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구원은 셀프입니다 (64)화 (64/172)



<64>

첫인상을 말하자면, ‘아름답다’ 그것이 전부였다.

란타나에 관한 사람들의 묘사에는 과장도 거짓말도 없었다.

분홍색 눈동자는 봄꽃을 떠올리게 했으며, 가장 짙은 밤하늘을 떼어 온 것 같은 검은색 머리카락에서는 신비로움마저 느껴졌다.

화가가 완벽함을 그려 낸 듯이, 신이 밤을 새우며 피조물을 조각한 듯이, 란타나는 그렇게 아름다웠다.

마치 이 공간 속에서 그녀에게만 햇볕이 스며드는 것 같았다.

비현실적인 외모였다.

살면서 이렇게 예쁜 사람, 어머니를 제외하고는 처음 봤다.

어째서 벨라오스가 그렇게까지 유행할 수 있었을까? 그 질문에 관한 답이 눈앞에 있었다.

‘미인 수집’을 한다고 했던가?

황제의 총애가 사라졌을 때, 그녀 대신 황제에게 밀어 넣을 수 있는 미인을 구해 놓는다는 행동.

‘…왜 그런 쓸데없는 짓을 해?’

이 제국, 이 대륙을 전부를 뒤져 보아도 그녀만큼 아름다운 사람은 찾을 수 없을 텐데.

기묘한 기분이 들었다.

두근두근, 심장이 뛰고 있었다.

‘뭐야? 왜……?’

왼쪽 가슴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마치 무언가 생각이 날 것만 같은-

“황녀 전하를 뵙습니다. 다리스에 영광이 있기를! 제가 방해된 것은 아니지요?”

귓가에 스며든 란타나의 목소리에 상념에서 깨어났다.

꿈에서 깨어난 듯 정신을 차리니, 함께 있던 앨마 시녀장이 그녀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근처를 지나가던 길이셨다고요?”

“네, 그렇답니다.”

“서궁에 계신 분이 남쪽 정원 근처를 지날 일이 뭐가 있습니까? 일부러 찾아오신 것이 아닙니까?”

“들켰네요!”

앨마 부인의 면박에 란타나가 유쾌한 듯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렇지만 안 되나요? 우연이라도 가장하지 않으면 일개 정부인 저는 황녀님을 뵐 일이 없는걸요. 만나고 싶었거든요. 황녀님도.”

그녀가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눈이 마주쳤다.

“황녀님의 튜터분도요.”

란타나가 나를 보며 생긋 웃었다.

…그녀가 만나려고 한 사람은 니나렛이 아니라 내가 아니었을까?

비약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냥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이렇게 만났으니까, 잠깐 동석해도 될까요?”

란타나가 허락을 구하듯 슬쩍 옆을 돌아보자, 니나렛이 잠깐 고민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음, 좋아요.”

“허락에 감사드려요, 전하!”

“대신 10분만이에요.”

조건부 허락이었다. 게다가 란타나를 보는 니나렛의 눈빛이 곱지 않았다. 어쩐지 적을 가까이서 살펴보기라도 하겠다는 느낌이었다.

‘내 장신구 사업을 방해하는 훼방꾼이라고 경계했었으니까.’

비어 있던 의자가 채워졌다.

생각하지도 못한 의외의 조합이었다. 게다가 란타나를 만나 보고 싶다고는 생각했었지만, 이런 식으로 만나게 될 줄이야.

“음식이 맛있어 보이네요! 전하께서는 비프커틀릿을 좋아하시나요?”

“별로요.”

“저는 좋아해요. 다음에는 저도 식사에 초대해 주시면 안 될까요?”

“내키면요.”

“네! 귀여우신 황녀님과 친하게 지내고 싶거든요. 저는 코르를 제외하면 전부 잘 먹는답니다.”

란타나는 니나렛의 성의 없는 대답에도 개의치 않는다는 듯 밝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런데 방금 뭐라고 했어……?’

란타나가 코르를 못 먹는다고? 그냥 넘기자니 마음에 걸렸다.

그랬기에 나는 니나렛에게 눈짓으로 먼저 허락을 구하고는 란타나에게 말을 건넸다.

“네리아 발렌티스입니다. 다리스에 영광이 있기를.”

“반가워요, 레이디 발렌티스! 저는 란타나랍니다. 편하게 이름으로 불러 줄래요?”

그녀가 나를 보며 진심으로 반갑다는 듯이 웃고 있었다.

