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구원은 셀프입니다 (160)화 (160/172)



<160>

란타나를 비롯한 관련자들은 전부 빠짐없이 감옥으로 보내졌지만, 서궁에서는 아직도 수색 작업이 이어지고 있었다.

벨라 일족의 칼을 찾기 위해 서궁 내부를 조사할 수 있게끔 레오니트가 힘을 써 준 덕분이었다.

그러나 그의 도움이 무색하게도 문제의 단검은 여태껏 발견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칼을 실제로 목격한 바 있던 칼로스가 그림까지 정성껏 그려 주었는데도.

“아직도 나오지 않았다고요?”

“예, 레이디 발렌티스.”

황태제궁 소속의 기사 한 명이 나에게 미안하다는 듯이 고개를 숙였다. 그러고서는 손을 들어 각종 칼을 모아 둔 장소를 가리켰다.

“지금까지 서궁에서 발견한 칼을 전부 가져다 놓은 것입니다. 이 안에서는 레이디께서 찾으시는 물건이 없습니까?”

“애석하게도 그렇네요.”

나는 고개를 돌려 기사가 가리킨 위치를 바라보았다. 전투용 검부터 식칼까지 종류가 다양했지만, 정작 나에게 필요한 단검은 없었다. 아쉬움에 표정이 흐려졌다.

‘어디에 숨겨 뒀을까?’

그들의 실패는 란타나 본인도 예상하지 못했을 일이었다.

사건 후에 서궁이 포위되었고 관련자들도 몸수색을 받아야 했으니 칼을 다른 곳으로 빼돌릴 여유는 없었을 터였다.

혹시 레벤 후작 같은 그녀의 부하에게 보낸 건 아닐까 그런 생각도 해 보았지만, 란타나가 그렇게나 중요한 물건을 타인의 손에 맡길 것 같지는 않았다. 분명 서궁 안에 있을 것 같은데.

“…경, 그럼 수색을 마저 부탁드릴게요. 궁 안에 비밀 장치가 숨겨져 있을 수도 있으니, 그런 쪽도 꼼꼼하게 살펴봐 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레이디.”

란타나의 일로 보고서 제출 등 할 일이 많으니 일단은 저택으로 돌아가야겠지만, 급한 일이 끝나면 나도 수색 작업에 같이 참여하는 편이 좋을 것 같다.

다행인 점이 있다면 란타나와 그 시중인들을 붙잡은 상태이니 시간적인 여유가 있다는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며 서궁을 빠져나가려던 때였다.

“칼로스 양!”

때마침 근처를 지나가는 주황색 머리카락의 소녀를 발견하고는 반가운 마음에 손을 흔들었다.

칼로스는 서궁의 관계자로 원래라면 다른 시녀들처럼 감옥에 가야 했지만, 마차 사고의 진상을 밝히는 데 도움이 되었다는 공적으로 처벌을 피해 갈 수 있었다.

게다가 란타나가 벌을 받은 것에 심히 만족했는지 칼로스의 얼굴이 무척이나 밝아져 있었다.

“안녕하세요, 네리아 님!”

“안 그래도 찾을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만났네요! 칼로스 양은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인가요? 다른 계획이 없으면 저희 발렌티스 저택에서 지내는 건 어때요?”

같은 일족인 데다 란타나에게 가족을 잃었다는 공통점이 있어서인지 이제는 마치 친동생처럼 느껴지는 그녀였다.

어차피 각종 사업으로 벌어들이는 돈도 많은데 칼로스 한 명을 거두는 것쯤이야 일도 아니다.

원한다면 수도에서 부족함 없이 지낼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을 생각이었건만, 칼로스는 아무런 미련도 없이 고개를 저었다.

“아뇨, 저는 일이 마지막까지 전부 정리되면, 남부의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해요. 어머니랑 같이 살던 집이 그리워서요.”

집은 작지만, 이라며 작은 목소리로 덧붙이는 칼로스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어떤 마음인지 알 것 같아서. 그랬기에 나는 칼로스를 억지로 붙잡지 않기로 했다.

“이해해요. 대신 수도에 놀러 오고 싶어지면 언제든지 와요. 칼로스 양이라면 환영할 테니까요.”

“감사합니다, 네리아 님! 그럼 저는 다른 분들의 수색을 마저 도우러 가 보겠습니다!”

