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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은 셀프입니다 (13)화 (13/172)



<13>

‘위에 말하는 것도 소용없을 거야. 집사나 하녀장은 알면서도 방관하고 있을 테니까.’

저런 인간에게 말로 좋게 설득하는 방법은 통하지 않는다.

괜찮은 방법이 없을지를 고민하고 있는데, 근처에서 발소리와 함께 반갑지 않은 목소리가 들렸다.

“야, 네리아!”

“뭐야?”

다시 얼굴을 내민 토드를 보자 자연스럽게 짜증 섞인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뭐기는? 할 말이 있어서 왔지.”

어느새 그가 느끼한 표정을 짓고서는 내 근처로 다가오고 있었다. 듀이를 폭행하던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네가 평소에는 여자들이랑 몰려다녀서 말을 걸 기회가 없었거든. 네가 이렇게 예쁜 줄 알았으면 진작 잘해 줬을 텐데.”

“그래서 용건이 뭐야?”

“왜 그렇게 차갑게 굴어? 난 네 앞에서 폭력적인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 듀이를 때리는 일도 그만뒀다고.”

아, 그래서 갔다가 다시 돌아온 거였구나. 그걸 배려라고 생각하는 토드의 행동에 어이가 없어졌다.

“너도 알지? 내가 조만간 본관의 서쪽 구역장이 될 거라는 거. 그런 내가 너랑 사귀어 주려고 해.”

“…….”

헛소리는 듣는 것만으로도 시간 낭비가 된다. 더는 상대하기 싫어 자리를 떠나려고 했다.

하지만 내가 토드를 지나치려는 순간, 그가 내 팔을 잡아챘다.

“뭐야, 왜 그냥 가?”

“손 떼 줄래? 나는 네가 날 건드려도 된다고 허락하지 않았어.”

“이야, 말하는 거 봐. 주제넘게 구네? 얼굴 좀 예뻐졌다고 주위에서 떠받들어 준다 이거야?”

그가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픽 헛웃음을 내뱉었다.

“건방 떨지 마. 나는 까탈스러운 여자 싫어해.”

나는 여전히 팔을 붙잡힌 상태였다. 그가 나를 위협하듯이 손에 악력을 가하자, 팔에서 상당한 통증이 느껴졌다.

“착하게 굴 거면 놔줄게.”

토드는 내가 그에게 붙잡혀 있는 상황이 재미있다는 듯 히죽거리고 있었다.

…뭐, 이런 얼굴로 살면서 이런 일이 한 번쯤은 생길 것 같았다.

네리아가 잘 지워지지도 않는 검댕으로 얼굴을 가리고 다닌 이유가 무엇 때문이었겠는가.

뒷배 없는 평민에게 아름다운 외모는 독이다. 그녀는 자신이 위험한 상황에 놓이는 것을 피하려고 한 것이다.

‘내 경우에는 얻는 것이 더 많으니까 얼굴을 드러내 놓은 거지만.’

나는 눈동자를 굴려 주변을 살펴보았다. 마침 주위에는 다른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왜? 친구라도 부르려고? 미안한데 여기는 너랑 나밖에 없어.”

“그러게. 우리 둘밖에 없네.”

“알면 까불지 말고 얌전하게-”

“더러운 손 당장 치우는 게 좋을 거야. 후회하기 싫으면.”

그를 비웃듯이 입꼬리를 올렸다.

내가 10살이 되던 무렵, 어머니는 나를 무릎에 앉혀 두고 말씀하셨다.

‘네르는 나를 닮아서 큰일이야. 너무 예쁘게 생겼잖아! 누가 납치라도 하면 어쩌지? 안 되겠어, 엄마가 호신술을 가르쳐 줄게.’

‘호신술이요?’

어머니의 친정은 이름만 귀족이지 경제력은 평민보다 못한 곳이었다.

가난한 시골 미인에게 불순한 목적으로 접근하는 남자가 많았기에, 외할아버지는 어머니에게 직접 호신술을 가르쳤다고 했다.

‘알겠니, 네르? 고간이 약점이야. 다리 사이를 발로 차 버리렴!’

사실, 어머니와 달리 어릴 때부터 호위 기사를 두었던 나에게는 위험에 처할 일이 거의 없기는 했다.

하지만 어머니와 함께 논다는 생각에 즐거워서 꽤 열심히 호신술을 익혔고-

“더러운 손? 이게 진짜 건방지게! 나는 여자라고 안 봐준다고!”

