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구원은 셀프입니다 (47)화 (47/172)



<47>

“발렌티스 양은 이번 튜터 선발의 목적을 알고 있습니까?”

“그거야 니나렛 전하께서 스스로 깨닫고 배울 수 있게끔, 황녀님의 옆에서 모범을 보일 수 있는-”

라일라가 거기까지 대답하고는 입을 닫았다. 말을 하는 도중에 짐작 가는 바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설마?’

라일라의 표정이 굳어졌다.

앨마 부인은 그런 그녀를 고요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가 다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제가 당신을 후보에 넣은 이유는 또래의 다른 영애들을 통솔하는 발렌티스 양의 능력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입니다.”

“…….”

“그런데 발렌티스 양이 모르는 사이에 뒤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라. 제가 평가했던 당신의 통솔력에 의문이 생기더군요.”

라일라가 테이블 아래에서 주먹을 꽉 쥐었다.

“다시 강조하지만, 저는 발렌티스 양에게 잘못이 있다고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그랬다면 목걸이를 수습하는 데 들인 비용을 발렌티스 가문에 청구했겠지요.”

“…….”

“다만, 황녀님의 옆에서 본보기를 보일 대상이 되기에는 자질이 부족하다. 그렇게 판단했을 뿐입니다.”

…반론할 수 없다. 라일라는 지금보다 더 표정을 무너트리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생각해 보면, 니나렛의 튜터 후보는 애초에 객관적인 지표를 토대로 선발된 것이 아니었다.

전부 시녀장인 앨마 부인의 주관적인 판단하에 결정되었을 뿐.

단지 선발된 인원들이 하나같이 우수하고 사교계에서의 입지가 높은 영애들이었기에 불만 같은 뒷말이 나오지 않은 것이었다.

‘최악이야.’

후보에 처음부터 포함되지 않았어도 최악이었겠지만, 자질 부족을 이유로 중간에 낙오되다니.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잖아-!’

황태제비가 되기 위해 가는 길에 오점이 생기고 말았다. 라일라가 주먹을 아까보다 더 세게 쥐었다.

‘내 딸에게 이런 일이 생기다니.’

한편, 멜비나 백작 부인은 딸을 지켜보며 화를 삭이고 있었다. 분명, 네리아의 소행임이 확실했다.

‘이 교활한 것 같으니라고!’

지금까지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소녀인 척 연기하더니, 이번에는 라일라를 누르고 튜터가 되려고 뒤에서 수작을 부려?

‘…이대로 놔둘 수는 없어.’

제 딸에게 불명예를 안긴 것에 대한 보복도 보복이지만, 네리아가 정말로 황녀의 튜터가 되어 황족과 끈이 생긴다면 그들이 곤란해진다.

‘어떻게든 방해해야-’

그녀가 그렇게 생각하던 때였다.

“그런데 말입니다.”

두 사람을 말없이 지켜보고 있던 앨마 부인이 또다시 입을 열었다.

“이번 튜터 선발은 황제 폐하께서 직접 명령하신 일입니다.”

“…부인?”

“폐하께서 이 일에 아주, 아주 신경 쓰고 있으십니다. 중간에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기라도 한다면 폐하께서 크게 진노하시겠지요.”

“갑자기 무슨 말씀이신지?”

앨마 부인은 멜비나의 물음에도 의뭉스럽게 웃을 뿐이었다.

“그냥 해 본 말입니다. 발렌티스 부인께서도 알아 두시면 좋을 듯하여서 말이지요.”

“…….”

멜비나는 눈치챌 수 있었다.

앨마 부인은 방금 그녀에게 네리아를 건들지 말라고 경고한 것이다. 그것도 황제의 이름을 빌려서.

멜비나의 얼굴에서 순간적으로 떫은 표정이 스쳤다.

황제 폐하가 거론된 이상, 그녀도 네리아에게 마음대로 손을 쓸 수가 없게 된 것이다.

‘…마음대로 되는 일이 없어!’

그녀는 당장이라도 황녀궁을 벗어나 발렌티스 저택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

수확제의 데뷔탕트 이후로 내 일상에는 달라진 부분이 있었다.

“아가씨, 편지랑 초대장이 이렇게나 많이 도착했어요.”

페어 레이디 출신 귀부인들에게 환심을 산 데다, 나에 대한 사람들이 관심이 높아져서인지 티 파티의 초대장이 쏟아진 것이다.

내 기사가 되고 싶다며 저택을 방문하는 사람도 많았다던가.

“그리고 오늘은 선물이 왔어요.”

사샤의 지시가 있자, 방 안으로 커다란 상자가 들어왔는데 그 안에는 드레스와 구두가 들어 있었다.

“여기, 선물을 보내신 분이 편지를 동봉하셨어요.”

누가 보낸 걸까.

예상되는 사람이 있기는 했다. 나는 사샤에게 편지를 받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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