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
“그럼 지금부터는 중, 상급 마수의 특징과 사냥 시의 주의 사항에 관해 설명하겠습니다.”
그 뒤로는 짧은 수업이 시작되었다. 모두 스승인 그레이 경에게 들었던 이야기였지만, 듀이는 놓치는 부분 없이 성실하게 경청했다.
그러나 얼굴이 따끔거리는 것만 같은 느낌에 시선이 느껴지는 쪽을 쳐다보면, 언제나 카펠 경과 눈이 마주쳤다.
네리아는 그에게 ‘내 경쟁자인 다른 귀족이 널 공격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해.’라고 말했지만, 듀이는 눈치로 알고 있었다.
네리아가 공방에서 디르케를 만났던 날, 응접실 내부로 신경을 집중하고 있다가 의도치 않게 듣고 말았다.
대화 내용을 제대로 들은 건 아니었지만 한 가지만은 확실했다. 두 사람 사이에서 듀이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는 것을.
그리고 테라핀 숲으로 이동하는 동안 몰래 자신을 따라오는 기척은 분명 스승님의 것이었다.
‘디르케가 날 노리고 있는 거야. 그래서 네리아 님이 날 보호하려고 스승님을 보내신 거고.’
게다가 처음에 훈련관을 소개하던 기사가 했던 말.
‘마지막으로, 원래 올 예정이었던 분이 가문 사정으로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대신 교육을 맡아 주신 분이 여기 두 분, 카펠 경과 린도 경이십니다.’
그렇기에 듀이는 추측할 수 있었다. 카펠 경은, 아마도 디르케가 보낸 수하가 아닐까.
훈련관으로 자신의 사람을 보낼 수 있도록, 원래 예정된 사람을 일부러 빠지게 만든 것이다.
‘하지만 저 사람은 위험해 보여.’
기사 시험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레고트 전 가주가 그를 방해하기 위해 메이슨 패거리를 보내지 않았던가.
그러나 카펠 경은 메이슨 따위와는 달리 정말로 강해 보였다.
1:1로 붙게 된다면 이길 수 있을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듀이는 긴장감을 지우기 위해 꿀꺽 침을 삼키며 검 손잡이를 쥐었다.
“자, 그럼 이제 모두가 기다렸던 실전 시간입니다! 경들은 2명씩 짝을 지어 저희가 지정하는 구역으로 가게 될 겁니다.”
“물론, 저희가 이미 사전 탐사를 다녀와서 마수의 수를 줄여 놓았으니 큰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질문 있는 사람 있습니까?”
“있습니다! 아까 2명씩 짝을 짓는다고 하셨는데 파트너는 어떻게 정해지나요?”
“원하는 사람이 있으면 반영하겠습니다. 일단은 교육이고, 협동을 위해서라도 사이 나쁜 사람을 붙여 놓을 수는 없으니까요.”
원하는 사람을 반영한다고?
순간적으로 테라핀 숲 입구에 웅성거림이 일었다. 신임 기사들은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파트너로 삼을 상대를 찾기 시작했다.
‘2명씩 움직인다니.’
그러는 동안 듀이는 생각했다.
그렇다면 귀족 출신 기사와 움직이는 쪽이 유리하다. 카펠 경도 듀이와 상관없는 귀족을 함부로 건들 수는 없을 테니까.
‘그러면 짝으로 정할 사람은.’
듀이가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파트너는 출신이나 신분에 따라 정해지는 분위기였지만, 방금 일을 생각하면 귀족 출신 기사라고 해도 듀이의 제의를 거절할 것 같지 않았다.
그러던 중, 눈이 마주친 사람이 있었다. 아까 그에게 가장 먼저 말을 걸어왔던 로트 백작가의 차남, 줄리안 로트였다.
“…….”
“…….”
두 사람 사이에 말 없는 시선이 오갔다. 짝이 결정된 순간이었다.
“듀이 경! 저를 선택해 줘서 고맙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옆에서 많이 배우겠습니다.”
“아닙니다, 줄리안 경. 저야말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파트너끼리 줄을 서게 되었을 때, 줄리안은 만면에 웃음을 띠고 있었다. 주변에서는 듀이와 짝이 된 줄리안을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이동할 구역을 정해 주겠습니다. 두 사람은 이쪽. 지도를 보고 가면 됩니다. 그리고 다음 두 사람은-”
먼저 줄을 선 순서대로 구역이 정해졌다. 그리고 듀이와 줄리안의 차례가 되었을 때였다.
