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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은 셀프입니다 (127)화 (127/172)



<127>

다음 날, 저택 입구에서 훈련 장소로 떠나려는 듀이를 배웅했다.

“빠트린 물건은 없지?”

“네. 전부 챙겼어요.”

명목은 교육이라고 해도 어쨌거나 나랏일을 하러 가는 것인 만큼, 웬만한 비품이나 준비물은 황궁 기사단 측에서 챙겨 주기는 한다.

그러나 듀이를 여러모로 위험한 장소로 보내는 입장에서는 그걸로도 부족하게 느껴질 따름이다.

그랬기에 나는 간식으로 먹을 육포나 세사르가 만든 마법약 등을 넉넉하게 챙기게 했다.

“이건 상처 치료약이랑 기력 회복약, 그리고 이건 조만간 신상품으로 내놓을 영양 보충제인데 내가 먼저 먹어 보니까 효과가 좋은 것 같았어. 듀이도 매일 먹도록 해. 일단 지금 하나 먹고.”

“네.”

“아가씨, 그런 거 없어도 듀이는 별일 없을 테니 너무 심려치 마십시오! 저희 때는 마수 퇴치 중에 조난을 당해도 풀을 뜯어 먹으면서 며칠을 버티고-”

듀이가 영양제를 먹는 동안 옆에서는 그레이 경이 무용담을 늘어놓고 있었다. 하지만 그걸 들으니 더 염려되는 것 같아서 중간부터는 한 귀로 흘렸다.

“감사합니다, 네리아 님. 전부 빼먹지 않고 챙기도록 할게요.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잠깐, 듀이. 마지막으로 이거.”

나는 그가 말에 오르기 직전에 가지고 있던 손수건을 건넸다.

이번에는 초록색 클로버와 함께 ‘친애하는 듀이 경에게’라는 글귀를 자수로 넣어 만든 것이었다.

“저번에 또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했었는데 늦었지?”

“아, 아뇨! 네리아 님의 수제 손수건을 또 받다니. 기대하지도 못하고 있었는데…….”

듀이의 얼굴에 행복함이 가득한 미소가 떠올랐다. 간식이나 고가의 마법약을 챙겨 줬을 때보다 훨씬 기뻐 보일 정도였다.

“…감사합니다.”

“적당히 만든 거니까 괜히 아끼지 말고 편하게 써. 알겠지?”

“네……!”

“그러면 듀이, 다치지 말고 건강하게 다녀와.”

“다녀오겠습니다!”

듀이가 물 흐르듯 가벼운 자세로 말 위에 올라탔다. 말발굽 소리와 함께 그의 뒷모습이 저택 바깥으로 사라졌다.

“제자 놈, 어째 저거. 그 비싼 영양 보충제보다 아가씨의 손수건이 효과가 더 좋은 것 같은데요?”

“그런가요?”

그레이 경의 농담을 들으며 잠깐 쿡쿡 웃었지만, 곧 표정에서 웃음기를 지웠다.

“그런데 별일 없겠지요?”

“예! 아무 일도 없을 겁니다. 제가 같이 따라가지 않습니까?”

듀이가 광전사의 자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란타나에게 노려지고 있다. 그렇게 이야기할 수는 없었기에, 경쟁자인 다른 귀족이 듀이를 공격할 수 있다고만 말했다.

하지만 충직한 그레이 경은 그 정도의 설명에도 중요한 작전을 치르는 것처럼 진지하게 임해 주었다.

“그럼 보름 뒤에 뵙겠습니다!”

때마침 저택의 마구간지기가 갈색 말 한 마리를 더 데려왔고, 그레이 경이 훌쩍 말에 올랐다.

“그레이 아저씨. 듀이를 잘 부탁드려요.”

“예!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럼 세사르 님, 저희 아가씨를 잘 부탁드립니다!”

그레이 경은 그렇게 말하고는 듀이가 나갔던 길을 따라 그대로 말을 몰기 시작했다.

‘…괜찮겠지?’

나는 제자리에 선 채로, 두 사람이 사라진 장소를 꽤 오래 지켜보고 있었다.

***

신임 기사 훈련의 베이스캠프가 되는 테라핀 숲의 입구.

그곳에는 올해 기사 시험에 합격한 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저들끼리 이야기를 떠들고 있었다.

“어차피 테라핀 숲에서 나오는 마수들은 중급이 대부분이라서 위험한 일도 없어. 그리고 상급 마수가 나온다고 해도 나한테는 식은 수프 먹기지.”

