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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은 셀프입니다 (83)화 (83/172)



<83>

듀이가 주머니에서 보급품으로 받은 시계를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다행히도 시간상으로는 아직 여유가 많이 남아 있었다.

마수의 수가 많아서 위험해 보이기는 했다. 그렇지만 저것들쯤이야 전부 없애 버리면 된다.

‘할 수 있어.’

듀이가 결심을 마치고는, 절벽 아래로 뛰어내렸다. 그러고는 마수들을 피해 바위 위로 올라갔다.

“사, 살려 주세요, 기사님! 제발 도와주세요! 너무 무서워요!”

“이제 괜찮아. 울지 마.”

“흑, 흐흑! 누나가, 누나가 기다릴 거예요…….”

“그래, 나랑 같이 누나한테 돌아가자. 그런데 어쩌다 여기에 오게 된 거야? 벼랑에서 떨어졌니?”

“누나랑 같이 기사 시험을 구경하러 왔는데, 누나가 기다리라는 곳에서 얌전히 기다렸는데… 가, 갑자기 무서운 아저씨들이 절 붙잡아서 여기로 끌고 왔어요.”

가까이에서 본 아이의 상태는 듀이가 예상한 것보다 심각했다.

상처를 입은 데다 마수에게 둘러싸였다는 공포에 질려, 아이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이제 여기서 나가자.”

“하, 하지만 저렇게 마수들이 많은데…….”

“이 검 보이지? 난 저 마수들보다 더 많은 마수를 사냥하고 돌아가는 길이었어. 걱정하지 마.”

“와… 와아!”

약간의 과장이 섞인 말이었지만 덕분에 아이는 기운을 차렸다.

희망을 엿본 아이의 뺨에 약간이지만 혈색이 돌아오는 것을 보며 듀이는 다짐하듯 말했다.

“내가 구해 줄 거니까, 괜찮아.”

듀이가 유리병 목걸이를 벗었다.

세사르가 만들었다는 치료약을 아이에게 뿌리자, 곧바로 상처가 사라졌다. 눈으로 보고도 믿기 힘들 정도로 대단한 효과였다.

“여기서 기다려. 내가 저것들을 금방 없애고 다시 돌아올게.”

듀이가 검을 쥔 채, 바위에서 뛰어내렸다. 그리고 마수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푸른 하늘 위에는, 초록새라는 이름을 가진 검은색 새들이 여전히 날아다니고 있었다.

***

“다녀왔습니다, 레이디 라일라.”

라일라는 본부로 돌아온 메이슨을 만나 짙은 미소를 지었다.

“그 평민, 실력은 정말로 강해서 죽지는 않을 것 같지만.”

메이슨이 라일라 이외에는 들리지 않을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시험에 합격하지도 못할 겁니다. 저런 부류는 멍청해서 불의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거든요.”

두 사람이 미소를 띤 채, 의미심장한 시선을 교환했다.

레고트 일가가 듀이에게 파 놓은 함정은, 아이를 납치해 마수를 불러 모은 것만이 아니었다.

바로 듀이가 받은 보급품 시계를 바꿔치기한 것.

메이슨은 시험이 시작하기 전, 듀이와 부딪치며 일부러 시계를 떨어트리도록 만들었다.

그러고는 일부러 30분을 앞당겨 놓은 메이슨의 시계와 바꿔치기했다.

듀이가 시계가 바뀌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도록, 다른 행동으로 주의를 끌기도 했다.

일전에 있었던 필기시험 때.

그 평민이 혼자서 자객들을 전부 처리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안배한 일이었는데, 옳은 선택이었다.

그러니 그가 아이를 구한답시고 영웅 놀이를 하고 돌아와도, 본부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제한 시간이 끝났을 터였다.

“고생하셨어요. 이제는 메이슨 경이라고 부르면 되겠네요.”

“예. 그리고 이번 시험의 수석은 저이니, 미래의 황후가 되실 레이디께 황금 장미를 바치겠습니다.”

훌륭하다. 정말이지 흡족할 만큼 충성스러운 기사였다.

“기다리고 있겠어요.”

