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
“그런 것보다…….”
데이브 따위야 어찌 되든 상관없지만, 그보다 신경 쓰이는 점이 있다면 아무래도 듀이일까.
저택 입구에서부터 상당히 소란을 피웠으니 검술 연습을 하다가도 내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서는 재빨리 달려왔을 것 같은데.
‘물론 내가 왔다고 해서, 듀이가 마중 나오는 게 의무는 아니지만.’
다만, 내가 오면 언제나 ‘네리아 님!’ 하면서 제일 먼저 강아지처럼 쫓아오던 사람이 없으니 괜히 기분이 허전하게 느껴졌다.
“사샤, 듀이는 혹시 외출?”
“아뇨, 구 훈련장에 계세요! 그런데 듀이 경이 요즘 연습에 열중하느라 아주, 아주 바쁘셔서요.”
“그래……?”
“네! 새벽까지 무척 고생이 많으세요. 아마도 아가씨가 저택에 오셨다는 소식도 못 들었을 만큼 집중하고 있을걸요?”
그렇게 대답하는 사샤는 왜인지 얼굴에 흐뭇한 미소를 한가득 짓고 있었다.
나는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구 훈련장이 있는 방향을 쳐다보았다. 검술 연습 중이라는 거지?
“듀이 경을 불러올까요?”
“아니야. 내가 갈게.”
열심히 하는 건 좋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너무 훈련만 하는 것도 능률이 떨어지는 법.
마침 점심시간도 다 되어 가니 식사나 함께 할 겸, 오랜만에 듀이와 번화가의 티룸에 가는 것도 좋은 생각인 것 같았다.
‘어차피 오늘은 휴가니까!’
성실한 기사님을 꾀어내어 놀러 나갈 계획을 세우고는 장난스러운 미소를 입가에 걸쳤다.
“사샤, 점심 식사는 밖에서 먹을 거니까 마차를 준비해 줄래?”
“네, 아가씨! 알겠습니다.”
나는 사샤에게 그렇게 일러둔 뒤, 듀이를 데려가기 위해 곧바로 방을 나섰다.
***
구 훈련장은 오래되어 내부 시설이 낡았다 보니, 사용 환경이 비교적 열약한 장소였다.
그런데도 듀이나 그레이 경은 아직도 구 훈련장을 애용하고는 했다. 예전부터 계속 사용해 왔더니 익숙해져서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이유라고 했다.
하지만 이제는 저택의 소유권도 내가 가지게 되었고 마법약 사업으로 거액을 벌게 되기도 했으니, 낡은 건물은 허물고 새로운 훈련장을 지어도 괜찮지 않으려나.
‘게다가 듀이에게는 부족함 없는 환경을 만들어 주고 싶으니까.’
나는 건물의 외관을 보며 그렇게 생각하다가, 구 훈련장 입구를 향해 천천히 발을 들였다.
훈련장의 문은 반 정도가 열려 있었다. 우선은 듀이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문틈 사이로 슬며시 고개를 내밀었을 때였다.
“…어?”
그런데, 안에서 발견한 장면은 갈색 머리의 소년이 검술을 연습하는 모습이 아니었다.
“사교댄스?”
나는 의외라는 듯이 눈을 떴다. 듀이가 허공에 손을 올린 채, 빙글빙글 돌며 혼자서 춤을 추고 있었다. 왈츠였다.
굉장히 필사적인 모습이었는데, 오히려 검술 연습을 할 때보다 더 심각하고 진지해 보였다.
‘댄스 교사를 붙여 준다는 걸 거절하고, 그레이 아저씨에게 춤을 배우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그 광경을 지켜보며, 사샤가 왜 듀이의 이야기를 하며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아주, 아주 바쁘게 연습에 열중하고 있다는 게 댄스 연습이었어?
“…….”
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 듀이가 어째서 저렇게나 열심히 왈츠를 연습하고 있는지 알 것 같아서.
입가에 떠오르는 웃음기가 차마 지워지지 않았기에, 나는 만면에 미소를 머금고는 그에게 다가갔다.
“듀이.”
“네리아 님?”
여전히 심각한 표정으로 빙글빙글 돌고 있던 소년은, 나를 발견하자마자 환한 얼굴이 되었다.