“말로만 들은 듀이 경이로군요! 유명인을 만나서 반갑습니다!”
갈색 머리를 한 린도 경은, 서글서글한 인상만큼이나 붙임성 있는 태도를 가진 사람이었다.
“저희 기사단장님이 듀이 경을 진심으로 탐내셨거든요. 황궁 기사단으로 오지 않아 아쉽습니다. 그럼 두 사람이 갈 곳은-”
“여기다.”
그런데 린도가 지도에서 어딘가를 가리키기 직전, 옆에 있던 카펠이 어딘가를 짚었다. 그의 얼굴에 묘한 웃음이 걸려 있었다.
“카펠 경? 잠깐만요.”
린도는 당황한 얼굴로 카펠을 쳐다보았다.
“여기는 저희가 사전 탐사를 다녀온 지역이 아니지 않습니까?”
“듀이 경은 역대 최고의 성적으로 시험에 합격했습니다. 다른 기사들과 같은 기준을 세우는 게 더 이상한 일 아닙니까?”
“그럼 로트 경은요?”
“듀이 경, 자신 없습니까? 이번 기수의 수석 합격자면서?”
카펠은 린도의 말을 무시한 채, 듀이를 도발했다. 그렇지만 이런 유치한 도발은 통하지 않지. 듀이가 그를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예, 자신 없습니다. 저희는 사전 탐사가 된 곳으로 가겠습니다.”
“그 대단하다고 소문이 자자한 레이디 발렌티스도 호위 기사로는 별 볼 일 없는 놈을 두고 있군.”
“…….”
듀이의 눈썹이 올라갔다.
지금 감히 누구의 이름을 운운한 거야? 하지만 네리아의 명예가 도마 위에 올라간 이상, 듀이의 답은 바뀔 수밖에 없었다.
“아닙니다. 가겠습니다. 저는 어디가 되었든 상관없습니다.”
“당연히 그렇게 나와야지.”
카펠이 음침하게 웃고는 지도의 어딘가를 가리켰다.
듀이는 고개를 대충 꾸벅이고는 줄리안과 함께 지정된 장소로 향했다. 발을 들이자마자 중급 마수가 튀어나오는 곳이었다.
듀이는 가볍게 마수의 목을 베어내고는 파트너에게 양해를 구했다.
“죄송합니다. 저 때문에 줄리안 경까지 이런 곳으로 오게 되다니.”
“상관없습니다! 곧바로 실전에 투입된 것 같아서 더 좋은데요? 오히려 저는 중급이나 상급보다는 최상급 마수를 사냥해 보고 싶습니다. 듣기로는 기사단장 정도는 되어야 1:1로 잡을 수 있다지만, 직접 만나면 또 모르지 않겠습니까.”
패기가 넘치는 답변이었다. 하기야 이곳에 모인 모두는 갓 기사가 되었다는 자부심에 취해 호승심이 넘치는 상태였다.
“그리고 저는 형님을 따라 마수 발생지에 가 본 경험이 많아서 이런 데는 사실 익숙합니다. 아! 뒤쪽에 마수가 있습니다.”
듀이는 줄리안의 말에 안심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디르케라도 로트 백작가의 직계를 건드리지는 못할 것이고, 근처에는 스승님이 있다. 게다가 네리아에게 받은 약도 많이 있었다.
‘나를 건들지는 못할 거야.’
듀이는 그렇게 생각하며 다가오는 마수를 베어 가기 시작했다.
***
듀이와 줄리안. 두 사람의 매일은 첫날과 다르지 않았다.
다음 날, 그다음 날이 되어도 카펠 은 일부러 둘을 사전 탐사를 거치지 않은 위험 지역으로 보냈다.
그들이 향한 곳에서는 중급 마수 열 마리가 동시에 나타나기도 하며, 상급 마수가 출몰하기도 했다.
그랬기에 듀이와 줄리안은 언제나 땀에 젖은 녹초가 되어, 신임 기사들 중에서 가장 늦게 베이스캠프에 도착하고는 했다.
듀이의 체력을 지속적으로 깎아 놓을 계획적인 행동인 건가, 그런 생각이 들 정도였다.
‘네리아 님이 기력 회복약을 넉넉하게 챙겨 주셔서 괜찮았지만.’
