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
“…네?”
백부네가 내 사업을 방해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로이엔 경이 전해 준 이야기를 정리하자면 이랬다.
수도 사교계에 새로운 유행을 만들어, 내가 유행시킨 도자기 장신구를 그대로 묻어 버리겠다는 것.
그리고 그들이 새롭게 유행시키려는 물건은 ‘벨라오스’라는 이름을 가진 분홍색 보석으로, 발렌티스 가문에서 광산을 보유하고 있었다.
“유행을 만들기 위해 벨라오스의 공급량을 늘리겠다고 하더군요.”
“아니, 그게 무슨…….”
나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얼굴로 표정을 구겼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유행이라는 게 만들고 싶다고 해서 뚝딱 만들어지는 물건인 줄 아는 건가.
도자기 장신구가 수도에 유행하고 이 정도 수준의 대성공을 거둔 데에는 다각적인 이유가 있었다.
하고 싶다고 해서 해낼 수 있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백부네가 내 사업에 훼방을 놓을 거라는 예상 정도는 했지만.’
공방에 물리적인 위해를 가하는 데서 그칠 줄 알았는데, 뜬금없이 벨라오스라니.
“로이엔 경, 성공할 것 같나요?”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따져 본다면 성공할 리가 없지요.”
나는 로이엔 경의 대답을 들으며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다이아몬드나 사파이어, 벨라오스 등. 보석이 가진 가장 큰 가치는 다름 아닌 희소성이다.
다이아몬드는 아름답지만, 길바닥에 굴러다닐 만큼 흔하다면 상품으로서의 가치가 없어진다.
그렇기에 광산의 소유주들은 보석의 공급량을 제한하는 방법으로 높은 가격을 유지한 것이다.
그런데 벨라오스를 유행시키겠다는 의도만으로 공급량을 늘리다니.
쓸데없이 보석의 시세를 낮추기만 할 뿐인 멍청한 방법이었다.
‘아니, 게다가 말이야.’
벨라오스 광산은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준 결혼기념일 선물이었다.
벨라오스의 분홍빛이 어머니의 아름다운 눈동자와 똑같은 색깔이라는 로맨틱한 이유를 붙여서였다.
‘우리 부모님의 선물을 쓸모도 없는 곳에 잘도 써먹는군.’
나는 레고트 백부의 얼굴을 생각하며 눈살을 찌푸렸다.
“제 생각도 로이엔 경과 같아요. 그렇게 단순하고 생각이 짧은 계획이 사람들에게 통할 리가 없죠.”
“예, 그런데 가주님의 표정이 워낙 자신만만해 보였던지라…….”
로이엔 경의 얼굴이 애매하게 찌푸려졌다.
“…일단 네리아 님도 알고 계시면 좋을 것 같아서 말씀을 드리기는 했습니다.”
“그건 정말 감사드려요. 앞으로도 레고트 백부가 이상한 짓을 하려고 들면 저에게 알려 주세요.”
“알겠습니다, 네리아 님.”
예산 내역서를 건네주러 온 사람이 너무 오래 머무는 것도 모양새가 이상했기에, 로이엔 경은 금방 본인의 자리로 되돌아갔다.
‘벨라오스라고?’
나는 테이블에 턱을 괴고는 생각에 잠겼다. 백부의 표정이 자신만만해 보였다고 했지?
‘아무리 광산을 가지고 있다고는 해도, 마음대로는 안 될 텐데.’
백부네를 비웃기라도 하듯,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간과하고 있었던 사실이 하나 있었다.
‘그녀’의 실물을 보거나 직접 만난 적이 아직도 없었기 때문일까?
수도 사교계에 단 한 명, 본인이 원하는 것을 유행시킬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사실이었다.
***
황궁의 서궁.
그곳에서 오랜만에 란타나가 주최하는 티 파티가 열렸다.
서궁에서는 거의 한 달 만에 열린 사교 모임인 만큼, 많은 귀족이 손님으로 참석한 자리였다.
“다들 반가워요. 이렇게 제 초대에 응해 주셔서 고마워요.”
가장 상석에 앉은 란타나가 서두를 열자, 그에 호응하듯 사람들이 입을 열기 시작했다.
“초대에 감사드려요, 란타나 님!”
“서궁의 정원은 언제 봐도 훌륭해요! 란타나 님의 뛰어난 감각이 가장 돋보이는 장소라고 생각해요.”
“입으신 드레스가 너무 아름다워요! 이건 황궁 장인의 제작품인가요, 외부 의상실의 옷인가요?”
