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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은 셀프입니다 (82)화 (82/172)



<82>

메이슨은 듀이가 경계심을 드러내는 모습을 보며 능청스럽게 어깨를 으쓱였다.

“내가 너를 공격한 것도 아니고, 단순하게 이야기만 하자는 건데 왜 그런 반응이지?”

“…….”

“할 말이 있다. 따라와라, 평민.”

“싫습니다. 제가 왜요?”

“네 검을 보니 너도 합격인 것 같고. 이제 같은 가문의 기사가 될 예정이니 미리 친목을 다져 보는 것도 좋지 않겠어?”

“필요 없습니다. 어차피 내기로 아가씨 한 분은 수도를 떠나기로 하셨지 않습니까?”

“…친절하게 대해 주니까, 주제도 모르고 따박따박 말대꾸나 해 대는군. 이래서 평민은 안 돼.”

“이만 가 보겠습니다.”

따라오라고?

가서 무슨 짓을 당할 줄 알고? 누가 봐도 함정 같은 발언에, 듀이가 자리를 벗어나고자 했다.

만약, 메이슨이 먼저 공격한다면 곧바로 반격할 수 있도록 경계심을 풀지 않은 채였다.

“메이슨 영식! 주변에 감독관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왔습니다.”

“끌고 가서 바로 처리하면 될 것 같은데요?”

그때였다. 어디선가 메이슨의 패거리로 보이는 남자 두 명이 나타나 듀이의 길을 막아섰다.

‘끌고 가서 처리한다고?’

어떤 의도인지 알 것 같았다.

같은 시험에 응시하는 수험자들을 매수해, 시험장 안에서 듀이를 처리하려는 수작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들이 서 있는 산 중턱은 언제 다른 사람이 지나갈지 모르는 위치였다.

그러니 그들은, 감독관이나 다른 수험자의 눈에 띄지 않는 장소로 듀이를 데려가려는 것이었다.

적들은 세 명. 숫자로는 혼자인 듀이에게 불리했지만, 순순히 당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따라가지 않겠습니다.”

듀이가 그들에게 검을 겨눴다. 메이슨 패거리는 그 모습을 보며 같잖다는 듯이 웃음을 터트렸다.

“네놈 혼자서 세 명을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공격해!”

메이슨이 지시하자, 남자 두 명이 듀이에게 동시에 달려들었다.

하지만 듀이는 손쉽게 그들의 공격을 막아 냈다.

다들 전용 검의 색깔이 붉게 변해 있었기에 실력자인 줄 알았는데, 그의 상대가 될 정도는 아니었다.

덕분에 당혹스러움을 느낀 쪽은 메이슨 패거리가 되었다.

“둘 다 뭘 꾸물대는 거야? 이러다가 목격자가 생기겠어!”

“메이슨 영식. 이놈, 비리비리하게 생겨서는 생각보다 강한데요?”

“한심한 놈들!”

결국,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메이슨까지 난투에 참전했다.

칼이 날아들었다. 하지만 듀이는 몸을 돌려 피하며 날렵하게 상대방의 허점을 공격했다.

그 직후 메이슨이 뒤에서 습격했지만, 듀이는 가볍게 공격을 흘려 내고 그를 발로 걷어찼다.

그에 메이슨이 바닥으로 처박히며 신음성을 흘렸다.

“윽-!”

별것도 아니었잖아?

듀이가 쓰러진 메이슨을 노려보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메이슨의 입가에 비웃음이 걸렸다.

“이 건방진 평민 놈. 그런데 너, 잃어버린 물건이 있지 않아?”

잃어버린 물건이라니. 알 수 없는 말이었다. 듀이가 눈을 찌푸렸다.

“네 아가씨가 준 손수건 말이다.”

“그건……!”

메이슨의 손에서 네리아가 만든 손수건이 흔들렸다.

대체 언제? 그 모습을 발견한 듀이의 눈에 분노가 치밀었다.

이 비겁한 놈 같으니라고!

