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
“전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혹시, 제 부모님의 죽음과 관련되어 있나요?”
“네. 맞습니다.”
“제 부모님의 죽음은 단순한 마차 사고가 아니었지요?”
“네. 사고로 위장되었을 뿐, 사실은 누군가에 의해 교묘하게 계획되어 있던 타살이었지요.”
“그 ‘누군가’는 레고트 발렌티스와 황제 폐하의 디르케인가요?”
“네. 그렇습니다. 디르케의 약점을 찾기 위해 그녀의 행적을 조사하던 중에 알아낸 것이었습니다.”
모든 대답이 긍정이었다.
나는 레오니트의 대답을 듣고는 담담하게 시선을 내리깔았다.
지금 와서 새삼스럽게 놀랄 것은 없었다. 어차피 예상했던 내용이고, 그에게는 확인을 받은 것뿐이니까.
“…그런데 왜 황녀궁에서는 먼저 말씀해 주지 않으셨나요? 알려 주셨다면, 손을 잡자는 전하의 제안을 그 자리에서 바로 수락할 수도 있었을 텐데요.”
“증거가 없습니다.”
레오니트가 나에게 양해를 구하는 듯한 시선을 보냈기에 나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죽은 로즈 백작 부인의 심장에는 칼에 찔린 상처가 있었다고 합니다. 명백한 타살의 흔적이지요.”
어머니가 칼에 심장을 찔려?
고통스럽게 죽어 갔을 어머니를 생각하며 잠시 입술을 깨물었다.
“하지만 마차 사고를 기록한 조사서는 전부 조작되어 있었고, 자세히 알아보니 관련자들은 수상쩍은 이유로 사망한 상태였습니다.”
“모두가 입막음을 위해 살해당한 거군요.”
“맞습니다. 디르케의 수하들에 의해서 말이지요. 저에게 처음 이 사실을 고발했던 자도 며칠 뒤에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저택에 도둑이 들었다는데, 실상이야 아마도.”
“마찬가지로 죽음으로써 입막음을 당한 거겠군요.”
“예. 그래서 레이디께 말씀드릴 수 없었던 겁니다. 증거도 없이 이런 말을 해 봐야 디르케와 발렌티스 백작을 모함하는 것밖에 되지 않으니까요.”
나는 레오니트의 말에 수긍했다.
맞는 말이었다.
만약 내가 할머니를 만난 일로 부모님의 죽음에 관한 실마리를 잡지 못한 상태였다면?
그가 나에게 협력을 구하기 위해 이야기를 꾸며 내거나 거짓말을 했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제가 지켜봐 온 레이디 발렌티스라면, 언젠가는 부모님의 죽음에 관한 의문점을 알아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빠를 줄은 저도 몰랐지만요.”
레오니트의 눈빛에 이채가 서려 있었다. 어째서 그가 나를 지켜봐 왔는지는 나도 알 것 같았다.
란타나와 가까운 부하인 레고트 가주를 제거하려는 목적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란타나를 적대해야 할 명확한 동기가 있다.
‘처음부터 협력할 상대로 적격이라고 생각했겠지.’
실제로도 나는 레오니트의 제안을 반쯤은 수락할 결심을 내리고 그를 찾은 것이다.
애초에 손을 잡지도 않은 건데, 루체테가 레오니트의 소유라는 사실을 내가 알고 있다는 걸 밝혀 봐야 경계만 받을 테니까.
이 세계에 왔던 첫날.
머릿속에 울리던 네리아의 목소리를 지금도 잊을 수 없었다.
‘내가 왜 이런 일을 겪어야 해?’
‘나는 이렇게 태어난 내가 싫어. 차라리 누가 날 대신해 줘!’
죽은 네리아는 나였다. 어쩌면 나 자신의 미래가 될 수도 있었던, 나의 또 다른 모습이었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라면, 네리아를 외면했던 사람과 손을 잡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들은 다르다.
내 부모님을 살해하고 네리아를 벼랑 끝으로 몰아넣은 자들을 두고만 볼 수는 없었다.
