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
‘그렇다면, 사람들을 해치면서까지 이루고 싶은 소원은 대체 뭔데?’
지금까지 들은 이야기를 정리하며 생각해 보았으나 란타나 본인의 입으로 듣지 않는 이상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저, 내가 알고 있던 것 이상으로 무서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뿐.
괜한 두통이 생긴 것 같아서 나는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지그시 눌렀다.
“자비에 님, 질문이 하나 있는데, 혹시 책에 ‘코르’에 관한 내용은 없었나요? 쓴맛이 나는 그 채소요.”
“코르? 있었어요! 어떻게 아셨나요? 여기, 해석본 자료의 후반부에도 적어 두긴 했었는데요.”
자비에가 서류를 뒤적거리더니 어떤 페이지를 펼쳤다.
“코르는 사람이 먹었을 때는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요정들이 먹으면 생명이 위험해지는 독초나 마찬가지인 식물이라고 해요.”
“독초…라고요?”
“네. 소량은 괜찮지만, 일정량 이상을 복용했다가는 심장이 굳어 버려 사망한다던가요?”
그렇게 대답하는 자비에를 보며 수긍할 수 있었다. 내가 코르를 먹지 못하는 이유는 벨라의 후손이라는 영향 때문이 아닐까.
그러니 세사르가 만든 알레르기 약으로도 효과를 보지 못했던 것이다. 애초에 평범한 알레르기가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이 ‘코르’에는 또 다른 이야기가 있어요.”
“네?”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는 100명을 죽여야 한다고 했었지요? 잔인한 이야기이지만, 살해 방법이 바로 아까 언급했던 그 칼로 벨라 일족의 심장을 찌르는 것인데-”
자비에의 설명이 이어졌다.
말하자면 심장이 제물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살해당할 위기에 처했을 때 코르를 이용하고는 했다.
타인의 소원을 이룰 제물이 되기보다는 차라리 코르를 먹어 심장을 굳어 버리게 만들었다고. 말하자면 주변에서 흔히 쉽게 구할 수 있는 독약이었다.
“자비에 님이 저번에 말씀하셨죠? 벨라 일족은 동족상잔으로 멸족했다고요.”
“맞아요. 그랬었어요.”
“이 책의 내용이 전부 사실이라면, 벨라 일족이 멸족했다고 알려진 이유는 이런 사연이 있었기 때문인 것 같네요.”
“네, 아마도요.”
란타나나 내가 멀쩡히 살아 있으니 엄밀히 따지자면 ‘멸족’이라는 말은 틀린 표현일 터였다. 그렇지만 거의 멸족 직전까지 몰렸을 정도로 그들 사이에 서로 죽고 죽이는 비극이 일어났던 거겠지.
머리가 복잡해져 한숨이 나올 것 같았지만, 나는 애써 참으며 맞은편의 자비에를 바라보았다.
“알려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더 부탁드려도 될까요? 이 책의 내용은 저희끼리의 비밀로 남겨 주셨으면 해요.”
“그럴게요. 학자로서는 이런 사료를 확인할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우니까요. 찢어진 뒷부분을 못 봐서 아쉬울 따름이에요.”
자비에는 내가 왜 그런 부탁을 하는 것인지 굳이 이유를 캐묻지 않고 흔쾌히 내 부탁을 수긍했다.
그녀는 바보가 아니니까, 이 책에 적힌 내용들이 나와 가까이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해석 작업을 끝내자마자 저택까지 나를 찾아온 것일 테고.’
감사하게도 그녀는 단지, ‘네리아 양은 요정의 후손이어서 이렇게 미인이셨던 거군요!’ 하고 농담조로 한마디를 덧붙이기만 할 뿐이었다.
***
자비에가 황궁으로 돌아간 뒤에도 나는 그녀가 남겨 주고 간 해석 자료를 몇 번이나 반복해서 읽었다.
‘분명, 란타나가 그 칼을 가지고 있을 거야.’
나 역시 란타나에게 목숨을 빼앗길 수 있고, 목표를 달성한 그녀가 과연 어떤 소원을 빌 것인지에 대해서도 알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칼을 빼앗아야 해. 하지만 어떻게?’
만약 책을 해석하게 되어 그녀가 감춘 꿍꿍이를 알 수 있게 된다면, 황제 폐하께 이를 보고할 생각이었다. 배 속에 황제의 아이를 가진 걸로도 용서받을 수 없는 잘못일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이래서야 남들에게는 알릴 수도 없게 되었다.
소원을 이룰 절대적인 힘이라고 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또 다른 인물에게 이용당할 여지도 충분히 존재하지 않겠는가. 자비에에게 비밀을 지켜 달라고 부탁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란타나가 가진 칼을 빼앗고 그녀를 공격할 수 있는 다른 약점은 없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그런데 그 칼을 이용해서 소원을 이루는 게 정말 가능하다면…….”
옆에 앉아 있던 듀이에게서 담담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네리아 님의 가족분들이 있으신 원래 세계로 돌아갈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응?”
원래 세계로 돌아간다고? 내가?
두어 번 눈을 깜빡였다. 듀이에게 듣기 전까지는 떠올리지도 못했던 가능성이었다.
“…아마도 가능은 하겠지?”
그 힘으로 죽은 사람을 되살릴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런 순리에 어긋난 행위까지도 가능한데, 살아 있는 사람 하나를 다른 세계로 보내는 것쯤이야 손쉬운 일이 아니겠는가.
“그렇지만 만약이라고 해도 그럴 일은 없을 거야.”
나는 단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가족이 그리운 마음은 지금도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엄마도 아빠도, 그때보다 키가 더 컸을 동생도 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래도 고작 내 소원 하나를 이루겠다고 죄 없는 사람을 해칠 생각은 조금도 없어. 그게 올바른 행동이잖아? 사람으로서 말이야.”
