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사람이 없는 창고 뒤로 듀이를 데려왔다. 반항하거나 억지로 도망칠 줄 알았더니 의외로 그는 순순히 내 손에 이끌려 따라왔다.
“너 괜찮아?”
“…….”
다만, 영혼이 빠져나가기라도 한 것처럼 멍하니 넋을 놓고 있기는 했다. 나는 듀이가 정신을 찾을 때까지 잠시 기다리기로 했다.
“여기는… 네리아 님?”
그렇게 5분 정도가 지났을까, 드디어 소년이 의식을 되찾았다.
하지만 그는 완전히 풀이 죽어, 모든 것을 포기했다는 눈빛으로 땅바닥을 쳐다보기만 했다.
‘너무 섣부르게 말했던 건가?’
원래는 듀이를 차분하게 설득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대화가 아예 안 될 만큼 나를 피하고 있으니 나름대로 방법을 쓴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실패. 그 일이 듀이에게는 이 정도로 심각한 트라우마였을 줄이야.
‘그레이 경이 내일 수도에 도착한다기에, 듀이와 이야기를 미리 끝내고 싶었던 건데.’
좀 더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했다.
평소의 밝은 모습을 잃어버린 소년을 보며 나는 깊이 반성했다.
우선은 듀이를 다독이자. 그리고 기사 건은 시간이 한참 더 지나서 듀이가 마음의 준비가 되었을 때 다시 이야기를 꺼내 보자.
그렇게 결정하고는 듀이에게 팔을 뻗으려고 했다.
“언제부터 알고 계셨나요?”
그런데 소년이 나에게 먼저 말을 걸어왔다.
“제가 백작가의 목걸이를 훔친 도, 도둑이라고……. 저는 네리아 님이 모르시는 줄 알았어요.”
“글쎄, 그건.”
나는 그에게 내밀었던 손을 어색하게 거두고는, 듀이의 질문에 답해 주기 위해 입을 열었다.
“…몇 달 정도 된 것 같아.”
사실은 처음부터 기억하고 있었다고 거짓말을 하려고 했다.
왠지 듀이가 모르는 곳에서 그의 뒷말을 한 것 같아 양심이 찔려서였다.
하지만 이건 듀이에게 중요한 문제다. 솔직하게 말해야 했다.
“쉬는 시간에 다른 사람들이랑 이야기하다가 우연히 알게 됐어.”
“그런가요……. 하기야 저택 사람들이라면 다 아는 이야기를 네리아 님만 언제까지나 모르실 수는 없었겠죠.”
조용하게 읊조리는 그의 목소리가 쓸쓸하고 체념한 것처럼 들렸다.
“그, 그러면 네리아 님은 제가 싫어지지 않으셨나요? 저한테 시, 실망하셨다든가…….”
드디어 듀이가 나에게 눈을 마주쳐 왔다. 불안하게 흔들리는 그의 눈동자 속에서 초조함이 느껴졌다.
그는 나의 평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소년의 긴장한 모습을 보며 알 수 있었다.
기사가 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다.
듀이는 떳떳하지 못한 과거를 나에게 들켜, 내가 그에게 실망하게 되는 일을 걱정한 것이었다.
‘겨우 그런 일이 뭐라고.’
이미 지나 버린 과거를 문제 삼기에 듀이는 너무나 착하고 성실한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내 눈치를 보며 불안해하는 모습에 마음이 쓰렸다.
“싫어지지 않았어. 실망도 안 해.”
“…정말요?”
“응.”
나는 손을 들어 소년의 갈색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그 행동에 듀이가 서서히 안정을 되찾아 갔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너잖아.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었겠지.”
보육원에서 자란 평민이 도둑질을 하는 이유는 뻔하다. 배가 고팠거나, 윗사람이 시켰다거나.
작위가 탐난다고 조카의 인생을 훔친 진짜 도둑이 바로 근처에서 떵떵대고 있는데, 그에 비하면 듀이의 잘못은 무척이나 사소했다.
“내 말이 틀렸어? 듀이는 왜 백작가의 목걸이를 훔쳤던 거야?”
“…네?”
가벼운 질문이라고 생각했는데, 듀이의 눈동자가 커졌다.
“이유를 물어봐 준 사람은 네리아 님이 처음이에요. 다들 저를 보고 쓰레기라고 부르기만 했는데…….”