“네리아 님! 언제 오셨어요? 어떻게 오셨어요? 건국제 당일에나 뵐 수 있을 줄 알았어요!”
“방금 왔고, 휴가를 받았어.”
듀이는 예정에 없던 만남에 온몸으로 기쁨을 표현하고 있었다.
“그런데 듀이는, 춤 연습을 하고 있었구나? 듣기로는 이것 때문에 새벽까지 고생하고 있다면서?”
“…네.”
연습을 들킨 게 부끄러웠던 걸까, 그의 얼굴이 조금 붉어졌다.
“건국제 무도회에서 실수하고 싶지 않아서요.”
“실수 좀 하면 어때? 실수해도 괜찮으니까 쉬엄쉬엄해도 돼.”
“안 돼요.”
“왜?”
“그거야, 제가 네리아 님의 파트너니까요.”
언제 뺨을 붉혔었냐는 듯, 그렇게 말하는 소년의 얼굴이 진지했다. 짧은 대답이었으나 그 한마디에 노력의 이유가 전부 들어 있었다.
나에게 수치가 되지 않기 위해서. 내가 다른 귀족들에게 나쁜 말을 듣는 일이 없게 하려고. 내 옆에 있기에 부족하지 않은 완벽한 파트너가 되기 위해서.
정리하자면, 나를 위해서.
언제나 나를 위해 노력하는 그였다. 하지만 그 모습을 눈앞에서 보게 될 때면 항상 마음 어딘가가 따뜻해지고, 감동하게 되곤 했다.
유쾌한 웃음이 터졌다.
“맞아, 듀이는 내 파트너지.”
“아직은 부족하지만, 건국제까지는 어떻게든 완벽하게 익힐게요. 네리아 님께 약속드릴게요.”
“음… 내가 봤을 때, 스텝은 충분히 완벽하거든.”
방금까지 보았던 듀이의 댄스를 채점하듯, 눈을 가늘게 뜨고는 소년을 바라보았다.
“단 하나, 아쉬운 점은.”
“아쉬운 점은……?”
“움직이는 데 몸이 너무 뻣뻣해. 그렇지만 좋은 해결책이 있어! 듀이는 춤을 배우는 가장 좋은 방법이 뭔지 알아?”
“연습이 아닐까요?”
“그것도 맞는 말이긴 한데.”
나는 듀이의 손을 붙잡고는 그를 훈련장 정 가운데로 이끌었다.
그러고는 오른손으로 그의 왼손을 잡고, 반대쪽 손으로는 그의 남은 손을 내 허리로 가져갔다.
“정답은 바로, 파트너와 실제로 춤을 춰 보는 거야.”
“네, 네, 네, 네리아 님?”
에스코트를 하느라 손은 자주 잡아 봤지만, 허리에 손을 대는 것은 처음이라서 당황한 걸까. 듀이가 화들짝 놀라며 나에게서 손을 떼 내려고 했다.
‘하지만, 진작 예상했지.’
씩- 악당 같은 미소를 짓고는 듀이의 오른손이 떨어지기 직전에 붙잡았더니, 그가 마치 울 것 같은 표정이 되고 말았다.
“자, 잠깐. 네리아 님! 실전에 들어가는 건 제가 더 연습해서 댄스를 완벽하게 익힌 뒤에-”
“지금도 연습인데? 그리고 스텝은 이미 완벽하다고 했잖아. 시작할게! 하나, 둘, 셋. 하나, 둘, 셋.”
“네? 으앗!”
마음과 달리, 시작과 함께 숫자를 세면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움직이게 되는 것이 본능이다.
듀이가 오른발을 앞으로 옮기는 것을 시작으로 몸을 움직였다. 그러나 여유라고는 한 점도 없이 조급하기 짝이 없는 움직임이었다.
“잠깐만요! 실수로 네리아 님의 발을 밟을 것 같아요!”
“괜찮아, 밟아도 돼! 다들 처음은 똑같거든. 이것 봐. 나도 방금 네 발등을 밟았잖아?”