경쟁이라도 하듯 란타나에 대한 찬사가 이어졌다.
어떤 귀족들은 란타나의 출신을 문제 삼으며 뒤에서 그녀를 비하하거나 폄하하고는 했다.
하지만 황제의 총애를 기반으로 커다란 세력을 구축한 영리함과 그 어떤 상황에서도 화낸 적이 없을 만큼 여유가 넘치는 성격.
특히, 제국 최고라고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는 아름다운 외모까지.
란타나에게 빠져 그녀를 추종하는 사람은 소수가 아니었다.
“그런데 오늘 란타나 님께서 착용한 액세서리들이 전부 벨라오스로 만든 것 같은데요?”
“정말요! 그런데 란타나 님은 장신구를 한 가지 보석으로 통일하신 일이 거의 없지 않으셨나요?”
그리고 오늘, 사람들이 란타나에게 가장 관심을 보인 부분은 그녀가 걸친 장신구에 관한 것이었다.
벨라오스로 만든 귀걸이와 목걸이, 반지와 팔찌에 머리 장식까지.
다소 과한 느낌을 주는 데다, 되레 착용한 사람을 보석에 묻히게 할 법도 한 착장이었으나 란타나에게는 아니었다.
벨라오스가 가진 특유의 분홍빛이 란타나의 눈동자 색깔과 어울려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고, 사람들은 자연히 거기에 주목했다.
‘티 파티가 끝나면 공방에 들러 벨라오스로 만든 액세서리를 주문해야겠어!’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 또한 한두 명이 아님이 확실했다.
달칵-
자신에게 쏟아지는 사람들의 시선에도 미소만 짓고 있던 란타나가 어느 순간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 행동에 티 파티에 모인 손님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입을 다물고 그녀에게 주의를 기울였다.
“다들 알아봐 주셨군요? 사실, 얼마 전부터 저에게 새로운 취미가 생겼답니다.”
“새로운 취미요? 저희에게도 알려 주세요!”
“혹시 이 자리에, 벨라오스에 대한 전설을 아시는 분이 있을까요?”
“벨라오스에 대한 전설이요?”
란타나가 던진 질문에 사람들이 서로를 돌아보며 고개를 기울였다.
그러던 중, 테이블 왼쪽에 앉은 어떤 귀족 영애가 오른손을 살짝 들어 올렸다.
“‘벨라오스 100개를 가지게 되면, 요정이 나타나 소원을 이뤄 준다’라는 전설 아닌가요? 고서적에서 읽은 기억이 있어요!”
“네, 그 말씀이 맞아요.”
귀족 영애가 내놓은 대답에 란타나가 웃으며 긍정하자, 테이블이 다시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처음 들어 봤어요! 벨라오스에 그런 전설이 있었군요.”
“요정이 나타나서 소원을 들어준다니. 너무 낭만적인 이야기예요!”
“그렇죠? 그래서 저에게 새로 생긴 취미가 바로 벨라오스를 수집하는 것이랍니다.”
란타나가 그렇게 말하며 아름답게 웃다가 다시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실은 벨라오스가 예뻐서 전설을 핑계로 모으는 것이지만요. 하지만 혹시 또 모르지 않아요? 100개를 전부 모으면 요정이 나타나 제 소원을 이뤄 줄지도요.”
“맞아요, 전설이잖아요! 그런데 란타나 님의 소원은 무엇인가요?”
“아무래도 황제 폐하와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이 행복하시기를 바라는 걸까요? 다른 분들은 어때요?”
“부끄럽지만 저는… 제가 좋아하는 영식과 연인이 되는 거예요!”
“저는 돌아가신 부모님을 꿈에서라도 뵙는 거예요. 저도 란타나 님처럼 벨라오스를 모아 볼까요? 정말 요정을 만날 수도 있잖아요!”
“저는 그냥 가지고 싶어요! 란타나 님이 하신 게 너무 예뻐서요.”
티 파티가 열리는 서궁의 정원에 사람들이 즐겁게 재잘거리는 웃음꽃이 피었다.
‘역시 란타나 님이셔……!’
그리고 상석의 바로 왼쪽에 앉은 라일라가 선망이 가득 담긴 시선으로 란타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라일라의 목에도 란타나가 걸고 있는 것과 똑같은 목걸이가 걸려 있었다. 그녀는 행복한 마음으로 목걸이에 손을 가져다 댔다.
‘생각 이상으로 반응이 좋아!’
란타나에게 협조를 구해, 그녀에게 벨라오스로 만든 장신구를 착용하게 한다.