토드가 팔을 높이 뻗어 내 머리를 내려치려고 했다.

하지만 나는 피하거나 막는 대신, 그의 손을 붙잡아 오히려 내 쪽으로 당겨 버렸다.

“어어?”

중요한 건 무게중심이다.

토드가 몸을 휘청인 순간 재빠르게 다리를 걸었고, 방심하고 있던 그는 그대로 땅바닥에 넘어지고 말았다.

이런 일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일까? 토드가 얼빠진 표정으로 당황해하고 있을 때,

“아아아아악-!”

마무리로 그의 고간을 걷어찼다.

그런데 생각보다 강도가 셌던 것인지 토드가 비명을 지르며 계속 땅바닥을 뒹굴었다.

“아아아악-! 아파! 진짜 아파!”

역시, 뭐든 배워 놓으면 언젠가는 도움이 되는구나. 저쪽에 계신 어머니께 마음으로나마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나는 토드가 땅바닥을 굴러다니는 모습을 차갑게 내려다보았다.

“그러게 왜 말을 안 들어? 후회하기 싫으면 손 치우라고 했잖아.”

“나 죽어! 죽는다고! 아악!”

“내 말 듣고 있어?”

“미친것아! 내가 가만 안 둔다!”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지?”

“자, 잠깐. 아아아아악-!”

토드의 다리 사이를 또다시 퍽퍽 밟아 주고는, 몸을 숙여 그의 귓가에 음산하게 속삭였다.

“또 나한테 시비 걸면, 그때는 이 정도로 안 끝난다.”

듀이의 일은 일부러 언급하지 않았다. 방금 일로 괜히 나와 친한 듀이에게 불똥이 튈 것을 염려해서였다.

나는 고통을 호소하는 토드를 남겨 두고는 미련 없이 자리를 떠났다.

‘발에 닿은 감촉이 더러워.’

숙소에 가서 신발이라도 바꿔 신든가 해야지. 나는 죄 없는 흙바닥에 구두를 벅벅 비볐다.

***

“뭐? 그런 일이 있었단 말야?”

“응……. 토드를 넘어트리고 도망치기는 했는데, 팔에 멍이 들어 버렸을지도 모르겠어.”

“맙소사. 그놈이 또!”

저택의 고용인 휴게실.

나는 동료 하녀들에게 둘러싸여 눈물을 훌쩍였다.

토드는 중요 부위를 얻어맞은 것 정도로 회개할 인간이 아니었다.

앙심을 품고 무슨 일을 벌이기라도 할 때를 대비하여 미리 여론 몰이를 해 둘 필요가 있었다.

방금 있었던 일을 살짝 각색하여 내가 일방적인 피해자가 된 것처럼 말해 주었더니, 모두가 자신이 겪은 일인 것처럼 격렬하게 분개했다.

“네리아! 더 다친 데는 없어?”

“괜찮아? 많이 놀랐지? 나 그놈 저택에서 제일 싫어.”

“동감이야! 사고 쳐 놓고 다른 사람한테 덮어씌운 일이 한두 번이 아니잖아.”

“아, 그거 나도 당했어. 토드가 비품을 잃어버려 놓고선 나한테 줬다고 우기는 거 있지?”

“차기 구역장은 무슨? 웃긴다. 누가 될지 아직 확정도 안 났는데.”

다른 사람들도 이미 당한 바가 많았던 것인지, 하녀들이 기다렸다는 듯 토드의 험담을 쏟아 냈다.

“토드 걔, 예쁜 애들이 하녀로 들어올 때마다 껄떡거리거든.”

“작년에 일을 그만둔 디디 기억나? 디디도 그놈이 들러붙어서 괴롭히니까 저택을 나간 거였어.”

“넌 특히나 예쁘니까 조심하라고 미리 말해 줬어야 했는데……. 미안해. 엠마 이후로는 잠잠하길래 버릇을 고친 줄 알았어.”

여전히 눈물을 글썽이며 동료 하녀들에게 위로받고 있는데, 신경 쓰이는 이름이 귀에 들어왔다.

“엠마?”

“응, 엠마가 누군지는 알지?”

고개를 끄덕였다. 디디라는 하녀는 몰라도 엠마를 모를 리가 없지.

‘레, 레비 님? 문이 열려 있었나 봐요!’