덕분에 그의 파트너로 고생하게 된 줄리안에게도 약을 나눠 줄 수 있었다. 회복약이 없었으면 아무리 자신이라도 꽤 힘들었을지도.
‘네리아 님 덕분이야.’
듀이는 천막 아래에서 잠들기 직전에 클로버가 수놓인 손수건을 보며 헤헤 웃었다.
그리고 열흘째가 되던 날.
“두 사람이 오늘 가야 할 곳은 바로 이곳입니다.”
“카펠 경! 작작 좀 하십시오! 거기는 상급 마수들이 자주 출몰하는 곳이 아닙니까?”
카펠이 지도에서 가리키는 곳을 보며, 결국 다른 훈련관인 린도가 폭발했다. 언제나 서글서글한 그의 얼굴이 짜증으로 물들어 있었다.
“아무리 수석 합격자라도 이제 갓 기사가 된 소년입니다! 다른 의도라도 있는 것이 아닙니까?”
“…그럴 리가요.”
‘다른 의도’라는 말에 어째서인지 카펠이 옆으로 눈을 굴렸다.
“믿어도 되겠습니까? 그렇다면 오늘은 두 사람을 탐사가 끝난 구역으로 보내겠습니다. 체력은 회복해야 할 것 아닙니까?”
“하지만 수석 합격자에게는 그에 걸맞은-”
“경, 제발 작작 좀 하시라니까요? 계속 이런 식이면 저도 윗선에 보고하겠습니다.”
린도가 질린다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그는 카펠이 들으라는 듯이 한숨을 내쉬고는 지도의 어딘가를 가리켰다.
“오늘은 이쪽으로 가십시오.”
“알겠습니다, 린도 경.”
대답하는 동안 시선이 느껴지기에 듀이가 고개를 들었더니, 카펠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시선으로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듀이는 그가 정해 준 곳으로 가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지만, 옆에 있던 줄리안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줄리안 경도 피곤했을 테니까.’
그랬기에 듀이는 카펠이 무어라 입을 열기 전에 몸을 돌려 베이스캠프를 벗어났다.
그렇게 도착하게 된 지정 구역은 확실히 어제까지 갔던 곳과는 달랐다. 조용하고 적막한 곳이었다.
카펠이 지시한 곳은 쉴 새 없이 마수가 튀어나올 정도였는데, 지금 이곳은 쉬엄쉬엄 움직여도 위험하지 않은 수준이었다.
그야말로 ‘훈련’이라고 부르기에 적합했다. 그동안 힘든 곳에 다녔더니 상대적으로 쉽게 느껴지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잡담을 나눌 여유까지 생겼기에 줄리안이 중급 마수 하나를 해치우고는 입을 열었다.
“뭐, 고생은 했어도 실력은 는 것 같네요. 그런데 카펠 경 말입니다. 듀이 경에게 악감정이라도 있어 보이는 것 같던데, 예전에 무슨 일이라도 있으셨습니까?”
“전혀 없습니다. 카펠이라는 사람이 있는지도 이번에 처음 알았거든요.”
듀이 역시 악감정을 담아 카펠을 지칭할 때 은근슬쩍 경이라는 호칭을 뺐다.
“그런데 왜……. 아, 이번에는 상급 마수로군요. 한 놈씩 처리할까요?”
간만의 여유를 누리며 느릿느릿 걷고 있던 그들 앞에 상급 마수 두 마리가 나타났다.
신임 기사가 혼자 상대하기에는 버거운 수준이었으나, 이미 고된 환경에 단련된 두 사람에게는 이쯤이야 수월하게 느껴졌다.
이미 마수에게 달려든 줄리안을 따라 듀이 역시 검을 꽉 쥐고는 다른 쪽 마수에게 접근했다.
“그르릉-!”
하급이나 중급과는 달리, 흉포한 외관을 가진 모습이었다. 듀이가 마수의 공격을 피하며 검을 휘두르려던 때였다.
“…어?”
듀이의 움직임이 멈췄다. 포악해 보이는 외견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 봄 새싹 같은 연두색 눈동자를 가진 마수였다.
“노아?”
무심결에 내뱉은 말이었다.
왜였는지 모르겠다.
어째서 마수를 보며 어릴 적에 보육원에서 헤어졌던 친구의 이름을 말한 것인지, 정말이지 듀이 자신도 알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