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구원은 셀프입니다 (125)화 (125/172)



<125>

황궁으로부터 편지가 왔다.

좀 더 구체적인 발신처는 황궁 기사단으로, 수신자는 듀이였다.

“뭐야, 뭐야? 듀이가 황궁에서 편지를 받았다고? 무슨 내용인데?”

저택에 편지가 도착한 시점이 때마침 휴식 시간이었기에, 나는 듀이와 머리를 가까이 대고는 편지를 훔쳐 읽기 시작했다.

“어디… ‘다리스 제국법에 의거하여, 금년 신임 기사들의 공동 훈련 소집을 아래와 같이 통지합니다.’ 아, 이건 그거구나?”

편지를 읽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제국의 모든 기사는 소속과 관계없이 한 가지 공통적인 의무를 가진다. 바로 대륙 곳곳에 출몰하는 마수를 제거하는 것.

수도야 워낙 안전하지만, 치안이 나쁜 지역에서는 지금도 마수로 인한 사망자가 발생하고 있다.

그렇기에 황가는 마수 출몰지로 기사들을 파견하여, 제국민을 안전하게 보호하거나 마수로 인해 발생하는 피해를 최대한 줄이고 있다.

‘기사들마다 무조건 채워야 하는 의무 복무 기간도 있었지?’

하지만, 기사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경험이 부족한 자들을 위험한 장소로 몰아넣을 수는 없는 법.

황가는 황궁 기사단을 통해, 신임 기사들이 효율적이고 안전하게 마수를 사냥할 수 있도록 실전 교육을 주재했다.

“그리고 다음으로, 훈련 장소는 수도 바깥에 있는 테라핀 숲이고, 기간은 15일 동안 합숙으로 진행될 예정이라고 하네.”

기사 시험을 치렀던 플로네 산에서는 하급 마수밖에 발생하지 않기에 상대적으로 위험도가 낮았다.

그러나 테라핀 숲은 대부분이 중급 마수가, 아주 가끔은 상급 마수가 나타난다고도 했다.

그런 만큼 위험성이 높아 훈련 도중에 기사가 사망하는 사례도 종종 발생한다고 했다. 하지만.

“출발은 2주 뒤부터래. 듀이는 당연히 걱정할 거 없지?”

“네, 물론이에요.”

듀이가 자신감 넘치게 긍정했다.

하기야 그레이 경이 최근에 말했었다. 지금 듀이의 실력이라면 최상급 마수가 아닌 이상에야 전부 잡을 수 있을 거라고.

“테라핀 숲은 상급 마수가 최대라서 갑자기 최상급 마수가 튀어나올 일은 없겠지만, 위험할 일 없도록 열심히 준비하는 게 좋겠어.”

“저는 괜찮아요. 그런데 제가 훈련에 간 동안 네리아 님의 호위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그레이 아저씨가 있잖아? 내 걱정은 하지 마. 그보다 합숙 훈련이니까, 이번 기회에 다른 친구나 동료를 만들 수도 있겠는데?”

최종 기사 시험 날. 듀이를 찾아 대기실로 갔을 때 만났던 그 소란스러운 사람들은 합격했으려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바깥으로 마차 소리가 들린다 싶더니, 조금 뒤에 사샤가 편지 한 통을 나에게 가져왔다.

“네리아 아가씨, 황궁에서 편지가 도착했어요. 초대장인 것 같아요.”

“초대장? 나한테?”

초대장을 보낼 사람이 있었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편지를 받아 든 순간,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봉투 겉면에 찍힌 서궁의 직인이었다.

“…….”

란타나가 보낸 것이다.

다소 찝찝한 기분으로 봉투를 열자, 그 안에는 정말로 나를 서궁의 티타임에 초청하겠다는 초대장이 들어 있었다.

“아가씨, 가실 건가요?”

“…아니.”

란타나가 어떠한 이유로 나를 불렀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녀는 한 마디로는 설명할 수 없는, 수상한 점이 많은 사람이다.

무슨 꿍꿍이가 있는지도 모를 타인의 본거지에 굳이 자진해서 들어가고 싶지는 않았다.

게다가 그녀는 황궁의 사람이라고 해도 어차피 황족이 아닌 디르케. 적당한 핑계를 대며 거절해도 예법상 결례가 되지는 않았다.

“안 갈 거야. 서궁으로는 거절하는 답장을 보내야겠어.”

