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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은 셀프입니다 (168)화 (168/172)



<168>

란타나는 어린 시절부터 스스로가 다른 사람들과는 상당히 다른 존재라고 인식해 왔다.

인간이 아닌 것처럼 아름다운 얼굴, 반짝이는 재치, 타인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재주까지.

자신은 특별하다. 그 사실은 란타나에게 부정할 수 없는 진리였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이게 뭐야? 맛이 이상하잖아! 다시 만들어서 대령해!”

“죄송합니다! 새로 만들어 가져오겠습니다!”

란타나의 가족은 작은 식당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억지를 부리는 손님에게 언제나 고개 숙여 사과하고는 했다.

‘도대체 왜?’

어머니나 그녀의 손위 자매들 역시 아름다운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들은 일부러 얼굴을 수수하게 위장한 채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왜 그렇게 사는 거지?’

저 아름다운 외모를 이용하면 훨씬 높은 곳에 올라갈 수 있을 텐데. 란타나는 도저히 가족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게다가 그녀가 더더욱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또 있었다. 바로 귀족의 존재였다.

“자작님이 지나가신다! 어디서 평민 따위가! 저리 썩 꺼지지 못해?”

“에헴.”

귀족이라는 자들은 언제나 턱을 치켜들며 거들먹거렸다. 자신들이 귀족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이상해.’

란타나는 신분제라는 것을 도저히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저렇게 못나고 멍청해 보이는 인간이 단지 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떠받들어지고 있다니.

‘어떻게 봐도 저따위 인간보다는 내 쪽이 훌륭하지 않아?’

정말로,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몇 년이 더 지났을 때의 일이었다.

“란타나, 이리 오렴.”

그녀의 모친이 란타나를 앉혀 두고는 비밀 이야기를 하듯이 입을 열었다.

“이제 너도 알아야 할 나이가 되었구나. 우리는 죄인의 후손이라는 것을 말이야.”

“죄인의 후손이요?”

그날 그 자리에서, 란타나는 모친에게 놀라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벨라 일족과 그들이 가진 비밀, 그리고 소원을 이룰 수 있는 칼의 존재까지였다.

“이 단검으로 인해 많은 사람이 죽어 왔단다. 그러니 우리는 요정의 영혼이 갇힌 이 칼과 일족에게 얽힌 저주를 없앨 방법을 찾아야만 해. 그것이 우리의 사명이란다.”

란타나의 가슴이 거세게 뛰기 시작했다. 자신이 요정의 후손이었다니! 역시, 보통 인간과 다르다고 생각한 것이 착각이 아니었다.

그러나 동시에, 그녀의 어머니와 자매들에게는 크게 실망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이 단검으로 고작 일족을 100명 죽이기만 한다면, 그 어떤 소원이라도 이룰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이 좋은 걸 놔두고 어째서 사용하지 않고 없애겠다는 생각을 하는 거야?’

란타나의 눈에는 기회를 썩히기만 하는 가족들이 바보로 보이기만 했다. 그래서 결심했다. 이 칼의 진정한 주인이 되겠다고.

그녀가 17살이 되던 날.

란타나는 100명의 희생양을 채우기 위해 어머니와 자매들을 죽이기로 했다.

실행은 쉬웠다. 가족인 그녀들은 란타나에게는 무방비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위기는 있었지만.

“란타나! 어째서 네 언니를 죽인 거야-! 넌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니!”

“…….”

“널 이대로 놔두면 언젠가는 더 큰 일을 벌이겠구나. 너를 제대로 키우지 못한 내 잘못이야. 엄마인 내가 너의 목숨을 거두겠어-!”

모친이 란타나의 하얀 목에 손을 가져왔다. 힘을 주기만 하면 가느다란 목이 꺾일 것만 같았다.

“어떻게 네가…….”

그러나 모친의 손이 멈췄다. 그녀는 엄마였다. 사랑하는 아이를 제 손으로 죽일 수 없었던 것이다.