라일라는 메이슨과 이야기를 끝내고는 다시 테이블로 돌아왔다.

이제 시험이 끝나기 전까지 남은 시간은 고작 3분.

하지만 아직도 그 평민은 나타나지 않았고, 잠깐 자리를 비웠던 황족들도 폐회식을 위해 제자리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금 뒤, 시험의 종료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드디어……!’

라일라의 입가에 숨길 수 없는 승리의 미소가 걸렸다.

‘내가 이겼어. 이겼다구!’

드디어 저 꼴 보기 싫은 네리아를 치워 버릴 수 있다니!

마치 앓던 이가 빠진 것처럼 개운한 기분이 들었다.

라일라는 테이블의 맞은편에 앉은 네리아를 비웃듯이 바라보았다.

“네리아, 어쩌면 좋아? 네 기사님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것 같네. 정말 유감이야.”

“…….”

하지만 네리아는 라일라의 비아냥에도 아무런 동요 없이, 고요한 눈으로 어딘가를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괜히 허세를 부리기는.’

라일라는 그런 네리아를 마음껏 비웃었다.

옆에 있던 라일라의 추종자들이 그녀에게 축하 인사를 건네 왔기에, 상냥하게 대답해 주기도 했다.

“그런데 폐회식을 시작하지 않네요? 작년에는 시험이 종료한 뒤, 바로 폐회식을 하지 않았나요?”

“그러게요. 올해는 준비가 더 걸리는 걸까요?”

“행사 진행이 매년 같을 수는 없잖아요? 금방 시작할 테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 봐요.”

라일라의 목소리가 밝았다.

지금 같은 기분이라면, 24시간도 기다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 뒤로도 기다림은 계속 이어졌고, 시험 종료 후 20분이 지났을 무렵.

“진행 본부에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걸까요?”

“글쎄요. 수석 합격생이 금방 가려지지 않았다던가요?”

좀처럼 폐회식이 시작되지 않자, 다른 테이블 역시도 의아함으로 술렁이기 시작했다.

‘설마… 무슨 일이 생긴 건가?’

라일라가 고개를 돌려, 상석에 앉은 황제 폐하를 바라보았다.

“…….”

그런데 황제 또한, 네리아와 비슷하게 아무런 말 없이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

제국의 기사를 선발하는 필기시험에 비리가 있었다. 혹시 실기 시험에서도 손을 쓰지 않겠느냐.

레오니트가 황제에게 그런 이야기를 했지만, 황제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실기 시험은 전용 검을 사용해 마수를 사냥하는 방식으로 치러진다.

전용 검에는 마법이 걸려 있기 때문에 검을 바꿔치기 할 수도, 조작을 할 수도 없다.

오로지 본인의 능력에 달렸을 뿐. 그러니 필기 때처럼 채점관을 매수하는 일도 불가능했다.

‘그렇지만, 만약을 위해 시험 상황을 조용히 감시하는 게 좋겠지.’

황제는 그렇게 판단했고, 마침 이런 상황에서 이용하기에 적당한 방법이 있었다.

황제의 호위 마법사인 미첼이 가진 고유 마법은 ‘초록새’를 패밀리어로 삼아, 새와 시각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미첼의 고유 마법을 아는 자는 그의 주인인 황제뿐이었기에, 다른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시험장을 감시하는 것도 가능했다.

단점이 있다면, 마력 소모가 심해 오래 사용할 수 없다는 것.

하지만 실기 시험을 치르는 동안이라면 무리해서라도 충분히 가능한 수준이었다.

그리하여 시작된 최종 시험.

여러 마리의 초록새가 플로네 산을 향해 날아올랐다.

황제는 시험이 치러지는 동안, 그의 호위 마법사에게서 시험장의 상황을 계속 보고받았다.

“하필 목에 초록색 손수건을 두른 수험자가 있어서, 한 마리가 계속 그자를 쫓아다니는군요.”

“초록색이 승리를 상징하는 색깔이라서 두르고 왔나 보군. 어쩔 수 없지.”

황제가 고개를 끄덕이며 호위 마법사의 보고를 경청했다.

