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
“죄송하지만 저희와 같이 심문실로 가 주셔야겠습니다. 부디 협조를 부탁드리겠습니다.”
“너희들 뭐야? 저리 안 가? 우리 선생님 건들지 마-!”
“화, 황녀 전하!”
기사가 정중하면서도 고압적인 태도로 나를 데려가려고 할 때였다.
상석에서 아닌 척 나를 기다리고 있던 니나렛이 재빠르게 달려와서는, 두 팔을 펼치고 나와 기사 사이를 막아섰다. 강경한 자세였다.
“저리 가! 일없어!”
“황녀 전하, 레이디 발렌티스는 마차 사고의 용의자입니다. 조사 후에 죄가 없으면 다시 돌려보내 드릴 것이니 일단은-”
“어쩌라고? 우리 선생님한테는 아무 잘못도 없거든? 베에에-!”
“저, 전하, 부디…….”
황족을 거스를 수는 없기에 기사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난감한 듯 연신 땀을 닦아 내렸다.
“내 허락 없이는 선생님 못 데려가! 그런 줄 알고 이제 사라져!”
“전하, 저는 괜찮답니다.”
“네리아 선생님?”
나를 뒤돌아보는 니나렛은 기사들과 맞설 때와는 다르게 순한 양이 되어 있었다.
어쩌면 이렇게나 고맙고도 든든할 수가. 나는 니나렛을 안심시키듯 아이의 등을 톡톡 토닥이고는 한 발자국 앞으로 걸어갔다.
“기사님들, 디르케의 사고는 진심으로 유감입니다. 그런데 그 일이 저와 무슨 연관이 있다는 거지요?”
“마차 사고는 거리를 지나던 중에 말이 갑자기 혼자서 날뛰며 벌어진 일입니다. 어제 레이디께서 선물로 보내신 바로 그 흑마이지요.”
“그렇다면 제가 아니라, 말을 제대로 제어하지 못한 마부를 문책해야 할 일 아닌가요?”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 레이디.”
“폭주한 흑마를 곧장 사살한 뒤에 조사관의 긴급 확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말의 피에서 수상한 약물이 검출되었다고 하더군요. 정확히 어떤 약물이 사용되었는지는 아직 조사가 진행 중이지만요.”
“…맙소사.”
대답한 사람은 내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디르케의 사고가 계획적인 범행이었다는 건가요?”
“아무래도 그렇지 않을까요?”
기사의 말이 끝나자 대정원이 뒤숭숭하게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기사는 귀족들의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약효가 나타나기까지의 시간을 고려하면 말을 선물한 레이디 발렌티스는 충분히 용의자가 됩니다.”
“비약이 심하군요. 저는 말을 선물했을 뿐이지, 디르케에게 연회 당일에 당장 그 말을 사용해 달라는 이야기는 한 적이 없는걸요?”
“하지만 선물을 받았을 때, 감사하는 마음을 표현하고자 선물을 받은 즉시 사용하는 일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지요.”
“제가 그걸 노렸다고요?”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레이디께는 동기도 존재하지 않습니까?”
“동기라…….”
입가에 냉소를 머금었다.
기사는 구체적으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은 적어도 이 자리에 없었다.
디르케의 아이가 내가 모시는 레오니트 황태제에게 위협이 될 것 같으니 일을 벌였다는 것이겠지.
“좋아요, 협조하겠습니다.”
“네리아 선생님!”
“전하의 말씀대로 저는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으니까요. 금방 조사를 마치고 돌아올 테니, 전하는 걱정하지 마시고 기다려 주세요.”
“그치만……. 알겠어.”
내 설득에 니나렛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물러섰다.
“감사합니다, 레이디. 심문실로 모시겠습니다.”
“그리고 듀이 경. 무력을 사용해 저희를 방해한다면, 그 즉시 황궁 기사단 전체를 적으로 돌리게 될 것입니다. 경의 협력을 바랍니다.”
“저 역시 협력하겠습니다.”
“이제 저희를 따라오시지요.”
나는 귀족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기사의 지시에 응했고, 듀이가 그런 내 뒤를 따라왔다.
***
발렌티스 저택은 황궁 기사단에 의해 진작에 포위당한 상태였고, 나는 황궁의 심문관과 면담을 나눠야 했다.
그러나 나는 서궁으로 보낸 흑마에 손을 쓴 적이 없기에, 심문관과의 대화는 성과 없이 도돌이표를 반복할 뿐이었다.
그러는 사이에, 황궁 관련자 측으로부터 새로운 소식이 들어왔다.
란타나는 유산한 사실이 확실해져 서궁으로 돌아와 치료를 받는 중이며, 내가 선물했던 흑마에게서는 ‘페르테’라는 식물의 성분이 검출되었다는 소식이었다.
‘페르테’는 다리스 제국에서는 재배나 매매가 금지된 식물로써 복용 시 사람을 흉포하게 날뛰게 만든다는 부작용이 있다.
