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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은 셀프입니다 (126)화 (126/172)



<126>

“네?”

…방금, 뭐라고?

“란타나 님, 죄송하지만 다시 한번 말씀해 주시겠어요?”

“네, 기꺼이요! 네리아 양의 기사인 듀이 경을 저에게 넘겨 달라고 말했었답니다.”

청력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건만 내가 제대로 들은 것이 맞는지 의심이 될 정도의 발언이었다.

그러나 당사자인 란타나는 마치 오늘은 날씨가 좋다는 이야기라도 하는 양 평온한 어조로 말을 덧붙일 뿐이었다. 당황스러웠다.

“어째서요?”

“듀이 경은 재능이 뛰어난 데다 장래가 유망한 기사분이니까요.”

“그렇다면 다른 분을 찾아보는 건 어떠신지. 다리스 제국에는 듀이 외에도 실력이 대단한 기사님들이 많이 계시잖아요?”

“그건 그렇죠! 하지만 제국에는 듀이 경 이상으로 특별한 잠재력을 가진 사람이 없는걸요.”

“…….”

“어머나, 그 표정은 혹시-”

어느 순간, 나를 보고 있던 란타나의 눈빛에 흥미롭다는 감정이 들어섰다.

“설마, 네리아 양도 듀이 경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는 건가요?”

“…….”

“맞힌 것 같네요. 늘 생각하던 것처럼 네리아 양은 대단해요! 도대체 어떻게 안 거예요?”

확신하고는 있었지만, 역시 그녀는 알고 있었다. 듀이가 광전사로 각성할 수 있는 씨앗이라는 것을. 그러니 나를 찾아온 것이다.

‘노리는 대상이 듀이였다니.’

의외였지만, 동시에 이해했다.

예전 세계에서 듣기로, 힐더 경에게는 단신으로도 전황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했었다. 권력자라면 그런 존재를 곁에 두고 싶은 것도 당연했다.

‘그런데 란타나의 마지막 말은…….’

어떻게 알았냐고 물어도 대단한 이유는 없었다. 그저, 예전 세계에서 듀이가 각성한 모습을 봤었으니까.

만약 내가 평행세계에서 오지 않았다면 평생 알지 못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런 만큼 오히려.

“저야말로 여쭤보고 싶네요. 란타나 님은 어떻게 아신 건가요?”

“궁금한가요? 듀이 경을 넘겨준다면 전부 가르쳐 줄게요.”

뭐, 그냥은 대답하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그녀의 유쾌하게 빛나는 눈동자를 보며 입을 열었다.

“아뇨, 필요 없어요. 그리고 듀이는 넘기지 않습니다. 애초에 듀이는 물건이 아닌걸요. 넘기고 말고 할 대상이 되지 않아요.”

“물론 공짜로 달라는 건 아니에요. 네리아 양도 만족할 만한 충분한 대가를 치를 생각이랍니다.”

“저는-”

이미 대답했다고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어디 한번 들어나 보자는 생각이었다.

“무슨 대가를 치르실 건데요?”

“아무래도 돈과 권력이겠죠? 네리아 양은 생일이 지나면 정식으로 가주직에 취임할 계획이죠?”

“네, 맞아요.”

“그렇다면 공작 위는 어떤가요?”

“…네?”

“발렌티스를 제국 최고의 가문으로 만들어 줄게요. 권력도, 재산도 말이죠.”

“그게 무슨.”

눈을 찌푸렸다. 발렌티스 백작가를 공작가로 승격시키겠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누구나가 인정하는 합당한 공적이나 명분이 없다면, 황제 폐하조차 쉽게는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황족도 아니고, 평민 출신 정부인 그녀가 무슨 권리로?

“발렌티스 공작. 잘 어울리지 않아요? 약속할게요. 네리아 양에게 모든 귀족의 머리 위에 설 수 있는 부와 권력을 주겠다고요. 지금 당장은 거짓말처럼 들리겠지만, 저는 그렇게 할 수 있어요.”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란타나의 눈동자가 진지했다. 결코 허세나 빈말 따위가 아니라는 듯.