휙-!

그리고 란타나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가족이 뭐라고 멍청하게.

그녀는 모친을 제압한 뒤, 소원을 이룰 제물로 삼는 데 성공했다. 죄책감은 없었다. 거리낄 것도 없었다.

란타나는 고향을 떠난 뒤, 우선은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높은 신분을 얻겠다고 결정했다.

그녀는 수도로 향하는 갈림길의 호숫가로 향했다. 그리하여 그곳을 지나가는 귀족을 유혹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건 란타나를 위한 행운이었을까.

“…당신처럼 아름다운 사람은 처음 봅니다. 갈 곳이 없다면, 저와 함께 가시지 않겠습니까?”

가장 처음 만난 사람이 제국의 황제였다. 란타나는 기꺼이 그의 손을 잡았고, 황제의 디르케가 되었다.

그 뒤로도 거칠 것이 없었다.

디르케라는 지위와 그녀의 수완이 있으니 돈도 사람도 알아서 몰려들었다. 모든 것이 란타나의 의지대로 흘러갔고 바라는 건 전부 가질 수 있었다.

‘벨라의 영혼에게 소원을 빌어, 이 세상의 주인이 되게 해 달라고 말하려고 했는데.’

굳이 그럴 필요도 없었다. 그런 비현실적인 힘이 없어도 란타나는 스스로의 손으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모든 것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었을까. 란타나에게 처음으로 무서운 것이 생겼다.

죽음.

손에 쥐게 된 것이 많아졌더니 이제는 죽는 것이 두려워졌다. 많은 것을 제 의지대로 할 수 있었는데 죽음만은 그렇지 않았다.

그랬기에 란타나는 칼에게 다른 소원을 빌기로 했다. 영원히 죽지 않도록 불로불사의 영생을 달라고.

그녀는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벨라 일족을 찾아다녔다. 황제의 정부 후보를 찾는 척, 미인이 있다는 장소를 수소문해 일족을 찾아낸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제물의 수는 늘어났고 그녀의 계획에는 아무런 오점이 없었다.

그러니까, 네리아 발렌티스를 다시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반가워요, 레이디 발렌티스! 저는 란타나랍니다. 편하게 이름으로 불러 줄래요?’

처음에는 호의였다.

란타나는 바닥에서 기어 올라온 자들을 좋아했다. 능력이 있는 만큼 효율적으로 이용하기도 좋았으니까.

네리아가 자신에게 날카롭게 반응해도 괜찮았다. 어차피 란타나에게는 렌샤가 있다. 방해되는 인간 따위는 마음만 먹으면 죽일 수 있다. 그랬기에 란타나는 언제나 여유로울 수 있었다. 그런데.

“잠깐, 당신.”

“네?”

“…그냥 기사가 아니군요?”

광전사를 발견했다. 광전사는 절대 살려 둬서는 안 될 존재였다. 늘 그랬던 것처럼, 방해되는 인간은 제거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실패했다.

그리고 그것이 시작이었다.

네리아 발렌티스와 듀이.

두 사람과 본격적인 적대 관계가 되면서부터 란타나의 일상이 휘청였다. 그리고 그들로 인한 마지막 결과가 바로 이것.

“그만… 그만둬.”

란타나는 제 심장에 박힌 단검을 보며 극도의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죽고 싶지 않았다. 저항하고 싶은데 속박 마법으로 인해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네, 리아 양…….”

눈앞에 란타나와 똑같은 분홍색 눈을 가진 미인이 있었다. 그녀는 란타나를 악마라도 되는 것처럼 노려보고 있었다.

왜? 자신은 단지, 스스로의 욕망을 따랐을 뿐인데.

‘란타나.’

눈앞에 환각이 보였다. 어머니가 그녀에게 손을 내밀고 있었다.

‘기다렸단다. 이제 떠나자꾸나.’

떠나? 내가 왜?