“…네.”
듀이가 한 템포 늦게 대답하며 고개를 숙였다. 어쩐지 그의 얼굴에서 안심하는 표정이 빠르게 스쳐 지나간 것 같기도 했다.
“아, 그렇지.”
그러다가 듀이의 얼굴을 보고 있었더니, 문득 황궁으로 출발하기 직전에 했던 생각이 떠올랐다. 듀이가 테라핀 숲에서 만났다는 친구와 닮은 마수에 관한 내용이었다.
혹시라도 인간을 마수로 만들 수 있는 건 아닐까, 라는. 그리고 마법사들 특유의 고유 마법으로 그런 일이 가능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생각한 것까지였다.
황궁으로 출발해야 했기에 추측하던 것을 중간에 그만둬야 했으나 이참에 그 일을 좀 더 파헤쳐 보기로 했다.
“듀이, 숲에서 만난 마수가 보육원에서 헤어진 친구와 닮았다고 했지? 왜, 그때 그 소문이 안 좋은 사람에게 입양을 갔다던.”
“네, 맞아요.”
나는 등받이에 깊숙이 몸을 묻고서는 당시 하녀였던 시절에 듀이와 나눈 적이 있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회색 머리를 가진 사람이었는데, 그분의 소문이 좋지 않았거든요. 그 사람에게 입양된 아이들이 어느 순간 사라진다는 소문이었어요.’
…잠깐, 회색 머리?
회색 머리는 드물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흔한 머리 색도 아니다. 그런데 항상 란타나의 뒤를 졸졸 쫓아다니는 시종도 회색 머리를 가지고 있지 않았던가?
신경이 쓰인다.
그런데 짚이는 점은 한 가지가 더 있었다. 그러니까, 듀이를 되찾기 위해 아네모네 궁으로 갔을 때였다.
나를 따라 동행했던 세사르가 란타나의 시중인들을 지나치며 이런 이야기를 했었다.
‘세사르 님?’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냥 저 회색 머리의 시종말인데, 처음 보는데 묘하게 낯이 익어서요.’
딱히 신경 쓸 것도 없는 단순한 잡담이었기에 그때는 대충 흘려들으며 지나갔었다. 그런데 상황이 이렇게 되고 보니 적당히 지나칠 수가 없게 되었다.
‘설마……?’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번에는 세사르를 만나러 가기 위해서였다.
***
세사르야 어차피 같은 저택에 살고 있으니 저녁 시간이 되면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때까지 기다리자니 마음이 급한 나머지, 그를 찾아 마법약 제조 시설까지 직접 발걸음을 옮겼다.
“네리아 님이 아니십니까! 오늘은 어떤 일이십니까? 제가 도와 드릴 일이라도-”
“아뇨, 괜찮습니다.”
제조실 직원의 안내를 정중하게 거절했다.
세사르의 마법약은 여전히 수요가 공급량을 월등히 초과하는 상황이었고, 그런 만큼 모두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괜한 사람의 시간을 뺏을 수는 없지.’
나는 나에게 다가와 인사하려는 사람들을 물리며, 곧장 세사르의 연구실로 이동했다. 이미 몇 번이나 방문하여 익숙해진 장소였다.
“…됐어! 드디어 완성이야! 이번에는 복용자의 안전성까지 확보한 완벽한 완제품을- 어, 네리아 님이 아니십니까?”
“안녕하세요, 세사르 님.”
“여기까지 오시다니, 급한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여쭤볼 게 있어서요.”
나는 방긋 웃으며 세사르가 안내해 준 간이 의자에 착석했다. 그러고는 곧바로 본론을 입에 담았다.
“아네모네 궁에 갔을 때, 어떤 시종을 보고서는 낯이 익다고 하셨지요? 혹시 그 이유, ‘렌샤’라는 분을 닮았기 때문이 아닌가요?”
“네?”
‘렌샤’란 세사르의 마탑 동기로,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마법사라고 했다. 다만, 너무 위험한 고유 마법을 가진 나머지 그의 스승이 직접 렌샤의 목숨을 거두었다고.
“갑자기 렌샤가 왜…….”
내 말을 들은 세사르는 고개를 기울이며 눈을 찌푸렸다. 하지만 곧, 무언가가 떠올랐다는 듯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맞는 것 같습니다. 렌샤도 머리카락이 회색이었고, 분위기도 비슷했던 것 같은……. 그런데 네리아 님이 그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역시. 나는 그의 대답을 듣고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 사람, 아직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건 아닐까요? 저는 렌샤라는 사람이 디르케의 시종과 동일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렌샤는 여자인데요?”
“남자로 위장할 수도 있잖아요. 신분을 숨기기 위해서요.”
“아?”
만약, 렌샤가 가진 고유 마법이 정말로 인간을 마수로 만드는 힘이라면, 그들의 스승이 렌샤를 위험인물 취급한 것도 이해는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자의적으로 제자의 목숨을 거둔 스승의 행위 자체를 두둔하는 건 아니지만.’
다만, 그 말대로 정말 위험한 힘이기는 했다. 인간과 마수의 경계를 허물어 버리는 능력이었으니까. 존재만으로도 타인들에게 위협이 되는 것도 당연했다.
보육원에서 그 회색 머리가 입양한 어린이들이 사라졌다는 건, 아이들을 마수로 만들 실험을 한 건 아니었을까?
듀이가 훈련 중에 만났던 마수도, 착각이 아니라 정말로 친구 본인이 맞았을지도.
그러니 상급 마수가 출몰하는 것이 최대치라는 테라핀 숲에 최상급 마수가 나타날 수 있었던 것이다. 인위적으로 만들었으니까.
‘그리고 그 모든 걸 란타나가 지시한 것이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