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
광전사? 그게 뭐지?
처음 들어 보는 이야기였다. 듀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문 너머의 대화에 계속 귀를 기울였다.
“인간의 능력을 초월할 정도로 강한 사람이에요. 고작 1명이, 수백 명을 학살 수준으로 상대할 수 있다던가요?”
네리아의 대화 상대에게서 자세한 설명이 이어지고 있었다.
사람이 각성을 통해서 강해질 수 있다고? 듀이 역시 기사로서 관심이 없을 수 없는 주제였기에 홀린 듯이 자비에의 말에 빠져들었다.
‘괴물 같은 힘이라니, 대단하네.’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러다가 어느 순간, 듀이의 머릿속에 그런 의문이 들었다.
사람이 어떠한 행동을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그런데 그의 주인님은 왜 이런 곳에서 ‘광전사’에 관한 정보를 찾고 있는 걸까?
“…….”
듀이가 말없이 표정을 굳혔다. 무언가 실마리가 잡힐 것 같기도 했다. 우선은 건국제에서 만났던 디르케가 그에게 했던 말.
‘잠깐, 당신. 그냥 기사가 아니군요?’
그리고 어제, 네리아가 무척이나 당황한 모습으로 언급했던 어떠한 사람이 있었다.
‘힐더 경을 모른다고? 농담이지? 대륙 최강, 제국의 최연소 군단장이잖아? 왜, 그 은발 금안의 천재 소년 검사 말이야.’
그때는 옆에 사샤가 있었기에 함부로 말할 수 없었는데, 지금의 네리아는 평행세계에서 온 또 다른 네리아다.
그러니 힐더 할슈리트라는 사람은 아마도 그녀가 원래 있었던 세계에 존재하는 사람이겠지.
그런데 다음 날이 되자, 그녀는 ‘광전사’라는 것에 대해 알기 위해 걸어 다니는 사전이라고 불리는 자비에를 찾아왔다.
마지막으로는 도서관으로 오는 동안 평소와 다른 분위기로 듀이를 빤히 바라보던 네리아의 시선까지.
‘그 힐더 경이라는 사람, 은발에 금색 눈동자를 가졌다고 했어.’
듀이 역시 금색 눈을 가진 데다 은발은 각성을 하게 되면 머리카락 색깔이 변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렇기에 추측할 수 있었던 가능성이 하나 있었는데, 설마 그 ‘광전사’라는 사람이 설마.
‘…나일 수도 있지 않아?’
듀이의 표정이 더더욱 딱딱하게 굳어졌다.
광전사? 내가? 하지만 머릿속이 생각만큼 혼란스러워지지는 않았다.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알게 되어 봤자, 딱히 실감이 나지는 않기 때문이었다.
다만, 자신의 이야기일 수도 있는 만큼 듀이는 아까보다 더 자비에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기록에 남아 있는 자들도 대부분 우연히 그런 힘을 가지게 되었다고 해요. 왜냐하면 각성하는 방법이, 위험에 빠져-”
“잠깐만요, 자비에 님.”
그러나 자비에가 가장 중요한 이야기를 하려던 순간, 네리아가 그녀의 말을 끊어 버렸다.
자신의 착각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치 듀이를 각성시킬 방법은 알고 싶지 않다는 듯이 고의로 대화를 중단시킨 것처럼 들렸다.
“이 정도면 궁금한 건 해결했어요. 알려 주셔서 감사해요.”
그러고서 네리아는 그것만으로도 용건이 끝났다며, 자비에에게 인사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뚜벅뚜벅 그녀의 걸음 소리가 들렸다.
‘…숨어야 해.’
허락도 없이 남의 대화를 엿들었기 때문이었을까?
왜인지 네리아를 피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듀이가 재빠르게 몸을 숨기고는 그녀가 복도를 떠나는 뒷모습을 복잡한 눈길로 지켜보았다.
“…….”
그녀가 곧 복도에서 완전히 모습을 감추자, 듀이는 가지고 있던 쿠키 상자를 말없이 내려다보았다.
어째서 여기서는 네리아를 마주치고 싶지 않았던 것인지, 그에 관한 답은 금방 찾을 수 있었다.
문 너머에 있을 자비에를 찾아서 아까는 듣지 못한 광전사의 각성 방법을 알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듀이가 뚜벅뚜벅 걸어 다시 문 앞으로 다가갔다.
‘물론 네리아 님의 허락도 받지 않고 제멋대로 저지르는 일이란 건 알고 있지만.’
하지만 그녀는 가문의 기사를 더 강하게 만들 방법이 존재하는데도 그걸 묻지 않았다. 그건 아마도.
‘…나를 위해서?’
