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
“먼지? 손등에?”
“…네, 죄송합니다.”
“아니, 죄송할 건 아닌데.”
갑자기 분위기가 적막해지고 말았다. 그 뒤로는 특별히 할 말도 없어졌기에, 나는 듀이와 함께 가문의 마차로 이동했다.
다그닥 다그닥-
마차를 타고 발렌티스 저택으로 돌아가는 동안, 나는 맞은편에 앉은 듀이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 레고트 백부조차 곱상하게 잘생겼다고 평가한 얼굴에 제국에서 극히 희소한 은색 머리카락, 그리고 각성의 영향인지 가끔은 사람 같지 않게 느껴지는 분위기까지.
‘내 눈에는 처음 만났을 때나 지금이나 똑같은 듀이지만…….’
단신으로 군단급 전투력을 가졌다는 능력이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듀이에게 홀릴 만도 했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오늘처럼 다른 여자들이 듀이를 노리거나 접근하는 일이 많아지는 게 아닐까. 그리고 듀이가 다른 누군가에게 넘어가기라도 한다면?
그렇게 생각하니 점심 식사로 먹었던 샌드위치가 얹히며 속이 부글부글 끓는 기분이 들었다.
낯선 감정이었지만 이 기분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 것 같기는 했다. 아마도, 질투겠지.
‘마음에 안 들어.’
듀이는 내 기사인데.
솔직히 그동안은 살면서 질투라는 감정을 느낄 일이 없었다. 타고난 외모에 노력하는 재능, 부유한 집안과 넘칠 정도로 애정을 퍼부어 주는 가족까지.
태어나면서부터 전부 가졌기에, 타인에게 특별히 집착하는 일도 없었다. 분명 그랬었는데.
“…….”
“네리아 님?”
“…아까 어떤 시녀가 선물 같은 거 주지 않았어? 중간에 디르케가 오는 바람에 받지 못한 거야?”
괜히 못마땅해져서는 불퉁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뇨, 선물은 디르케가 오기 전에 거절했어요.”
“왜?”
“그야 받을 이유가 없으니까요.”
“어째서? 선물 같은 걸 주고받으면서 다른 귀족 영애랑 친해질 수도 있는데?”
“그다지 친해지고 싶지 않아요. 저는 네리아 님의 기사니까요.”
나를 보호하는 일이 가장 중요한데, 저택의 사람들이나 기사 동료도 아닌 사람과 친분을 쌓느라 시간을 뺏기고 싶지는 않다. 듀이의 입에서 그런 말이 흘러나왔다.
“그래……?”
나는 귀를 쫑긋 세우고서는 되물었다. 다른 귀족과의 친분은 필요 없다니. 앞으로 듀이가 다리스의 귀족 사회에 섞여 살아가야 할 미래를 생각하면 썩 영리한 처세는 아니었다.
하지만 감정적으로는 무척이나 만족스러운 대답이었다. 듀이는 나에게 특별한 사람이니까, 그러니 남에게 뺏기고 싶지도 않았다.
‘어린애 같은 유치한 감정이란 건 알고 있지만.’
11살인가 12살 때였던가, 내가 다른 가문의 영애와 너무 가깝게 지낸다며 질투하던 어린이 클로이의 마음을 뒤늦게나마 알 것 같았다.
그렇지만 뭐 어쩌겠어. 어느새 부글부글 끓던 속마음이 진정되고 평소와 같은 여유를 되찾았다.
“적당히 예의는 지켜도 다른 사람들이랑 너무 사이좋게 지내지는 마. 알겠지?”
아, 방금은 말이 너무 노골적이었나.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듀이는 내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당연한 일이라는 듯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음,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저, 그런데 네리아 님.”
“응?”
“혹시 황태제 전하와는…….”
“황태제 전하와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어색한 태도로 질문하던 듀이가 갑자기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척 고개를 홱 돌리고는 마차의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
“듀이?”