그러나 말과 같이 몸집이 큰 동물에게 먹일 경우, 사람보다는 약효가 드는 시간이 더 오래 걸려 약 하루 정도의 기간이 소모된다.
기사가 처음 했던 말처럼, 범행 동기가 있고 하루 전날 말을 선물한 내가 정말로 유력한 용의자가 되어 버린 것이다.
“모두 발렌티스 저택을 샅샅이 뒤져! 황족을 살해한 일이다. 틈새 한 군데라도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페르테’는 보라색을 띠고 있는 식물이다. 페르테를 발견하거나, 범행을 계획했다는 증거물을 찾으면 곧장 보고하도록!”
황궁 기사단에 의해 발렌티스 저택이 수색되기 시작했다.
저택의 고용인들은 기사들에 의해 포박된 상황이었다. 당장 사람이 죽어 나가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살벌한 분위기였다.
가신들과 저택의 고용인들은 같은 성별의 조사관에게 강제로 몸수색을 받았고, 그 대상은 나 역시도 예외가 아니었다.
저택 내의 어떤 작은 방.
“레이디 발렌티스? 실례지만, 목걸이에 들어있는 이 초록색 알약은 무엇이지요?”
“코르로 만든 약이에요. 알레르기를 극복하고 싶어서 조금씩 먹어 보는 중이랍니다. 의심스럽다면 조사해 보셔도 저는 상관없습니다.”
“…냄새나 맛을 보니 코르가 확실하군요. 레이디는 수상한 물건을 휴대하지 않았다는 점을 확인하였습니다. 협조에 감사드립니다.”
“태아라고는 해도 황제 폐하의 핏줄이 죽은 일인 것을요. 제국민으로서 마땅히 그래야지요.”
벗어 두었던 드레스를 다시 입는 데에는 여성 조사관의 도움을 받았다.
그렇게 임시 조사실을 벗어나 로비로 나왔더니, 한곳에서 감시당하고 있는 저택의 고용인들이 초상이라도 난 것처럼 바닥에 주저앉아 통곡하고 있었다.
“우리 아가씨가 이런 굴욕을!”
“기사님들! 어디 먼지 하나까지 잘 뒤져 보시지요! 나오는 게 있는지 한번 두고 봅시다!”
“저희 아가씨는 아무리 적이라고 해도,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를 건드리실 분은 아니란 말이에요!”
“별일 없을 거니까, 다들 울지 말고 진정하도록 해.”
“네리아 아가씨-!”
눈물범벅이 되어 나에게 달려드는 전 동료 하녀들을 달래는 동시에, 시선을 옮겨 가며 발렌티스 저택을 둘러보았다.
깨끗하고 정갈하던 저택이 아주 쑥대밭이 되고 있었다. 나중에 고용인들이 치울 때 고생이 많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나는 결백하고, 내 집에서 나오는 건 아무것도 없을 테니 이 짓도 오래 걸리지 않고 끝날-”
“저택의 후원에서 이런 걸 발견했습니다! 헝겊에 싸여 묻혀 있었어요. 보라색을 띤 식물입니다!”
“뭐라고?”
하녀들을 달래던 중이었다.
저택의 문이 벌컥 열리며 기사 한 명이 들어왔다. 그의 오른손에 무언가가 들려 있었다.
“저, 저건 페르테? 그럴 리 없어!”
“거짓말! 이건 모함이에요! 저희 아가씨를 음해하려고 누가 숨겨 둔 것이 분명해요!”
“레이디 발렌티스. 증거물이 나왔으니, 황궁으로 가셔야겠습니다.”
“레이디를 포박해! 남은 인원은 듀이 경이 쓸데없는 짓을 벌이지 못하도록 감시하도록!”
“우리 아가씨 건들지 마세요!”
저택의 분위기가 아까와는 다른 종류로 시끄러워졌다.
굳은 표정이 된 황궁의 관련자들과 거의 발악하듯이 비명을 내지르는 발렌티스의 고용인들.
그 사이에서 평온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은 나 혼자였다. 사람들에게서 제각각의 의미가 담긴 시선이 쏟아졌고, 나는 그 가운데서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 식물, 페르테가 확실한가요?”
“네?”
“페르테가 보라색을 띤 식물인 건 맞지만, 보라색을 띤 식물이 페르테 한 종류만 있는 건 아니잖아요. 그렇죠?”
나는 그렇게 설명하며 조사관이 있는 방향을 쳐다보았다.
“가만있지만 말고 확인해 보세요. 억울한 죄인이 생기지 않도록요.”
“아, 예. 알겠습니다. 어디… 아! 이건 페르테가 아닙니다. 일반인의 눈으로는 구분하기 힘들지만, 저 같은 전문가가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건 일반적으로 정력제로 쓰이는… 흠흠.”
차마 용도를 끝까지 말할 수 없던 것인지 조사관이 중간에 입을 다물었다. 문제의 식물을 찾아온 기사 또한 당황스러움을 숨기지 못했다.
“아니, 그러면 왜 이런 걸 수상하게 후원에 묻어 둔 것인지…….”
