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
…그런데 어째서였을까?
단지, ‘들어간다고 해도 손해 볼 일은 없으니 한번 가 볼까.’ 하는 가벼운 마음일 뿐이었다.
그러나 지하실로 향하겠다고 결심한 순간부터, 출처 모를 불안감이 머릿속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절대 가면 안 돼.’, ‘그곳에 가면 죽을 수도 있어!’ 그런 목소리가 귓가를 떠도는 것 같았다.
‘왜? 어째서……?’
이건 본능이 보내는 경고라고 하면 좋을까. 이 기이한 느낌을 제대로 설명할 표현이 없었다. 나는 의문스러운 기분에 눈을 찌푸렸다.
“…….”
“저기? 네리아 님?”
“…듀이. 말이 나온 김에 지금 바로 후문 지하실로 가 볼까 해.”
“네?”
가지 마, 가면 안 돼.
무의식은 아직도 나에게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그랬기에 오히려 확신과도 같은 직감이 들었다.
그곳에 무엇인가가 있다- 라고. 그렇다면 확인하지 않을 수 없다.
“나랑 같이 가 줘. 일단 들어가 보면 지하실에서 잊어버렸다는 기억이 떠오를지도 모르잖아? 그런 경우가 종종 있다고 들었거든.”
“기억이야 그렇다고 해도…….”
갑작스러운 이야기에 듀이가 걱정스러운 듯 표정을 흐렸다.
“네리아 님은 괜찮으시겠어요?”
“응, 괜찮을 거야.”
고개를 끄덕였다. 단순한 변덕이라고 해도 좋았다. 이 근거 없는 불안함의 정체를 확인하고 싶었다.
나는 그렇게 결정을 내리고는, 듀이와 함께 집무실을 벗어나 본관 바깥으로 향해 이동했다.
그리하여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하게 된 저택의 후문 지하실.
나는 그곳의 입구에 서서 내려가는 계단을 노려보듯 쳐다보았다. 지하라는 장소 때문일까, 차가운 공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동안은 일부러라도 가까이 가지 않아서, 구체적인 느낌을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후문 지하실 입구를 바라보고 있자니, 어째서 이곳에 오자고 결심한 순간부터 불안감이 느껴졌던 것인지 다시금 새삼스레 깨달을 수 있게 되었다.
단지 서 있기만 했을 뿐인데도, 식은땀이 흐르며 찌릿한 오싹함에 피부가 따끔거리기 시작했다. 원인조차 모를 공포였다.
“…….”
아- 똑같아. 그때도 이랬었지. 그렇게 생각하며 마른침을 삼켰다.
계단을 향하여 한 발을 내딛자, 본능적인 거부감이 전신으로 휘몰아쳤다. 나는 눈을 찌푸리며 계단에서 다시 발을 뗐다.
“네리아 님! 괜찮으세요? 얼굴색이 많이 나빠졌어요. 굳이 들어갈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아니야. 괜찮아.”
고개를 저었다.
도대체 어린 시절의 나는 이 안에서 무엇을 봤길래, 적어도 7~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런 공포심에 떨고 있는 것일까?
귓가에서는 아직도 환청 같은 목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저 안으로 들어가서는 안 된다고.
“들어갈 수 있어.”
그랬기에 더더욱 오기가 생겼다.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렇게까지 거부감이 드는 걸까? 납득하지 못할 반발심이 본능을 누를 정도였다.
반드시 알아내고 말겠어. 마음으로는 그렇게 결심하면서도 쉽게 발을 내딛지 못하던 때였다.
“네리아 님, 지하실 안쪽에 위험한 물건 같은 건 없어요.”
듀이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자재나 비품 같은 게 들어 있는 평범한 창고예요. 걱정되신다면, 제가 손을 잡아 드릴게요.”
“손?”
“네.”
듀이가 믿음직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팔을 뻗어 내 손을 꼭 붙잡았다.
대단한 행동은 아니었다. 하지만 혼자가 아니고, 지켜 줄 사람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불안함은 그대로였는데, 그 소소한 동작에 방금보다 더 용기가 생겨났다. 안에서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나는 괜찮을 거라고. 그런 확신이 생겼다.
나 역시 듀이를 보며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그러고는 듀이의 손을 잡고서, 그와 함께 이번에는 정말로 계단 아래로 발을 들였다.
안쪽으로 가까워지며 심장이 쿵쿵 뛰기 시작했지만, 나는 걷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지하실 안에서 발견한 건, 듀이의 짧은 설명과 다를 바 없는 풍경이었다.