레오니트 황태제가 왜? 듀이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으나 그는 더 입을 열 생각이 없어 보였다.
“…….”
“…….”
창문 밖에서 불어온 바람이 은색 머리카락을 흩트리는 아래에, 듀이의 옆얼굴이 어쩐지 복잡한 심경을 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까 듀이가 꺼내다가 말았던 ‘황태제 전하와는’이라는 말은.
‘혹시?’
돌이켜 보면 아네모네 궁을 찾아온 레오니트가 나에게 친근하게 대했을 때, 그리고 방금도 그가 헤어지며 손등에 키스했을 때. 듀이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해 있었다.
설마, 듀이도 내가 레오니트와 가까이 지내는 것이 신경 쓰이거나 괜히 불편하게 느껴져서?
“황태제 전하와는-”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면, 괜스레 기쁘다. 그랬기에 나는 듀이가 더 묻지 않았는데도 입을 열었다.
“단순한 주군과 신하의 관계야. 협력 관계이니 정기적으로 만나거나 연락을 취하고는 있지만, 딱히 사적으로 친하지는 않아. 전혀.”
레오니트가 들었다면 서운해할 법한 발언이기는 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상관없지.
나는 활짝 웃으며 그렇게 이야기를 마쳤다.
***
“네리아 아가씨! 아가씨께 손님이 오셨어요!”
저택에 도착하니, 사샤가 곧장 나를 찾아 빠르게 걸어왔다.
“중요한 손님이야?”
“피샤 자비에 님이 오셨어요. 그 걸어 다니는 도서관 님이요!”
“자비에 님이?”
반가움이 반, 놀라움이 반 정도가 되어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녀가 나를 찾아올 이유라면 하나밖에 없다. 원래는 란타나의 것으로, 자비에에게 번역을 맡긴 책.
‘원래는 다음 주 정도에 내가 도서관으로 찾아가기로 했었는데.’
그런데도 그녀가 나를 찾아왔다는 건, 책을 해석하는 중간에 문제가 생기기라도 했다는 건가?
“바로 가 봐야겠어. 자비에 님은 어디에 계셔? 응접실?”
“네, 응접실로 모셨어요.”
“알겠어. 듀이, 같이 가자.”
도서관에서 광전사에 관한 정보를 구하러 갔을 때야 당사자인 듀이에게 숨기고 싶어 그를 휴게실로 보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러한 문제가 아닐뿐더러, 백작가 최고의 전력인 듀이 역시 돌아가는 상황을 알아 두는 게 좋을 것 같았기에 일부러 동행시킨 것이었다.
“다리스에 영광이 있기를! 자비에 님, 혹시 책을 번역하시는 중에 장애물이라도 생긴 건가요?”
“네리아 양, 안녕하세요! 장애물이라니, 오히려 반대에요.”
옷도 갈아입지 않고 곧장 응접실을 찾았으나, 소파에 편하게 앉아 다과를 먹고 있는 자비에의 모습은 상당히 여유로워 보이기만 했다.
“책의 내용이 너무 흥미로운 바람에, 계획보다 더 빨리 작업을 끝마쳤거든요. 네리아 양에게도 어서 보여 드리고 싶었어요.”
“흥미롭다고요?”
본능적인 호기심을 감추지 못하며 듀이와 함께 그녀의 맞은편에 착석했다.
이 책은, 어쩌면 란타나의 비밀이나 그녀의 수상쩍은 행동의 목적을 알게 할 열쇠가 될 수도 있었다.
“전체적인 내용을 요약하자면 이렇게 정리할 수 있겠어요. ‘인간에게 사랑에 빠져 사람이 되고 싶었던 요정의 이야기’라고 할까요?”
“네?”
그 요정이라는 것. 벨라오스라는 보석을 시작으로 잊을 때마다 계속 언급되던 존재였는데, 정말 실존이라도 하는 걸까?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는 자비에가 내미는 해석본과 그녀의 목소리에 주의를 기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