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당연한 이야기지만, 새로운 작전은 대성공을 거두었다.
공방에 손님들이 다시 몰려들었는데, 도자기 액세서리가 처음 인기를 끌었던 시기와 비교해도 부족하지 않을 열기였다.
수도 사교계에 벌어졌던 ‘벨라오스를 누가 많이 모으냐’는 경쟁은 ‘누가 이사벨라의 작품을 손에 넣느냐’로 바뀌었다.
사람들은 이사벨라의 그림이 담긴 장신구를 구하기 위해 돈과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쌓여 있던 재고가 바닥났고, 공방의 점원들은 쉴 틈도 없이 분주히 움직여야 했다.
매출 보고서의 판매량 추이 그래프 또한 아름다운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뭐, 당연한 결과지만.’
나는 매장 안이 손님들로 북적이는 모습을 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내가 이사벨라를 끌어온 이상, 처음부터 질 수가 없는 게임이었다.
게다가 천재가 만든 예술품에는 유행이 없다. 백부네가 통곡하는 소리가 공간을 뛰어넘어, 여기까지 들려오는 것 같았다.
“네리아 님, 새로운 장신구들이 완성되었습니다.”
그때, 사무실의 문이 열리며 점원이 들어왔다. 내가 지시한 이사벨라의 제작품을 가져온 것이었다.
“책상에 놔 줘요. 고마워요.”
나는 반가운 기분으로 장신구들을 살펴보았다.
이사벨라는 생각보다 많은 도자기 조각에 작품을 그려 냈는데, 작은 공간에 그림을 그리는 작업이 예상외로 재미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지금도 저택으로 도자기 조각들을 더 가져가셨지.’
덕분에 재고를 여유롭게 확보할 수 있었기에 나로서는 무척이나 감사한 일이었다.
“그럼 지금 여기 있는 것들은.”
나는 점원을 돌아보며 새로운 지시를 내렸다.
“발렌티스 가문 가신들의 저택으로 하나씩 보내 주세요. 제가 따로 지정한 사람만 제외하고요.”
“예, 알겠습니다, 네리아 님.”
백부네가 벨라오스의 수익금 반 이상을 날려 먹은 일로 가신들도 불만이 클 텐데, 이참에 그들에게 나에 대한 좋은 인상을 남기는 것도 나쁘지 않다.
나는 펜을 들고는, 가신 중에서 선물을 보내지 않을 사람의 이름을 종이에 적었다.
***
발렌티스 저택의 회의장에서는 가문 회의가 한창이었는데도, 레고트는 전혀 집중하지 못하고 있었다.
‘네리아, 이 영악한 것!’
하는 짓이 꼭 얄미운 카터 놈을 닮았다.
이번 벨라오스 사업에 많은 돈을 투자했는데, 일이 이런 식으로 끝나 버리다니.
처음 의견을 제안했던 라일라는 상심하여 방으로 틀어박혔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설마 제 조카가 이사벨라를 끌어들였다니. 그들로서는 짐작할 수도 없는 아이디어였다.
집무실에 있는 집기를 다 집어 던져도 화가 풀리지 않았다.
일을 이대로 끝낼 수는 없어 란타나에게 수입 배분 비율을 높이며 해결 방안을 요청했었다. 하지만.
‘죄송하지만, 이사벨라 님의 작품을 이길 자신은 없네요. 저도 하나 갖고 싶을 정도거든요.’
웃는 얼굴로 거절당하고 말았다.
‘제길!’
그냥 치워 버리든가 해야지!
레고트가 조카를 떠올리며 와락 표정을 구겼다.
‘이렇게 된 것, 차라리…….’
“…님, 레고트 가주님.”
그때, 회의장 안에서 그를 부르는 목소리가 있었다. 레고트는 잠깐 생각하던 것을 멈추고는 소리가 난 쪽을 쳐다보았다.
“무슨 일입니까.”
“벨라오스의 수익 배분 문제 말입니다. 기한은 언제까지인지 따로 정하셨습니까? 설마… 광산이 고갈될 때까지는 아니시겠지요.”
가신이 레고트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물었다.
하지만, 마침 그 문제를 신경 쓰고 있던 레고트는 버럭 화를 냈다. 가신이 자신의 실패를 대놓고 탓한다고 느낀 탓이었다.
“계약 기간은 반년이오! 그리고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
“대신 이번 일로 란타나 님과 더욱 가까운 친분을 쌓았으니 우리가 손해를 본 일은 없습니다. 라일라가 황태제비만 된다면, 이 정도 손실쯤이야 충당할 수 있습니다.”
