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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은 셀프입니다 (74)화 (74/172)



<74>

“저는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었으니 먼저 실례하겠어요.”

나는 티 파티가 끝나기도 전에 미련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할 말도 다 한 데다 굳이 나를 붙잡는 사람도 없었기에, 나는 곧장 듀이를 찾기 위해 발을 옮겼다.

분명 우울해하고 있을 테니까.

하지만 훈련장에서도 기사들의 숙소에서도, 내가 찾는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듀이는 어디로 갔지?’

길을 지나가는 고용인들에게 듀이의 행방을 물어물어 도착하게 된 곳은 저택의 후원 수풀 근처였다.

그곳에서 듀이는, 나무 옆의 흙바닥에 주저앉아 무릎을 끌어안고서 울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듀이! 여기 있었네.”

“네리아 님?”

나는 일부러 밝은 표정을 짓고는 듀이에게로 다가갔다.

마침 일어나려던 그는 앉은 것도 일어선 것도 아닌 어정쩡한 자세 그대로 몸이 굳어 버리고 말았다.

왠지 동상 같군.

나는 그런 듀이의 옆으로 다가가서는 바닥에 풀썩 주저앉았다.

“네리아 님? 이런 데 앉으시면 안 돼요. 드레스가 더러워질 거예요!”

“드레스? 그럼 하나 새로 사지 뭐. 나, 돈 많이 벌었거든.”

우스갯소리를 내뱉으며, 듀이에게 다시 앉으려는 의미로 내 옆자리를 툭툭 두드렸다.

그러자 듀이가 어쩔 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내 지시를 거스를 수는 없었는지 다시 바닥으로 스르륵 착석했다.

“…….”

“이렇게 있으니까 옛날 생각 난다. 아니, 옛날까지는 아닌가? 우리 여기서 빵 나눠 먹었잖아. 기억나?”

“…네. 저도 기억나요.”

“그때만 해도 듀이랑 이렇게 가까운 관계가 될 줄은 몰랐었는데. 신기하지 않아?”

“…….”

듀이는 어두운 표정을 짓기만 할 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짧은 침묵 속에서 한 줄기 바람이 두 사람을 스쳐 지나갔다.

나는 흩날리는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듀이, 미안해.”

“네리아 님? 왜 네리아 님이 미안하다고 말씀하시는 건가요?”

“미안하니까 미안하다고 했지.”

“아, 아뇨! 오히려 제가……!”

“내가 잘못한 게 맞아. 미리 신경 썼어야 했는데, 설마 라일라가 그런 짓을 할 줄은 몰랐지.”

“…….”

“듀이, 앞으로 또 그런 일이 생기잖아? 그러면 뒷일은 생각하지 말고 마음대로 엎어 버려.”

“…….”

“내가 책임질 테니까. 알겠지?”

“…네리아 님. 갑작스럽지만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어요…….”

“응, 뭔데?”

“저… 네리아 님의 기사가 되지 않으려고요. 다른 좋은 분을 기사로 삼으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왜?”

“저, 저는 평민 출신이라서 다른 귀족 출신 기사 분들에 비교하면 볼품도 없는 데다, 포크를 사용하는 방법도 모르고…….”

“평민 출신이고, 포크를 사용하는 방법을 몰라서? 그게 다야?”

“…도둑이라는 과거도 있잖아요. 저는 분명, 네리아 님의 수치가 되기만 할 거예요.”

“아까 티 파티에서 있었던 일 때문에 그래? 듀이한테는 나보다 그 인간들의 말이 더 와 닿았다는 거야? 약간 섭섭한데?”

“아뇨-! 그런 게 아니라!”

듀이는 허둥지둥하며 내 말을 부인했지만, 다시 곧 침울해진 얼굴이 되었다.

“오늘 일은 계기였을 뿐이에요. 사실은 예전부터 고민했던 문제였거든요. 저는 네리아 님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요.”

“그럼 나한테 어울리는 사람은 누군데?”

“아까 봤던 메이슨 님처럼 귀족 출신에 예법도 훌륭하고…….”

“왜 그런 걸 신경 써? 시험에 합격하면 듀이도 준귀족이 돼. 그리고 귀족 같은 몸가짐을 배우고 싶다면 내가 가르쳐 주면 되지.”

“…하지만 전, 평민 태생이라서 그런 건 배워도 소용이 없어요.”

“응? 배워도 소용이 없다니, 세상에 그런 게 어딨어?”

“하지만 네리아 님은 예법 같은 걸 배우지 않아도 잘하셨잖아요. 그건 네리아 님이 귀족 출신이셔서 타고난 게 아닌가요?”

“…응?”