란타나에게 나는 그녀의 휘하 세력인 백부 가족과 대립하는 존재일 텐데도.

하기야 대놓고 감정을 드러내는 건 순진한 사람들이나 하는 짓이다. 나 역시 웃는 얼굴로 다시 입을 열었다.

“네, 란타나 님. 그런데 아까 말씀이, 코르를 못 드신다고요?”

“아쉽지만 그래요. 알레르기가 있거든요. 코르만 먹으면 심장이 아파지는지라.”

“식사하실 때 실수로 드시지 않도록 조심하셔야겠군요.”

“네에. 그래도 냄새로 구분할 수 있으니까요. 걱정 고마워요.”

코르에 알레르기가 있는 건,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코르를 먹느니 마느니 하는 일로 라일라와 식당에서 부딪친 적도 있지 않았던가.

심지어 증상도 비슷했다. 심장이 아픈 것. 그리고 그건 어머니도 마찬가지였다. 설마 먼 친척 관계라도 되는 건가?

“그런데 발렌티스 양.”

“네?”

“이사벨라 님의 그림이 있는 도자기 장신구 말이죠, 저도 하나 얻을 수 없을까요? 부탁할게요!”

도자기 장신구와 벨라오스로 경쟁했던 일이 최근까지였는데, 그녀는 불편할 법한 주제를 잘도 말했다.

주는 것 정도야 어렵지 않지만. 어떻게 대답하면 좋을까. 잠깐 그렇게 생각했을 때였다.

“대신 저는 선물로 이걸 줄게요.”

“란타나 님?”

갑작스러운 행동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란타나가 그녀의 목에 걸려 있던 벨라오스 목걸이를 빼서는 나에게 걸어 준 것이었다.

“벨라오스가 북방의 언어로 ‘벨라의 눈’이라는 뜻이란 거 알고 있나요? 분홍색 눈을 가진 발렌티스 양에게 잘 어울리는 보석이에요.”

“…….”

“10분. 지난 것 같으니까 저는 눈치껏 이만 실례하겠어요. 두 분, 오늘 뵐 수 있어서 즐거웠답니다. 다음 만남을 기다릴게요.”

란타나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니나렛에게 인사한 뒤 미련 없이 테이블을 벗어났다.

회색 머리의 남자 시종과 갈색 머리의 여자 시녀가 그런 란타나의 뒤를 따랐다.

‘…같이 있었는지도 몰랐어.’

란타나에게 집중한 나머지 주변을 살펴보지 못한 것이겠지만.

옆에 있던 니나렛은 사실은 여기까지 장신구를 얻으러 왔던 거냐고 투덜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란타나를 처음 만났을 때 느꼈던 그 이상한 기분은 마지막이 될 때까지도 없어지지 않았다.

왜일까? 잘 생각해 보면 이유가 떠오를 것 같기도 한데.

나는 란타나가 남쪽 정원에서 모습을 감출 때까지 그녀의 뒷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을 때, 드디어 그 묘한 감정의 정체를 깨달을 수 있었다.

나, 그녀를 본 적이 있다고.

오늘이 첫 만남이 아니었다고.

***

찜찜한 기분으로 저택에 도착했는데, 로비에서 라일라를 마주쳤다.

벨라오스가 실패한 뒤로 계속 방에만 처박혀 있더니, 드디어 밖으로 나온 모양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대화를 나눌 기분이 아니었기에 방으로 들어가려고 했는데, 라일라가 잔뜩 화가 난 목소리로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네리아, 너……! 네가 왜 그 목걸이를 걸고 있는 거야?”

“목걸이?”

손을 가져다 대자, 낯선 감각이 느껴졌다. 아까, 황궁에서 란타나에게 받은 벨라오스 목걸이였다.

“선물로 받은 거야.”

대충 대답하다가 라일라의 목에도 똑같은 모양의 목걸이가 걸려있는 것을 발견했다.

‘라일라가 준 거였구나?’

딱히 원하지도 않고, 필요도 없는 물건이었기에 목걸이를 풀어 그녀에게 내밀었다.

“줄까? 가질래?”

“…….”

그러나 라일라는 나를 한 번 노려보고는, 홱 몸을 돌려 복도로 사라져 버렸다.

‘…그러든가, 말든가.’

굳이 신경 써 줄 가치도 없다.

나 역시 라일라에게서 시선을 거두고는, 방으로 돌아가 소파에 몸을 파묻고 생각에 잠겼다.