광전사로 각성하게 되면 기억과 감정을 잃게 된다고 했다. 그녀는 그렇게나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문의 힘을 키우는 것보다, 듀이의 존재를 더 우선해 준 것이다.
기뻤다.
듀이의 얼굴이 흐물흐물 풀어졌다. 하지만 그는 다시 표정과 자세를 재정비하고는 노크를 위해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니까 내가 알아야 해.’
기억이나 감정을 잃고 싶은 생각 따위는 조금도 없다. 각성 같은 편법이 없어도, 잠을 줄이며 훈련량을 늘린다면 강해질 수 있다.
그렇지만 세상에는 ‘만약’이라는 것들이 있다.
혹시라도 네리아가 위험에 처하기라도 한다면? 그 어떤 것을 포기해서라도 그녀를 지켜야 할 필요가 있었다.
각성의 방법을 알아 두는 건, 그걸 위해서였다. 일단 알아 두기라도 한다면 언젠가 생길지 모를 긴급 상황에 도움이 될 수도 있으니까.
듀이가 그렇게 생각하며 눈앞의 문을 똑똑 두드렸다.
“네, 들어와요.”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방 안에 들어 있는 사람은 자비에 한 명뿐이었다. 듀이가 그녀를 향해 인사했으나, 그를 발견한 자비에의 얼굴이 불쾌하게 찌푸렸다.
“뭐죠? 여기는 개나 소나 함부로 들어올 수 있는 장소가 아니에요. 당신네들 같이 뇌가 근육으로 된 기사들은 특히요. 당장 꺼져-”
“네리아 발렌티스 님의 호위 기사인 듀이라고 합니다. 다리스에 영광이 있기를.”
“네리아 영애의 기사분이라면 진작 말을 하지 그러셨어요!”
‘…말하려고 했는데.’
굉장히 빠른 태세 전환이었다. 바깥에서 목소리만 들었을 때는 굉장히 사교적인 사람인 것 같았는데 사실은 아닐지도.
어쨌거나 듀이가 신분 확인을 위해 자신의 이름과 소속이 적힌 도서관 출입 허가증을 내밀자, 자비에는 처음과 달리 그를 정식 손님으로 반갑게 맞아 주었다.
“이건 네리아 님께서 잊고 가셨던 물건입니다.”
“쿠키? 마차에 두고 왔다는 게 이거였군요! 고마워요!”
“그런데 허락해 주신다면, 질문 하나만 여쭤도 되겠습니까?”
“질문이 무엇인지에 따라서요! 일단 물어봐요.”
네리아의 쿠키를 받았기 때문인지 상당히 너그러운 태도였다. 덕분에 듀이는 궁금했던 점을 비교적 쉽게 입에 담을 수 있었다.
“아까 우연히 듣게 되었는데, 자비에 님께서 하시던 말씀을 마저 들을 수 있을까요? 광전사로 각성하는 방법 말입니다.”
“아, 그거요?”
특별한 기밀 사항은 아니었던 것인지, 자비에게 쿠키를 파삭 베어 먹고서는 대수롭지 않게 입을 열었다. 듀이는 귀를 쫑긋 세우고는 그녀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광전사는 역사적으로도 무척 극소수로 존재했기 때문에 남아 있는 자료가 거의 없어요. 하지만 그들이 각성하게 된 계기에는 공통점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
“그르릉-!”
“크에에에에-!”
아네모네 궁의 깊은 지하.
듀이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마수들을 보며 짧았던 상념에서 깨어났다.
눈앞의 마수들은 여전히 위협적이고 흉포했다. 그것들이 동시에 포효하자, 번개가 내리치기라도 한 듯 주변 공간이 흔들렸다.
듀이는 양손으로 꽉 검을 쥔 채, 가장 가까이에 있던 마수에게로 달려들었다.
촤악-!
노리는 건 목이었다.
그러나 듀이의 검이 분명 마수에게 닿았는데도 고작 표면에 상처를 입히는 게 전부였다. 돌덩이를 베는 것 같은 감각도 여전했다.
하지만 그나마도 최상급 마수의 재생 능력으로 금방 회복되고 말았다. 절로 욕설이 나올 정도였다.
“젠장!”
듀이가 자세를 잡자마자 이번에는 뒤에서 다른 마수의 공격이 들어왔다. 이미 예상한 바였기에 듀이가 높이 뛰어올라 마수가 휘두르는 흉측한 팔을 피했다. 그러나.
“키에엑-!”
어느새 그곳에는 또 다른 마수가 자리해 있었다. 제길! 이번에는 피할 틈도 없었다. 듀이는 마수의 공격을 정통으로 맞아 지하실의 돌벽에 강하게 처박히고 말았다.
쾅-! 하는 파열음과 함께 듀이가 쿨럭 입에서 피를 토했다.