저택의 티 파티에서는, 메이슨 영식처럼 귀족 출신에 예법도 훌륭한 사람이 네리아의 기사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저런 비열한 좀도둑 같은 짓이나 하고 있다니!

저런 사람을 잠시라도 부러워했던 지난 과거가 후회스럽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돌려받고 싶으면 따라와라!”

메이슨은 약이라도 올리듯 큭큭거리며 듀이의 손수건을 가지고 어디론가 달아났다.

‘저따위 더러운 쓰레기가 네리아 님의 선물을 감히!’

듀이의 가장 소중한 보물이었다.

듀이가 항상 행복하기를 바라며 만든 거라고 했다.

자신을 유인하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하지만 굳이 참아야 할 필요가 있을까?

듀이는 그들과 검을 맞대면서 알 수 있었다. 세 명을 동시에 상대해도 자신이 무조건 이긴다고.

‘분명, 목격자가 없는 곳으로 갈 거라고 했지?’

그래, 어디 두고 보자. 목격자가 없어서 곤란해지는 쪽은 너희가 될 테니까.

다만, 그들이 유인하는 장소에 다른 함정이 있을 가능성도 있었다.

‘따라갔더니 더 많은 사람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든가…….’

만약 그렇게 된다면… 어쩌면 손수건을 포기해야 할지도 몰랐다.

목숨만큼 소중하지만, 이번 시험을 망치는 일은 없어야 하니까.

하지만 그 대가만큼은 언제고 반드시 치르도록 해 주겠다고 결심했다.

듀이가 싸늘해진 표정으로 검을 쥔 채, 그들의 뒤를 따라갔다.

***

듀이가 도착한 곳은 플로네 산에서도 외진 낭떠러지 근처였다.

하지만 방금 본 세 명 외에 다른 사람은 없었고, 함정도 눈에 띄지 않았다.

그런데 왜일까. 듀이는 메이슨이 등지고 있는 낭떠러지를 바라보며 불안한 기운을 느꼈다.

단순히 저 셋 외의 무언가가 그 뒤에 넘실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절벽 앞에 선 메이슨은 듀이에게 보란 듯이 네리아의 손수건을 팔랑거리고 있었다.

“잘 따라왔네? 네 아가씨의 손수건이 소중하기는 했나 보군.”

“내놔.”

“평민 주제에 이제는 말버릇도-”

“처맞기 싫으면 내놔.”

“…….”

“네 말대로 여긴 목격자가 없어. 평민한테 얻어맞고 싶은 게 아니라면 당장 내놓는 게 좋을 거야.”

“…건방진 놈 같으니라고.”

메이슨이 헛웃음을 흘리고는, 들고 있던 손수건을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트렸다.

그 모습을 본 듀이의 얼굴이 사납게 일그러졌다.

“이 자식이-!”

“왜? 내려가서 가져오면 돼. 보기보다 높은 절벽이 아니거든. 낙법으로도 충분해.”

메이슨이 그렇게 말하고는 건들건들한 자세로 걸어왔다.

가만 안 둬. 듀이는 그들에게 검을 겨눴다.

하지만 메이슨과 그 패거리는 양손을 들어 올린 채로 빙 둘러 듀이를 피하며 이죽거렸다.

“싸울 생각은 없어. 셋이서 덤벼도 너한테는 질 것 같거든.”

“그럼 왜!”

함정은 없고, 싸울 생각도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대체 여기는 뭐 하러 온 거야? 목적은 무엇이고?

“사실은 네놈을 낭떠러지에서 밀어 버릴 생각이었는데 말이지.”

“밀어 버린다고?”

“그런데 무력으로는 이길 자신이 없어서 포기했지.”

듀이에게서 충분히 멀어진 메이슨이 비열한 웃음을 지었다.

“손수건이 떨어진 곳을 살펴보는 게 좋을 거야. 네놈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으니 말이야.”

의미심장한 이야기였다. 메이슨 무리는 그 말을 남긴 채, 유쾌하게 웃으며 자리를 벗어났다.

‘뻔뻔한 사람들 같으니라고.’