“안 괜찮아요! 네리아 님은 깃털 같아서 몇 번을 밟혀도 아무 느낌도 안 나지만 저는-”
“괜찮다니까! 내 발등도 튼튼해. 이렇게 하면 금방 배울 수 있어.”
혼자서 연습할 때는 완벽했건만, 듀이는 땅만 쳐다본 채 내 발을 피하기에만 급급했다.
우당탕, 휘청휘청, 이리저리 휘둘리고 넘어질 듯 말 듯, 아주 엉망이기 짝이 없는 댄스였다.
“듀이, 재밌지?”
“아뇨! 재미없어요!”
“정말? 나는 재밌는데!”
이런 식으로 춤을 추는 건, 어린 시절에 부모님과 함께 했던 적 이후로는 처음이 아닐까.
듀이와 함께할 때면 이런 점이 좋았다. 머릿속으로 다른 속셈 따위를 만들 필요 없이, 그냥 순수하게 즐거워할 수 있어서.
“그리고 갈수록 듀이의 스텝이 잘 맞춰지고 있어.”
파트너와 실제로 춤을 추는 것이 댄스를 배우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며 듀이의 움직임도 점차 흐름을 되찾았고, 조금 뒤에는 아래를 보지 않고도 춤을 괜찮게 출 수 있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도 빠른 속도였다.
뭐, 듀이는 원래부터 몸으로 하는 건 전부 잘했으니까.
“내 말 맞지? 금방 배운다고.”
“네…….”
다소 거친 방법이었지만, 학습 효과를 부정할 수는 없었는지 듀이가 머뭇머뭇 대답했다.
“…재미있기도 하고요.”
“그렇지?”
듀이와 나, 두 사람이 눈을 마주치며 활짝 웃었다.
그런데 방금까지는 혼란에 빠져 있다가, 서로의 숨이 느껴질 만큼 가까운 거리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기 때문일까.
“…아.”
눈이 마주친 순간, 듀이가 또다시 얼굴을 붉히고는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순진한 반응이었지만 어쩔 수는 없었다.
나야 사교댄스 경험이 많지만, 듀이는 이렇게 다른 사람과 가까이 붙어 있는 적이 처음일 테니.
하지만, 저렇게 눈을 피하면서도 점점 춤에 익숙해져 이제는 리드까지 하고 있다는 점이 대단했다.
“…….”
“…….”
훈련장에는 발소리와 숨소리 외에는 아무런 소음도 들리지 않는 고요가 찾아왔다.
나는 편안한 마음으로 눈앞의 소년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듀이가 원래 이렇게 키가 컸던가?’
문득 깨달은 사실이었다.
처음 만났을 때는 분명 나보다 조금 큰 정도였던 것 같은데, 지금은 듀이를 올려다봐야 할 정도가 되었다.
아직 17살인 내가 하기에는 우스운 말이겠지만, 성장기 소년이란 이렇게나 빨리 자라는 걸까?
‘한때는 듀이가 루이케보다 더 동생 같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이제는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될 것 같다고 생각하며 오른쪽으로 몸을 회전했을 즈음이었다.
‘듀이는 기사이기도 하니… 어?’
워낙 다른 생각에 정신이 팔려서였는지, 실수로 바닥에 발을 잘못 디디고 말았다.
사교계라든가 다른 장소였다면 곧바로 실수가 아닌 척, 자연스럽게 자세를 바로잡았겠지만, 여기는 듀이와 나밖에 없는 훈련장이었다.
살짝 넘어지는 사고로 다시 우당탕 왈츠가 되어도 재미있을지도. 그런 유쾌한 기분으로 일부러 중심을 잡지 않고 몸을 휘청였을 때였다.
“네리아 님-!”
듀이가 급하게 팔을 움직여, 내가 넘어지지 않도록 내 허리를 좀 더 깊숙하게 붙잡았다.
“듀이?”
바로 눈앞에 금색 눈동자가 보였다. 상체가 닿고 뺨이 스칠 듯한 거리였다. 아주 잠깐이지만, 몸이 굳었던 것 같기도 했다.
“네리아 님, 괜찮으세요? 역시, 제가 아직 연습이 부족해서……!”
나는 말없이 눈을 가늘게 떴다.
