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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은 셀프입니다 (84)화 (84/172)



<84>

“폐하?”

“지금 이게 무슨 일이지요? 폐하께서 왜 갑자기?”

테이블에 앉아 있던 귀족들 역시 당혹감을 표시했다. 하지만 황제가 일어서 있는데, 가만히 앉아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귀족들 역시 자리에서 일어나 황제를 따라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자네, 이리로 오게.”

“예? 저 말씀이십니까?”

“그래. 목에 초록색 손수건을 두른 자네 말일세.”

황제의 명령이다. 듀이는 당황하면서도 발걸음을 움직여 황제 폐하의 앞으로 다가갔다.

“올해의 수석 합격을 축하하네.”

“폐하!”

“저 수험자는 제한 시간을 25분이나 넘어서 도착했습니다!”

“규칙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황제의 입에서 나온 폭탄과도 같은 선언에, 사람들이 경악하며 반대 의견을 쏟아 냈다.

“다들 조용히들 하게-!”

하지만 황제에게서 나온 노호성에 사람들이 입을 다물었다.

“자네, 합격 기준을 진작 넘겼는데도 늦은 이유가 무엇인가?”

“시험장에서 위험에 빠진 아이를 발견하여…….”

듀이는 심하게 긴장을 한 것인지, 황제가 묻고 있는데도 제대로 말을 끝마치지 못했다.

하지만 황제는 그런 듀이를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그래, 수십의 마수에 둘러싸인 아이를 구하느라 늦었지.”

“예. 그렇습니다만…….”

두 사람의 대화를 들은 귀족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아까 아이가 누군가에게 끌려갔다는 이야기가 있었죠?”

“설마요. 기사 시험이 치러지는 곳에서 어떻게 그런 일이!”

누군가는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소리치고, 누군가는 일의 전말을 짐작이라도 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중 아무런 반응조차 할 수 없는 것은 일을 꾸민 자들, 발렌티스 일가와 메이슨 무리뿐이었다.

점점 커지는 웅성거림을 멈춘 것은 황제의 말이었다.

“모든 제국민의 아버지로서, 어떻게 아이를 구하기 위해 커다란 위험을 무릅쓴 자네에게 탈락이라는 결과를 줄 수 있겠는가.”

시험에는 규칙이 있다. 하지만 제국에는 단 한 명, 규칙보다 높은 곳에 존재하는 사람이 있었다.

“시종장은 예식용 검과 황금 장미를 가져오게!”

“예, 폐하.”

황제가 예식용 검을 들어, 듀이의 양쪽 어깨를 두드렸다. 그를 제국의 기사로 서임하는 것이었다.

“기사의 의무는, 제국을 수호하고 제국민을 지키는 것이다. 자네는 이미 한 명의 훌륭한 기사야!”

황제가 목소리를 높여 선언했다. 그 결정에 반발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튜터 선발로 니나렛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황제 폐하의 집무실을 찾았을 때.

황제의 뒤에 서 있던 호위 마법사가, 예전 세계에서는 니나렛 황녀의 호위를 맡고 있던 마법사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름이 미첼 경이었지?’

그리고 미첼 경의 고유 마법은 ‘초록새’를 패밀리어로 삼는 것.

원래라면 내가 알 수 없는 정보였지만, 예전 세계의 니나렛이 말실수로 나에게 흘린 것이었다.

‘당연히 나도 보안을 지켰지만.’

그리고 이번 시험에 비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폐하가, 미첼 경의 능력을 이용해 시험장을 감시할 거라는 예상을 했었다.

분명, 수험자들을 위해 일을 크게 벌이지 않길 원하셨을 테니까.

그리고 오늘, 하늘 위를 날아다니는 초록새를 보며 내 예상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네리아 님.”

듀이가 손에 황금 장미를 들고서 나에게 당당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내 앞에 도착한 소년이, 한쪽 무릎을 꿇고는 황금 장미를 나에게 내밀었다.

기사 서약이었다.