칼로스는 문제의 단검을 직접 목격한 바 있기에 자진하여 서궁에 머물며 탐색에 참여하는 중이었다.

활짝 웃으며 허리를 숙이는 칼로스를 뒤로한 채 서궁을 떠나려는데, 등 뒤로 또다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리아 님, 목걸이를 떨어트리신 것 같은데요?”

“네?”

의아해하며 몸을 돌렸는데, 칼로스의 손에 들린 목걸이가 내 것이 확실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체인이 풀어져서 떨어졌던 것 같았다.

“예쁜데 목걸이치고는 크기가 꽤 크네요.”

“이건 로켓이에요. 약을 보관하는 휴대용 도구죠.”

“약이라면 혹시 네리아 님이 저번에 말씀하신 그건가요?”

칼로스에게는 코르로 만든 약에 관해서 이야기해 준 적이 있다. 그렇다고 답하자 칼로스가 신기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로켓 목걸이를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아… 이런 데다가 보관하셨구나. 그냥 목걸이라고 해도 예쁜데 실용적이기까지 하네요.”

“마음에 들면 줄까요?”

“정말요?”

뭐, 어차피 이제는 필요하지 않은 데다 저택에 더 많기도 하니까. 가벼운 마음으로 건넨 말이건만, 칼로스는 뜻밖의 선물에 기뻐했다.

“감사합니다! 이쪽에 달린 녹색 보석이 저희 어머니의 눈 색깔이랑 비슷해서 마음에 들었어요!”

“더 선물해 줄 수도 있으니까 더 가지고 싶은 게 있으면 말해요. 참, 대신 안에 들어 있는 코르 약은 우리가 먹으면 위험하니까 버리도록 하고요.”

“네, 그럴게요!”

칼로스는 신이 난 모습으로 목걸이를 목에 걸고 있었다. 나는 따뜻한 시선으로 그 모습을 조금 지켜본 뒤, 저택으로 향하기 위해 서궁을 벗어났다.

***

황궁의 지하 감옥 최하층.

렌샤는 회색 머리카락을 흩트린 채, 아무것도 없는 회색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머리카락만큼이나 어두운 색깔이었다.

‘란타나 님…….’

렌샤가 눈을 감고서 그녀의 지난날을 회상했다.

렌샤가 태어난 곳은 사창가였다. 그곳에서 렌샤는 제 친모에게 언제나 이유도 없이 혼이 나기 일쑤였다.

‘이 쓸모없는 것! 나는 남작님의 정부가 될 수 있었는데, 네가 생기는 바람에 전부 망쳤단 말야! 너 같은 건 세상에 필요 없어! 애초에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어!’

‘죄송해요, 죄송해요……!’

쓸모없는 것. 렌샤가 말을 배우기 전부터 들어온 말이자, 그녀를 속박한 저주와도 같은 말이었다.

슬펐다.

렌샤는 쓸모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타인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청소도 빨래도 심부름도 전부 열심히 했지만, 자신에 대한 어머니의 폭언이 사라지는 일은 없었다. 렌샤는 언제나 세상에 필요하지 않은 인간이었다.

하지만, 인생이란 예상치 못한 때에 변하고는 한다.

‘맙소사……! 이런 곳에 이런 대단한 재능이 숨겨져 있었다니! 꼬마야, 이름이 무엇이니?’

터벅터벅 걷던 시장 바닥에서 렌샤는 만났다. 그녀의 인생을 바꿔 준 은인을, 스승님을.

‘저, 저는 렌샤예요.’

‘그래, 렌샤. 나와 같이 마탑으로 가지 않겠니? 마법을 배우거라. 나는 너 같은 제자가 필요해. 너는 분명 제국에 없어서는 안 될 최고의 마법사가 될 거야!’

‘제가 필요한가요?’

‘그럼!’

렌샤가 기뻐하며 스승님의 손을 잡았다. 스승님은 그녀의 어머니에게 값을 치렀고, 렌샤는 비로소 자유가 될 수 있었다.

마탑에서의 생활은 힘들어도 즐거웠다. ‘나도 이 세상에 필요한 사람이야!’ 렌샤는 그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언제나 노력했다.