상황에 어울리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상당히 안전한 자세였다. 듀이가 잡아 준 이상, 절대 넘어지거나 다치지 않을 것 같은.
하기야, 얼굴은 저렇게 순진무구해 보여도 기사니까.
“…….”
“다친 데는 없으시죠?”
“응, 없어.”
“다행이에요.”
듀이의 도움을 받아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는 겨우 안도했다는 듯이 헤실헤실 웃고 있었다.
‘다른 때였다면, 잘했다고 머리를 쓰다듬어 줬을 것 같은데.’
아직도 웃고 있는 듀이를 보며 나는 고개를 기울였다.
이제는 머리를 쓰다듬는 행동도 조심해야 하지 않을까? 어쩐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
다음 날, 예정대로 황태후궁으로 돌아가 시녀 업무에 복귀했다. 다만, 주업무는 식사 담당에서 다른 쪽으로 바꾸게 되었다.
‘황태후 폐하의 식사 담당자로서, 네리아 양이 믿음직스럽지 못해서가 아니에요. 그건 알죠?’
‘네, 물론이에요. 시녀장님.’
라일라가 벌인 사고로 인해, 식사 담당은 황태후를 모신 경험이 많은 귀부인이 맡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내가 원래 역할에서 배제된 것은, 그 일로 내가 부담감을 느낄까 염려해 준 것에 가까웠다.
‘오히려 내가 원하는 쪽으로 업무를 배정해 준 덕분에 나로서는 편하게 됐지.’
그리하여 내가 새롭게 고른 주 업무는 ‘황태후 폐하의 드레스와 장신구를 고르는 역할’이었다.
클로이와 함께하는 일이었는데, 이 선택에는 물론 외압이 있었다. 에모리 공작가의 하나뿐인 공녀에게서였다.
“외압이라고 부르지 말아요. 저는 정말 네리아 양이 이 일에 적임이라서 추천한 거라니까요?”
“아무렴 그렇겠어요. 그래서, 오늘 할 일은 뭐죠?”
황태후궁의 응접실.
클로이와 나는 짧은 잡담 후에 다시 일 이야기를 시작했다.
내가 치장 담당이 된 첫 번째 날이었기에, 임시 선배인 클로이에게 자세한 설명을 들을 필요가 있기 때문이었다.
“오늘은 폐하가 건국제에서 입을 의상을 맞출 예정이에요. 폐하와 함께 드레스의 디자인과 재료를 선택하는 매우 중요한 일이죠.”
“네, 매우 중요한 일이죠. 그러면 황궁의 장인이 오시는 거죠?”
“아뇨, 외부 의상실의 디자이너를 부르게 되었어요. 폐하께 반드시 건국제 드레스를 지어 드리고 싶다면서, 황태후궁으로 매일 적극적으로 편지와 디자인 스케치 시안을 보낸 사람이 있었거든요.”
“그런가요?”
“네. 정성이 대단하다면서, 폐하께서도 결국은 수락하셨지요. 디자인 스케치가 마음에 든다고 하신 이유도 있지만요.”
“황태후 폐하의 눈에 든 디자인이라니, 궁금하네요.”
말처럼 대단한 정성이었지만, 그렇게 노력을 들일 만도 했다.
황족은 주로 황궁 장인이 만든 옷이나 장신구를 착용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 만큼, 황족이 외부 의상실의 드레스를 입은 것만으로도 디자이너에게는 명예가 되는 데다, 옷을 지으며 황궁에 드나드는 동안 황족과 연줄을 만들 수도 있으니까.
“그런데 어떤 의상실인가요?”
“어디냐면.”
말로 할 것 없이 눈으로 확인하면 된다는 듯, 클로이가 응접실의 입구를 힐끗 쳐다보았다.
마침 약속 시간이 된 차였기에, 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응접실 안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모두 안녕하세요! 이렇게 뵙게 되어서 반가워요!”
“어……?”
그리고 나는 이곳에 새로 등장한 인물을 바라보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도나 헤런드 님?”
반가운 얼굴이었다.
그러니까 예전 수확제 때. 멜비나 백모님과 손을 잡고 나에게 저급품 드레스를 만들어 준 적이 있었던, 라 블루벨의 주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