“제가 가진 모든 것을 전부 당신에게 바치겠습니다.”

“…….”

“저, 듀이는 당신을 수호하는 검이자 방패가 되겠습니다.”

나는 그에게서 장미를 받아 들었다. 이곳에 모여 있는 모두가 원하던 바로 그 황금 장미였다.

‘분명히, 예전 세계에서도 이미 받아 봤던 물건인데.’

듀이에게 받은 장미가 더 특별하게 느껴지는 건 어째서였을까?

솔직히 말해서 레고트 백부가 시험장에서 무슨 일을 꾸몄는지는 아직 알지 못했다.

그러나 황제 폐하가 지켜보고 있는 이상, 듀이가 시험에서 탈락할 일은 없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나의 기사님은 틀림없이 내 믿음에 보답해 주었다.

마음이 벅차올랐다.

지금 이 감정을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 나는 한참을 생각하다가, 그를 향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예전에 네가 말했었지? 네 존재가 나에게 수치가 될 거라고.”

“네…….”

“이 자리에서 확실하게 말해 줄게. 너는 나에게 수치였던 적이 단 한 순간도 없었어.”

“…….”

“듀이, 너는 내 긍지야.”

듀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웃을 뿐이었다. 그가 알고 있는 감정이라고는 행복밖에 없다는 얼굴로.

그 얼굴을 보는 것이 기뻐서, 나도 함께 웃었다.

***

“듀이, 그래서 말인데.”

기사 서약과 장미 전달이 끝난 후, 나는 듀이의 귀에 대고 속닥속닥 무언가를 물었다.

“아! 그건…….”

그러자 듀이 역시도 나에게 귓속말로 무언가를 대답해 주었다.

‘시험장에서 무슨 일이 있었느냐’에 관한 질문과 답변이었다.

“아… 그랬어?”

그런 일이 있었단 말이지?

간단한 설명이었지만 알아듣기는 쉬웠다. 하여간, 매번 상상을 뛰어넘는 대단한 인간들이었다.

나는 듀이의 이야기를 듣고는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정말 잘했어. 고생 많았고,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야.”

“네, 네리아 님!”

듀이가 활짝 웃었다. 나는 듀이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려고 팔을 뻗었다가 다시 내렸다.

조심하는 게 좋겠지. 듀이는 이제 정식으로 기사가 되었고, 이쪽을 주목하는 사람도 많았으니까.

다만, 한 가지 포기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면.

“사석에서는 ‘듀이 경’이 아니라, 듀이라고 불러도 되지? 나는 이름만 부르는 게 더 좋거든.”

“물론이에요, 네리아 님!”

나는 헤실헤실 웃고 있는 듀이에게서 고개를 돌려, 테이블 맞은편에 앉아 있는 라일라를 보았다.

“…….”

라일라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서는 이쪽을 멍청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라일라, 내기는 내가 이겼네?”

“…….”

“나도 네가 수도를 떠나면 슬플 거야. 그동안 황태제비가 되기 위해 애쓰느라 고생이 많았어.”

“…납득할 수 없어.”

“뭘?”

“납득할 수 없다고! 저 평민은 제한 시간을 넘어서 도착했어! 그런데 어떻게 기사가 돼?”

“납득을 못 하겠으면 폐하께 여쭤보든가 해. 이건 전부 폐하께서 결정하신 일이잖아?”

“…….”

“그리고 말을 똑바로 하는 게 좋겠어. 평민이 아니라 듀이 경.”

“…인정할 수 없어. 내기는 무효야. 그리고 이 석연찮은 일에 관해서 부모님과 황궁에 정식으로 이의 제기를 할 거야.”

라일라가 그렇게 말을 마치고는 도망치듯 테이블을 벗어났고, 라일라의 추종자들 역시 그녀의 뒤를 빠르게 뒤쫓아 갔다.

“내기는 무효? 이의 제기?”

우스울 따름이었다.