그것이 네리아의 도자기 장신구 유행을 없애기 위해 라일라와 레고트 가주가 세운 계획이었다.
란타나는 그 아름다운 외모와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매력으로 언제나 사교계의 중심이 되었으니까.
그리고 그녀가 걸친 것들은 언제나 화제가 되고 유행이 되었다.
황제의 디르케가 평민 출신이라며 손가락질하는 인간들조차, 뒤에서는 그녀를 따라 할 정도였다.
그러니 란타나를 통해 새로운 유행을 만들 수 있겠다는 자신감은 처음부터 있었다.
그런데 라일라는 알지도 못했던 벨라오스의 전설까지 인용하여 이야기를 아름답게 만들다니!
그 짜증 나는 네리아의 사업이 완전히 끝장나 수도에서 사라지게 될 날도 멀지 않은 것 같았다.
란타나의 협력을 얻기 위해 그 대가로 벨라오스 판매 수익금의 절반 이상을 그녀에게 내주게 되었지만, 그쯤은 전혀 아까울 것도 없었다.
라일라가 자신의 계획은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하며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
‘설마 백부네가 디르케의 손을 빌릴 줄이야.’
나로서는 생각하지 못한 방법이었다. 나는 내 소유의 공방 사무실에 앉아서는 눈살을 찌푸렸다.
최근의 사교 모임에 참석하며 느낀 점은, 몸에 분홍색 벨라오스를 걸친 귀족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는 것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의 차림새가 도자기 장신구로 도배가 되어 있을 정도였건만, 지금은 비율이 반반 정도가 되는 것 같았다.
나는 책상에 놓여 있던 매출표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실제로 벨라오스가 유행하기 시작한 시점부터 공방의 매출이 서서히 줄어들고 있었다.
‘게다가.’
고개를 돌려 매장 쪽을 바라보니, 가게에 방문한 손님의 숫자도 예전보다 훨씬 줄어든 상태였다.
‘그 사람… 란타나 한 명의 영향력이 이 정도 수준이었어?’
이 세계에 온 뒤부터 이름은 자주 들었지만, 이제야 현실적으로 체감할 수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당하는 쪽에서는 불합리하다고까지 느껴질 수준이었다.
그리고 란타나가 의도적이고 적극적으로 퍼트린 그 이야기.
‘벨라오스 100개를 모으면 요정이 나타나서 소원을 들어준다고?’
되지도 않는 말이었다.
세상에 요정이 어디 있어?
그게 가능했다면, 광산주들은 진작에 세계 정복이라도 했을 거다.
하지만 문제는, 고서적에서나 나오는 그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통했다는 사실이었다.
그것이 오랜 시간을 수도 사교계의 여왕으로 군림했던 그녀의 능력이고 영향력이었다.
어린 귀족들은 요정을 만나기를 꿈꾸며 벨라오스를 모았고, 어른은 그 전설 자체에 재미를 느꼈다.
먹고 사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는 귀족들은 재미나 흥미를 끄는 것에 아낌없이 돈을 소비하고는 한다.
결국, 장신구로의 기능도 있지만, 벨라오스를 모은다는 행위 자체가 유행이 되어 버린 것이었다.
‘누가 얼마나 많이 모으나를 경쟁하는 사람들도 생겼다고 하지?’
덕분에 공급량이 늘어났는데도 벨라오스의 시세가 떨어지는 일도 발생하지 않았다.
신선함을 무기 삼은 도자기 장신구와는 달리, 벨라오스는 이미 세상에 존재하는 유명한 보석이었다.
단순히 보석의 아름다움만 강조했다면 이 정도로 화제가 되지는 않았을 텐데. 영리한 행동이었다.
‘그 사람. 황제 폐하가 실책을 저질러 비난받게 되었을 때, 일부러 사치를 부리는 행동으로 사람들의 비난을 자신에게 돌렸다던가.’
몇 년이나 폐하의 총애를 잃지 않을 만도 했다. 경쟁자라도 인정하게 될 정도였다.
‘…하지만 감탄하는 것과는 별개로 대책을 세우기는 해야겠지.’
새로운 유행이 발생하면 예전의 유행은 시들해지는 것이 어쩔 수 없는 문화의 흐름이었다.
도자기 장신구가 잠깐의 유행으로 끝나지 않고 완전히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이런 식으로 화제성이 줄어들어서는 안 되었다.
“…그래, 좋아. 너희가 디르케에게 도움을 받았다면.”
나 역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
그것도 매우, 효과적으로.
나는 머릿속으로 제국이 자랑하는 세기의 천재 화가를 떠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