변명하듯 말을 붙인 레고트가 책상을 내리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늘 회의는 여기까지로 하지요.”
“…고생하셨습니다, 가주님.”
결국, 레고트는 심기가 불편해진 것을 굳이 숨기지도 않은 채로 회의장을 벗어났다.
그리고 남아 있는 가신들 사이에는 불편한 침묵이 감돌았다.
낯선 일은 아니었다. 레고트가 이런 식으로 가문의 재산을 날려 먹은 적이 한두 번도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이번 일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벨라오스는 시세가 떨어지는 부류가 아니기에, 가지고만 있으면 계속 돈이 들어올 재산이다.
‘그런데 고작 조카와 기 싸움을 하느라 손실을 입혀?’
레고트가 카터에 대한 열등감을 조카에게 투영하고 있다는 것은 그들의 눈에도 보이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어차피 네리아 역시도 발렌티스의 사람이 아닌가. 그녀의 활약은 가문의 명예가 된다.
옛날이야 레고트가 가주가 되기 위해 조카에게 누명을 씌웠다지만, 지금은 그의 자리에 위협을 당하는 것도 아닌데 도대체 왜.
‘네리아 님은 빈손으로 시작해서 돈을 벌었건만…….’
누구는 들고 있던 멀쩡한 재산을 내다 버리지 않았나.
그렇지만 차마 가주에 대한 불평을 대놓고 할 수는 없었기에 대다수는 여전히 불편한 얼굴로 침묵하기만 할 뿐이었다.
그런데 그중, 다른 가신들과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
이름은 베른으로, 가문 내에서 발이 넓고 소식이 빠른 자였다.
‘듣기로는 네리아 님이 발렌티스 가문의 가신들에게 전부 이사벨라 님의 장신구를 보냈다고 했는데.’
베른에게는 벨라오스만큼이나 중요한 문제였다. 옆자리에 앉은 사람에게 물어보아도 대답은 같았다.
그런데 그에게만 선물이 오지 않았다. 설마 누락? 아니면 네리아 님에게 잘못 보인 일이 있어서?
‘그런 일은 없었는데?’
사실, 베른으로서는 받든 말든 상관이 없었지만, 그의 사랑하는 아내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다들 받았다는데 왜 우리한테만 오지 않았어요? 지금 그 물건이 사교계에서 얼마나 자랑거리가 되고 있는데!’
‘글쎄, 그건 저도 잘…….’
‘내일 가문 회의에 참석하면 네리아 님을 찾아서 여쭤봐요!’
‘아, 알겠습니다.’
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아직 대화 한번 못 해 본 분에게 그런 일로 찾아가야 한다니.
“저희도 그만 일어나겠습니다.”
“예,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회의도 파장 분위기가 되었다. 베른은 자리에서 일어나 사람들을 따라 회의장을 벗어났다.
그리고 그가 난처한 발걸음으로 향한 장소는 본관의 안쪽이었다.
‘일단은 그분의 직속 하녀를 만나 이야기를 전하는 게 좋겠지.’
지나가던 다른 하녀의 도움 덕분에 네리아의 하녀를 응접실로 불러내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응접실에 찾아온 사람은 하녀가 아니었다.
“네리아 님?”
“안녕하세요. 베른 경께서 제 하녀를 찾으셨다고 들었어요.”
네리아 본인이었다.
“어차피 저에게 용건이 있으신 것 같아서 제가 직접 왔어요. 괜찮으시지요?”
베른은 응접실의 맞은편에 앉은 네리아를 불편하게 쳐다보았다.
“무슨 용무이신지요?”
“제 용무가 그.”
설마 본인이 직접 나올 줄이야.
너무 사소한 일이라 입이 떼지지 않았으나, 그의 사랑하는 아내가 먼저였다. 베른이 입을 열었다.
“발렌티스 가문의 가신들에게 선물을 보내셨다고 들었는데… 저에게만 오지 않은 것 같아서…….”
“선물? 혹시 이사벨라 님의 장신구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네, 그거…….”
“맙소사! 점원이 실수한 모양이네요. 제가 내일 공방에 연락해서 제대로 보내 드리라 일러둘게요.”
“가, 감사합니다!”
의외로 일이 쉽게 해결됐다. 불편하던 베른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런데, 베른 경.”
“예?”
“베른 경의 장남이 수학에 뛰어나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네, 그렇습니다!”
용건이 끝나 적당히 일어나려고 했는데, 네리아가 다른 말을 걸어왔다.