앞으로 그들에게 무슨 일이 펼쳐질 줄도 모르고 그런 태평한 소리나 떠들어 대고 있다니.

기사 시험장에서 벌어진 부정행위를 황제 폐하께서 지켜보셨다.

가만히 계실 리가 없지.

‘너희도 이제 제대로 된 벌을 받을 때가 되지 않았어?’

나는 미소 띤 얼굴로 라일라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내가 장담할 수 있는 한 가지는, 오늘 일이 백부네가 나락으로 처박히게 될, 아주 확실한 계기가 될 거라는 사실이었다.

***

황제는 이번 기사 시험에서 벌어진 괘씸한 행위에 격노했다.

필기시험의 채점관을 매수한 정도까지는 적당한 처벌로 넘어가 줄 수 있었다.

그런데 평민 한 명의 시험을 망치겠다고 어린아이를 다치게 한 데다 유기까지 해?

선을 한참 넘었다. 적당히 넘어갈 수 없는 일이었다.

“증거를 샅샅이 뒤져, 이번 일의 배후를 반드시 찾아내도록 해라!”

황제의 명령으로 특별 조사위가 꾸려졌다. 한번 물면 절대 놓지 않는다는 악명과 칭송을 동시에 받는 자들이었다.

그들에게 이번 비리 행위의 관계자를 찾아내는 일은 전혀 어렵지 않았다.

우선 필기시험에서 뇌물을 받았다는 증거가 확실한 학자, 윌리엄.

황제의 호위 마법사인 미첼이 실기 시험에서 일을 벌였던 수험자 세 명의 얼굴을 확실하게 기억했다.

메이슨 영식을 포함한 세 명이 황궁으로 끌려갔다.

그리고 특별 조사위는 그들이 후회와 참회의 비명을 지를 때까지 철저하게 취조한 후, 한 명의 이름을 찾아낼 수 있었다.

‘레고트 발렌티스 백작.’

그리고 그런 그가, 황제의 집무실로 불려가게 된 것은 아주 당연하고도 자연스러운 순서였다.

***

황제의 부름을 받은 레고트는 황궁 집무실 앞에서 초조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옆에는 대기할 수 있는 의자가 있었지만 앉을 기분이 아니었다.

대체 일이 어떻게 된 거야?

‘설마, 이번 일도 네리아 그것의 소행인 건가?’

레고트가 와락 얼굴을 구기며, 지난 일주일 동안 벌어졌던 일들을 회상했다.

기사 시험이 모두 끝난 직후.

레고트를 비롯한 그의 가족은 공들여 세운 계획이 또다시 실패로 돌아갔다는 것에 분노했다.

게다가 그 평민이 기사가 될 수 있었던 이유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시험의 규칙을 완전히 무시한 일이 아닌가.

그리하여 다음 날, 정무 회의에서 기사 시험의 공정성을 확립해야 한다는 의견을 주장하기도 하고, 네리아를 불러 타이르기도 했다.

‘티 파티에서 라일라와 했다는 내기의 내용을 들었다. 설마 진심으로 한 이야기는 아니겠지?’

‘라일라도 너도, 나이가 17살인데 둘 다 이렇게 철이 없어서야! 가족끼리 장난은 적당히 하도록 하렴. 내기는 없던 일로 해!’

내기에 진 사람이 네리아였다면, 티 파티에 참석했던 증인들을 내세워 그녀의 장신구 사업을 빼앗고 수도에서 쫓아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라일라는 다르지 않은가.

어차피 증인들은 네리아의 편이 아니었다.

내기를 장난 취급하며 없던 일로 만드는 것쯤이야 가능했다.

‘당연히 장난이었죠! 애초에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이었잖아요?’

다만, 그 교활한 조카가 아무런 반항도 없이 그들의 이야기를 받아들이는 것이 수상쩍기는 했다.

그리고 며칠 뒤.

이번 기사 시험에서 발렌티스 가문과 엮였던 자들이 줄줄이 황궁으로 소환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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