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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은 셀프입니다 (131)화 (131/172)



<131>

듀이가 붙잡혀 간 곳은 어디일까?

적어도 란타나가 기거하는 서궁은 아닐 것이 분명했다. 아무리 황제에게 총애받는 디르케라도 황궁 안에서 일을 벌일 수는 없을 테니까.

그렇다면, 란타나가 듀이를 광전사로 만들려고 하는 장소는 그녀가 소유하고 있을 아지트가 아닐까?

그렇게 생각했기에, 내가 최대한 마차를 빠르게 달리게 하여 도착한 곳은 레오니트 황태제의 궁이었다.

물밑에서 란타나의 뒤를 캐 온 황태제라면 그녀가 일을 벌일 만한 아지트의 위치 역시도 알고 있을 확률이 높았기 때문이었다.

“다리스에 영광이 있기를! 발렌티스 백작가의 가주 내정자로서 황태제 전하를 찾아뵙고 인사를 드리고 싶어 방문하였습니다.”

황태제궁 입구.

란타나와 그 일파의 눈을 피할 필요가 있었기에, 지금까지 황태제와의 만남은 그의 사조직인 루체테를 통해 비밀리에 이루어졌다.

그러나 듀이가 끌려간 이상, 지금은 다른 때와 같은 절차를 따를 시간이나 여유가 없었다. 당장이라도 레오니트를 만나야 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황태제인 그를 당당하게 찾아갈 명분은 있었다. 나는 황태제궁의 입구를 지키고 있는 시종을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다리스의 신하로서 더 일찍 왔어야 하건만, 가문의 일이 바빠 늦어졌습니다. 송구합니다. 전하께서는 안에 계신가요?”

“안녕하십니다, 레이디 발렌티스! 전하께서는 궁 안에 계시지만 선약이 없는 분을 들일 수는 없습니다. 죄송하지만, 방문 약속을 잡고 다음에 방문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정중한 거절이었지만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황족을 만나는 건 쉽지 않았고, 눈앞의 시종은 말단이기에 레오니트와 나의 관계를 모르고 있다.

그렇기에 나는 일부러 가져온 빈 서류 봉투를 스윽 올려 들었다.

“그렇다면 전하의 비서관을 만나서 이것만 먼저 전해 드릴 수는 없을까요?”

“비서관을 만나는 것이라면야… 이쪽으로 따라오시지요!”

비서관쯤 되면 내 존재를 알고 있을 테니 나를 황태제에게로 데려다주겠지. 그런 판단이었다.

시종이 흔쾌히 수락하고는 나를 어디론가 안내했고, 조금 뒤에 도착한 곳은 황태제궁의 하급 시녀들이 모여 있는 휴게실이었다.

“그레타 님, 쉬는 중에 죄송하지만 레이디 발렌티스를 토레도 경께 안내하여 주십-”

“제가 가겠습니다.”

시종이 누군가를 지정하여 말을 걸고 있을 때였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손을 드는 사람이 있었다.

‘어? 저 사람은?’

눈이 마주쳤는데, 니나렛의 궁에서 본 적이 있는 얼굴이었다. 분명, 우연인 척 내 드레스에 음료수를 쏟아 레오니트와의 만남을 주선했었던 시녀였다.

“그럼 카릴 님, 부탁합니다!”

“알겠습니다. 레이디를 토레도 경이 계신 곳으로 모시겠습니다.”

카릴이라고 불린 시녀가 자리에서 일어서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그녀와 나는 휴게실에서는 아는 척을 하지 않았지만, 사람이 없는 복도로 왔을 때는 그녀가 뒤를 돌아보지 않은 채로 작게 말했다.

“급한 일이시지요? 전하는 집무실에 계십니다. 바로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공식 직책은 하급 시녀라도 실상은 레오니트의 직속 부하로 보이는 그녀는 역시나 눈치가 빨랐다.

내가 만나려는 사람이 비서관이 아니라 레오니트임을 간파하고는 자진하여 안내를 맡은 것이었다.

“그럼 잠시.”

그녀가 문 앞에 있던 시종장에게 무언가 귓속말을 했고, 그 뒤로 짧은 절차를 걸쳐 문이 열렸다.

“이쪽입니다. 들어가십시오.”

“친절에 감사드립니다.”

그녀가 나서 준 덕분에 더 간단하게 레오니트를 만날 수 있게 되었기에 진심을 담아 인사했다.

그러고는 집무실 안으로 발을 들이자, 책상에 앉아 펜을 움직이고 있던 레오니트와 눈이 마주쳤다.

“다리스에 영광이 있기를. 이렇게 갑작스럽게 찾아뵙게 되어서 송구합니다, 전하.”

“아닙니다. 그런데 레이디께서 연통도 없이 저를 찾아오시다니, 심각한 일이라도 있는 겁니까?”

“제 호위 기사가 조금 전에 디르케에게 납치를 당했어요.”

“…예? 납치? 호위 기사가요?”

“그건.”

협조를 받으려는 이상 적당히 사정을 숨기는 건 불가능하다. 란타나가 별것도 아닌 이유로 타인의 기사를 납치할 리 없으니까.

