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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은 셀프입니다 (124)화 (124/172)



<124>

“그럼 다녀올게. 오래 걸리지는 않을 테니까, 듀이는 저쪽 휴게실에서 잠깐만 기다리고 있어.”

“알겠습니다. 다녀오세요.”

황궁 도서관에 도착 후.

듀이에게는 별관 건물에 마련된 휴게실에서 기다리라고 일러두고는, 홀로 도서관 안으로 발을 들였다.

‘원래는 듀이도 같이 데리고 들어갈 생각이었지만…….’

듀이에 관한 대화를 나눌 계획이니 본인을 동석시키는 게 좋을 것 같다.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기에 그의 이름으로 된 출입 허가서까지 긴급으로 받아 놓은 상황이었다.

그러나 저택에서 황궁까지 마차로 이동하는 동안, 오히려 듀이 본인에 관한 화제이니 좀 더 신중하게 접근하는 편이 좋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우선은 내가 먼저 들은 후에, 괜찮으면 듀이에게도 전달해 주자.’

나는 그렇게 결정을 내리고는 어제와 같은 장소로 향했다.

목적지는 자비에의 개인 독실로, 이미 방문해 본 장소인 만큼 길을 헷갈리는 일 없이 금방 도착할 수 있었다.

똑똑-

“실례합니다. 안에 계신가요?”

“누구세요- 잠깐, 이 목소리는 네리아 양? 어서 들어오세요!”

“안녕하세요, 자비에 님. 바쁘신 데 제가 방해된 건 아닌가요?”

“방해라뇨. 방구석에서 책만 읽는 인생인데 바쁠 게 뭐가 있겠어요? 그리고 네리아 양 같은 미인은 언제라도 환영이랍니다!”

미리 방문 약속을 잡아 놓은 건 아니었으나 괜찮지 않으려나.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역시나 그녀는 나를 격렬하게 반겨 주었다.

예쁜 얼굴로 낳아 주셔서 감사하다고 어딘가에 계신 어머니께 마음으로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이렇게 빨리 다시 만나게 될 줄은 몰랐어요.”

“그러게요.”

반쯤은 머쓱한 기분으로 대답했다. 다음에 다시 온다고는 했지만 그게 바로 다음 날이 될 줄이야.

“어쨌거나 반겨 주셔서 감사해요. 자비에 님이 디저트를 좋아하시는 것 같아서, 쿠키를 가져왔- 음?”

그랬기에 작은 성의 표시로 발렌티스 저택의 주방장이 만든 과자를 선물로 챙겨 왔는데, 지금 보니 손이 비어 있다.

…기억을 되돌려 보니 마차 옆자리에 놔뒀다가 잊어버린 것 같았다. 하기야 어제부터 여러모로 정신이 없기는 했으니.

“-는데, 마차에 두고 온 것 같아요. 다음에는 꼭 가져올게요. 오늘도 자비에 님께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서 온 건데, 빈손으로 왔다고 생각하니 민망하네요.”

“네리아 양은 얼굴 보여 주는 게 선물이죠. 이쪽으로 앉으세요. 오늘은 어떤 게 궁금하세요?”

“그건.”

나는 그녀가 안내해 준 의자에 앉으며, 천천히 말을 정리했다.

“뭐라고 설명하면 좋을까요. 자비에 님은 사람의 머리 색이 변한다는 이야기를 아시나요? 마법은 아닐 텐데, 예를 들면 갈색 머리카락이 은발로 변한다던가요.”

“머리카락이요? 그런 사례가 종종 있어요. 사람이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으면 하룻밤 사이에도 머리가 백발로 세어 버린다고요.”

보통 사람이라면 쉽게 답변하지 못할 질문에도 물 흐르듯 대답이 흘러나오는 것을 보며, 어째서 그녀가 걸어 다니는 사전이라고 불리며 황제 폐하의 신임을 받는지 알 것만 같았다. 그러나.

“아뇨, 그런 식의 백발이랑은 느낌이 좀 다른데.”

나는 예전 세계에서 만났던 힐더 경의 외모를 떠올렸다. 달빛을 받아 빛나던 그의 은발은 신비롭게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게다가 건국제에서 란타나가 듀이를 보고서는 했다는 말.

‘아뇨, 짧은 대화뿐이었어요. 그런데 저보고 그냥 기사가 아니라고.’