당연하다는 듯이 묻는 듀이를 보며 잠깐 뭐라고 대답하면 좋을지 몰라서 입을 다물었다.

예법을 타고나다니. 어린이도 하지 않을 법한 착각이었다.

그렇지만 유감스럽게도 듀이의 착각에는 타당한 근거가 있었다.

실제로 8년을 하녀로 지냈을 내가 하루아침에 완벽한 귀족의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았던가.

오히려 듀이는 그 과정을 바로 옆에서 지켜봤기에,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어쩔 수가 없었다.

“…그건 오해야. 내가 예법을 습득하려고 몇 년을 고생했는지 알면 그런 말은 못 할걸?”

“네? 하지만 네리아 님은…….”

“듀이, 이건 진짜 비밀인데.”

나는 주변에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듀이의 귓가에 작은 목소리로 장난처럼 말해 주었다.

“사실 나는, 이곳에서 태어난 게 아니라 평행세계에서 왔어.”

“네? 평행세계가 뭐예요?”

“그건 말야…….”

속닥속닥. 이야기가 이어졌다.

평행세계의 나에게는 부모님이 살아 계셨고, 아무런 어려움 없이 귀족으로서의 교육을 받아 왔다고.

그래서 예법을 잘 알고, 빈틈없는 귀족의 모습을 보일 수 있었다고.

어째서였는지는 모르겠다.

그 사실은 나라는 존재에 대한 중요한 비밀인데도, 듀이에게는 말해 줘도 상관없다는 기분이 들었다.

어차피 들어 봤자 믿을 수도 없는 거짓말 같은 이야기였으니까.

다만, 핑계나 선의의 거짓말이라고 생각해도 좋으니, 듀이가 내 위로에 조금이라도 자신감을 되찾길 바랄 뿐이었다.

“아, 알겠어요. 그러면 네리아 님은 다른 평행세계에서 오신 네리아 님이라는 말씀이신 거군요.”

그러나 이 순진무구하기 짝이 없는 듀이는, 내 말을 이해했다는 듯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듀이는 그걸 믿어? 내가 평행세계에서 왔다는 걸?”

“네. 네리아 님께서 그렇게 말씀해 주셨잖아요.”

“…믿는다고 치면, 기분이 나쁘지도 않아? 나는 네가 알고 있던 네리아가 아니라는 말이잖아?”

“하지만 네리아 님은 네리아 님이 맞으시잖아요?”

“응? 뭐, 그렇긴 한데…….”

이렇게 현실성이 없는 일을 너무 쉽게 받아들이는 듀이를 보며 당황스러워진 것은 되레 내 쪽이었다.

“많이 힘드셨겠어요. 분명, 적응하기 힘드셨을 테니까요. 제가 도움이 될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심지어 위로까지 받고 말았다.

처음에는 듀이를 응원하고 격려할 생각이었는데, 어쩌다가 대화의 흐름이 이렇게 되어 버린 거지?

“…….”

“네리아 님?”

왜였을까? 걱정과 자책이 담긴 듀이의 눈동자를 마주하며, 갑자기 웃음이 터져 버리고 말았다.

아, 그러고 보니 그 당시의 나는 이런 위로를 받고 싶어서 약혼자를 찾아갔었지.

그때는 약혼자에게 쫓겨나 버렸지만, 시간이 지나 결국은 내가 겪은 일을 위로받고 공감받게 되었다.

이곳에서 처음 사귄 인연이자, 내가 하는 말이라면 뭐든지 한결같이 믿어 주는 내 기사님으로부터.

둥실둥실.

구름 위에 떠 있는 기분이 들었다. 마음속에 아주 작게 남았던 상처까지 전부 사라진 것 같았다.

“듀이.”

나는 이 순진무구한 소년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환하게 웃었다.

“네 존재가 나에게 얼마나 많은 힘이 되는지 알았다면, 네가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 같은 건 절대 하지 못했을 거야.”

“네, 네리아 님?”

어째서인지, 듀이가 얼굴을 붉게 물들이며 눈을 피했다.

“그, 그, 그러고 보니! 네리아 님은 평행세계에 계신 가족분들이 보고 싶지 않으신가요?”

“응.”

나는 다시 고개를 돌리고는, 미소 짓는 얼굴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많이 보고 싶지. 지금도 가족들이 꿈에 나오는걸.”

“…….”

듀이가 내 옆모습을 보고 있는 시선이 느껴졌다. 또 한 번 바람이 불어와 머리카락을 흩날렸다.

“어쨌거나 듀이, 내 비밀을 알게 되었으니, 앞으로는 내뺄 생각 하지 말고 내 기사가 되도록 해.”

“네, 네에? 그, 그건!”

