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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은 셀프입니다 (129)화 (129/172)



<129>

듀이는 홀린 듯이 눈앞의 마수를 바라보았다.

마수를 보며 사람을 떠올렸다는 놀라움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그 마수가 어린 시절의 친구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을까.

듀이는 해치워야 할 대상을 바로 목전에 두었으면서도 움직일 수도, 검을 휘두를 수도 없었다.

“으윽-!”

그 순간, 어깨에 통증이 찾아왔다. 상급 마수의 날카로운 손톱이 듀이의 몸에 파고든 것이었다.

뒤늦게 정신을 되찾은 듀이의 눈동자에 초점이 돌아왔다.

그러나 이미 늦은 시점이었다. 마수의 두 번째 공격이 곧장 듀이를 향하고 있었던 것이다. 눈을 깜빡이는 정도로 찰나의 순간이었다.

‘안 돼, 위험해!’

상급 마수는 하급 같은 조무래기와는 다르다. 제대로 맞았다가는 즉사할 수도 있는 위협적인 공격이었다.

하지만 피할 수 있는 거리가 아니었다. 듀이가 곧 다가올 충격에 대비하며 최대한 방어 자세를 취하고 있을 때였다.

“듀이 경! 괜찮으십니까?”

반대쪽에서 날아든 줄리안의 검이 마수의 심장을 관통했다.

“끼에에에-!”

상급 마수가 단말마의 비명을 내지르고는 쾅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즉사였다.

그리고 그 뒤로 줄리안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야말로 생명의 은인이었다. 듀이의 위기를 발견하고 급하게 달려온 것인지 그의 얼굴에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어깨의 상처가 심합니다! 약 가지고 있으시지요?”

“…네, 가지고 있습니다.”

듀이가 목에 걸고 있던 유리병을 재빠르게 꺼냈다.

회복도 회복이었지만, 마수는 사람의 피 냄새를 맡으면 몰려오는 습성이 있기에 당장 출혈을 멈춰야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 이런.”

세사르의 약은 적당량만 뿌려도 효과가 충분하다.

하지만 실수로 손이 삐끗해서인지 유리병에 든 물약 전부를 환부에 쏟고 말았다. 아직도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영향 때문이었다.

듀이는 방금 만난 마수로 인해 명백히 동요하고 있었다.

“방금은 진심으로 위험했습니다.”

약을 낭비한 건 아쉽지만 다행히도 상처가 깨끗하게 사라지기는 했다. 줄리안이 그 모습을 확인하고는 안심하며 땅에 주저앉았다.

“그래도 늦지 않아서 다행이었어요. 그동안 카펠 경 때문에 마수 밭에서 신나게 굴렀더니, 사냥 속도가 빨라지기는 했네요.”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경이 아니었으면 저는 이미 죽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닙니다, 별말씀을요! 지금까지 듀이 경이 저를 도와주신 일이 훨씬 더 많지 않습니까?”

“…….”

줄리안이 뿌듯한 목소리로 무어라 말을 내뱉었지만, 듀이는 대답할 정신도 없이 쓰러진 마수의 사체를 멍하게 바라보기만 했다.

‘왜 하필 노아를 떠올린 거지?’

사람과 마수가 닮았을 리 없다.

그렇지만 직감치고는 너무나도 선명했다. 듀이의 눈이 흐려졌다. 마음속에 싹튼 기묘한 기분이 도저히 사라지지 않았다.

‘그때의 그 이상한 소문…….’

회색 머리에게 입양된 아이들이 어느 순간 사라져 버린다고.

문득, 무의식적으로 듀이의 머릿속에 말도 안 되고 있을 수도 없는 가정이 하나 떠올랐다.

설마, 회색 머리가 아이들을 데려가 마수로 만들어 버린 건 아니었을까. 그의 친구였던 노아처럼.

“듀이 경, 그런데 아까는 어째서 가만히 있기만 했습니까? 발에 쥐라도 났던 건가요?”

“경, 혹시 사람을 마수로 변하게 할 수 있다는 이야기, 들어 보셨습니까?”

“네?”

듀이가 내뱉은 뜬금없는 이야기에 줄리안이 갑작스럽다는 듯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아니요? 있을 수 없는 일 아닙니까? 들어 본 적도 없습니다.”

“역시 그렇지요?”

“네. 하지만 만일이라고 해도 사람을 마수로 변하게 한다니. 말만으로도 끔찍하군요. 있어서는 안 될 너무 위험한 일이에요.”

“네. 분명 그럴 텐데-”

거기까지 이야기하던 듀이의 목소리가 중간에 끊겼다. 어느 순간, 그의 눈빛이 매섭게 돌변했다.

그들을 둘러싼 주변에서 불안하고도 날카로운 기운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온몸에 돋아 있는 솜털이 쭈뼛 곤두설 정도였다.