하지만 상황을 수습하기도 전에, 이번에는 옆에서 다가온 마수가 듀이의 허리를 거세게 걷어찼다.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듀이가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최상급 마수 다섯을 이길 수는 없다. 그 정도의 판단은 할 수 있었다. 기합이나 노력만으로 가능한 일에도 한계가 있었다.
‘내가 여길 빠져나갈 수 있는 방법은 처음부터 하나뿐이었어.’
광전사로 각성하는 것.
자비에에게 들은 덕분에 방법은 알고 있다. 하지만 망설여지는 게 사실이었다. 괴물처럼 강한 힘을 얻는 것의 대가는 기억과 감정을 잃는 것이었으니까.
언젠가 각성의 힘이 필요한 순간이 올지도 모르겠다고, 막연하게 생각하기는 했다.
그렇지만 설마 그 순간이 이렇게나 빨리 찾아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솔직히 말해서 두려웠다.
아직은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 네리아를 잊는 것이, 그리고 그녀에 대한 감정을 잃는 것이 그 무엇보다도 무서웠다.
듀이의 인생은 네리아를 만나면서부터 바뀌었다. 그녀는 듀이의 전부이자 그의 세계 그 자체였다.
그런데 그런 네리아를 기억할 수 없게 된다고? 그렇다면 살아 있어도 시체나 다름없는 거 아니야?
듀이는 고요한 눈길로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바라보았다. 어째서인지 마수가 몹시도 느릿느릿 움직이고 있는 것 같았다.
‘아…….’
사람이 죽기 직전에는 시간이 늦게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하던가?
이번에는 멍하니 허공 위를 쳐다보았다. 차가운 회색빛 지하 공간 속에서 네리아의 웃는 얼굴이 그려졌다.
“그르르릉-!”
그러는 동안에도 마수들이 듀이에게로 몰려오고 있었다. 이제 더는 선택을 미룰 수 없었다.
“네리아 님…….”
듀이가 허공 속에 그려 놓은 네리아의 환상은 아직도 사라지지 않은 채 그에게 미소를 지어 주고 있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네리아 님을 기억에서 지워 버릴 수 있지? 그런 일은 절대 있을 수 없어. 나는 다른 사람들과는 다를 거야, 라고.
순간, 듀이는 결심했다.
그는 힘없이 쓰러져 있던 몸을 천천히 일으켰다. 머릿속에서 도서관에서 만났던 자비에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그들이 각성하게 된 계기에는 공통점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그건 바로?’
‘일단, 한 번 죽는 거예요.’
‘주, 죽는다고요?’
‘더 구체적으로는 가사 상태에 빠져야 한다고 할까요? 그리고 그들이 남긴 이야기에 따르면, 그 뒤에 영혼이나 의식 같은 것이 어딘가로 이동했다고 해요. 그곳에서 출구를 찾아 나와야 했다고…….’
솔직히, 뒷부분의 이야기는 확실하게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그녀의 말처럼 한번 죽어 본다면 알 수 있게 되겠지.
듀이가 검을 들어 올렸다. 마수에게 공격받는 순간에도 손에서 놓지 않았던 것이다.
“네리아 님, 기다려 주세요. 저, 살아서 돌아갈게요. 절대 네리아 님을 잊지도 않을게요.”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러고는 들고 있던 칼을 자신의 심장에 박아 넣었다. 더 이상의 망설임 없이.
***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어둠 속에서 갈색 머리와 금색 눈동자를 가진 꼬마가 훌쩍훌쩍 울고 있었다.
여기는 어디지?
그리고 나는 누구지?
계속 생각했지만, 도저히 답을 찾을 수 없었다. 꼬마는 도무지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울었다.
어디인지도 모를 곳에서,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도 모를 긴 시간이 흘렀을 때였다.
-너 여기에 있었구나!
어디선가 들리는 목소리에 꼬마가 살며시 고개를 들었다.
저건 뭐지?
꼬마가 울던 것을 멈추고는 눈을 깜빡거렸다. 허공에 반짝거리는 무언가가 날아다니고 있었다.
손바닥 크기만큼 작은 체구에 등에 달린 반투명한 날개까지. 저 생김새는 마치 동화책 속의 삽화에서나 봐 왔던…….
“요정?”
-맞아! 난 요정이야! 너를 한참 동안 찾아다니고 있었어!
요정이 자그마한 손을 뻗어 꼬마를 일으키려고 했다.
-어서 일어나! 빨리 여기서 나가야 해. 그러지 않으면 위험해.
“으응, 그런데 여긴 어디야?”
-네 무의식 속의 공간이야! 그렇지만 여기서 오래 머물렀다가는 죽을 수도 있어. 그전에 내가 출구까지 널 안내해 줄 테니까 나를 따라오도록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