이곳으로 떨어졌던 첫날, 내 방 침대 위에서 레비와 같이 뒹굴고 있던 여자의 이름이었다.

원래는 하녀로 들어왔다가 레비의 눈에 띄어 그의 애인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다.

가장 최근에는 레비의 새로운 직속 하녀로 승진했다는 소식까지도.

“그놈이 처음엔 엠마한테도 추근댔다? 엠마가 레비 도련님의 애인이 되는 바람에 금방 포기하긴 했지만 말이야.”

아… 그런 일이 있었단 말이지?

새롭게 알게 된 정보를 머릿속에 기억해 두고서는 짐짓 탄식했다.

“맙소사. 피해자가 한두 명이 아니었구나.”

“맞아. 걘 양파야. 까도 까도 뭐가 계속 나오거든.”

“…그런 망나니가 용케도 저택에서 안 쫓겨났네. 어떻게 아직도 붙어 있는 거지?”

예전 세계였다면, 토드 같은 고용인은 진작에 해고를 당했을 거다.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바로 옆에 앉아 있던 비비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토드가 아부를 잘하거든. 그래서 집사님이 걔를 편애해. 내가 집사님을 찾아가서 얘기도 해 봤는데, 토드를 감싸기만 하시더라.”

“그랬구나.”

집사나 토드나. 똑같은 부류의 인간들이 끼리끼리 모여서 놀고 있다는 생각에 헛웃음이 나왔다.

“항의해도 말이 안 통하니까 다들 포기한 거지, 뭐.”

비비는 더 생각하기도 싫었는지 진저리를 치고는 나를 걱정스럽다는 얼굴로 바라보았다.

“그보다 네리아. 조심하는 게 좋을 것 같아. 토드가 해코지라도 하면 큰일이잖아. 당분간은 혼자 다니지 않는 게 좋겠어.”

“어디 가야 할 데가 있으면 우리가 같이 가 줄게! 사람이 없는 곳에는 되도록 가지 말고. 알겠지?”

“다들 고마워!”

이번에는 감동의 눈물을 훌쩍였다. 고용인 휴게실의 분위기는 오늘도 따뜻했다.

***

오늘의 마지막 일거리는 백작 부인이 새로 사들인 식기 세트를 정리하는 것이었다.

세척을 끝내고 물기를 닦아 그릇장에 넣어 두는 과정까지 모두 끝.

같이 일하고 있던 엔과 함께 개운한 기분으로 부엌을 벗어났다.

“네리아는 바로 숙소로 간다고 했지? 방 앞까지 데려다줄게.”

“역시 엔! 신경 써 줘서 고마워.”

“이쯤이야 어려운 일도 아니야. 어? 그런데 저기…….”

엔이 무언가를 발견하고 걸음을 멈췄다. 나 역시도 그녀를 따라 고개를 돌렸다.

“…엠마랑 사샤?”

그곳에는 하녀 두 명이 넓은 계단에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한 명은 휴게실에서 언급된 바 있는 레비의 애인 엠마. 다른 한 명은 레비의 직속 하녀인 사샤.

친하지는 않아도 저택 내에서 종종 마주치는 얼굴들이었다.

“사샤, 귀찮게 해서 미안. 내가 외우는 속도가 느려서.”

“늦어도 괜찮으니까 확실하게 외우면 돼. 레비 도련님은 복숭아 알레르기가 있다는 거 기억나지?”

“그건 기억하고 있어.”

“저택에는 복숭아를 들여오지 않으니까 상관없지만, 외부에 나갔을 때는 레비 도련님께 복숭아가 들어간 음식을 드리지 않도록-”

레비가 복숭아 알레르기? 체질은 여전하구나.

그렇게 생각하는 중에도 사샤의 목소리가 조곤조곤 이어지고 있었다. 자세하고 친절한 설명이었다.

엠마가 직속 하녀로 뽑혔으니, 레비의 원래 전담인 사샤가 그녀를 직접 가르치고 있는 것 같았다.

좋은 선생님이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엔이 옆에서 못마땅한 목소리로 귓속말을 속삭여 왔다.

“자상하게도 가르쳐 주네. 사샤는 속도 좋아. 화나지도 않을까?”

“응? 화가 난다니?”

분위기에 맞춰 나도 작은 목소리로 속닥거렸다.

“직속 하녀가 늘어나면 사샤는 일이 줄어들어서 좋은 거 아냐?”

“아, 네리아는 모르고 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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