“네, 아가씨! 집무실에 편지지를 준비해 두겠습니다.”

***

세사르와의 마법약 사업은 정식 개업 이후로 연일 품절과 주문 폭주 상태를 빚었다.

더 이상의 홍보 없이도 발렌티스 가문으로 돈이 쏟아져 들어올 정도였다. 약속된 성공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가장 처음으로 시작한 도자기 액세서리 사업을 등한시할 수는 없는 노릇.

사교계에서의 내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장신구 사업에는 공을 들일 필요가 있었다.

“이제 도자기 장신구의 매출액도 안정기에 들어섰네요. 다른 보고 사항이 있는 분은 없으신가요?”

수도 번화가 공방의 사무실.

공방의 직원들과 함께 회의를 열었다. 판매 중에 생긴 특이 사항을 보고받거나, 앞으로의 운영을 위한 의견을 내는 시간이었다.

“생산 과정을 새로 바꿔 봤습니다. 비용은 확연히 줄일 수 있었는데 품질이 조금 떨어져서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품질을 낮추는 건 안 돼요. 그러니 당장은 기각할게요. 다만, 추후에 저가 라인을 새로 출시할 수도 있으니까 생산 비용을 낮추는 연구는 계속해 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며칠 전에 모나 님으로부터 협업 제안이 왔습니다. 수도에서 떠오르는 신예 화가분인데요, 네리아 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모나? 저도 이름은 들어 본 것 같지만… 아무나와 협업할 수는 없으니 우선 그분의 작품을 확인하고 싶어요.”

“그분께 받아 놓은 작업물이 있습니다. 여기.”

그런 식으로, 한창 적극적인 의견이 오가고 있을 무렵이었다.

“네리아 님, 잠깐 괜찮으실까요?”

노크 소리와 함께, 영업을 담당하는 직원이 공방의 사무실 안으로 어색하게 고개를 내밀었다.

“괜찮아요. 무슨 일인가요?”

“그게… 손님이…….”

“손님이?”

“디르케 님께서 가게에 손님으로 방문하셨습니다. 네리아 님께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

직원의 목소리를 들으며 눈을 흐렸다. 란타나가 왔다고? 손님으로?

‘…단순히 가게를 구경하러 왔을 리는 없지.’

그녀는 나를 보러 온 것이다. 일부러 내가 공방에 머무르는 시간을 노려서. 티 파티의 초대를 거절했더니 이렇게라도 만나겠다는 건가?

“그런가요. 알려 줘서 고마워요.”

자리에서 일어섰다. 바깥에 디르케가 와 있는데 나가지 않는 것은 분명한 결례가 된다. 단순히 초대장을 거절한 것과는 달랐다.

“그럼 회의는 여기까지 할게요. 다들 수고했어요.”

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란타나에게 인사하기 위해 사무실을 벗어났다.

“젠! 이건 어떤가요? 저에게 잘 어울리는 것 같나요?”

“잘 어울리십니다.”

“그래요? 렌은 어떻게 생각해요?”

장신구들이 전시된 매장 내부에서는, 란타나가 목걸이 하나를 목에 두른 채 그녀의 시중인들에게 묻고 있었다.

나는 입구에서 잠깐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가, 얼굴에 한껏 미소를 띠고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잘 어울리세요. 남에게 의견을 구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요.”

“어머나, 네리아 양이 아닌가요?”

알고 있었으면서, 란타나는 이 만남이 우연인 척 웃었다.

그 미소에 주변이 밝아지는 것 같다. 가까이 갔더니 좋은 향기까지 나고 있었다. 변함없이 압도적인 미모를 자랑하는 그녀였다.

다만, 란타나를 처음이나 두 번째 만났을 때 느꼈던 원인 모를 심장박동은 이제 사라져 있었다.

역시나 그건, 지하실에서 있었던 일로 공포가 각인되어 무의식적인 반응이 나왔던 게 아니었을까.

“디르케를 뵙습니다. 여기까지 직접 들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리스에 영광이 있기를.”

“네, 다리스에 영광이 있기를. 잘 어울린다고 칭찬해 줘서 고마워요! 이 목걸이는 제가 사도록 하겠어요. 그리고.”

그녀가 목걸이를 풀어 하녀에게 건넸다. 그러고는 주변을 한 번 둘러본 뒤, 활짝 웃고는 입을 열었다.