자식에 관한 칭찬은 언제나 기쁜 이야기였기에 저도 모르게 밝은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게다가 장남이 수학에 뛰어난 것도 맞았으니까.
“제가 니나렛 전하의 예법 튜터로 있는 것은 알고 계시지요?”
“물론입니다.”
“실은, 제가 황녀궁에서 니나렛 님에게 개인 교사로 추천할 사람이 없냐는 이야기를 들었거든요.”
그 이야기를 지금 한다는 건 설마? 베른의 눈이 크게 뜨여졌다.
“베른 경의 장남을 수학 교사로 추천할까 해서요. 괜찮으신가요?”
“예, 예! 물론입니다!”
목소리가 끝나는 동시에 대답이 나왔다. 괜찮지 않을 리가 있나!
황족의 개인 교사가 되는 것은 출세가 보장된 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장신구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큰 선물이었다.
그런데 니나렛에게 신임받고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개인 교사를 추천해 줄 정도의 위치라니!
“부디 부탁드리겠습니다! 후회하시지 않을 겁니다!”
“네, 내일 황녀궁에 가면 전해 두도록 하겠습니다.”
베른은 생긋 웃고 있는 소녀를 보며 생각했다. 이분에게 잘 보여서 나쁜 일은 없을 것 같다고.
***
베른 경을 찾은 이유가 거창한 건 아니었다. 앨마 시녀장에게 교사 추천을 요청받기도 했고, 마침 가문 내에 적임자가 있었다.
게다가 베른 경은 소위 말하는 가문의 정보통으로, 입이 가볍고 발이 넓은 자였다.
‘친해져서 나쁠 건 없어. 가신들 사이에서 내 이야기를 좋게 퍼트려 주겠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비프커틀릿을 한 입 우아한 동작으로 입에 넣었다. 앞에서는 니나렛이 나를 따라 포크를 움직이고 있었다.
오늘의 점심 식사는 니나렛의 제안으로 황궁의 남쪽 정원에서 먹게 되었다. 날씨가 좋으니 바깥으로 나가고 싶다는 이유에서였다.
“네리아 선생님! 장신구 사업이 잘 풀려서 다행이다. 그치?”
우물거리던 토마토를 꿀꺽 넘긴 니나렛이 말을 걸어왔다.
“네, 니나렛 님 덕분이에요.”
“정말? 나 도움 됐어?”
“당연하죠.”
니나렛이 내 대답에 신이 난 표정으로 까르르 웃음을 터트렸다.
그런데 도움이 됐다는 말은 예의상 한 거짓말이 아니었다.
실제로 니나렛이 황제 폐하에게 동일 업종 신규 출점 1년 제한권을 얻어 와 주기도 했고, 보석을 좋아하는 황녀가 즐겨 하는 장신구라는 소문이 퍼져 사람들 사이에서 쉽게 품질을 인정받은 것도 있었다.
‘황녀궁으로 돌아가면 머리를 쓰다듬어 드려야겠군.’
흐뭇한 기분으로 주스를 마셨다.
“그런데 네리아 선생님! 벨라오스 이야기 말인데!”
벨라오스 이야기라면 니나렛도 알고 있었다. 나에게 방해된다며 얼마나 경계를 하던지.
가지고 있는 벨라오스도 팔아 버리겠다며 투덜대던 아이가 생각나 웃음을 참아야 했다.
“선생님, 있잖아… 요정이 존재한다는 말 사실일까?”
“네?”
황녀라는 지위를 유용하게 써먹는 귀여운 영악함도 있지만, 역시 아이는 아이. 순수한 질문이었다.
‘마수는 있어도, 흔히들 아는 요정 같은 건 세상에 없겠지만……’
그러고 보니, 어머니가 가지고 계셨다는 가보의 이름이 ‘요정왕의 심장’이었던가.
하지만 그것도 누군가가 붙인 이름이지, 유명한 보석인 ‘인어의 눈물’도 그냥 큰 진주일 뿐이었다.
‘하지만 동심을 깨트릴 순 없어.’
세상에는 요정이 있고, 착한 일을 많이 하면 만날 수도 있다고 대답하려던 때였다.
“그럼요. 요정은 존재한답니다.”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청아한 음성이었다. 나도 모르게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발견할 수 있었다.
“근처를 지나가던 길에, 황녀님과 튜터분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인사를 드리러 왔답니다.”
그러니까, 그녀였다.
굳이 신분을 확인하거나 이름을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검은색 머리카락에 나와 똑같은 분홍색 눈동자를 가진,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다운 미인.
란타나. 그녀가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