그리고, 예전 세계에서 란타나를 언제 어디서 봤던 걸까?
그 의문점을 아직 해결하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내 부모님을 죽이는 데 동조한 그녀가 나와 같은 편이 될 수는 없었다.
나는 확고한 결심을 눈에 담아 레오니트를 돌아보았다.
“전하, 그때 저에게 하셨던 제안을 받아들이겠습니다. 전하께 협력하겠어요.”
“저 역시 레이디 발렌티스가 목적을 이루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돕겠습니다.”
동맹을 의미하는 악수가 오갔다.
‘그렇다면…….’
레오니트와 협력 관계가 되었으니 이참에 그에게 궁금했던 것들을 물어보기로 했다.
“그런데 전하께서는 왜 지금까지 정치에 전면적으로 나서지 않으셨던 건가요? 숨어서 행동해야 할 이유라도 있으신 건가요?”
“제가 디르케에게 약점을 잡혀 있습니다.”
“네……?”
“그래서 공개적으로 디르케를 공격할 수가 없습니다.”
“…….”
심각한 이야기를 너무 무덤덤하게 말하기에, 뭐라고 대답할 말이 없어 잠시 입을 다물었다.
약점이라고? 레오니트가?
그렇다면 란타나의 부하인 코튼 자작을 쳐 내면서도 공로를 다른 자에게 넘긴 이유가 납득이 간다.
그가 란타나와 대립하고 있는 이유 또한.
대체 무슨 약점이 잡혔길래?
레오니트는 내 의문을 눈치챈 것인지, 장난스러운 말투로 이야기를 덧붙였다.
“약점이 무엇인지는 말해 드릴 수 없지만요. 대신 다른 궁금한 것이 있다면 알려 드리겠습니다.”
“그러시다면… 루체테 잡화점은 무얼 하는 곳인가요?”
“제가 황태제가 되기 전에, 사적으로 알고 있던 측근들을 데려와 만든 조직입니다. 정보상을 겸하고 있기도 하지요.”
역시, 추측했던 그대로였다.
이곳의 칼리가 동생을 이미 찾은 것도, 각종 정보를 다루거나 수집하는 도중에 발견하게 된 건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레이디께서 저희 정보상에 필요한 도움이 있다면 편히 말씀해 주십시오. 같은 편이 되었으니, 뭐든 협조하겠습니다.”
“도움이요?”
뭔가를 부탁할 생각으로 물어본 건 아니었는데, 레오니트 쪽에서 먼저 고마운 제안을 해 주었다.
확실히, 나에게도 큰 도움이 되겠지. 나는 무심결에 왼손을 가슴께로 가져갔다.
그러자 드레스 천 너머로, 대부인에게서 돌려받은 어머니의 목걸이가 만져졌다.
‘요정왕의 심장’이라는 이름을 가진 물건이었다. 문득, 머릿속으로 어떤 마법사의 얼굴이 떠올랐다.
“…전하, 정보상에서 사람을 찾는 의뢰도 받으시나요?”
“예. 물론입니다. 찾으시는 사람이라도 있으십니까?”
“‘세사르’라는 이름을 가진 마법사를 찾고 싶어요.”
***
저택으로 귀가한 뒤.
나는 테이블에 앉아, 목에 걸고 있던 목걸이를 빼내어 들었다.
눈앞에서 푸른색 펜던트가 양옆으로 흔들렸다.
‘요정왕의 심장’은 모계 쪽 조상에게서 대대로 물려받아 왔다는 어머니의 중요한 보물이었다.
여기에는 한 가지 효능이 있는데, 바로 소유자의 마력을 늘려 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마력을 가진 마법사만이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이기에, 내가 실제로 활용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랬기에 나는 레오니트를 통해 세사르를 찾도록 부탁한 것이었다.
‘세사르는 이게 필요할 테니까.’
그는 마법약을 만드는 것에 천재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지, 마력이 강한 마법사는 아니었다.