산 전체를 전부 조망할 수는 없었지만, 당장 수상한 움직임이 보이는 것 같지는 않다고 했다.

역시 일을 크게 벌이지 않고 조용히 지켜본 게 옳은 판단이었군.

황제가 그렇게 생각했을 때였다.

“폐하, 방금 발견한 것인데 시험장에서 지금-!”

호위 마법사에게서 다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어린아이가 상처를 입은 채로, 마수들을 불러들이는 미끼가 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감히 제국의 기사를 선발하는 장소에서 이런 일을 벌이다니!”

황제는 진노했다.

‘이번 건은 제대로 조사를 해서 처벌을 내려야겠군!’

그렇게 결정하고는, 미끼가 된 아이를 구할 수 있도록 절벽으로 사람을 보냈다.

늦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그리고 조금 뒤, 초록색 손수건을 두른 수험자가 다른 사람에게 유인당해 그 장소로 가게 되었다는 사실도 보고받게 되었다.

‘필기 때 조작을 당할 뻔했다는 그자인가 보군.’

가해자들이 그를 위험에 빠트리려는 것 같았으나, 피해자의 실력이 강해 생각처럼 되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그 수험자는 안전하다는 건가?”

“예, 폐하. 그래도 수험자에게 피해가 생기지는 않을- 어?”

“미첼 경, 왜 그러는가?”

그리고 황제는 호위 마법사가 전해 준 이야기를 듣고 놀라움과 감탄을 표시할 수밖에 없었다.

초록색 손수건을 두른 수험자가, 자진해서 마수들이 몰린 곳으로 뛰어들었다고 했다.

칼의 색깔이 변한 걸 보아 이미 합격 기준을 넘었고, 저 일을 해결하려면 본부로 돌아오기까지 시간이 없을 텐데도.

오직, 어린아이를 구하기 위해서.

***

시험 종료로부터 약 25분이 지났을 무렵, 듀이가 돌아왔다.

시험장에서 대체 무슨 일을 겪었는지 모르겠지만, 듀이가 들고 있는 전용 검의 색이 아예 검은색으로 변해 있었다.

이번 시험에서 가장 좋은 성적을 냈다는 메이슨 영식과도 비교할 수 없는 짙은 색깔이었다.

“세상에, 도신이 아예 검은색이 된 건 처음 봤어요.”

“대단하군요. 대체 얼마나 많은 마수들을 잡은 걸까요?”

“하지만 이미 시험 시간이 끝났으니 탈락이에요.”

“그런데 저 후보생이 안고 있는 어린아이는 대체 누구죠?”

플로네 산 입구에 모인 사람들이 뒤늦게 나타난 듀이에 관해 웅성대기 시작했다.

“조이!”

“누나!”

그리고, 듀이가 안고 있던 소년의 누나가 인파를 뚫고 달려 나왔다.

울면서 동생을 찾아다녔는지 소녀의 얼굴은 온통 눈물범벅이었다.

“자, 이제 누나한테 가야지.”

듀이가 소년을 내려 주었다.

“기사님, 구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저도 커서 기사님처럼 멋진 기사님이 될게요! 그래서 절 끌고 갔던 나쁜 사람들을 무찌를 거예요!”

아이에게는 고개를 끄덕여 주었지만, 듀이는 마음이 복잡했다.

이곳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주목하고 있었다.

그중에는 평민인 듀이를 무시하는 귀족들도 있었는데, 희희낙락하는 표정으로 ‘탈락’ 운운하는 그들의 말을 듀이도 들은 터였다.

그리고 이미 먼 곳에서부터 황가의 천막 뒤에 세워진 시계를 듀이도 본 다음이었다.

이제 막 시험 종료 시간이 된 자신의 보급품 시계와는 30분이나 차이가 났다.

‘이런 간단한 함정을 간파하지 못하다니…….’

스승님과 네리아 님을 볼 낯이 없었다. 이대로 네리아 님의 수치가 될 생각을 하니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 것만 같았다.

그런데 그때였다.

어디선가 박수를 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시선이 어딘가로 향했다. 상석에 앉아 있던 황제가 자리에서 일어나, 듀이를 향해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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