“가게에 있는 것들도 제가 전부 살게요.”

주변에서 사람들이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들렸다. 도자기 액세서리는 하나하나가 모두 귀족들을 위한 고가품이다. 그런데 전부라니.

“감사합니다. 선물로 이사벨라 님이 직접 만드신 장신구도 같이 넣어 드려야겠네요.”

“고마워요. 기쁘게 받을게요! 하지만 선물이라면 그것보다 더 받고 싶은 게 있어요.”

“어떤 건가요?”

“네리아 양에게 차를 한 잔 대접받을 수 있을까요?”

란타나가 거기까지 이야기하고는 얼굴을 내 가까이로 가져왔다. 그녀의 기다란 속눈썹 아래에서 분홍색 눈이 보석처럼 빛나고 있었다.

“우리, 둘이서만요.”

귓가에 속삭임이 들렸다.

고작 차 한 잔에 그만큼의 비용을 지불하다니. 대가치고는 과했다.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길래?

“…알겠습니다. 차 한잔 정도 드리는 게 뭐가 어려울까요. 리사는 응접실로 다과를 가져와 줘요.”

결국은 수긍했다.

이렇게까지 할 정도면, 내가 그녀와의 대화 자리를 거절한다고 해도 어떻게든 다시 만남을 만들게 분명했으니까.

게다가 서궁이 그녀의 근거지라면 공방은 내 안뜰이었다. 어차피 대화를 나눌 거라면 여기가 나았다.

‘그리고 가게 안에 듀이도 같이 있으니까.’

나는 호위로 따라왔던 듀이를 보며 눈짓했다. 란타나가 데려온 시녀와 시종을 감시하고 있으라는 의도였는데, 듀이 역시 내 말을 알아듣고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안쪽으로 모실게요.”

그렇게 이동하게 된 응접실. 나는 테이블을 사이에 놓고 그녀와 정면으로 마주했다.

“그렇게 경계하지 말아요. 저는 네리아 양과 친하게 지내고 싶은걸요. 진심이랍니다.”

“…….”

나름대로 여유로운 척을 하고 있었는데 그녀에게는 내 속마음이 보였던 걸까. 하지만 경계를 하는 것이 당연했다.

그녀는 분명 ‘벨라 일족’을 데리고서 무언가를 하고 있는데, 나는 그녀의 목적이나 행동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란타나 님이 저랑 친하게 지내고 싶으시다고요? 진심으로요?”

그랬기에 나는 홍차를 한 입 마시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렇군요. 하기야 이번 건국제에서 란타나 님께 많은 신세를 졌어요. 저도, 라일라도요.”

이건 란타나를 탓하는 발언이다.

나를 가주직에서 쫓아내려고 라일라와 나를 황태후의 시녀로 추천하지 않았느냐. 그런데 지금 와서 나와 친해지고 싶다니. 거짓말하지 말아라, 라는 뜻을 담아서.

“아… 그런 일이 있었죠! 하지만 그건 대단한 일도 아니지 않았나요? 전 단지 라일라 양의 애처로운 모습을 외면할 수 없었을 뿐.”

하지만 란타나는 전혀 찔리지도 않는다는 듯, 평온한 모습으로 대답을 내놓고 있었다.

“그리고 라일라 양의 속임수가 네리아 양에게는 통하지 않을 거란 것도 알고 있었으니까요. 실제로도 그랬잖아요. 그렇죠?”

당하지 않을 테니까 공격해도 된다는 건가?

말도 안 되는 비약이었다. 게다가 귀족이나 높은 신분끼리 나누는 대화치고는 상당히 솔직한 답변이기도 했다.

하기야, 이 대화에서 귀족들의 화법은 그다지 의미가 없을 것 같았다. 그러니 나 역시 말을 꾸미는 일 없이, 본론을 묻기로 했다.

“그건 알겠습니다. 그보다 란타나 님은 어째서 저를 찾아오신 건가요? 일전에 초대장을 보내신 것도, 오늘 이렇게 공방까지 찾아오신 것도 이유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요.”

“맞아요. 저는 거래를 하고 싶어서 네리아 양을 찾은 것이랍니다.”

“거래라면…….”

“듀이 경이었죠?”

그녀가 힐끗 고개를 돌려 문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말했다.

“저는 네리아 양의 기사분을 저에게 넘겨주기를 원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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