“음, 그리고 이건 부담이 될까 봐 비밀로 하려고 했는데, 이렇게 된 거, 그냥 전부 말할래.”

“네?”

“아까, 티 파티에서 라일라랑 내기를 했어. 네가 이번 해에 정식 기사가 되느냐 아니냐를 두고 말이야. 듀이가 기사가 되지 못하면 내가 수도를 떠나기로 했어.”

“네, 네, 네, 네리아 님?”

“사실 듀이에게 내 기사가 되지 않는다는 선택지는 처음부터 없었던 거야. 나, 제멋대로지?”

울상이 되어 버린 듀이를 보며 유쾌하게 하하 웃었다.

“그, 그러면 제가 네리아 님의 기사 자리를 포기하고 말고가 문제가 아니라……! 제가 시험에 불합격하면 네리아 님은 어떡하죠?”

“뭐, 그러면 너랑 같이 할머니 저택으로 가서 살면 되지. 그런데 그런 일은 결단코 없을 거야.”

눈이 마주쳤다.

나는 듀이의 노력을 봐 왔고, 그의 실력을 잘 알고 있다.

그랬기에 신뢰와 확신을 담은 목소리로 그에게 말해줄 수 있었다.

“듀이는 기사가 될 거니까.”

“…네리아 님은 저를 믿어 주셨기 때문에 그런 내기를 하신 거죠?”

“응, 예전에 말했잖아. 나는 너를 믿지 않은 적이 없었다고.”

“…….”

드디어 결심을 내린 걸까.

흔들리고 있던 듀이의 눈동자가 어느 순간 진정을 되찾았다.

“저, 꼭 기사가 될게요. 앞으로는 약한 소리 하지 않을게요. 네리아 님의 믿음에 반드시 보답할게요.”

“응.”

나는 웃으며 이야기를 덧붙였다.

“뭐… 방해 공작이 있을 텐데, 그건 걱정하지 마. 내가 알아서 해결할 거니까 듀이는 신경 쓰지 말고 할 일만 하면 돼. 알겠지?”

“네, 네리아 님.”

잔물결처럼 흔들리던 소년의 눈동자가 점점 확신으로 단단해져 갔다.

나를 향한 무한한 신뢰를 품은 금빛 눈동자가 오후의 햇살처럼 나를 향해 빛났다.

***

방해 공작이 있을 거다.

듀이에게 그렇게 말하기는 했지만, 백부네의 수작질은 생각보다 일찍 실행되었다.

“자, 네리아. 받거라.”

“이게 뭔가요?”

“읽어 보면 알게 될 거다.”

저택의 가주 집무실에서, 레고트 백부는 나와 듀이를 동시에 불러 놓고는 서류 한 장을 내밀었다.

“재판 통지서?”

“그래. 네 옆에 있는 평민 아이의 절도 행위를 고발하기 위함이지. 평민의 범죄에는 시효가 없다는 것 정도는 너도 알고 있겠지?”

그렇게 말하는 백부의 입꼬리가 야비하게 올라가 있었다.

“네, 알고 있어요. 하지만 듀이의 절도 행위에 관한 건 예전에 계약서를 돌려받는 걸로 끝난 이야기가 아닌가요? 왜 지금 와서 지난 일을 끌고 나오는 건가요?”

“물론 그랬었지. 하지만 잘 생각해 보니 저런 범죄자가 기사가 되면 안 되겠다는 판단이 들더구나.”

“그때 귀족이 내리는 결정의 무게는 가볍지 않다고 하셨으면서, 말이 참 쉽게 바뀌시네요.”

“이게 다 제국을 위한 일이다!”

내 빈정거림에 레고트 백부가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이제 계약서도 없는데 몇 년 전의 일을 어떻게 증명하시려고요?”

“증인이 남아 있지 않으냐? 어쨌거나 재판은 1주일 뒤이니, 그렇게 알고 나가 보아라!”

백부의 축객령에 듀이와 나는 거의 쫓기다시피 집무실을 나서게 되었다. 웃기는 인간 같으니라고.

듀이는 복도를 걸으면서도 불안함에 몸을 떨고 있었다.

“네리아 님, 어쩌지요……?”

“듀이, 내가 말했었지? 방해 공작이 있어도 내가 해결한다고.”

백부가 이렇게 나올 줄은 어차피 예상한 바였다.

솔직히 말해서, 라일라와의 내기만 아니었어도 백부가 이렇게까지 번거로운 일을 벌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기에.

“오히려 기다리고 있었어.”

나는 듀이를 바라보며 여유로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번 재판이 끝나면, 그들도 더는 듀이를 도둑이라고 폄하하지 못하게 될 거다.

‘그것’이 있는 이상, 재판에서 지는 사람은 백부가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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