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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상이라고 하시면……?”
“듀이 경의 마수 토벌 파견 건을 전면적으로 백지화시켰습니다.”
“예?”
뭐라고?
“백지화라면… 북부 파견이 아예 취소되었다는 말씀이신가요?”
“예, 오늘 황제 폐하와 독대하여 직접 담판을 지은 일입니다. 듀이 경은 북부로 떠날 필요가 없으니 이제 안심하시기를.”
“…….”
파견이 취소? 진짜야? 그렇다면 듀이가 굳이 결혼까지 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의미 아니야?
“…이, 일이 그렇게 되었나요?”
“그렇습니다. 제 어머니의 편지를 찾을 수 있었던 건, 레이디 발렌티스와 듀이 경이 애써 주신 덕분이 아니겠습니까? 이렇게라도 빚을 갚을 수 있어서 기쁩니다.”
아뇨, 전하! 굳이 그러지 않으셔도 됐었는데요! 이미 더 완벽한 해결책이 있었는데요! 오히려 다 된 수프에 재를 뿌리셨는데요!
그러나 누차 언급하는 것처럼 황족 모독은 중죄였기에, 이번에도 입술은 머릿속의 생각과는 다른 말을 내뱉었다. 공손하게.
“빚이라니요, 황태제 전하의 신하로서 당연한 일을 한 것이었어요.”
“감사드립니다, 전하! 저, 듀이는 제국의 기사로서 다리스와 황태제 전하께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함께 있던 듀이는 눈치도 없는 건지, 이제 파견 가거나 결혼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사실에 몹시도 기뻐하며 해맑게 웃고만 있었다.
…그럼 내 고백은? 내 청혼은? 설마 이걸로 끝?
‘전하, 신경 써 주신 건 감사하지만, 5분만 더 늦게 오시지 그러셨어요?’
그리고 듀이는 대체 뭐가 감사하다는 거야? 얼마 전에는 레오니트가 내 손등에 키스한 모습을 보고선 엄청 신경 쓰고 있었으면서!
급격하게 허무함이 밀려왔다.
화기애애하게 웃고 있는 듀이와 레오니트 사이에서, 나만 홀로 고독하게 푸른 하늘을 바라보았다.
***
“차는 입맛에 맞으시는지요?”
“맛있습니다. 갑작스러운 방문인데도 환대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발렌티스 저택의 응접실.
청혼을 방해받은 것에 대한 불만과 별개로, 황족인 레오니트를 손님 대접도 없이 바깥에 방치하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고용인들은 황족이 나타난 것에 놀라기는 하였으나, 가끔 저택에 놀러 오는 니나렛 덕분에 내성이 생긴 건지 차분하게 대응했다.
나는 레오니트의 맞은편에 앉아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그를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아까 ‘협상’이라고 말씀하셨지요? 듀이 경의 파견을 취소하는 대신 전하께서 지불하신 대가는 무엇인가요?”
“별건 아닙니다.”
레오니트가 다리를 꼬며 여유롭게 대답하기에 나는 눈을 흐렸다.
별게 아니라니. 그럴 리가 있나. 란타나의 시녀가 되라는 명령도 황제가 귀애하는 친딸이 공개적인 장소에서 눈물로 호소해서야 없는 일로 만들 수 있었는데.
아까는 레오니트를 따라온 하녀가 있어 말하지 못했지만, 어찌 보면 심각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디르케가 낳은 아기가 남자아이이면서 폐하의 친자가 확실하다면, 제가 황태제 자리를 포기하겠다는 약속을 했습니다.”
“…….”
너무 놀란 나머지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았다.
그 정도 조건이라면 황제 폐하도 흔쾌히 파견 명령을 물렀을 법도 하다. 하지만 황태제 자리를 포기한다니, 너무 위험한 도박이지 않아?
그러나 레오니트는 내 걱정을 알고 있다는 듯이 산뜻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걱정하실 건 없습니다. 저도 생각 없이 내뱉은 말은 아니거든요. 이건 제 의견입니다만, 저는 디르케가 가진 아이가 폐하의 친자가 아니라고 추측하고 있거든요.”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지요?”
“그걸 설명하기 위해서는 시간을 5년 전으로 돌릴 필요가 있겠군요. 얼마 전까지 디르케가 가지고 있던 제 어머니의 편지 말입니다. 레이디도 보셨겠지요?”
“네,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