그래서였을까? 머리로는 불가능한 일이란 걸 알고 있는데도, 그녀의 손을 잡기만 한다면 최고가 될 수 있겠다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나조차도 이해하지 못할 사고의 흐름이었다. 그렇지만.

“어때요?”

“거절하겠습니다.”

고민할 가치조차 없이 내 대답은 처음과 같았다. 그녀의 말이 진실이라고 해도 달라질 건 없었다.

“어째서 거절하나요?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에요. 겨우 사람 하나를 넘기는 것치고는 굉장히 후한 대가이지 않아요?”

“겨우 사람 하나가 아니라 듀이는 제 가족이에요. 저는 고작 그런 것에 가족을 팔지 않아요.”

“고작? 제국 최고의 권력자 자리가 고작이라고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네.”

매일같이 열심히 노력하며 살아가는 이유는 단순하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더 많이 행복해지고 싶으니까.

예전 세계에서부터 가지고 있던 내 가치관은 변할 일이 없었다.

“으음. 네리아 양, 기대했던 것보다 시시한 사람이었네요.”

“…….”

“하지만 마음이 바뀐다면 언제라도 절 찾아와 주세요! 저는 정말 네리아 양과 친한 사이가 되고 싶거든요. 게다가 가까운 친인척 관계까지는 아니지만, 우린 같은 조상을 두고 있는 사이기도 하니까요.”

“제 마음이 바뀔 일은 영원히 없을 거예요.”

그녀와 친한 사이가 될 일 또한. 부모님을 죽인 원수와 어떻게 친구가 될 수 있겠는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란타나의 용건이 끝난 이상 굳이 더 앉아 있을 필요가 없었다.

“입구까지 배웅해 드릴게요.”

“네, 고마워요.”

그녀가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란타나와 함께 응접실 밖으로 나가니, 매장 내부에는 어색한 공기가 흐르고 있었다.

듀이가 란타나의 시중인들을 조용히 견제하고 있었고, 공방의 직원들은 말없이 곳곳에 서 있었다.

“아, 네리아 님, 나오셨습니까?”

“네. 디르케께서 돌아가신다고 하니, 문을 열어 주시겠어요?”

“알겠습니다.”

내 명령에 직원들이 움직였다.

듀이를 넘겨 달라. 그따위의 소리를 내뱉은 이상 란타나는 이제 나에게 손님조차 아니었다.

명백한 축객령이었음에도, 그녀는 여전히 미소를 잃지 않고 있었다.

“맛있는 차 고마워요. 즐거운 시간이었어요. 자, 그럼 갈까요?”

란타나가 그녀의 사람들을 이끌고 가게 밖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문을 나가기 직전, 그녀가 발을 멈추고는 뒤를 돌아보았다.

“네리아 양, 마음이 확고한 것 같으니 마지막으로 물어볼게요. 대답이 변할 일은 없나요?”

“네, 없습니다.”

“그렇군요.”

그녀가 살짝 눈인사를 하고는 이번에는 정말로 공방을 벗어났다.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냐며 주변에서 직원들이 의아해하는 것이 느껴졌지만, 그들은 나에게 질문하지 않았다.

나 또한 아무런 말 없이 그녀가 탄 마차가 떠나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

***

“란타나 님.”

서궁으로 돌아온 뒤.

란타나의 시종인 젠과 렌이 그녀 앞에서 공손하게 선 채로 물었다.

“그 기사는 어떻게 할까요?”

“글쎄요.”

란타나가 짤막하게 답하고는, 침실 내부의 창가를 향해 걸어갔다.

창문 밖을 바라보았더니 주황색 머리카락의 소녀, 칼로스가 꽃 뭉치를 들고는 건물과 정원을 부지런히 오가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네리아에게 했던 제안은 깔끔하게 거절당했다. 그렇다고 해도 실망한 건 아니었기에, 그녀는 입가에 미소를 띠고 칼로스를 지켜보았다.

“네리아 양과는 싸우고 싶지 않았는데요. 정말 유감이에요.”

그렇지만 다른 방법을 찾아볼 필요도 없이 답은 이미 나와 있었다. 평화적인 방법이 불가능하다면, 강제로 빼앗아 올 수밖에.

