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구원은 셀프입니다 (62)화 (62/172)



<62>

조금 전, 공방에 들어왔을 때.

점원들은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는 매출을 의식해서인지 그 나름의 대책을 내놓았었다.

‘네리아 님, 저희가 노력해서 도자기 장신구의 품질을 최대한 더 높일 수 있도록 해 보겠습니다.’

‘장인들이 지금 새로운 디자인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한시적이라도 가격을 내리는 건 어떨까요? 판매량을 회복할 수 있을 때까지만이라도요.’

공방의 점원들이 본인의 일처럼 생각해서 적극적으로 노력해 주는 건 좋았으나, 사실 그런 부분들이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는 없었다.

우선, 가격을 떨어트리는 것은 좋은 해결책이 아니었다.

도자기 장신구는 귀족을 상대로 하는 고급품이자 사치품이다.

그런데 가격을 내렸다가는 잠깐의 판매량을 높일 수는 있을지언정, 장기적으로는 고급품이라는 이미지를 훼손시킬 수 있었다.

‘그러니까 기각.’

다음으로 디자인의 다양화나 품질 향상은 물론 하면 좋다.

하지만 도자기 액세서리와 벨라오스로 양분된 현 사교계의 상황을 뒤엎을 수단은 아니었다.

품질은 이미 훌륭했고, 벨라오스는 장신구이기도 하지만 ‘수집품’으로서의 목적이 붙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내가 해야 할 일도 정해져 있었다. 도자기 장신구에도 새로운 목적과 화제성을 부여하는 것.

‘그리고 그걸 위해서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랜만에 이사벨라 님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

“네리아 양! 어서 와요!”

폐쇄적인 데다 세상사에 무관심한 그녀는 이번에도 나에게만은 반가운 손길을 내밀었다.

오히려 왜 이제야 찾아왔냐는 아쉬운 눈빛마저 보내고 있었다.

나는 같은 소파에 앉아 내 손을 잡고 쓰다듬고 있는 그녀에게 애처로운 시선을 보내며 입을 열었다.

“이사벨라 님, 도와주세요.”

“네리아 양! 도움이라니, 힘든 일이라도 생겼나요? 내가 뭘 어떻게 도와주면 되나요?”

그녀가 최근에는 저택을 나간 일이 없어 바깥일을 잘 모른다는 말을 덧붙였기에, 나는 내가 겪고 있는 상황에 대해 간략히 설명했다.

“그러고 보니 델프 백작이 초상화를 그리러 왔을 때, 도자기 어쩌고 이야기를 했던 것 같아요. 그땐 관심이 없어서 안 듣고 있었는데, 이게 바로 그것이었군요.”

…말을 해도 듣지 않았다니, 역시 이사벨라다웠다.

어쨌거나 그녀는 내가 건네준 반지를 보며 흥미롭다는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도자기에 그림을 그려 장신구로 만들었다니, 네리아 양이 생각한 것인가요?”

“네. 깨진 찻잔의 조각을 보고 생각해 본 것이에요.”

“오호, 이건 상당히 재밌군요. 그래서 네리아 양이 나에게 도와 달라는 건 혹시?”

“네. 이사벨라 님께서 도자기 조각에 그림을 그려 주실 수는 없을까요? 몇 개만이라도요! 부탁드려요!”

울먹울먹, 여전히 불쌍한 눈을 하며 그녀에게 말했다.

도자기 장신구에 이사벨라라는 천재 예술가의 그림을 담는 것.

그것이 내가 백부네와의 경쟁에서 승기를 잡을 수 있는 해결책으로 떠올린 방식이었다.

거액을 주고도 구할 수 없는 이사벨라의 그림을 심지어 액세서리로 소장할 수 있게 된다니.

‘제국인이라면 분명 갖고 싶겠지.’

그리고 나는 이사벨라가 내 부탁을 절대 거절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그녀에게 은인의 딸이자 죄책감의 대상이기 때문이었다.