그들이 떠나는 모습을 보며 듀이는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경계심을 부추기는 것은 귀족이라고 부르기도 아까운 저들이 아니었다.

듀이가 바짝 경계한 채로 천천히 절벽 근처로 다가갔다.

“손수건이 떨어진 곳을 살펴보라고 했지……!”

절벽 아래를 내려다본 순간, 듀이는 아까부터 느껴지던 불안감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낭떠러지 아래, 셀 수도 없을 정도의 마수들이 들끓고 있었다.

“…이거였구나.”

그제야 레고트 가주가 꾸민 흉계를 알아챌 수 있게 되었다.

메이슨의 말대로, 그들은 마수들이 바글거리는 곳으로 듀이를 떠밀어 버릴 생각이었다.

시험장에서 그가 죽어 버리도록.

어차피 매해 마수에게 당해 사망자가 나오는 시험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실행을 맡은 자들은 듀이보다 약했다. 그러니 그에게 물리적으로 해를 끼칠 수가 없었다.

그러면 왜?

밀어 버리지도 못할 거면, 굳이 여기까지 유인할 필요가 있었나?

듀이가 그렇게 생각하다가, 문득 어떠한 위화감을 느끼고는 눈을 가늘게 떴다.

마수는 몰려다니지 않는다.

아무리 듀이를 위험에 빠트리기 위해서라고 해도, 저렇게 마수를 모을 수는 없는 법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듀이가 재빠르게 주변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발견한 것은-

“…맙소사!”

마수들이 몰려 있는 곳 근처의 바위 위에서, 어린아이가 공포에 질린 채로 울고 있었다.

마수들이 아이에게 당장이라도 달려들려고 했지만, 바위가 높아 닿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아이는 몸에 상처를 입은 채 피를 흘리고 있었다.

듀이는 시험이 시작하기 전, 네리아가 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마수는 피 냄새를 맡으면 몰려든다고 하잖아? 게다가 어린 사람의 피일수록 더 달려든다고…….’

듀이 하나를 죽이기 위해, 어린아이에게 상처를 입혀 일부러 저런 장소에 유기한 것이다.

마수들을 유인할 수 있도록.

그리고 한 가지 더.

시험이 시작되기 전, 대기실에서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들어올 때 봤어? 구경하러 온 사람이 엄청 많아. 그런데 어떤 꼬마는 동생이 없어졌다면서 울고 있더라.’

저 아이는 아마도 납치를 당한 게 아니었을까?

레고트 가주를 비롯한 그들의 악랄한 행태에 소름이 끼쳤다.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죄 없는 평민의 목숨 정도는 이용할 수 있다는 거야?

“쓰레기보다 못한 놈들이야.”

메이슨은 듀이를 밀어 버릴 수 없었으니, 대신 그에게 이 장면을 보여 준 것이다.

어디 한번 아이를 구해 보라고.

“…….”

듀이는 갈등했다.

이제 어떻게 하면 좋을까.

시험 직전, 네리아는 듀이에게 말했었다. 절대 무리하지 말고, 위험한 일도 하지 말라고.

이성적으로 판단하자면 이대로 돌아가는 것이 맞았다.

듀이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기사 시험에 합격하는 것이었으니까.

지나가는 길에 만난 감독관에게 상황을 전달한다든가, 본부로 돌아가 사람을 불러올 수도 있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을까?’

아이는 공포에 떨고 있었다.

자칫 바위에서 떨어진다거나, 피를 많이 흘려 듀이가 떠난 사이에 이대로 죽어 버릴 수도 있었다.

‘정말 괜찮겠어?’

재판소에서 돌아오던 날, 듀이는 네라아에게 약속했다.

좋은 기사가 되겠다고.

그런데, 다친 아이를 못 본 척하고 떠나는 게 과연 좋은 기사가 되는 길일까?

이대로 돌아가면, 네리아 님의 얼굴을 떳떳하게 볼 수 있을까?

‘…나는 그럴 수 없어.’

듀이가 결정을 내렸다. 해결책은 간단했다.

그렇다면 아이를 구하고, 시험에도 합격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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