“그래도 매년 신임 기사 훈련마다 사망자가 꼭 나온다던데?”

“그 기사들이 약했던 거겠지.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야. 하하!”

“소설을 보면 꼭 너 같은 말을 하는 사람이 제일 먼저 죽더라. 그런데 우리 기사 시험 때도 비슷한 대화를 하지 않았었냐?”

…라든가.

“이런 데서 잠을 잔다는 말입니까? 오, 신이시여. 인간이 침대가 아닌 곳에서 잘 수 있다니.”

“적응하는 게 좋을 겁니다. 어차피 의무 복무 기간 2년을 채우려면 타지에 파견을 가야 하니까요.”

…와 같은.

하지만 그런 무리도 좀 더 넓게는 두 부류로 나뉘어 있었다.

귀족 출신 기사와 평민 출신 기사. 그들은 같은 기사라고 해도 여러 가지 면에서 큰 차이가 있다.

이곳 테라핀 숲의 베이스캠프에도 귀족 출신과 평민 출신을 가르는 보이지 않는 선이 보일 정도였다.

그러나, 그 보이지 않는 선 위에서 어느 무리에도 끼지 못하고 있는 기사가 한 명. 듀이였다.

‘네리아 님은 이번 기회에 다른 친구나 동료를 만들 수도 있겠다고 하셨지만.’

몇 년을 노예나 다름없는 생활을 한 듀이에게는 먼저 사람에게 다가가는 일이 쉽지 않았다.

그나마 기사 시험 때 같은 대기실을 써서 안면을 텄던 사람들은 모두 불합격했다.

‘그렇다고 딱히 친구가 필요한 건 아니지만.’

삶의 이유나 인생의 목표는 네리아를 지키고 그녀의 명령을 따르는 것뿐. 그러니 다른 인간관계는 굳이 있으나 마나 상관이 없었다. 그가 죽기 직전까지도 그럴 터였다.

‘그래도 친구라면…….’

네리아를 만나기 전에 한 명이 있었다. 듀이는 문득, 보육원에서 지낼 때 가장 친하게 지냈던 친구를 떠올렸다.

회색 머리를 가진 사람에게 입양된 친구로, 아직도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얼굴이었다. 봄 새싹 같은 연두색 눈동자를 가진 꼬마였다.

‘그런데 그 회색 머리. 이상한 소문을 달고 있는 사람이었는데.’

질이 나쁜 소문이었다. 회색 머리에게 입양된 아이들이 어느 순간 사라져 버린다는.

잘 지내고 있을까? 걱정해 봤자 평생 만나지 못할 가능성이 더 크겠지만.

듀이가 홀로 나무에 기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안녕하십니까, 듀이 경.”

그에게 먼저 다가와 말을 거는 사람이 있었다. 황궁 기사단의 제복을 입은 귀족 출신 기사였다.

“저는 로트 백작가의 차남인 줄리안입니다. 다리스에 영광이 있기를. 잠깐 이야기 괜찮겠습니까?”

“괜찮습니다, 로트 경.”

“감사합니다! 올해 수석이신 듀이 경과 꼭 대화하고 싶었습니다! 편하게 줄리안으로 불러 주십시오!”

“예?”

줄리안 로트는 말을 걸면서도 불편한 얼굴을 하고 있기에 듀이 역시 딱딱하게 대답했다.

그러나 듀이가 대화에 응하는 순간, 줄리안이 화색을 띠고는 그에게 근접하게 다가갔다. 듀이가 흠칫 몸을 떨었을 정도였다.

“시험 때 멀리서였지만 듀이 경이 활약하는 모습을 봤습니다. 정말 대단했습니다! 혹시 스승님의 성함을 알 수 있겠습니까?”

“그레이 경이십니다.”

“그레이 경이라면? 그 평민 출신의 유명한 기사분 아닙니까? 남부 지역에서 마수들을 거의 학살하다시피 한 데다, 기사단장 자리도 거절하셨다고.”

“아, 네…….”

스승님께 그런 일도 있었구나. 새로 알게 된 사실에 듀이가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을 겁니다.”

“그런데 듀이 경은 어째서 황궁 기사단으로 오지 않으셨습니까? 듣기로는 1기사단부터 12기사단까지 모든 곳에서 입단 권유를 보냈다고 하던데요.”

“저는.”

“당연히 거절하죠! 듀이 경은 그분의 호위 기사이지 않습니까?”

“그분?”