“글쎄요. 용도가 용도인 만큼, 저택의 누군가가 몰래 사용했다가 숨겨 놓은 게 아니었을까요?”
기사가 가져온 증거물이 페르테가 아님이 확인되었다. 저택의 분위기가 또다시 반전되고 말았다.
나는 혼란에 빠진 사람들을 지켜보며 조용히 미소 지었다.
그러니까, 헤론 후작 부인의 티 파티에 참석했던 날.
나는 그녀가 가져온 란타나의 선물 리스트가 함정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흐르기는 했지만, 리스트는 란타나파 귀족들의 손을 거친 뒤에야 황태제파 귀족들에게로 넘어왔으니까.
그리고 리스트에 남아 있는 것은 무언가 사건을 벌이기에 충분한 종류들이었다.
‘남은 것 중에서 내가 뭘 고르든 란타나에게는 상관이 없었을 거야.’
내가 선택한 선물에 맞춰서 일을 꾸미면 될 테니까.
그런데 란타나는 소원을 이룰 희생양을 단 한 명만 남겨 둔 상황이었고, 내가 란타나와 적이 된 이상 그녀는 칼로스가 17살이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할 필요가 없었다.
‘분명 마지막 목표치를 채우기 위해서 내 목숨을 노리겠지.’
하지만 나에게는 대륙 최강의 기사인 듀이가 붙어 있다. 무력으로는 나를 붙잡을 수 없을 테니, 배 속의 아이를 이용해 수를 쓴 것이다.
나에게 란타나의 아이를 유산시켰다는 누명을 씌운다면, 나를 감옥에 가둬 듀이와 떨어지게 만들 수 있었으니까.
분명, 연회 당일에 일이 벌어질 것이다. 그랬기에 나는 란타나의 계략에 대비할 필요성이 있었다.
누명을 씌우려면 ‘증거’가 필요하다. 란타나 측은 나에게 증거를 심고자 발렌티스 저택에 숨어들 것이 확실했다.
‘잠입할 사람은 젠일 거야.’
갈색 머리카락을 가진, 란타나의 뒤를 지키는 그녀의 시녀. 대단한 실력자인 건 확실했다.
‘그’ 란타나가 곁에 둘 정도인 데다 젠은 이미 네리아를 납치하고자 발렌티스 저택에 잠입하는 데 성공한 적이 있지 않았던가.
하지만 그 대단한 젠에게도 장애물이 있다면, 바로 듀이였다.
아무리 은둔 실력이 뛰어난 자객이라도 대륙 최강의 기사에게까지 기척을 숨길 수는 없을 테니까.
‘숨어든다면, 아마도 듀이가 저택을 비웠을 때를 노리겠지.’
그랬기에 나는 란타나의 시녀가 안심하고 발렌티스 저택에 들어올 수 있도록 일을 꾸몄다.
‘듀이, 마부에게 말 좀 전해 줄래? 저택으로 가기 전에 마법약 제조실에 들렀으면 좋겠다고 말야.’
‘세사르 님을 만나시려는 건가요?’
‘아니, 이번에는 약이 필요해서. 머리랑 눈 색깔을 바꾸는 약이 많이 있어야 할 것 같거든.’
머리와 눈 색깔을 바꾸는 약을 넉넉히 가져온 건, 란타나 측 사람들의 눈을 속이기 위해서였다.
나는 그녀에게 선물할 말을 구입하기 위해 은발의 기사님과 함께 새벽까지 마시장을 돌아다녔다.
그러나 나와 동행한 기사는 듀이가 아니었다. 머리는 은색으로, 눈은 금색으로 바꿔 듀이인 것처럼 위장한 다른 기사였던 것이다.
그러는 사이, 듀이는 발렌티스 저택에 남아 침입자를 기다렸다.
‘붙잡지는 말고, 침입자가 무슨 짓을 하고 나갔는지 확인할 수만 있으면 돼. 나는 그걸로 디르케의 뒤통수를 칠 거니까. 알겠지?’
‘알겠습니다, 네리아 님.’
그리고 내가 듀이로 위장한 기사와 함께 마시장을 방문했을 때, 예상했던 것처럼 란타나의 시녀가 발렌티스 저택으로 몰래 숨어들었다.
진짜 듀이는 저택에 숨은 채 침입자의 기척을 감시했고, 그녀가 후원에 무언가를 묻어 두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페르테였다.
나는 란타나에게 말을 선물할 예정이었는데, 그녀의 시녀는 내 저택에 페르테를 숨겨 두었다.
과연 이 사실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 연회 당일에 무슨 사건이 벌어질지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유추하는 게 가능했다.
한편, 후원에서 발견된 ‘페르테와 비슷하게 생긴 식물’은 내 명령으로 묻어 놓은 것이다.
혹시라도 나와 듀이가 대정원으로 출발한 사이에, 란타나의 시녀가 찾아와 확인 작업을 할 가능성을 대비해 비슷한 식물을 숨겨 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