구석을 메우고 있는 물건들이나 비품들이 들어 있는 각종 상자 등.
정말, 평범한 창고였다. 분명히 위험한 물건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는 단순한 공간이었는데도.
“…어?”
여전히 사라지지 않는 불쾌한 감각 속에서 문득, 시야가 변했다.
눈을 깜빡이는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이 공간 안에서 흐릿하게 다른 풍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눈앞에 철창살 같은 것이 있었다.
‘철창살이라고?’
이게 뭐지? 꼭 감옥 같잖아? 지하실 안에 그런 게 있었어? 방금까지는 없지 않았나? 설마 환각?
“어? 어……?”
그러다가 다시 평범한 창고의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눈을 깜빡일 때마다 풍경이 교차하고 있었다.
쿵쿵. 심장이 아까보다 더욱 심하게 뛰기 시작했다. 지하실 내부가 심장이 울리는 소리로 가득 찰 지경이었다.
“네리아 님? 네리아 님-”
갑작스레 시작된 두통에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내 이름을 부르는 듀이의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들렸다.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았다.
‘아- 설마 이건.’
잃어버린 기억이 떠오르기라도 하려는 걸까? 당장이라도 정신을 놓을 것만 같은데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니, 우습다고 생각했을 때.
어느새, 주변이 고요해졌다.
미친 듯이 뛰던 심장도 진정되고 두통도 씻은 듯이 사라졌다.
함께 왔던 듀이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시야가 아까보다 낮아지지 않았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눈앞에 보이는 철창 근처로 다가갔다.
‘여긴 뭘 가둬 둔 거지?’
무의식적인 행동이었다. 그러고는 지금보다 작아진 손으로 창살을 붙잡고 그 안을 들여다본 순간.
“너, 그 얼굴…….”
철창 너머에서 어떤 여성과 눈이 마주쳤다.
“그 여자의 딸이구나? 그렇지?”
흐르는 검은색 머리카락 사이에서 분홍색 눈동자가 소름이 끼칠 만큼 무섭게 번뜩이고 있었다.
***
그러니까, 그날은 유독 지루함을 주체하기가 어렵던 날이었다. 부모님은 외출 중인 데다 역사 수업은 평소보다 더 재미가 없었다.
무언가 즐거운 일이 없을까?
소소한 일탈은 아버지의 집무실에 몰래 숨어드는 탐험으로 이어졌다. 아버지의 책상 서랍에서 어떤 열쇠 하나를 발견했을 때.
‘네리아, 후문 지하실에는 절대 들어가면 안 돼. 알겠지? 약속해!’
그렇게 이야기하던 부모님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하지 말라고 하는 일일수록 더 하고 싶어지는 어린이가 나 혼자만은 아닐 게 분명하다.
후문 지하실에 뭐가 있길래? 생일 선물을 숨겨 두기라도 하신 걸까? 어린 나는 히죽 웃고는 몰래 열쇠를 챙겨서는 밖으로 나왔다.
‘들어가 볼 거야!’
장애물이 있기는 했다. 지하실 앞을 지키고 있던 경비병들이었는데, 그들을 피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안녕! 이거 마실래? 계속 서 있으면 더울까 봐 가져왔어!”
“세상에… 저희를 챙겨 주시다니, 천사 같은 우리 네리아 아가씨!”
경비병들에게 배탈약이 들어 있는 주스를 건넸다.
가문의 하나뿐인 아가씨라는 입장 때문일까, 그들은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내가 건넨 음료수를 곧장 벌컥벌컥 들이켰다.
나쁜 목적으로 준 건데, 별것도 아닌 주스 한 잔에 저렇게나 기뻐하는 그들을 보며 양심이 쿡쿡 찔리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말리기에는 이미 늦었다.
어차피 이렇게 된 것, 경비병들에게는 나중에 사과하기로 하고 작전을 속행하기로 했다.
그리고 조금 뒤.
그들이 배를 부여잡고 화장실로 달려갔을 때, 나는 빠르게 잠금쇠를 열고는 총총걸음으로 지하실 내부로 들어갔다.
귀족 영애인 나는 이런 곳에 올 이유가 없었기에, 저택 내에 있는 장소인데도 생소한 공간이었다.
계단을 내려가며 지하 특유의 찬 공기에 몸을 부르르 떨었을 때였다.
‘울음소리?’
안쪽에서 누군가가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낯선 목소리였다. 안에 사람이 있는 거야?
“하필이면 수도로 오는 길에 제일 먼저 만난 사람이! 하필이면-!”