“레이디 네리아 발렌티스 말입니다! 아직 모르셨습니까?”

듀이가 막 입을 떼던 참이었다. 누군가가 끼어들어 대신 대답했다.

“네리아 발렌티스?”

“그 미의 여신같이 생기신 분이요! 어떻게 수도에 살면서 레이디 발렌티스를 모를 수가.”

“줄리안 경은 자나 깨나 훈련밖에 모르는 분이라 사교계 소문에 어둡습니다. 재미없는 사람이죠.”

서서히 듀이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다가와 은근슬쩍 대화에 끼어들기 시작했다.

사실, 듀이는 수석 합격자이자 시험장에서 합격 대신 아이를 구했다는 미담으로 이미 유명했다.

그들은 듀이에게 관심을 가지며 친분을 만들고 싶어 했으나, 홀로 과묵하게 나무에 몸을 기대고 있는 듀이는 말을 붙이기 힘든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그랬기에 친한 사람들끼리만 모여 눈치만 살피고 있었는데, 줄리안 로트가 운을 떼어 준 덕분에 끼어들 수 있었던 것이다.

“듀이 경, 검을 배운 지는 얼마나 되셨습니까?”

“그 레이디 네리아를 가까이서 모시다니 부럽습니다! 발렌티스 가문에서 추가 기사 모집은 안 합니까? 무슨 정보 없습니까?”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네리아와 함께 있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나 대놓고 주목을 받는 건 처음이었다. 듀이가 흐르는 땀을 닦기 위해 손수건을 꺼냈다.

“그리고 검은 배운지는-”

“‘친애하는 듀이 경에게’? 그 손수건 설마 레이디 네리아께서 직접 만드신 겁니까?”

“맞습니다. 네리아 님께서 오늘 아침에 주셨거든요.”

“오오! 저도 발렌티스 백작가의 기사가 되겠습니다! 저도 그분의 수제 손수건을 받겠어요!”

“그런데 네리아 님께서 아무에게나 만들어 주시는 건 아니라서.”

듀이가 그렇게 말하며 자수가 잘 보이도록 손수건의 각도를 바꿨다.

사실은 땀을 닦기보다 일부러 자랑하고 싶어서 꺼낸 것이었다. 역시 네리아 님! 듀이의 입꼬리가 히죽 올라갔다.

“그거 저한테 파십시오!”

“안 됩니다.”

“아니, 그런 것보다 검에 관한 대화를 합시다. 저렇게 생산성이 없는 대화는 그만 끝내고-”

“생산성이 없긴 뭐가 없어요! 당신은 그분의 얼굴을 몰라서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겁니다!”

어느새 베이스캠프에 듀이를 중심으로 원이 만들어졌다. 이 순간만큼은 출신에 따른 벽조차 허물어질 정도였다.

친구는 필요하지 않다고 했는데, 이번 훈련이 끝나면 친구가 생길 것 같기도. 듀이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잡담 그만하고 모두 집합!”

어디선가 쩌렁쩌렁한 호령 소리가 들렸다.

테라핀 숲 입구에 이번 교육의 훈련관들이 등장한 것이었다. 듀이를 포함한 신임 기사들이 재빠르게 흩어져 도열했다.

“반갑습니다. 테라핀 숲은 필기시험 장소였던 플로네 산과는 다르니, 죽기 싫으면 함부로 행동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겁니다. 그리고 이번 훈련관을 소개하자면.”

가장 좌측에 선 기사가 다른 훈련관들에 대해 안내했다. 모두가 실력이 좋기로 유명한 현역 기사들이었다.

“마지막으로, 원래 올 예정이었던 분이 가문 사정으로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대신 교육을 맡아 주신 분이 여기 두 분, 카펠 경과 린도 경이십니다.”

그가 가리킨 곳에는 검은색 머리에 얼굴색이 어두운 기사, 그리고 갈색 머리에 서글서글한 인상을 띤 기사가 서 있었다.

‘그런데 저 카펠 경이라는 사람이…….’

듀이가 검은색 머리카락을 가진 기사를 바라보았다.

카펠 경과는 아까부터 눈이 마주친 상태였다. 베이스캠프에 나타난 순간부터 그가 듀이를 계속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느 순간, 듀이를 보고 있던 남자의 한쪽 입꼬리가 올라갔다. 무언가 의미심장한 불안감이 느껴지는, 그런 표정이었다.

듀이가 눈을 가늘게 떴다.

‘…저 사람, 조심해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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