“데려와요. 다만 수도 안에서 일을 벌였다가는 일이 커질 테니까.”

그 기사. 광전사로 각성한 건 아니었지만 기사 시험에서는 수석으로 합격한 만큼 지금도 충분히 강한 자였다. 게다가 오늘 일로 경계심이 높아졌을 테니 포획이 쉽지는 않을 터였다.

하지만 제국의 수도는 쓸데없이 치안이 좋고 보는 눈이 많다. 대놓고 불필요한 소동을 벌이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고 보니, 곧 테라핀 숲에서 올해 신임 기사들의 공동 훈련이 있다고 하지요?”

“네. 열흘 뒤입니다.”

“잘됐군요. 거기서 데려오면 되겠어요.”

어차피 매년 사망자가 발생하는 곳이 아닌가. 적당한 사고를 가장하여 목적을 달성하기에 아주 적당한 장소였다.

“이번에는 렌이 다녀와요. 그리고 저희 쪽 사람을 훈련관으로 보내 놓는 것도 좋겠네요.”

“명령 따르겠습니다.”

지금이라면 신임 기사 훈련의 담당관들이 전부 정해졌겠지만, 한 명쯤을 그녀의 사람으로 채우는 것 정도는 문제도 아니었다.

젠과 렌, 두 사람이 란타나를 향해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

란타나가 듀이를 노리고 있다.

그날은 공방에서 이야기만 나누고 헤어졌지만, 그걸로 끝일 리도 없고 그녀가 포기할 리도 없지.

그랬기에 나는 듀이에게 당분간은 위험한 장소에 가지 않는 게 좋겠다고 주의를 일러두었다.

‘다행히도 지금까지는 아무런 일도 없었지만…….’

내일부터는 듀이가 마수 사냥 훈련을 위해 수도 바깥의 테라핀 숲으로 떠나게 된다. 걱정이 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손을 놓고 있을 수만은 없어. 나는 그렇게 판단하고는 저택의 집무실로 두 사람을 호출했다.

그레이 경과 세사르 님이었다.

“부르셨습니까?”

“안녕하세요, 두 분! 부탁드릴 일이 있어서 불렀어요.”

“예, 어떤 일이십니까?”

“그레이 아저씨, 내일 듀이가 테라핀 숲으로 가잖아요? 사람들 몰래 뒤따라 가 주세요.”

“네?”

예전에 듀이가 필기시험을 치러 황궁으로 향할 때,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그가 보호자처럼 뒤따라 갔던 것처럼.

그렇게 이야기했더니 그레이 경이 의아한 듯 고개를 기울였다.

“테라핀 숲에 최상급 마수가 나올 일도 없고, 듀이 놈에게는 전혀 위험하지 않을 텐데요?”

“뭐… 위험한 건 마수만 있는 게 아니니까요.”

“…알겠습니다.”

자세한 설명은 아니었지만, 그레이 경은 그것만으로도 대강은 이해한 것인지 곧바로 수긍했다.

“그런데 저까지 자리를 비우며 아가씨의 호위는 누가 하지요? 다른 기사들은 영 미덥지 않아서.”

떨떠름해 보이는 그를 보며 웃었다. 확실히 그레이 경은, 부모님의 죽음의 진상이 밝혀진 이후부터 나를 과도하게 감싸는 감이 있었다.

“아저씨가 워낙 강해서 그렇지, 가문의 다른 기사분들도 실력이 부족한 건 아닌걸요. 그리고 그 문제로 세사르 님을 불렀어요.”

“저를요? 혹시?”

“네, 세사르 님께 당분간 제 호위를 맡길까 해요. 마법약 일은 잠깐 자리를 비우도록 하고요.”

“맡겨만 주십시오!”

세사르가 감격한 듯 대답했다. 내가 말을 물리기라도 할까 염려되었는지 아주 빠른 답변이었다.

“저는 이런 일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마법사는 역시 실전이죠!”

그는 시범이라도 보이려는 것인지 손바닥에서 화르륵 불을 뿜어냈다.

“그럼 잘 부탁드릴게요.”

믿음직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면서 두 사람에게 인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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