‘달리 말하자면 이것도 부모님의 후광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하지만 좋은 대책을 놔두고 굳이 이용하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이것도 부모님이 나에게 남겨 주신 유산이나 마찬가지니까.

“좋아요!”

역시나, 그녀는 내 부탁을 흔쾌히 수락했다. 긍정의 대답을 들은 내 입가에 환한 미소가 걸렸다.

“네리아 양을 돕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나 개인적으로도 흥미가 솟는군요! 도자기에 그림을 그려 본 적은 아직 한 번도 없었거든요.”

“이사벨라 님……! 정말요?”

“그럼요. 요즘 매너리즘에 빠져 있다고 생각했는데 오랜만에 재밌는 작업이 생겼네요. 로즈가 살아 있을 때만 해도 즐거운 일이 참 많았었는데…….”

그녀의 눈동자에 문득 추억이 떠올랐다는 듯, 그리운 감정이 비쳤다. 하지만 그녀는 다시 웃는 얼굴로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어떻게 하면 되죠? 지금 당장이라도 시작하고 싶거든요.”

***

다른 귀족들과의 친분을 다지기 위해 다양한 사교 모임에 참석하다 보면, 그다지 반갑지 않은 얼굴을 마주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중립파인 헤론 후작 부인이 주최한 살롱.

그곳에서 마주친 라일라의 추종자 두 명이 은근슬쩍 내 옆으로 다가와 아닌 척 시비를 걸어왔다.

“어머, 요즘도 도자기 액세서리를 하고 다니는 사람이 있었네요.”

“그러게요. 지겨워라. 한참 전에 유행이 지나지 않았나요……?”

“그렇죠. 요즘은 다들 벨라오스로 만든 액세서리를 하고 다니니까요. 다른 사람도 아닌 란타나 님이 만드신 유행이잖아요?”

본인들끼리 나누는 잡담인 척 쑥덕대지만 내가 들으라는 의도였다.

‘저런 피라미들이 명령도 없이 독단적으로 행동할 리가 없지.’

주변을 살펴보았더니, 역시나 그렇게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라일라가 서 있었다.

그러다가 나와 눈이 마주친 라일라가 승리의 웃음을 짓고 있었는데, 그녀가 저렇게 의기양양할 수 있는 이유가 있었다.

지금 이곳, 살롱에는 도자기 장신구를 착용한 사람보다 벨라오스를 착용한 사람의 비율이 더 높아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나한테 이겼다고 생각해서 저러고 있는 것 같지만.’

나는 절레절레 고개를 젓다가, 얼마 전에 로이엔 경과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경, 그런데 백부님과 란타나의 사이가 그 정도로 가까운 건가요? 디르케가 이렇게 자발적으로 두 팔 걷고 나서 줄 정도로요?’

‘자발적이 아닙니다. 대가가 있었지요. 벨라오스의 수익금을 4:6으로 나누는 거래가 있었습니다.’

‘뭐라고요? 란타나에게 40%를 떼어 준다고요? 아니, 무슨. 가만히 놔뒀으면 다 돈으로 들어올 텐데!’

‘…정정해 드릴 이야기가 있는데, 발렌티스 가문이 4입니다.’

‘…….’

한숨을 내쉬었었다.

물론, 명예는 돈으로도 살 수 없고, 눈엣가시인 내가 잘되는 모습이 꼴 보기 싫어 어떻게든 망치려 들고 싶은 심정은 알겠지만.

‘이런 식이니까 아버지가 일궈 놓은 사업을 죄다 말아먹었지!’

역시, 저들에게 가문을 맡겨서는 안 되겠다는 확신만 들 뿐이었다.

“…애초에 말이죠! 도자기 장신구를 보면 접시가 생각나서 이상했어요. 그렇지 않아요?”

“그렇죠! 저런 게 유행이 된 것부터가 이상했으니까요.”

내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라일라의 추종자들은 약이 오른 듯이 험담을 계속 이어 나갔다.