평범한 마법사를 아득하게 뛰어넘는 기적 같은 재능에 노력까지 더해지니 그 성취는 이루 말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녀의 마탑 동기들 또한 고향에서는 천재니, 신동이니 불렸으나 그들조차 렌샤의 발끝도 따라갈 수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과거에도 그랬듯, 인생이란 예상치 못한 때에 변하고는 한다.

‘스승님! 드디어 고유 마법을 발현했습니다!’

렌샤가 마법사 특유의 고유 마법을 깨우쳤을 때였다. 그녀는 이 기쁜 소식을 가장 먼저 알리기 위해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스승님을 찾았다.

‘오, 축하한다. 렌샤! 네 고유 마법은 어떤 종류이니?’

‘저는-’

렌샤가 기뻐하며 입을 열었다.

그러나 렌샤가 말을 내뱉을수록 스승님의 표정은 굳어지기만 할 뿐이었다.

‘사람을 마수로 만들 수 있다고?’

‘그렇습니다, 스승님! 제 능력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거예요. 사형수를 마수로 변하게 한다든가-’

‘…….’

렌샤가 기뻐하며 말하는데도, 스승님에게서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그 순간, 렌샤는 무언가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날로부터 약 3개월 정도가 지난 어느 날.

‘렌샤, 먹거라.’

스승님이 렌샤를 향해 무언가를 던졌다.

‘독약이다.’

‘도, 독약이요?’

렌샤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스승님은 그녀에게 부모나 마찬가지인 존재였다. 그런데 어째서?

‘네 고유 마법은 너무 위험하다. 네 능력 때문에 대륙이 혼돈에 휩싸이는 미래가 보인다. 큰 전쟁이 발생할 수도 있고, 네가 마음을 잘못 먹기만 한다면 세상에 혼란을 일으킬 수도 있겠지.’

‘아, 아닙니다. 스승님께서 명령하신다면 제 능력을 영원히 사용하지 않겠습니다!’

‘긴말 말고 먹거라. 내 손으로 제자를 죽이고 싶지는 않구나.’

‘스승님, 저는-!’

‘너는 이 세상에 필요 없다.’

‘…….’

필요 없다.

렌샤에게는 사형선고나 마찬가지인 말이었다.

머리 위에 커다란 바위가 떨어진 것만 같았다. 비참했다. 태어난 이래부터 쓸모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항상 노력했는데.

렌샤는 자신이 바라던 세상이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 그녀의 눈동자에서 빛이 사라지며 시체가 된 것처럼 동공이 텅 비어 버렸다.

‘알겠습니다.’

렌샤가 스승님이 던진 독약을 망설임 없이 먹어 치웠다.

하지만 렌샤는 죽지 않았다. 고작 독약을 먹은 걸로 죽기에 그녀는 너무 뛰어난 마법사였다.

렌샤는 스스로가 죽은 것처럼 위장한 후, 다시 스승님을 찾아가 그를 살해하고는 자살로 위장했다.

사람을 죽였다.

그러나 후회는 없었다.

이 세상은 렌샤에게 지옥이었다. 행복해서 웃고 있는 사람들을 볼 때면 위장이 뒤틀렸다. 이딴 세상, 망해 버려. 전부 죽어 버려. 내가 그렇게 되도록 만들 거야.

렌샤는 그렇게 다짐했고, 그날 이후로 종적을 감춘 채 고유 마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스승님의 말처럼 세상에 혼란을 일으킬 작정이었다. 렌샤는 보육원에서 아이들을 데려와 사람을 효율적으로 마수로 만들 수 있도록 실험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어머나, 당신. 대단한 사람이네요. 이름이 뭔가요?’

언제나 그랬듯, 인생은 예상하지 못했을 때 또다시 변해 버린다.

‘마법 실력이 그렇게나 대단한 데다 사람을 마수로 만들 수도 있다고요? 훌륭해요! 나에게는 당신 같은 사람이 필요해요.’

‘네?’

‘나와 함께하지 않겠어요? 주고 싶은 선물도 있어요. 저에게는 당신의 마력을 더더욱 높여 줄 수 있는 괜찮은 물건이 있거든요!’

그것이 란타나와의 만남이었다.

‘스승님이란 사람, 정말 멍청하군요. 나라면, 당신처럼 대단한 사람을 절대 버리지 않았을 거예요. 렌샤는 언젠가 저에게 커다란 도움이 될 거니까요.’