“아가씨, 상태가 평소랑 달라 보이시는데, 무슨 일 있으셨어요?”

“…란타나를 만났어.”

“머리가 멍하고, 계속 그분의 얼굴이 머릿속에 떠오르고, 다른 생각은 나지 않고, 그러세요?”

“사샤? 뭐야, 어떻게 알았어?”

“보통 사람이 네리아 아가씨를 처음 볼 때 심정이네요. 저도 그랬어요. 내일이면 괜찮아지실 거예요.”

사샤가 그렇게 말하고는 별일도 아니라는 듯, 하던 일을 마저 하기 위해 돌아갔다.

‘나는 그런 것도 있겠지만.’

그 사람, 정체가 뭐지?

이 세계에서 처음 그녀의 소문을 접했을 때, 만나 보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순수한 호기심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돌이켜 보면 예전에도 그런 기분을 느껴 본 적이 있었다. 이곳에서 처음 듀이를 만났을 때였다.

처음 보는 얼굴인데도 묘하게 익숙하고 만난 적이 있다는 느낌.

단지, 란타나의 외모가 너무나도 아름다웠기에 충격을 받아 늦게 깨달은 것뿐이었다.

듀이의 경우, 대륙 최고의 기사인 힐더 할슈리트 경과 머리카락 색깔을 제외한 얼굴이 거의 똑같았기에 기시감을 느낀 것이었다.

그렇다면 란타나와 비슷하게 생긴 사람을 만난 적이 있었던 걸까?

…하지만 이번에는 눈이나 머리카락 색깔 문제가 아닐 것 같았다.

그런 얼굴은 한 번 보면 죽을 때까지도 잊을 수 없을 것 같은데. 도대체 언제, 어디서 만났던 거지?

억지로 기억을 캐내느라 눈을 찌푸렸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떠오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

방으로 돌아온 라일라는 테이블 근처를 위태롭게 서성거렸다.

‘란타나 님이 왜 목걸이를 네리아한테 주신 거지?’

무슨 의미야? 설마, 네리아가 쓸 만해 보인다고 라일라를 대신하여 손을 잡으려는 건 아니겠지?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숙부의 딸에게는 지지 말라고 말씀하셨건만, 수확제부터 계속 지고 있다.

사교계에서 ‘레이디 발렌티스’는 라일라가 아닌 네리아를 가리키는 말이 되어 가고 있었다.

마치 네리아에게 자신의 자리를 뺏긴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러다가 그분에게 약속받았던 황태제비 자리까지 네리아에게 넘어가 버리는 건 아닐까?

그런 불안함이 엄습했다.

‘숙부에게 자리를 뺏긴 아버지도 이런 마음이었겠지.’

초조함에 손톱을 깨물려고 할 때였다. 갑자기 방문이 열리더니, 그녀의 어머니인 멜비나 백작 부인이 안으로 들어왔다.

“라일라! 왜 그러고 있니?”

“란타나 님이 목걸이를 네리아에게 줬어요! 나랑 같은 건데!”

라일라가 멜비나에게 달려들어 그녀의 품속에 안겼다.

“그 애랑 손을 잡으려는 건 아닐까요? 네리아가 생긴 건 예쁘잖아요. 쓸 만하다고 여기신 걸까요?”

“그래, 하녀에게 듣고 왔단다. 하지만 그런 사소한 행동에 일일이 의미 부여할 건 없어. 응?”

멜비나가 다정한 손길로 라일라의 목걸이를 벗겨 냈다. 그러고는 라일라의 보석함을 열어 안을 살폈다.

“목에는 다른 걸 걸자꾸나. 뭐가 좋을까. 그렇지, 이게 좋겠다.”

발렌티스 가문의 직계 장녀에게만 내려오는 사자를 조각한 목걸이.

멜비나가 그 목걸이를 라일라에게 걸어 주었다. 그 행동에 라일라도 서서히 안정을 되찾아갔다.

‘그래, 발렌티스 가문의 직계 딸은 네리아가 아니라 나야.’

라일라가 작은 미소를 지었고, 멜비나는 딸을 안심시키듯 이야기를 조금 더 덧붙였다.

“그리고 란타나 님과 네리아가 손을 잡는 일은 기필코 없을 테니,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단다.”

“정말이죠?”

“그럼.”

멜비나가 확실한 목소리로 답했다. 마냥 라일라를 안심시키기 위해 한 거짓말이 아니었다.

만일이라고 해도, 그 두 사람이 손을 잡는 일은 절대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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