그랬기에 본인에게 부족한 점을 극복하고 싶어서였을까?
그는 산골에 틀어박혀 자신의 마력량을 늘리는 방법을 몇 년이나 연구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예전 세계의 어머니가 사지석화증이라고 부르는 내 병을 고치기 위해 세사르에게 그것을 대가로 내걸었을 때.
그는 소유자의 마력을 늘려 주는 요정왕의 심장을 진심으로 간곡하게 원했기에, 밤낮을 가리지 않고 치료약 개발에 힘썼다고 했다.
‘예전 세계에서, 세사르 본인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였지.’
이 목걸이는 어차피 잃어버린 줄 알았던 물건이다. 게다가 어머니도 그에게 넘길 생각을 하셨고.
그렇다면 목걸이를 협상 도구로 사용하여 세사르를 내 측근으로 둘 수 있지도 않을까?
차라리 그쪽이 나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유용한 방법일지도.
마법사는 희귀하다. 더욱이 세사르의 실력은 의심할 것도 없다.
셜리의 병을 고친 약을 만든 주인공이 바로 그 아니었던가.
분명, 앞으로의 계획에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을 테고, 최소한 옆에 두어 손해를 볼 일은 없다.
‘뭐, 일단은 세사르를 찾게 되면 만나 보는 게 먼저겠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어머니의 목걸이를 다시 목에 걸었다.
***
라일라는 종종 그녀의 모친인 멜비나 백작 부인과 오후의 티타임을 함께했다.
평소대로라면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우아한 시간을 보냈겠지만, 오늘은 달랐다.
라일라는 그녀의 동갑내기 사촌 자매에 관해 생각하느라 차의 맛을 음미하지도 못할 정도였다.
‘이번에는 당연히 네리아를 쫓아낼 수 있다고 생각했더니!’
결혼은 라일라가 생각하지 못했던 좋은 방법이었다.
‘필립스 토르네 같은 쓰레기는 네리아에게 아주 잘 어울리는 상대이기도 했고.’
웬일로 레비가 가문에 도움이 되는 일을 했나 싶었다.
그런데 네리아가 할머니를 모셔 올 줄이야! 그녀를 편애하는 대부인에게 원망하는 마음마저 들었다.
어쨌거나 혼담은 없던 일이 되었고, 발렌티스 가문 쪽에서 일방적으로 파혼을 통보한 탓에 토르네 가문과도 불편한 관계가 되고 말았다.
당연하게도 필립스 토르네에게 받기로 했던 약품 사업의 수익금 절반도 또한 무산되었다.
‘그걸로 벨라오스의 손실금을 메꿀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마음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 분노가 치밀었다.
밟으려고 하는데 밟히지 않는다.
뭔가를 하려고 하면 뱀처럼 쏙쏙 빠져나가지를 않나.
라일라가 화를 삭이며 식어 빠진 홍차를 들이켰다. 그러고는 맞은편에 앉은 모친에게 말을 걸었다.
“어머니, 저번에 란타나 님이 네리아와 손을 잡는 일은 없을 거라고 하셨죠? 그 말씀, 정말이죠?”
“그럼, 정말이고말고.”
멜비나는 라일라의 질문에 고민조차 없이 대답했다.
그녀는 사랑스러운 딸을 달래며 생각했다. 그럴 리가 없지.
란타나는 그들과 손을 잡고 네리아의 부모를 없애는 데 적극적으로 협력했으니까.
심지어 카터와 로즈 부부를 없애고 가주가 되는 게 어떻겠냐고 그들에게 먼저 제안한 사람이 란타나 아니었던가.
멜비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네가 걱정할 건 전혀 없단다.”
“네, 믿을게요, 어머니.”
라일라는 모친의 확신이 담긴 목소리를 들으며 마음을 다독였다.
‘그래, 어차피 내가 란타나 님의 도움으로 황태제비만 될 수 있다면 네리아 따위는… 어?’
라일라가 그렇게 생각하며 무심코 창문 너머로 고개를 돌렸을 때였다.
“저 사람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