그냥 기사가 아니라면, 출생에 무언가 숨겨진 비밀이라도 있다는 건가?

그랬기에 나는 생각했다. 나나 란타나가 특이한 일족 출신으로 추정되는 만큼, 듀이도 그런 식의 특수한 피를 타고난 게 아닐까 하는.

“음… 그러고 보니, 은발이라고 하셨죠? 은발, 은발이라. 하나 생각나는 게 있기는 한데요.”

그녀가 천천히 눈을 감았다가 떴다.

“네리아 양은 ‘광전사’라는 말, 들어 보셨어요?”

“광전사?”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 본 적 많다. 예전 세계에서 힐더 경이 꼭 그런 이명으로 불리지 않았던가.

“인간의 능력을 초월할 정도로 강한 사람이에요. 고작 1명이, 수백 명을 학살 수준으로 상대할 수 있다던가요? ‘광전사’라는 명칭 때문에 폭주하거나 날뛰는 모습을 상상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오히려 그렇지는 않고요.”

그녀가 설명을 이어 나갔다.

그들은 강하지만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그렇기에 그 누가 상대가 되었든 죄책감 따위는 일절 느끼지 않고 무자비하게 목을 벤다고.

“평범한 사람들에게 그 모습이 미쳤다든가, 공포 그 자체로 느껴졌기 때문에 광전사라는 호칭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해요.”

나는 자비에의 이야기를 들으며 곰곰이 생각했다. 놀라운 검술 실력과 무감정해 보이는 모습. 확실히, 예전 세계의 힐더 할슈리트 경을 묘사하고 있었다.

하지만 힐더 경과 동일 인물로 추측되는 듀이의 모습과는 전혀 연관이 없지 않아? 라고 생각했을 때였다.

“그래서, 네리아 양이 물어보셨던 ‘머리카락 색깔이 변하는 것’에 관한 설명이 지금부터인데요.”

마침, 자비에가 입을 열었다.

“광전사의 힘은 해당 재능을 가진 사람이 ‘각성’을 통해서 가질 수 있다고 해요.”

“각성…이라면, 소설에서나 나오는 것처럼 특정한 사건을 계기로 본인의 숨겨진 힘을 깨닫는다거나, 뭐 그런 건가요?”

“비슷해요.”

그녀의 설명은 이러했다.

그들은 원래 평범한 사람이나 다름이 없어 보이지만, 광전사로 각성하게 된다면 괴물 같은 힘을 가지게 되는 동시에 그 대가인지 기억과 감정을 잃어버리게 된다고.

은색으로 변한 머리카락 색깔이 바로 각성의 증거라고 했다.

“그렇군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충분히 알 것 같다. 어째서 이 세계의 듀이와 예전 세계의 힐더 경은 같은 사람이면서도 달랐는지를.

“광전사에 관한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는 이유는 있어요. 역사적으로도 워낙 드문 현상인 데다, 본인도 본인이 그런 잠재력을 가졌다는 걸 모르거든요.”

“…….”

“기록에 남아 있는 자들도 대부분 우연히 그런 힘을 가지게 되었다고 해요. 왜냐하면 각성하는 방법이, 위험에 빠져-”

“잠깐만요, 자비에 님. 방금, 광전사가 되면 기억과 감정을 잃어버리게 된다고 말씀하셨지요?”

“네, 맞아요.”

그녀의 말을 들으면서 생각했었다. 그렇다면 듀이도 힐더 경처럼 될 수 있다는 건가? 라고.

물론, 강해지면 좋다.

듀이도 그레이 경도, 그걸 위해서 매일같이 훈련에 매진하고 있는 것이니까.

게다가 듀이의 성장은 그가 소속된 발렌티스 가문의 힘과 명예가 된다. 하지만, 그 대가로 잃게 되는 것이 기억이나 감정이라니.

‘네리아 님!’

머릿속으로, 해사하게 웃으며 내 이름을 부르는 소년의 모습이 떠올랐다.

착하고, 성실하고, 순진무구하고, 내 말이라면 뭐든지 믿는. 그런데, 그런 듀이가 나를 잊어버리게 된다니.

“…….”

그건 싫다. 내가 원하지 않는다. 그리고 듀이는 지금도 충분히 강하잖아?

그랬기에 자비에의 뒷말은 일부러 듣지 않기로 했다.