흐느낌 다음으로는 분노에 가득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홀린 듯이 발걸음을 옮겼다.
“나는 이제 이대로 죽을 거야. 이게 뭐야? 시작도 못 하고 전부 끝이잖아……?”
지하실의 가장 한쪽에는 철창이 설치되어 있었다. 마치 죄인을 가둬 두는 듯한 감옥 같았다.
“누구야?”
그 안에, 화가난 듯 눈물을 흘리고 있는 어떤 여자가 있었다.
검은색 머리카락에 분홍색 눈동자가 몹시도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녀와 눈이 마주친 순간.
“너, 그 얼굴. 똑같이 생겼어. 그 여자의 딸이구나? 그렇지?”
그녀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어 있었다. 눈물이 맺힌 눈동자에서 광기와도 같은 감정이 느껴졌다.
무섭다. 저 눈이 무서웠다.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그러다가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으로 주저앉았다. 철창 너머의 여자가 진심으로 기쁜 듯 웃고 있었다.
“너 여긴 어떻게 들어왔니?”
“나… 나는…….”
“하지만 잘됐어. 그 여자가 내 미래를 망쳤으니, 나도 그 여자를 불행하게 만들 거야. 그래야 공평하지 않겠어?”
그녀의 손에서 유리 조각 같은 물건이 반짝인 것 같았다. 그러고는 어느 순간부터 지하실이 비릿한 쇠 냄새로 가득 찼다.
“꼬마야, 너는 아니? 자식을 잃는 건 가장 큰 슬픔이라고 해.”
그녀가 손을 들었다. 하얗고 가느다란 손가락이 나를 겨냥했다.
“그러니 너는 어른이 되지 못하고 죽을 거야.”
“시, 싫어. 아니야.”
“손끝과 발끝부터 굳어 가기 시작하면서, 17살이 되는 날. 그 여자가 보는 앞에서 죽고 말 거야.”
그녀의 말이 끝난 순간, 공포와도 같은 감각이 내 전신을 휘감았다. 그것은 흡사 저주와도 같았다.
아름다운 얼굴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 모습이 끔찍한 마귀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싫어-!”
무서워. 도망가야 해. 나는 억지로 몸을 움직여서는 거의 기어가다시피 지하실을 빠져나왔다.
‘저건 괴물이야! 가둬 놔야 해!’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와중에도 다시 지하실의 문을 잠갔다.
나는 아무것도 못 봤어. 아무것도 못 본 거야. 열쇠를 돌려놓으면 없던 일이 될 거야.
아버지의 집무실 서랍에 열쇠를 넣어 두는 중에도 머릿속으로 몇 번을 반복하여 되뇌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정신을 잃었다.
***
“…는 못 봤어. 나는 아무것도-!”
“네리아 님!”
“네리아 아가씨!”
비명을 지르며 상체를 일으켰다.
눈앞에 익숙한 풍경이 보였다. 내 방이었다. 옆에서는 듀이와 사샤가 심각한 표정이 되어서는 땀을 흘리며 내 곁을 지키고 있었다.
“아가씨! 괜찮으세요? 지금까지 계속 쓰러져 계셨어요!”
“네리아 님! 무리하지 말고 누워 계세요! 주치의를 모셔올게요!”
옆에서 소란이 일었다. 그런데도 방금 보고 목격한 광경에 충격을 받아서일까. 주변 같은 건 신경조차 쓰이지 않을 정도였다.
“뭐야? 방금 뭐였어……?”
내가 도대체 뭘 본 거지? 대체 뭔데? 꿈이라도 꾼 것 같아서 몇 번이나 눈을 깜빡였다. 하지만 머릿속의 기억이 사라지거나 바뀌는 일은 없었다.
‘지하실 안에 갇혀 있던 그 여자는 분명…….’
눈이 있는 이상은 헷갈릴 수 없는 얼굴이었다. 분명, 란타나였다. 다소 앳되어 보이는 얼굴이었으나 그녀가 맞았다. 확실했다.
“…진짜 뭔데? 뭐냐고?”
이번에는 혼란스러움에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생각해야 해? 란타나가 어째서 우리 집 지하실에 있었어? 말이 안 되는 거 아니야? 눈앞에 부모님이 계셨다면 당장에라도 묻고 싶었다.
“거짓말이지?”
멍청하게 중얼거렸다. 게다가 그녀가 나를 보며 했던 말.
‘손끝과 발끝부터 굳어 가기 시작하면서, 17살이 되는 날. 그 여자가 보는 앞에서 죽고 말 거야.’
“…그거, 꼭.”
사지석화증 증세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