란타나는 자신이 듣고 싶던 말을 아낌없이 해 주었다. 사실은 외로웠는데, 란타나와 함께 있으면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란타나 님, 금방 가겠습니다.’

차가운 지하 감옥의 최하층에서, 렌샤가 다시 눈을 떴다.

쓸모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언제나 바라던 일이었다. 란타나를 위해서라면, 자신을 필요로 해 준 사람을 위해서라면 목숨을 버릴 수도 있다.

렌샤가 고개를 숙여 손목에 채워져 있는 마력 구속구를 바라보았다. 그 순간, 마력 구속구가 하나씩 깨어지기 시작했다.

뛰어난 마법사인 렌샤가 허튼짓을 하지 못하도록 구속하고 감시하는 것.

네리아와 레오니트는 마지막까지 방심하지 않았고, 그들의 경계에는 허점조차 없었다.

다만 애석한 점이 있다면, 렌샤의 능력이 그들의 예상을 뛰어넘었다는 것일까.

“뭐, 뭐야. 마력 구속구가 왜……! 당신 정체가 뭐야?”

렌샤는 대답하지 않고 눈앞의 감시자에게 손을 뻗었다. 어느새, 기사와 마법사가 정신을 잃고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란타나 님도 이곳에 계셔.’

렌샤는 기절한 자들에게는 관심조차 두지 않은 채, 자신의 주인을 찾아 걸어가기 시작했다. 렌샤를 방해하는 자는, 아니 방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란타나 님.”

“렌샤.”

란타나는 눈을 내려, 복종하듯 자신의 발치에 엎드린 회색 머리카락의 마법사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입꼬리가 한껏 올라가 있었다.

“내 보물. 역시 나에게는 렌샤가 필요해요. 당신을 만난 순간부터, 저는 질 수가 없었죠.”

란타나의 희고 고운 손이 렌샤의 머리카락을 다정하게 쓰다듬었다.

“렌샤, 나를 위해 죽어 줄 수 있나요?”

“란타나 님께서 저를 쓸모가 있다고 여겨 주신다면.”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렇게 생각했던걸요. 고마워요! 정말 기뻐요.”

란타나가 웃음을 터트리며, 입을 가린 채 아름답게 웃었다.

“으음, 저도 이렇게까지 일을 크게 벌이고 싶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되었으니 어쩔 수 없죠. 렌샤, 시작하도록 해요. 전부 뒤엎어 버리는 거예요.”

뒤엎는다. 렌샤는 란타나가 비밀로 숨겨 둔 가장 확실한 승리의 카드였다. 황궁 안에서 내전이 벌어져 수도가 아수라장이 되겠지만, 그 정도 소동이야 상관없지.

“알겠습니다, 란타나 님.”

란타나의 명령에 렌샤가 고개를 들었다. 아무것도 없던 허공에서 푸른색 돌멩이 하나가 툭 떨어졌다. 요정왕의 심장이었다.

“아마 네리아 양은 모르고 있을 거예요. 요정왕의 심장이 사실은 2개라는 사실을 말이죠.”

강한 생물은 스스로의 목숨을 보호하기 위해 심장이 2개로 진화했다는 설이 있다.

최상급 마수에게 심장 2개가 존재하는 것처럼, 요정왕이 벨라의 후손에게 싸움을 붙이기 위해 전해 준 심장도 1개가 아니었다.

그리고 요정왕의 심장의 효과를 가장 극대화할 방법이 있다면-

쩌적.

렌샤가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푸른색 돌멩이를 자신의 심장 안에 박아 넣었다.

그동안 요정왕의 심장 덕분에 마력이 증폭되는 것을 느꼈지만, 지금은 그때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힘이 느껴졌다.

다만, 인간이 가지기에는 지나치게 거대한 힘이었다. 그랬기에 렌샤는 하루를 넘기지 못하고 죽게 되겠지만 후회는 없었다. 자신을 필요로 해 준 사람을 위한 일이니까.

“렌샤, 이제 당신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예요.”

란타나가 그렇게 말했다.

‘아니, 한 명은 있으려나.’

듀이 경. 네리아 발렌티스가 데리고 있는 광전사의 존재였다.

란타나가 입술에 손가락을 붙이고는 눈을 깜빡였다. 과연 누가 이길까? 그렇게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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