“그랬어? 나쁜 사람들이네.”
‘왜’는 중요한 문제다. 백부가 아니라 내 아버지였다면, 사정을 들은 후에 선처하셨을 텐데.
그는 기억을 정리하는 듯 한참을 머뭇댄 후에야 입을 열었다.
“보육원에서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있었는데, 어느 날 그 친구를 입양하겠다는 사람이 나타났어요.”
입양이라면 반가운 일일 건데, 듀이의 목소리가 어두웠다.
“좋은 일이 아니었나 보네.”
“네, 아니었어요. 회색 머리를 가진 사람이었는데, 그분의 소문이 좋지 않았거든요.”
소년의 표정이 흐려졌다.
“회색 머리에게 입양된 아이들이 어느 순간 사라진다는 소문이었어요. 그래서 전 친구를 데리고 보육원을 벗어나 도망가려고 했어요.”
“도망?”
“네, 하지만 저는 가진 돈이 없었어요. 도망 여비가 당장 필요한데 돈을 마련할 방법이 없어서…….”
“그래서 귀족의 물건을 훔쳤던 거구나. 친구를 위해서였네.”
나는 소년의 머리카락을 또 쓰다듬어 주었다. 역시 착해.
듀이의 이야기는 거기까지였지만, 나 역시도 뒷일을 더 묻지 않았다.
결과가 좋지 않았다는 건, 그가 이곳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알 수 있는 일이었으니까.
“말해 줘서 고마워.”
“아니에요. 저, 차라리 마음이 편해졌어요! 그동안 네리아 님을 속이는 것 같아서 불편했거든요.”
그렇게 말하는 듀이의 얼굴이 진심으로 후련해 보였다.
그래도 마무리가 잘돼서 다행이다. 헤헤 웃고 있는 듀이를 따라 미소 짓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네 이야기만 쏙 듣고 내뺄 수는 없지. 사실, 나에게도 네가 모르는 비밀이 있어.”
“비밀요……?”
소곤소곤 목소리가 작아졌다. 근처에 사람이 없다는 건 알지만, 한 번 더 주변을 확인했다.
“실은 나, 사생아가 아니야. 원래는 아버지를 이어 발렌티스 백작이 되어야 했는데, 백부님이 날 사생아로 만들어 자리를 가로챈 거지.”
“맙소사, 어떻게 사람이 그럴 수가!”
“…응?”
의외의 반응에 표정이 미묘해졌다. 듣자마자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지 않은가.
‘내가 평민이 아니라 귀족이라는 말에 먼저 놀라야 하는 거 아냐?’
심지어 듀이는 그 부분을 뛰어넘어 백부의 만행에 분노하고 있었다.
“그 말을 믿어? 의심도 안 해?”
“네.”
듀이는 진지했다. 한 치의 의심조차 없이, 마치 세상의 진리를 듣고 있는 것만 같은 표정이었다.
입을 가리며 진심으로 웃었다.
가족처럼 내 말을 맹목적으로 믿어 주는 존재가 있다는 건, 결코 싫은 일이 아니었다.
“어쨌거나 나는 내 자리를 되찾을 거야. 그런데 그러기 위해서는 나를 도와줄 사람이 필요하거든.”
나는 소년의 두 손을 붙잡았다.
“듀이, 기사가 되어서 나를 도와줘.”
“…네리아 님은 저를 믿으시기 때문에 이렇게나 중요한 이야기를 저에게 해 주신 거죠?”
“물론이지. 나는 널 믿지 않은 적이 한 번도 없었어. 네가 날 대신해서 채찍에 맞았던 날부터 말야.”
내가 말했지만, 듣는 사람이 감격할 법한 종류의 이야기이긴 했다.
역시나 듀이는 화르륵 타오른 얼굴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저, 네리아 님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요! 저를 믿어 주신 데 보답하고 싶어요! 그렇지만 고작 저따위가 기사라니…….”
분위기가 좋아졌다고 생각했는데 듀이가 다시 시무룩해졌다.
“될 수 없어요. 저는 범죄자인걸요. 범죄자는 기사가 되지 못해요.”
“그건 관청에 공식적인 기록이 남았을 때의 일이지. 하지만 넌 아니잖아? 문제 될 일 없어.”
기록으로 남았다면 듀이는 이미 손목이 잘리고도 남았다.