란타나가 어머니의 손을 쳐 냈다. 죽고 싶지 않았다. 억울했다. 자신은 특별한 인간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겨우 이런 곳에서……!

“싫어! 싫-”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란타나가 멀어지려는 의식을 붙잡으며 더욱 크게 눈을 떴다. 그런데도 눈앞이 암흑으로 물들어 갔다.

***

“…드디어 끝이야.”

나는 란타나의 마지막 모습을 바라보며 숨을 가쁘게 내쉬었다.

제 욕심을 위해 사람을 마음대로 죽여 온 주제에, 대체 무엇이 억울했던지 란타나는 죽으면서도 눈을 감지 못하고 있었다.

망할 인간.

눈을 감겨 줄 생각도 들지 않았기에 나는 란타나를 경멸하듯 쳐다보고는 바닥으로 내려왔다.

벽에 등을 기대서 벨라의 칼을 살펴보자, 남아 있던 한 개의 흰색 보석이 붉은색으로 바뀌어 있었다. 제물의 숫자를 전부 채운 것이다.

“…하하, 하.”

나는 그 모습을 보며 허탈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겨우 이게 뭐라고.”

웃고 있는데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나왔다. 란타나를 죽이면 후련해질 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았다.

내 인생은 고작 이것 때문에 뒤틀리기 시작했다. 사지석화증으로 죽은 것부터 나 혼자 평행세계로 떨어진 것까지.

행복해지고 싶어서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았다. 그런데 아무런 잘못도 없는데 불행의 구렁텅이로 발이 당겨지고 말았다.

물론, 행복한 기억도 있었다. 듀이를 만났다. 하지만 그 듀이마저 이것 때문에 죽어 버리고 말았다.

“겨우, 겨우.”

그냥, 허망했다.

비처럼 쏟아지는 눈물은 도저히 그치지 않았다. 나는 흐르는 눈물을 닦지도 않은 채, 흐린 시야 너머로 단검을 응시했다.

사용하는 방법을 배우지는 않았지만, 일족의 피에 흐르는 본능이 알려 주었다. 나는 칼의 손잡이를 두 손으로 잡고는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내 소원을 들어줘.”

그렇게 말했던 순간이었다.

단검에서 눈이 부실 정도의 빛이 쏟아졌다. 넋을 잃을 정도로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내 마음은 지옥 끝에 떨어져 있는데도.

어느새 환한 빛이 잦아들었다.

“안녕.”

나는 눈을 커다랗게 떴다.

요정이 나타나 있었다.

그것은 청록색 머리카락에 분홍색 눈동자를 가졌고, 손바닥 크기의 자그마한 형태를 하고 있었다.

나는 저 모습을 삽화에서 본 적이 있다. 벨라였다.

“나는 요정왕의 딸, 벨라. 당신의 바람을 이뤄 주기 위해 나타났어요.”

인간이 아닌 존재가 눈앞에 있었다. 거짓이 아니었다.

살면서 두 번은 겪어 보지 못할 비현실적인 경험에 들뜰 법도 했으나 나는 조금 놀라기만 했을 뿐, 요정의 등장은 나에게 아무런 감흥도 가져다주지 않았다. 그런 감정을 느끼기에는 나에게 생긴 상처가 너무나도 컸기 때문이었다.

“말해 봐요. 당신이 소원은 무엇인가요?”

“…….”

소원. 소원이라.

나는 대답 없이 허공을 바라보았다. 나에게는 목표가 있었다. 소원을 빌어 일족에게 걸려 있는 저주를 없애는 것이었다.

하지만 말 한마디면 듀이를 되살려 낼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나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듀이라면 어떻게 대답했을까?’

하지만 그 가정에는 조금의 의미도 없었다. 듀이라면 분명, 1초의 고민조차 없이 나를 되살렸겠지.

“하하.”

또다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요정은 고요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벨라의 눈을 똑바로 마주하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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