그렇지만 내가 굳이 저런 것들까지 상대해 줄 필요는 없지.

어차피 지금쯤이면, 소식이 빠른 사람들에게 ‘그’ 이야기가 전해졌을 테니까. 라일라의 웃음도 오래는 이어질 수 없을 터였다.

“저기, 레이디 발렌티스!”

“발렌티스 양에게 드릴 질문이!”

그리고 조금 뒤, 역시나 내 근처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발렌티스’라는 말에 라일라도 주변을 돌아보았으나, 그들이 찾는 사람은 그녀가 아니었다.

나는 회심의 미소를 숨겼다.

“안녕하세요, 무슨 일이세요?”

“방금, 네리아 양의 공방에서 이사벨라 님의 그림을 담은 액세서리를 출시할 거라는 소식을 접하고 오는 길이에요!”

“그게 사실인가요?”

“부디 저희에게 정보를 주세요! 언제부터 살 수 있는 거죠?”

물어보는 사람의 목소리가 유난히 컸기 때문일까, 그 이야기를 들은 주변의 다른 사람들도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이사벨라는 제국인이 사랑하는 화가인 만큼, 당연한 반응이었다.

“네? 다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이사벨라 님의 그림이라뇨?”

“잠깐, 저도 듣고 싶어요!”

“소문이 벌써 퍼진 건가요?”

나는 사람들을 향해 친절한 영업성 미소를 띠며 입을 열었다.

“맞아요, 도자기 장신구의 특징을 살려서 이사벨라 님과 협업을 해 보았답니다. 감사하게도 저희와 같이 즐겁게 작업을 해 주셨어요.”

“맙소사! 정말 사실이었어요?”

“저희 가문이 아무리 그림을 의뢰해도 받아 주지 않으셨던 분인데! 꼭 소장해서 가보로 남기고 싶어요. 비싸도 상관없어요!”

“으음. 그런데 판매하는 건 아니고, 저희 공방을 많이 사랑해 주신 몇몇 분께 감사한 마음을 담아 선물을 드릴 예정이에요.”

“그 말씀은, 다른 걸 많이 사면 저희도 그 선물을 받을 수 있다는 건가요? 제발 알려 줘요!”

“그런 것도 있지만, 저희 공방을 꾸준하게 이용해 주신 분도 포함이 되겠지요?”

그렇게 말하며 생긋 웃었다.

나는 이사벨라의 그림이 들어간 장신구들을 사람들에게 정식으로 판매할 생각이 없었다.

물론, 그녀는 자신의 작품을 내가 원하는 대로 사용해도 상관없다고 말했었다.

하지만 그녀의 작품에 금전적인 가치를 매길 수 없었을뿐더러, 사람들에게 쉽게 구할 수 있다는 인상을 주고 싶지 않았다.

그렇기에 공방에 사람들을 지속적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유인책으로 활용한 것이었다.

이를테면 증정품이라고도 말할 수 있었다.

“꾸준하게? 그렇다면 바로 저예요! 저는 벨라오스가 새롭게 유행할 때도 관심이 전혀 없었거든요!”

“또 다른 조건은 없나요?”

사람들이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내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었다.

어느새 살롱의 주최자인 헤론 후작 부인과 영애마저 내 옆으로 다가와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다.

그리고, 이 상황이 가장 믿기지 않고, 믿고 싶지도 않을 한 사람.

슬쩍 고개를 돌려 라일라를 바라보자, 그녀가 허망해진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런 일이 생길 거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한 듯, 그녀의 얼굴이 당황스러움으로 물들어 있었다.

심지어 그녀의 추종자들조차 아닌 척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솔직한 반응이었다.

그리고 나는, 라일라가 지었던 것과 똑같은 미소를 그녀에게 되돌려 주었다.

오늘을 기점으로 사교계의 화제가 벨라오스에서 다시 내 쪽으로 넘어오리라는 사실은 어린아이라도 예상할 수 있는 당연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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