마수의 기척이었다. 상급의, 더군다나 이번에는 한두 체 수준이 아니었다.

“듀이 경? 갑자기 왜 무서운 표정을 짓고 그러십니까?”

“줄리안 경, 검 드십시오.”

“예?”

뭔지는 모르겠지만, 우선은 듀이가 시키는 대로 칼을 들어 줄리안이 전투 자세를 취했을 때였다.

“그르르르르.”

“그르릉-!”

불청객이 들이닥쳤다. 눈으로는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숫자의 상급 마수가 그들 주변을 위협하듯이 원으로 에워싼 것이었다.

“뭐, 뭡니까, 이놈들은? 하나, 둘, 셋, 넷……. 아니, 수십 마리는 되겠는데요?”

“…….”

곳곳에서 마수의 눈이 소름 끼치게 번뜩였다. 두 사람이 자리한 테라핀 숲이 순식간에 위험한 분위기로 휩싸였다.

듀이와 줄리안은 등을 마주 대고는 마수를 향해 칼을 겨눴다.

하지만 이 정도로 많은 상급 마수를 상대하는 것은 무리였다. 등골이 서늘해질 지경이었다.

“듀이 경, 제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걸까요? 린도 경의 말씀에 따르면, 여기는 황궁 기사단의 사전 탐사가 끝난 구역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상급 마수가 이렇게 많을 수가 없지 않아요?”

게다가 마수는 몰려다니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렇게 많은 수가 한 장소에 모여 있다니.

듀이의 경우, 기사 시험 때 비슷한 일을 겪기는 했다.

평민 아이를 납치하여 피를 흘리게 해, 하급 마수들을 한 곳으로 유인한 것이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그런 유인책이 없다.

듀이가 어깨에 상처를 입기도 했지만, 금방 지혈하였기에 마수들을 불러 모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어째서? 어떻게?

무언가 인위적인 개입이 있었다는 말 이외로는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듀이가 함정에 빠졌다는 것.

그들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숫자에 줄리안의 낯빛이 어둡게 가라앉았다.

“저도 한 명의 기사인 만큼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이곳에서 전사한다면, 로트 백작가로 제 유언을 전달-”

“젊은 분이 못 하는 소리가 없습니다! 유언 같은 소리 하지 말고, 일단은 힘을 합쳐 해치웁시다!”

그때였다.

어디에선가 험상궂은 외모를 가진 사내가 마수의 목을 베며 날아오르듯 나타났다. 듀이의 안전을 위해 두 사람의 주변을 맴돌고 있던 그레이였다.

그는 말을 하는 도중에도 마수들을 베어 내고 있었는데, 남부 지역에서 마수들을 거의 학살하다시피 했다는 명성에 걸맞게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동작이었다.

“스승님!”

“스승님? 설마 저분이 말로만 듣던 그레이 경? 아니.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니라, 노력하겠습니다!”

잡담이나 다른 생각을 할 상황조차 아니었다. 듀이와 줄리안이 그레이 경을 따라 땅을 박차고 달려 나갔다.

***

듀이가 숨을 가쁘게 내쉬었다.

결론적으로, 세 사람이 합동하여 근처에 나타난 상급 마수들을 전부 처리하기는 했다. 곳곳에 나뒹구는 마수의 사체로 인해 발을 디딜 곳이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마냥 기뻐할 수는 없었다. 모두가 무사하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줄리안 경! 괜찮으십니까? 정신 차려 보십시오!”

듀이나 그레이도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마지막에 줄리안 로트가 상처를 입고 쓰러졌다. 듀이에게 동시에 달려드는 마수 중 하나를 처리하다가 치명상을 입은 것이었다.

“눈 뜨십시오!”

“저는 괜…찮습…….”

줄리안의 얼굴이 혈색을 잃고 새하얘졌다. 그가 내쉬는 숨소리가 갈수록 희미해지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죽을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스승님! 가지고 계신 상처 치료약은 없습니까?”

“아까 전투 중간에 넘겨준 게 전부였다. 이거라도!”

아까 실수로 약을 쏟지 말았어야 했어……! 듀이가 뒤늦게 후회하며 그레이 경이 꺼낸 기력 회복약를 줄리안에게 먹였다. 그러나 당장 눈에 보이는 유의미한 효과는 없었다.

“이대로라면 로트 경의 목숨이 위험해. 당장 의사에게 데려가 치료할 필요가 있어.”

그레이가 옷을 찢어 줄리안의 환부를 강하게 압박하고는, 그를 등에 업었다.

“내가 베이스캠프까지 가는 지름길을 알고 있다. 듀이, 따라올 수 있겠느냐?”

“예, 스승님.”