걸림돌이 있다면, 듀이와 백부가 사적으로 작성한 문서일 텐데, 그쯤이야 없애 버리면 그만이다.
“그, 그렇지만 가주님이 허락해 주실 리도 없고……!”
“허락은 내가 받아 올게.”
오히려 백부의 허가를 받는 일이 제일 쉬운 일이다. 내 명예를 걸고 장담할 수도 있다.
“그럼 아무 문제 없는 거 맞지?”
“하지만 저는!”
이제 핑곗거리도 다 떨어졌다. 그것을 깨달은 듀이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기사는 아무나 되기 힘든 대단한 사람이잖아요. 시험에 떨어져서 네리아 님을 실망하게 해 드릴 것 같아서… 저는 그게 제일 무서워요.”
“실망할 일 없어.”
“실망하실 거예요. 저는 정식으로 검을 배워 본 적도 없고……!”
“듀이, 너 스스로를 못 믿겠니?”
“…네.”
“스스로를 못 믿겠다면, 네 재능을 발견한 나를 믿어 줘. 설마, 내 안목을 의심하는 건 아니겠지?”
“아, 아니에요! 제가 그럴 리가!”
“그렇지? 내일은 좋은 스승님을 소개해 줄 테니까 열심히 하자.”
다소 어물쩍 넘어간 느낌은 있었지만, 결국 그는 기사 지망생이 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여, 열심히 하겠습니다…….”
목소리가 기어들어 가긴 했지만.
“아 참, 그런데 말야.”
이제 용건도 대강 정리되었겠다, 나는 그 김에 새벽부터 듀이에게 궁금했던 질문을 입에 담았다.
“왜 그동안 토드에게 당하기만 했어? 충분히 제압할 수 있었잖아.”
“집사님이 제가 저택에서 소란을 피우면 손목을 잘라서 쫓아낸다고 하셨거든요.”
졸렬한 협박이었군. 그래서 토드가 부당하게 듀이를 괴롭히는데도 아무런 반격을 못 한 거였다.
역시, 토드를 쫓아내길 잘했어.
“그럼 오늘 새벽에는 어째서 날 구하러 왔어? 만약 일이 잘못됐다면, 손목이 잘릴 수도 있었는데?”
당장 어제까지도 잘 참았잖아?
그 질문에 듀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고민조차 해 본 적이 없다는 눈빛이었다.
“그런 뒷일 생각할 겨를이 없었어요. 음, 그렇지만.”
듀이가 머쓱한 듯 머리카락을 긁적였다.
“생각하고 있었어도 갔을 거예요. 저는 네리아 님의 친구니까요.”
불어오는 바람 속에서, 소년이 덤덤하게 말했다. 그런 건 아무것도 아닌 당연한 일이라는 듯이.
“…….”
…또 감동하고 말았다.
지금의 기분을 말로 표현할 단어를 찾지 못해 그냥 웃었다.
단지, 이 착하고 상냥한 소년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고 싶다고. 그런 생각을 했다.
***
다음 날.
그레이 경이 수도로 돌아왔다.
그 소식을 접하자마자,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그레이 경을 만나고 싶었다.
그렇지만 하녀인 내가 가문의 기사를 대놓고 만날 수는 없었다.
사람들의 눈을 피할 수 있는 시각까지 인내해야 할 필요가 있었고, 결국은 새벽이 다 되어서야 그와 만남을 성사시킬 수 있었다.
“네리아 아가씨!”
“그레이 아저씨, 오랜만에 뵈어요.”
아무도 없는 저택의 구 훈련장에서, 나는 귀에 익은 친근한 목소리의 주인을 반갑게 맞이했다.
‘그레이 경과 앞으로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가?’
이 문제는 그를 직접 만난 후에 판단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편지를 한 번 주고받은 것만으로도 그는 내 편이 되어 줄 것임을 확신했고, 그 판단은 실제로도 다르지 않았다.
“세상에나! 저를 아저씨라고 불러 주시다니. 이 그레이,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아저씨는 여전하시네요.”
저쪽 세계나 이쪽 세계나.
그는 험상궂은 외견과 다르게 섬세한 내면을 가진 사람이었다.
‘손수건을 가져올 걸 그랬어.’
지금도 그레이 경은 본인의 외모와 전혀 어울리지 않게 눈물을 훌쩍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