나는 입을 열어 핵심은 들어가되 최대한 간결하게 설명했다.

“광전사? 저로서는 처음 듣는 단어이지만 사실 확인까지 할 시간은 없을 것 같으니, 여기서는 레이디의 말씀을 전적으로 믿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전하.”

“그렇게나 강한 자가 디르케의 손에 들어가는 건, 저로서도 상당히 곤란한 일이 되겠군요.”

“디르케가 제 기사를 데려갔을 만한 장소를 아시나요?”

“…짐작 가는 곳이 있습니다. 아마도 확실할 겁니다.”

레오니트가 눈을 가늘게 떴다.

“아네모네 궁. 수도 외곽에 위치한 별궁으로 디르케의 ‘진짜’ 근거지입니다.”

“아네모네 궁이요?”

“예. 몇 년 전에 폐하께서 디르케에게 회임 선물로 하사한 곳이지요. 입구에 강력한 잠금 마법이 걸려 있어 실력 있는 마법사를 데려가지 않는 이상은 바깥에서 강제로 들어가는 것이 어렵습니다. 그야말로 안에서 일을 벌이기에 최적의 장소이지요.”

“…그런 것 같네요.”

“가실 거라면 저도 전투가 가능한 부하들을 지원하겠습니다. 다만 황태제인 제가 디르케 소유의 별궁에 기사를 보낼 명분이 없으니, 보내는 건 루체테의 인원들이 되겠지만요.”

“감사합니다, 전하.”

듀이를 데려오는 과정에서 무력 충돌이 벌어질 가능성을 결코 배제할 수 없다. 전투 인원을 지원해 준다는데 거절할 이유가 없기에 나는 그에게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아네모네 궁이라.’

유력한 위치를 알게 된 건 상당한 수확이었다. 저택으로 돌아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서던 때였다.

“잠깐, 레이디 발렌티스.”

“네?”

“만약 아네모네 궁에 침입하는 데 성공한다면, 제가 보낸 부하 한 명에게는 개인적으로 심부름 하나를 시켜도 괜찮겠습니까?”

“물론 괜찮습니다. 저에게 여쭤보실 필요조차 없어요.”

“양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네모네 궁에서 가져와야 할 물건이 있거든요. 그동안은 계속 실패만 했던 터라.”

황태제가 그렇게 말하며 산뜻하게 웃었다. 가져와야 할 물건이라고?

그건 혹시, 예전에 그가 말한 적 있었던 ‘디르케에게 잡혀 있는 약점’을 말하는 걸까?

“아닙니다, 전하. 당연하지만 감사해야 할 사람은 제 쪽인걸요.”

하지만 자세한 사정을 캐묻는 건 실례가 될 것 같기에, 나는 그에게 감사 인사를 남기고는 황궁을 벗어났다.

***

다시 발렌티스 저택에 도착한 후에는 세사르와 그레이 경을 모아 듀이를 데려올 작전을 세웠다.

“한시가 급하니 빨리 진행할게요. 운이 좋게도, 아네모네 궁 내부의 지도를 구할 수 있었어요.”

촤르륵.

테이블 위로 종이를 펼쳤다. 레오니트에게 받은 것이다.

아네모네 궁은 원래가 황궁 소유의 별궁인 만큼, 내부 구조가 나와 있는 지도 역시 원래라면 외부 반출이 절대 불가능한 물건이다.

그러나 란타나에게 절대 광전사를 넘길 수 없다는 황태제의 판단하에 은밀히 빌려 올 수 있었던 것이다.

“제가 이걸 가져왔다는 건 절대 비밀이에요. 그래서 가문의 다른 기사들까지는 부르지 못한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아시죠?”

“예, 물론입니다. 오늘의 비밀은 무덤까지 가져가겠습니다.”

“그럼 두 분은 지도를 외우면서 이야기를 들어 주세요.”

물론, 듀이가 있는 곳이 아네모네 궁이 아닐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하지만 확률이 가장 높은 장소가 그쪽인 만큼, 당장은 아네모네 궁에 관해서 논의하기로 했다.

“우선은 별궁 입구에 걸려 있는 잠금 마법을 해제해야 해요. 세사르 님, 가능할까요?”

“가능합니다! 해제 마법 정도야 예전에는 마력이 부족해서 못 쓴 거지, 이론은 처음부터 완벽했거든요. 지금은 요정왕의 심장이 있으니 안심하시기를!”

“다행이에요. 그럼 다음으로 듀이가 있을 법한 장소를 추려 보자면-”

그런 식으로 두 사람과 구체적인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아, 아가씨! 네리아 아가씨!”

사샤가 이번에도 노크를 생략하고 회의실의 문을 열었다. 그녀의 손에 편지 한 통이 들려 있었다.

“바, 방금 도착한 것인데 발신자가…….”

“사샤? 발신자가 누군데?”

“…디르케입니다.”

“뭐라고?”

귀를 의심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란타나가 나한테 편지를 보냈다고? 나는 사샤에게서 낚아채듯 편지를 받아 봉투를 뜯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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