듀이가 그렇게 대답하며 남아 있는 기력 회복약을 꿀꺽꿀꺽 들이켜고는 자세를 정비했다.

사실은 할 말이 많았다.

어떻게 상급 마수들이 이렇게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난 것인지, 이런 일을 벌인 자의 정체가 누구인가와 같은.

그러나 지금은 여유를 부릴 때가 아니었다. 당장은 줄리안을 안전한 곳으로 데려간 뒤에 다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좋겠다.

무언의 눈빛을 나눈 두 사람이 그렇게 의견을 통일한 후, 테라핀 숲의 나무들을 가르며 어디론가 뛰어가기 시작했다.

“이 길로 가다 보면 곧 도착할 수 있을 거다! …제길, 마수가 또! 대체 어디서 나타난 거야? 이 부근은 상급 마수가 자주 출몰하는 구역이 아니건만!”

“마수는 제가 처리하고 따라가겠습니다. 스승님은 줄리안 경을 데리고 먼저 가 주십시오!”

“알겠다.”

마수가 환자를 공격하기라도 하면 곤란하다. 듀이가 장애물을 없애기 위해 측면에서 나타난 상급 마수에게 달려들었다.

듀이는 마수가 휘두르는 거대한 팔을 가볍게 피하고서는, 아래로 파고들어 마수의 심장을 찔렀다.

“너 따위 상대할 시간 없다고!”

듀이가 마수의 사체에서 검을 뽑아내 끈적한 피를 털어 냈다. 그러고는 다시 스승님을 따라가기 위해 뛰쳐나가려던 순간이었다.

“듀이 경! 무사하십니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듀이가 반대쪽으로 몸을 돌리자, 그곳에는 갈색 머리에 서글서글한 인상을 가진 린도 경이 서 있었다.

“이 부근에서 위험이 발생했다는 보고를 듣고 달려오는 길입니다!”

린도는 급하게 온 것인지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 걱정과 분노가 동시에 섞여 있었다.

“어쩐지 아까부터 카펠 경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서……. 설마 했는데, 듀이 경에게 무슨 짓을 벌이기라도 한 것인지.”

“…….”

“따라오십시오. 베이스캠프까지 안전한 길로 안내하겠습니다.”

“아니요, 린도 경.”

그러나 듀이는 린도의 말을 무시하고는 오히려 그를 향해 살기를 담아 검을 겨눴다.

“저는 따라가지 않겠습니다.”

“듀이 경? 왜 그러십니까?”

“당신, 디르케의 졸개지?”

그렇게 묻는 듀이의 목소리가 몹시도 차갑게 들렸다.

“디르케? 뭔가요? 대체 무슨 근거로 그런 말을 하는 겁니까?”

“근거? 그거야.”

듀이는 마수를 상대하는 동안 생각했었다. 이런 일을 벌이는 사람의 정체가 누구인지를.

처음은 카펠 경을 의심했다. 그럴 수밖에 없을 정도로 듀이에게 부담을 주고 있는 자였으니까.

하지만 이상하게 느껴질 만큼 문제가 생기고 있는 이곳으로 듀이를 보낸 사람은 카펠이 아니었다.

바로 눈앞의 기사, 린도 경.

‘카펠 경! 작작 좀 하십시오! 거기는 상급 마수들이 자주 출몰하는 곳이 아닙니까?’

‘오늘은 이쪽으로 가십시오.’

카펠 경이 워낙 수상한 인물이었기에 그쪽으로 신경이 쏠려 의심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린도 경 역시 불참한 훈련관을 대신하여 온 인물이었다.

‘그렇기에 카펠 경과 린도 경이 공범이 아닐까 그런 생각도 했었는데.’

듀이를 어느 구역으로 보내느냐를 놓고 신경전을 벌이던 두 사람의 모습은 연기가 아니었다.

그러다가 줄리안이 잡담처럼 내뱉던 이야기를 들으며 추측할 수 있는 사실이 있었다.

‘뭐, 고생은 했어도 실력은 는 것 같네요.’

‘그동안 카펠 경 때문에 마수 밭에서 신나게 굴렀더니, 사냥 속도가 빨라지기는 했네요.’

실전에서 굴러다니며 고생한 만큼, 실제로 실력으로 돌아왔다.

그 사람, 겉보기에 수상해서 그렇지, 정말 수석 합격생인 듀이의 재능을 높이 사 어렵고 힘든 훈련을 시키려고 한 건 아닐까?

그렇다면 듀이를 해치기 위해 나타난 사람은 바로.

“근거 같은 거, 말하자면 길어. 그냥 내 직감이야.”

“직감이라고요?”

그렇게 되묻는 린도의 한쪽 입꼬리가 어쩐지 비열하게 올라가 있었다. 서글서글해 보이던 방금까지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사람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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