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구원은 셀프입니다 (11)화 (11/172)



<11>

로이엔 경은 입만 뻐끔대며 아무런 대답을 못 하고 있었다.

뭐, 혼란스럽기도 하겠지. 나는 그가 생각을 정리할 때까지 천천히 기다려 주기로 했다.

“…….”

어느새 로이엔 경이 표정을 갈무리하고 있었다. 당황한 기색을 전부 숨기지는 못했지만.

“완치가 가능하다니, 사실입니까? 제국의 의사들이 전부 고개를 저은 병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어떤 천재 마법사의 업적이라고만 말해 둘게요.”

짧아도 확실한 설명이기는 했다.

은발 금안의 소년 검사 힐더 할슈리트 경처럼, 세상에는 상식을 뛰어넘는 천재들이 존재하니까.

“…그렇습니까.”

로이엔 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녀인 내가 그걸 어떻게 얻었을까. 궁금한 게 많았을 테지만, 그는 약의 출처에 대해 더 묻지 않았다.

대신, 자세를 고치며 나에게 정중한 태도로 물었다.

“그렇게 대단한 업적이 공짜일 리는 없겠지요. 치료약의 대가로 저에게 원하시는 게 무엇입니까?”

“이야기가 빨라서 좋네요. 저도 바로 본론으로 들어갈게요.”

기분 좋게 웃으며 나 역시 자세를 바로잡았다. 하녀 네리아가 아닌 발렌티스 가문의 적장녀 네리아로 보일 수 있도록.

“저는 제 부모님의 유산을 돌려받길 원해요. 그러니 경께서 제게 협조해 주기를 바랍니다.”

유능한 그라면 눈치챘을 것이다.

내가 말하는 ‘유산’이 단순히 돈이나 귀족 신분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

역시나, 그는 꽤 오랜 시간을 침묵했다.

나에게 협조하라는 건, 현 가주인 백부를 배신하라는 뜻이다. 쉽게 대답할 수 없는 것이 당연했다.

그랬기에 나는 채근하지 않고 가만히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네리아 님은 발렌티스 백작가의 가주가 되고 싶으신 겁니까?”

“정확해요. 원래 제가 물려받았어야 할 자리잖아요?”

로이엔 경이 대답 없이 고개를 돌려 내 시선을 피했다.

그는 그 뒤로도 긴 시간이 지난 후에야 결정을 내린 듯 어렵게 입을 뗐다.

“…셜리에게는 엄마가 없습니다. 그런데 저까지 없어진다면 제 딸은 혼자가 되어 버립니다.”

“…….”

“네리아 님을 따르는 것은 저에게 너무 큰 도박입니다. 저는 지켜야 할 아이가 있습니다. 불확실하고 위험한 일을 할 수는 없습니다.”

로이엔 경이 나에게 허리를 굽혔다. 협상은 결렬. 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명백한 거절이었다.

“딸아이의 병은… 제가 더 노력할 겁니다. 죄송합니다, 네리아 님.”

“괜찮습니다. 저는 경의 결정을 존중해요.”

여전히 허리를 숙이고 있는 그에게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대신 오늘 제가 했던 제안은 함구해 주세요. 그 정도는 해 주실 수 있겠지요?”

“물론입니다. 네리아 님께는 이미 저지른 죄가 있으니까요.”

“고마워요. …하지만 아쉽네요. 좋은 협력 관계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나는 로이엔 경을 더 회유하지 않고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먼저 돌아가겠습니다. 경도 살펴 돌아가시길.”

일단은 퇴장할 때다. 그에게 인사한 후, 문을 향해 걸어갔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뒤에서 로이엔 경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깐! 이것을 잊으셨습니다.”

급하게 나를 부른 그가 책상 위를 가리켰다. 그곳에는 처방전이 적힌 종이가 올려져 있었다.

‘역시, 성실한 사람이네.’

모른 척 가져가거나, 외워서 돌아가도 됐을 텐데. 나는 뒤를 돌아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건 로이엔 경께서 가져가세요. 일부러 두고 간 것이거든요.”

“예? 하지만 저는 네리아 님의 제안을 거절하였는데……?”

“제 입으로 처방전이 무언가의 대가라고 말한 적이 있었던가요?”

“…….”

“그건 처음부터 드릴 생각이었어요. 경의 대답 여부와 관계없이요.”

“…어째서입니까?”

“셜리는 거래의 대상이 되지 않으니까요. 소중한 제 동생이잖아요.”

“예?”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당황한 로이엔 경을 남겨 둔 채, 이번에는 정말로 자리를 벗어났다.

***

서가에 홀로 남은 로이엔은 반쯤 넋이 나간 상태로 종이를 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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