광전사로 각성하는 방법이라니. 만약 자세한 설명을 들었다가, 실수로라도 듀이에게 이야기를 흘리고 싶지 않아서였다.

“이 정도면 궁금한 건 해결했어요. 알려 주셔서 감사해요. 감사의 표시로 다음에는 꼭 선물을 가지고 놀러 올게요.”

“뭘요! 황가의 비밀이나 위험한 일이 아닌 이상은 알려 드린다고 했잖아요. 그렇지만 네리아 양이 그 얼굴로 저에게 간곡히 부탁한다면, 황가의 비밀까지 모조리 실토해 버릴지도…….”

“아뇨, 그건 제 쪽에서 사양하겠습니다. 자비에 님도 참, 농담을 잘하시네요.”

“농담 아닌데…….”

“…….”

방금은 듣지 못한 척하기로 했다.

***

자비에의 방에서 나온 후에는, 다시 저택으로 돌아가고자 도서관의 본관 건물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듀이를 데려오기 위해 별관의 휴게실로 걸어가는 동안 고민했다.

‘란타나는 듀이가 광전사가 될 수 있다는 걸 어떻게 알아본 걸까?’

자비에는 분명 그렇게 말했었다. 본인도 본인의 잠재력을 모르는 데다 대부분 우연한 계기로 발현한다고.

예전 세계에서는 우연이었다고 쳐도, 란타나는 도대체 어떻게?

여전히 의문스러운 점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듀이가 기다리고 있을 휴게실 앞에 도착했다.

“듀이, 이제 가자- 어?”

공용 휴게실은 굳이 노크가 필요한 장소가 아니기에, 곧장 문을 벌컥 열었다. 그러나 찾고 있는 사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한 장소에서 기다리고 있으려니 지루해서 다른 데라도 간 건가?

“잠깐 앉아 있어야겠네.”

괜히 듀이를 찾으러 나갔다가 길이 엇갈리면 상황이 복잡해진다.

그랬기에 소파에 앉아 휴게실에 비치된 디저트를 먹고 있었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듀이가 문을 열고 나타났다.

“네리아 님-! 죄송합니다. 많이 기다리셨나요?”

“딱히.”

천천히 와도 괜찮았는데. 전속력으로 달린 건지 이마에 땀까지 맺혀 있는 소년을 보며 웃었다.

그리고 저택으로 돌아온 후.

“…아까 마차 옆자리에 쿠키가 없지 않았었나?”

옷을 갈아입다가 문득 생각이 난 일이었다. 그럼 대체 어디 놔뒀던 거지? 아니면 내가 못 본 건가?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지금은 마부가 치웠을 테고, 굳이 더 생각해야 할 만큼 대단한 일도 아니었기에 나는 쿠키에 관한 것을 머릿속에서 금방 지워 버렸다.

***

황궁의 서궁은 평소처럼 느긋하고 여유로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네리아 양은 정말 특별해요.”

서궁 내부의 침실.

란타나는 그곳에서 잡담하듯 입을 열며 작은 단검 하나를 구경하듯 바라보았다.

실용적이기보다는 장식용처럼 보이는 예쁜 검이었는데, 손잡이에 자잘하게 박힌 100개의 보석이 유독 특징적인 부분이었다.

그런데 특이한 점이라면 그중 99개의 보석은 붉은색을, 남은 1개는 흰색을 띠고 있는 점일까.

“혼자서 가문을 차지한 걸 넘어서 대단한 기사까지 데리고 있잖아요. 진심으로 놀라워요. 그 남자분, 이름이 뭐였지요?”

“듀이 경입니다. 평민 출신이라 성은 없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래요, 듀이 경. 아무래도 그냥 이대로 놔둘 수는 없겠어요.”

“…….”

“사실 네리아 양과 적대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어쩔 수 없죠. 그 기사분, 지금은 괜찮아도 위험해질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니까요.”

그렇다면 아예 자신의 수중에 두거나, 위험해지기 전에 싹을 잘라 버리는 쪽이 당연한 판단이었다.

“어떻게 처리할까요? 명령하시면 따르겠습니다.”

“그보다는 우선은 대화가 먼저죠. 충분히 협상할 수 있지 않겠어요? 네리아 양에게 티타임에 초대하고 싶다고 편지를 보내야겠어요.”

란타나가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언제나처럼 아름다운 미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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