채로 행했다.

입구에서 펠릭스는 고개도 못 드는 일레인의 입술을 다시 한번 재빠르게 훔치고 손님용 거처로 안내하는 뷰컴을 따라갔다.

일레인은 펠릭스의 코트로 단단히 몸을 감싸고 서둘러 3층 거처로 향했다. 엉망으로 흐트러진 머리를 다시 꾸미고 드레스를 갈아입어야 했다.

걸을 때마다 어깨와 등을 감싼 코트에선 펠릭스의 냄새가 진하게 풍겼다.

땀 냄새, 사내 냄새, 그리고 쉴 새 없이 달리는 말의 등에서 묻어난 짐승의 냄새.

“하아.”

향취는 순식간에 뇌 저 깊은 곳에 닿아 겨우 가라앉힌 격정을 되살렸다.

“미쳤나 봐, 정말.”

일레인은 양손으로 뺨을 살짝 치고 말았다.

“어머, 어머, 아가씨! 이게 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거처에 들었을 때, 안나가 눈을 크게 뜨고 비명을 질렀다.

“이 더러운 코트는 뭐고, 아가씨 옷차림이 왜, 이게, 무슨. 어떤 개놈이! 감히, 우리 아가씨를! 죽여 버릴 거야!”

엉망으로 흐트러진 옷차림과 먼지와 땀투성이 코트를 보고 오해한 안나가 사내 하인을 호출하려고 설렁줄에 손을 뻗었다.

일레인이 화급하게 안나의 손을 끌어당겼다.

“아냐, 아냐. 펠릭스가 왔어.”

“예에?”

그제야 이게 무슨 상황인지 파악한 안나가 헙, 두 손으로 입을 가리고 눈알을 또르르 또르르 굴렸다.

‘아가씨가 이렇게 분별없이 막, 사내랑 막, 아니, 약혼도 안 했는데, 아무리 환장하게 잘생겨도 그렇지. 어떻게! 미쳤나 봐, 우리 아가씨!’

눈빛으로 한참 꾸짖은 안나가 몸을 팽 돌리며 말했다.

“장미수랑 향유랑 물수건 준비해 올 테니까요. 아무리 펠릭스 님이 좋아도 그 냄새 나는 코트는 좀 저 세탁물 바구니에 던져 놓으시고요. 머리 땋은 거나 풀고 계세요.”

꾸짖은 안나는 투왈렛실로 필요한 걸 챙기러 나갔다.

문이 닫히고, 안나가 슬쩍 뒤를 돌아봤다.

“사랑은 미친 열병이라더니, 세상 단정한 우리 아가씨 꼴 좀 봐.”

안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가볍게 걸음을 옮겼다.

* * *

“어머, 아가씨! 이 실크 드레스를요?”

오늘 우리 아가씨가 정말!

안나가 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물었다.

평소에는 그렇게 권해도 단색의 차분한 드레스만 입던 일레인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금사와 은사, 색색의 비단실로 들장미를 화려하게 수놓은 상아빛 실크 드레스를 골랐다.

사랑의 힘이란, 정말.

“오늘 주인공은 엘리자베스 공주님과 다이앤 아가씨라고 회색 그 칙칙한 노부인이나 입을 법한 드레스를 입으시고선, 에헤이, 펠릭스 님이 오셨다고 새 신부처럼! 이게 뭐야, 정말!”

“그만 놀리고 어서 입혀 줘.”

얼굴을 붉힌 일레인이 짐짓 화를 냈다.

헤헤 웃으면서 드레스 시중을 마친 안나가 장신구 함에서 다섯 줄짜리 화려한 진주 초커 목걸이를 꺼내 왔다.

“아, 이것까지 걸치면 너무 과한데. 그냥 저 가느다란 백금 목걸이를…….”

“흥, 아가씨. 아가씨는 뒤에 눈이 안 달려 모르시지요? 지금 목덜미가 울긋불긋, 펠릭스 씨 입술 자국이 가득해서…….”

“아앗!”

부끄러움에 일레인의 온몸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어쩌지? 어서 목걸이를, 아니 아니, 차라리 스카프를 할까?”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는 일레인을 보며 안나는 고개를 돌리고 자꾸 올라가는 입꼬리를 큼큼, 억지로 끌어 내렸다.

열 살 때부터 일레인을 모신 안나다. 어린 귀족 아가씨가 나이에 맞지 않게 너무 의젓하고 위엄이 있어서 감탄스러우면서도 때로 마음이 아팠는데.

이렇게 어쩔 줄 몰라 부끄러워하는 일레인을 보자 제 나이에 맞는 감정과 사랑을 비로소 찾은 것 같아 마음이 뭉클하게 기뻐 자꾸 웃음이 났다.

자꾸 놀리고 싶어졌다!

“숄로 가리면 될까, 안나? 어떻게 해. 아이.”

일레인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말았다.

어머, 어머, 대책 없이 귀여워라, 우리 아가씨!

일레인이 아이처럼 칭얼대서 안나는 기어코 하하핫, 유쾌하게 웃고 말았다.

“이렇게 순진하시다니까, 우리 아가씨는. 아가씨가 펠릭스 님과 나가시는 걸 연회장의 거의 모든 이들이 목격했을 터인데, 한 시간이나 지나서 드레스를 갈아입으신 걸로도 모자라 목까지 꽁꽁 가리고 나타나 보세요. 무어라고들 속닥거릴지.”

“!”

일레인의 얼굴이 달궈진 석탄처럼 빨개졌다.

“아, 그렇구나, 그렇지. 그게 더 이상하지. 아이 그럼 어쩌지? 목걸이가 움직이면 어떻게 해.”

“걱정 마세요, 다 수가 있답니다.”

안나가 화장솜을 들어 백분 가루를 듬뿍 묻힌 다음 일레인의 목에 톡톡 두드렸다. 창백한 목의 피부에 꽃처럼 피어올랐던 펠릭스의 입술 자국이 감쪽같이 가려졌다.

그 위에 안나가 작은 진주가 가지런히 달린 다섯줄로 겹쳐진 진주 초커 목걸이를 채워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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